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우리를 어떻게 생각해?"

 더할나위없이 화창한 여름날. 시야가 닿지 않는 곳까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다. 가슴이 울렁인다거나 놀러가고 싶다거나. 그 가운데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던 고죠가 내게 던진 갑작스런 질문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시시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너야말로 왜 그렇게 생각하냐."

 "적어도 나만큼 너를 알고 지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할 거야. 그러니까 너한테 이런 질문을 한 사람이 내가 처음은 아니겠지만. 너한테 큰소리치던 놈들이 볼썽사나운 꼴로 죽어 가는 걸 보면 시시하다는 생각이 들 것도 같아서."

 "먼저, 나는 너 외에 다른 인간들에게 같은 질문에 대답한 적 없다. 솔직히 말하지. 대부분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기 전에 뒤져 버리니 생각해 본 적도 없어. 그리고 모든 인간들의 결말은 저주가 아냐. 나의 결말을 생각하면 된다. 나는 삶이라는 저주를 받았지. 둘 중 하나다. 나 스스로 더는 견딜 수 없어 끝을 내거나 주술사에게 불제되거나."

 "그만하고 싶어?"

 "그야, 당연하지."

 나는 고죠와 나란히 앉았다. 불현듯 찾아온 정적. 무시하려 애썼으나 고죠의 시선이 묘하게 오싹했다.

 "그럼 그만해. 당주님이 허락할게."

 "네 말은⋯⋯ 거시기하자는 뜻이냐. 지금, 여기서. 너무 갑작스럽잖아. 적어도 준비할 시간은 줘야지."

 "준비할 게 뭐 있어. 나랑 거시기할 필요도 없어. 무덤만 바뀔 뿐이고 내 옆이니까 금방 적응할 거야."

 무의식 가운데 불길함을 감지했다. 흘러가는 스크립트 속에 감춰 있던 복선이 낯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내 말이 PTSD를 일으켰나 보네."

 PTSD? 잘 모르겠지만 이런 걸 보고 떠올리는 말임은 분명하다. 나는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불안에 휩싸인 채 아래로 이어지는 계단을 계속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고죠가 그런 내 얼굴을 자세히 보려는 듯 자세를 낮춰 다가왔다.

 내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차라리 죽여라! 제발 죽여 줘!"

 "그렇게 싫어? 뭐, 당연한 거지만."

 수백 년이다. 셀 수도 없이 긴 세월을, 나는 빌어먹을 무덤에 갇혀 있었다. 한 사람의 인간 때문에. 고죠 가의 남자 때문에. 생전 주령이란 주령은 죄다 적으로 돌려놓은 채 죽어 버린 주술사. 그 놈의 무덤 자리를 굶주린 하이에나들로부터 지키느라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가루가 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혐오가 아닌 공포다. 고죠가 죽으면 가문 사람들이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둘 리 없으니 어차피 고죠와 운명을 같이 하는 것으로부터 피할 수는 없겠지만, 이것은 스즈카 고젠 삶의 최대 굴욕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봉인만은 피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애원했다.

 "참 아이러니지. 대대로 주술사였던 우리 가문 선조들이 지난 수백 년 간 평안할 수 있었던 게 네 덕분이라니. 심지어 너를 봉인한 사람은 할아버지였잖아. 그런 양반조차 사후의 일을 걱정했다고 생각하면 나도 조금 침울해지는 기분이야."

 "고죠는⋯⋯ 네 할아비는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는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차라리 복수라고 하지 그러냐."

 "드디어 입을 여는구나. 선조님께서 과거에 너를 봉인하신 건 그렇다 치자. 강력한 주물을 액막이로 쓰는 것도 과거에는 더 흔한 일이었어. 하지만 이상해. 다른 묘들처럼 근처에 두어도 충분한 걸 할아버지는 왜 자기 무덤까지 가지고 들어갔을까. ⋯⋯스즈카, 우리가 굳이 봉인이라는 찝찝한 방법을 쓰는 이유는 두 가지밖에 없어. 불제하기에는 너무 강력하거나 서로 끝내지 못한 얘기가 있어서지. 할아버지가 너 하나 때문에 골치아파하진 않았을 텐데."

