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스마트폰에는 익숙해졌어?"

 "마침 잘 물었다. 그거 말인데, 잠깐 가자."

 풀벌레가 울기 시작하는 계절에는 고전의 밤도 꽤 소란스럽지만 나는 장소를 바꾸기 위해 앞장섰다. 고죠는 말없이 따라왔다. 그러다 자신을 점점 어두운 곳으로 데려가고 있음을 알아차리고는 의아함 반 경계심 반이 됐다.

 어둠에 숨는 것은 무서워서가 아니다. 조금 무섭지만. 부끄럽지는 않다. 아무리 감춘들 언젠가 꼬맹이들에게 들켜 버리겠지. 그래도 지금은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다. 계속 걸었지만 머잖아 고죠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그가 저항하면 별 수 없기에 더 으슥한 곳으로 가는 것은 그만두었다. 근처 의자에 나란히 앉고 나는 전화기를 꺼냈다.

 "이게 뭐냐."

 "스즈카의 전화번호부. 그리고 내 번호."

 "문제는 이름이다, 이름.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저장해 놓은 것이냐. 바꾸고 싶어도 못하겠단 말이다. 봐라, '고'까지는 써지는데 다음이 문제야. '고조'라든지 '고Jo'라고 바뀌는데다 어째서인지 '고맙습니다'가 된다고."

 고전에 오기 전, 고죠에게 새 전화기를 받았다. 스마트폰은 처음이라 초기 설정 따위는 고죠가 미리 해 줬다. 그러고 나서 얼마 뒤 고죠의 이름이 '사토루'로 저장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기껏 붙잡아 온 고죠는 말이 없었다. 그가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요즘에 누가 너처럼 전화기를 오래 써. 다들 놀라더라. 그렇게 쓰면서 안 망가뜨리는 것도 대단하다고. 나는 네가 쓰던 낡은 기기의 전화번호부를 그대로 가져왔을 뿐이야. 아무것도 손 안 댔어. 이미 십 년 전부터 그렇게 저장되어 있던 거라고. 그랬는데 왜 갑자기 그게 신경쓰이기 시작한 거야? 지금까지 아무렇지 않게 여겨 오지 않았어?"

 "바꿀 줄 모르니까.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알고 있다면 네가 바꿔야지."

 "이제 와서 나한테 전화기쯤은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하겠지만 나도 지킬 건 지켜."

 "바꿀 거야, 안 바꿀 거야?"

 "내가 그렇게 한가해 보여?"

 바쁘다는 건 알고 있다. 몰랐다 해도 오늘처럼 전화기를 들이밀고 따지지는 않았겠지만. 정색할 필요는 없지 않나. 그야 스마트폰이든 뭐든 이까짓 것쯤 인간들에게는 간단한 일이겠지. 애초에 저들 입맛대로 만들어 놓고는.

 "그래, 관둬라. 내가 바꿀 테니까. 지금은 못하지만, 반드시 바꾸고 말겠어."

 "잘 해 봐."

 "흥! 어쩐지 싫은 예감이 드는데. 솔직히 말해. 너는 나를 뭐라고 저장해 놨냐."

 "기기를 몇 번이나 갈아치웠지만 다른 건 똑같아. 너야 항상 난쟁이똥자루지 뭐."

 "이 놈, 당장 바꾸지 못할까!"

 고죠는 나를 무시하고 벌떡 일어났다. 발끈한 내가 붙잡으려 했으나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키보드 사용법까지 제대로 설명을 들어야겠다. 그때도 싫다고는 하지 않겠지. 어쨌든 당분간은 계속 이대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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