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롭힌 적 없는데."
"시치미 떼지 마라." "아니. 진짜 없으니까." "안 봐도 뻔하다 이 놈아." 고죠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입술이 말없이 꿈틀거렸다. 그러한 신호 덕에 가려진 부분을 상상할 수 있었다. 정말 모르겠다는 눈빛. 아무래도 자기는 이지치를 괴롭힌 게 아니었다고 진심으로 생각해 왔던 것 같다. "상습적으로 일정을 무시하고 뒷일은 나몰라라 이지치에게 떠맡기겠지." "자세히 설명할 시간이 없었을 뿐 다 이유가 있었어. 지금은 잊어버렸지만." "그뿐이냐. 수 틀릴 때마다 싸다구 때린다고 겁주는 게 갑질이 아니면 뭐야." 고죠의 반응을 보아 내 뜻대로 상황이 흘러가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런 내게 남은 방법은 오로지 하나. 진심 싸대기를 거론하는 것이었다. 직접적으로 폭력을 가한 이상 납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과연 고죠의 태도가 달라졌다. "나한테 남은 사람은 이지치뿐인걸. 우리가 서로에게 말하지 못하는 얘기나 숨기는 일 따위는 없어야 하니까. 그 자식은 예전부터 그랬지. 나랑 눈도 못 마주치고. 이름만 불러도 깜짝 놀라고. 열받는단 말이야. 내 마음도 모르면서." 부담스러움을 넘어 공포스럽기까지 한 집착이다. 아무리 남자라도 무섭겠지. 어쩐지 다른 데서 쌓인 불만을 이지치에게 풀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지만 거기서 걸고 넘어지면 귀찮아질 것이 뻔하므로 애초에 생각도 안 했다. "근데 말이야. 너희 둘도 이상해. 네 말대로라면 나는 그냥 쓰레기잖아. 다른 사람의 입장 같은 건 신경도 안 쓰는. 그치. 왜 말하면 얌전히 들어 줄 거라고 생각해. 앞뒤가 안 맞지. 너도 알다시피 나 잔소리 듣는 거 무지 싫어하는데." 이지치의 수난은 다 말하자면 끝이 없다. 어차피 지난 일이라지만 고죠도 자신의 철없는 과거가 자랑스러울 리는 없으니 둘 중 하나다. 이지치와 내게 삐쳤거나 부끄러워하고 있거나. 어느 쪽이든 여기서는 전략을 바꾸는 것이 좋다. "이 정도 잔소리는 꾸준히 할 거다." "어차피 대체로 듣지 않을 건데, 왜." "널 사랑하니까!" "⋯⋯." "잘 들어라. 고죠 사토루. 우리에게는 네가 필요하다. 알겠냐. 난쟁이똥자루 좆만이라고 불려도 협박당하고 싸대기를 맞아도 빌어먹을 양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네가 있어야 한다고. 매일 밤 치욕스러워 입술을 깨물고 밤을 꼬박 새며 울어도 너에게 빌붙어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인 거다. 너를 사랑하지 않고는 이 비참함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우리의 정신력으로는 견딜 수 없다고. 너에게 하는 잔소리가 최후의 발악이다. 그래, 사랑이다." "⋯⋯." 나와 그곳에는 없는 이지치의 처절한 사랑 고백 후 고죠는 말없이 뒤돌아서 떠났다. 누군가에게 의지되는 것조차 그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보이고 고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해 왔을 테지만 내 농담짓거리에 새삼 지겨움을 느낀 것인지도 모른다. 과거의 꼬맹이가 그만큼 노력했으면 이제는 슬슬 자기가 응석부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도 하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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