 "나 스즈카 고젠이야. 내가 맘먹고 싸웠음 네가 말하는 그 잘난 고죠 놈들도 감히⋯⋯ 아, 아무것도 아니다."

 "말 안 해도 알아. 비술사들도 알 거야. 모든 요괴들의 어머니이자 조상격인 스즈카 고젠. 다른 이름은 다테에보시. 유명한 설화잖아. 뭐, 실상은 그냥 주령일 뿐이지만. 인간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지기에는 너무 화려하게 날뛰었어, 너."

 "네놈들은 나를 이용할 만큼 이용해 먹었잖아. 그럼 된 거지. 도대체 케케묵은 이야기가 왜 듣고 싶은 거냐."

 "방금 전까지 나한테 애원하던 사람 맞아? 미안하지만 나도 장담은 못해. 나는 이미 '손대지 말라'는 유지를 한 번 어겼잖아. 나한테도 쉬운 결정이 아니거든. 생각해 봐. 할아버지도 봉인 뒤 너를 봤을 때는⋯⋯ 얼마나 끔찍했겠어."

 "네놈들이 끔찍할 게 뭐 있어. 허구언날 하는 일이 그거잖아. 지금도 툭하면 무덤에 쳐넣겠다고 협박하면서."

 "그래, 나는 주술사니까. 천년 전 누군가의 손가락을 봐도 아무렇지 않아. 하지만 바로 어제까지 얼굴을 보며 얘기한 누군가라든지, 닿았을 때의 느낌을 기억하고 있는 누군가의 망가진 일부를 보는 건 얘기가 전혀 다르거든."

 내게는 죽음 자체가 모순이다. 지금이라도 성불할 수 있다면 그보다 호화스러운 결말은 없을 것이다. 봉인된 뒤, 죽음보다 더 끔찍한 경험을 했다. 그리고 계속, 계속, 기다려야만 했다. 더는 견딜 수 없다. 그렇게는 절대 안 된다.

 "흩어져 있는 나머지 주력을 모두 흡수하면 그때는 제대로 거시기할 수도 있겠네. 도대체 할아버지는 그걸 다 어디에 숨겼을까. 조금만 더 힌트를 주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너는 아무것도 기억 안 난다고 얼버무리겠지."

 "네놈들, 유지에게 손가락을 전부 먹이고 스쿠나와 함께 보내 버릴 계획인가 본데. 가당치도 않다. 스쿠나나 내가 과거의 힘을 되찾으면 너랑 거시기하는 걸로 끝날 것 같으냐. 이 땅에 숨쉬는 모든 것을 재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어."

 "어차피 네가 원하는 건 인간들과 같은 결말이잖아. 아무도 죽이지 않고 끝내고 싶은 거 알아. 그래서 스스로 찾지 않는 거지. 이제는 네 안식을 방해하는 힘일 뿐이니까. 하지만 나는 너한테 손가락이든 뭐든 먹여서 계속 살게 할 거야."

 "그래서, 네가 죽을 때까지는 나도 살아야 한다는 거냐? 내 앞에는 네놈의 묘를 지키는 미래밖에 없는 게야? 그러기 위해 나더러 협조를 해라? 나는 네 가문 놈들과 너한테 묻고 싶다. 네놈들은 대체 왜 그러는 거냐. 그깟 유지가 뭐라고."

 "그깟 유지는 확실히 별것 아닐지도 몰라. 아무도 손대지 못하게 한 것 치고 지금까지 아무 일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집안 어른들한테는 그거라도 있어야 돼. 고죠 가의 사람이면 당주님뿐 아니라 누구든 할아버지 말씀을 들어야 한답니다."

 "저주가 따로 없군. 네 할아비의 바람은 결국 내가 성불할 때까지 나를 고죠 가에 가두어 놓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저를 쏙 빼닮은 후손이 태어나, 단지 집안 어른들의 속을 뒤집어 놓기 위해 유지를 어기고, 나를 무덤에서 꺼내 자기 대신 복수하는 것까지 전부 예상하고 벌인 일이었다면⋯⋯ 맞아. 그거야말로 너와 내 빌어먹을 운명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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