여름이 창창해도 나 홀로 벚꽃 타령이다. 콧노래가 절로 나올 만큼 기분 좋다. 아무리 그렇다지만 내가 이걸 다시 손에 잡을 줄은 몰랐다. 거리를 거닐다 우연히 발견한 자수 가게에서 재료를 사 왔다. 이제 매듭만 지으면 된다.

 손수건에 꽃쯤이야 우습다.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해 본 내게도 귀부인처럼 집에서 자수만 놓던 시절이 없는 건 아니다. 내 실력이 아직은 녹슬지 않은 모양이다. 꾸밈 없는 계화 꽃에 은은한 정취가 있다. 제법 품위가 있지 않은가.

 꼬맹이가 이걸 지켜보고는 자기도 자수 놓는 법을 배우고 싶단다. 요즘 여자들은 자수 말고도 할 일이 많으니 배워 봤자 쓸모없다 생각하지만 언젠가 저는 저대로 좋은 사내를 만나 정표로 삼을까 싶어 천천히 가르치기로 했다.

 손수건을 뒤집어 놓고 보니 아무래도 그게 있어야 될 것 같다. 잠시 고민하다 바늘을 다시 집어들었다. 작은 표식으로 손수건 뒷쪽에 자수 하나를 더 놓았다. 이건 무슨 뜻이냐 묻는 꼬맹이에게 장황하게 설명하긴 좀 낯뜨겁고 하니 고죠 가와 관련된 것이라고만 일러 주었다. 다 알면서 헤벌쭉해서는 괜히 나까지 꼬맹이처럼 수줍어진다.

 문제는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다는 거다. 매일 손수건을 지니고 다니며 기회만 엿보았다. 기다려도 안 되고 찾아가도 안 되고. 그렇다고 교실에서 당당히 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전화해서 잠깐 만나자고 부탁이라도 해야 되나. 생각하며 교정을 걷고 있을 때였다. 마침내. 나는 멀리 있어도 훤칠한 고죠를 바로 알아보고 그에게 달려갔다.

 고죠가 나를 돌아보더니 껄껄 웃는다. 내가 생각해도 주인을 보자마자 꼬리 흔들며 달려오는 강아지 꼴이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었다. 보조 감독과 있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이지치면 그러느니 했을 텐데 오늘은 여자다. 이건 틀렸구나.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지나가려니 황당하기도 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고죠가 내 팔을 확 잡아끌었다.

 "어디 가."

 "나 말이냐. 잠깐 저기⋯⋯."

 "저기는 무슨! 나랑 장난해?"

 "왜 화를 내고 그러냐. 놓아라."

 보고 있잖아. 이런 얼굴을 하니 고죠가 손을 거두었다. 그러면서도 짙은 안대 너머로 내게 이끌리는 꼴이 퍽 애틋하다. 나는 여자를 힐끗 쳐다봤다. 눈치가 빤한 그는 잠깐 기다려 달라 말한 뒤 조금 떨어진 곳으로 나를 데려왔다.

 "화내서 미안. 근데 너도 나빠. 내 마음을 가지고 놀았잖아."

 "내가 언제⋯⋯ 그래, 그래. 아무래도 좋으니까 이거 받아라."

 나는 고죠의 손에 손수건을 쥐어 주었다. 이게 웬 손수건인가 내 얼굴에 뭐 묻었나 영락없이 착각하고 있다. 보다 못해 직접 수놓았노라 얘기했다. 고죠가 안대를 내리더니 손수건의 앞면과 뒷면을 모두 보고는 흐뭇하게 웃었다.

 "계화나무네. 옛날에 이 꽃을 향주머니 안에 넣고 다녔다지. 하지만 다른 꽃들에 비하면 수수하게 생겼는데. 그러고 보니 너 예전에 기모노 주문할 때도 이 무늬로 하겠다고 했잖아. 계화나무를 고른 이유가 뭐야. 가르쳐 줘."

 "네 말대로 옛날에는 나도 계화나무 꽃을 향주머니에 넣어 차고 다녔다. 그때는 향수라는 게 흔하지 않았고 여자들 화장법도 변변찮았거든. 뭣보다 내 남편한테는 아내가 나만 있는 것도 아니니까⋯⋯ 나머지는 알아서 생각해라."

 이만하면 알아들었겠지. 이런 얼굴을 하고 섰으니 고죠도 쑥스럽긴 한지 더는 묻지 않고 노냥노냥 손수건만 만지다 픽 웃는다. 고죠가 눈웃음 지을 줄 안다는 걸 모르는 놈이 많을 텐데 아까워도 지금은 오롯이 내 곁에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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