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와의 훈련은 단순하다. 아직 주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니 그냥 맨몸으로 공격을 받아 보고 문제점이 보이면 고쳐 준다. 평소와 같았던 오늘은 도약 실패로 나가떨어지는 황당한 일도 물론 없었다. 그건 정말 바보 같은 실수였으니까.
그런데 오늘따라 몹시 피곤하다. 조금 무리했던 것도 같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빠르게 지쳐 가는 기분이었다. "쌤, 어깨 주물러 드릴게요." "오냐, 귀여운 것. 사, 살살해." "여자애 어깨는 어느 정도의 힘으로 눌러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후시구로는 그냥 뭉개면 시원하다고 하는데 말이죠. 아무튼 스즈카 쌤 저 때문에 요 며칠 계속 무리하셨으니까 제가 책임질게요. 오늘도 기숙사까지 업어 드릴까요." "너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냐. 나도 뭐가 문제인지⋯⋯ 밤 늦게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 탓인가." "풉!" "이상하냐?" "오히려 평범해서요. 쌤은 정말⋯⋯." "신세대라고? 훗. 그래, 나는 어딘가의 구닥다리 양반과 다르지. 이것저것 눌러 보면서 알아 가는 중이다만." 아무래도 손바닥 만한 물건의 강력한 마성은 인간에게만 미치는 게 아닌가 보다. 후유증을 겪는 것도 똑같다. 나는 웃으며 유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정말⋯⋯ 이렇게 보고 있으면 지켜 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인데. 스즈카 쌤도 도 겉보기와 다르잖아요. 두 사람을 보고 있으면 제가 뭐 때문에 여기 오게 됐는지 잊어버릴 것 같아요. 스쿠나에 대한 얘기도 다 거짓말 같고." "그야 주술사 놈들이 네게 지껄이는 말들을 전부 사실이라 믿는 건 어리석은 짓이지. 사실과 거짓을 분별하는 것은 아주 중요해. 하지만 어느 쪽이 옳은가를 고민하면 힘들어진다. 그저 더 나은 쪽을 선택한다고 생각해라. 절대로 너의 편이 옳다거나 선하다고 판단해서는 안 돼. 스쿠나나 네놈들이나 솔직히 내 눈으로 보면 그 놈이 그 놈이야." "진실은 제가 스쿠나의 손가락을 삼키지 않았다면 누구도 다치는 일 없이 끝났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변명할 생각 없어요. 이것도 사실이잖아요. 스즈카 쌤과 아무한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거요." "과거에는 나도 많은 인간들을 죽였다. 방해되는 놈들을 용서할 수 있을 만큼 너그럽지 못했거든. 실은 너도 변명하고 싶었을 게야. 그것과 관계 없이 네가 내린 모든 결정과 행위에는 책임이 뒤따르는 법이다. 유지, 너는 나를 믿으냐." "네, 믿어요." "그렇다면 그 말에 담긴 무게를 아느냐. 너와 뜻을 함께하는 녀석들이 있는 이상 너는 혼자가 아냐. 메구미도 마찬가지다. 그날 밤 너를 살려 두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 믿고 내린 결정이었으니 너와 함께 책임을 져야만 하지." "스즈카 쌤도 제가 손가락을 삼킨 시점에서 죽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구할 수 있는 만큼 구하고 깔끔하게 죽어. 네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니까." "그거 좋네요. 딱 제 스타일이에요. 아, 목마르지 않으세요? 금방 다녀올게요!" 정말 오랜만에 쓸 만한 놈을 찾았다 생각했는데. 아직은 별 수 없는 꼬맹이인가. 음료수를 뽑으러 간 유지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나는 기지개를 폈다. 내 정체를 아는 놈들이 들으면 농담이라 생각하겠지만 주령인 나도 어쨌든 인간의 몸을 빌려 쓰는 형편이고 컨디션 영향을 받는다. 잠 부족이다. 한심하게도. "어쩐지 알 거 같아요. 후시구로 말이에요. 쌤이 계실 때 묘하게 말수가 많아지고 잘 웃는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쌤이랑 얘기하는 거 재밌으니까. 심지어 걔가 먼저 장난치잖아요. 저희랑 있을 때는 안 그래요." "그러냐. 희한하군." 유지와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어차피 그 놈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불쑥 나타나 싱글벙글 웃겠지. "야호!" 생각하기 무섭게. 걸걸한 아저씨 목소리 주제 명랑함만으로 하이톤을 찍어 버린 녀석이 까마득히 먼 상공에서 나타났다. "고죠 쌤!" "유지!" 고전의 전통 양식 건물 사이로 메구미의 누에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왔다. 고죠는 누에의 다리에 매달려 있었다. "공부 열심히 하고 있었어?" "스즈카 쌤이 도와주셨어요!" 유지의 말을 듣고 뒤늦게 나를 알아본 고죠는 왠지 조금 당황하는 듯 보였다. 잠시 후 누에가 지상으로 내려왔다. "출장일 때는 저한테도 얘기 좀 해 주세요. 숙제라도 내 주고 가셔야죠. 후시구로는 계속 임무지, 쿠기사키는 쇼핑하러 나가서 없지. 저 혼자 뭘 하면 좋을지 모르겠단 말이에요. 오늘 스즈카 쌤 쉬는 날인데 어쩔 수 없이 나오셨어요." "그랬구나. 어떻게든 해 줄게. 쌤도 있잖아, 사정이 있었거든. 갑자기 결정된 일이라서. 누구에게도 알릴 틈이 없었어. 흑흑." 자신의 부재로 곤란해지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아는 인간이 놀이 기구라도 타는 것마냥 날아오는 꼴을 봤다. 나도 마음에 안 드는데 가장 곤란했을 입장임에도 웃는 얼굴로 맞아 주는 유지는 천사다. 메구미는 또 어떤가. 이렇게 좋은 제자들을 두고도 좀처럼 겸손해질 줄 모르는 선생 놈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며 침묵을 흘려 보냈다. 잠들기 전 무의식적으로 전화기를 집어든다. 지난 며칠 간 그렇게 잠드는 순간을 놓쳤는지도 모른다. 이렇다 할 일이 없어도 이것저것 눌러보고, 부재중 전화나 메시지를 확인하고,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기도 한다. 즐겁지 않지만 빠르게 습관화되어 갔다. 고죠가 내게 요물을 선물한 거다. 친절을 가장해 치밀하게 사용법까지 알려 준 교활함은 주령이나 주저사에 빗댈 것이 아니었다. 더는 속지 않는다. 이제는 보인다. 이 요물을 통해 나를 인간의 노예로 삼으려는 시커먼 속내가. "수고했어." 이 스즈카 고젠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 쉽게 함락되지 않는다는 걸 간사한 주술한 놈에게 머잖아 깨닫게 해 줄 것이다. "얘기 좀 할까." 어쩌다 보니 중간에 끼인 유지가 둘을 번갈아보았다. 고죠는 모르는 것 같았다. 나도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고 말을 아꼈다. "보스 명령이야. 따라와." 역시 고죠 사토루. 보통내기가 아니군. 기싸움에서 꼬리를 내리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제대로 대면한 것은 처음이었다. 전혀 어색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기에, 나는 주춤주춤 유지의 등 뒤에 숨었다. "그만하면 됐잖아. 유지, 이제 데려가도 되지?" "잠깐만요. 아직 좋다고 대답하지 않았잖아요." 유지가 나를 붙잡았다. 뜻밖의 완력에 움찔했다. "쌤, 오늘 좀 이상해요. 왜 그렇게 집요하게⋯⋯." 조금 아리송했지만 유지의 안색이 빨갛기도 하고 파랗기도 했다. 무엇보다 표정이 흥미로웠다. 망설이는 사이 고죠가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배려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는 건지 괜히 머쓱해지게 만드는 웃음소리였다. "유지도 참, 그런 거 아니야." "⋯⋯." "괜찮아. 괜찮다니까. 하하하." "아무 문제 없는 거 맞죠? 쌤?" 고죠와 나는 걱정 붙들어 매라는 뜻에서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그러자 못내 유지가 내 팔을 놓아 주었다. "유지 녀석, 다시 봤다. 제법이야." "그러네." "애들의 속도는 따라갈 수 없구만." "그러게." 주문한 우동 두 그릇이 나왔다. 김가루를 넣고 고춧가루를 뿌리며 덤덤하게 대화를 나누다 입에서 웃음이 새나왔다. 페이스가 무너지고 동시에 터졌다. 참았던 웃음을 터뜨리고 나니 눈물이 찔끔 났다. 겨우 진정하고서 젓가락을 들었다. "얄미운 제자 놈. 내가 한번만 봐준다." "누가 누굴 봐줘. 허세 부릴 때가 아냐." "그러니까 가자고 할 때 얌전히 따라왔어야지. 심지어 네가 '부탁이니까 나 좀 도와줘'같은 제스처를 했잖아. 유지도 남자애고 앞으로는 감추려고 할수록 의심만 더 사게 될 거야. 쌤한테 그런 취미가 있었다든가. 으아앙. 진짜 싫다." "미안하다." "어떡할 거야⋯⋯." "이번에는 나도 함부로 말을 못하겠다. 솔직히 이런 상황까지 기대도 안 했어. 고작 데이트 한 번에 무슨 일이 생길까 싶었지. 네 입장이 얼마나 난처했을지 상상이 간다. 내게도 책임이 있으니 혼자 두진 않겠다. 울지 마라, 담탱아." 도련님답게 먹으며 말하는 것은 절대금기이므로 고죠는 분주히 우물거리며 뜸을 들였다. 내가 먹는 걸 보고 자극이라도 받았는지 깨작거리던 지난번과 달리 털털하게 국물을 마시고 그릇을 탁 내려놓았다. 볼이 발그레했다. 말해 무엇하리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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