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와."

 오냐, 가자. 너는 그리로. 나는 이리로. 어서 와는 무슨. 벌써부터 속이 뒤집힐 것 같다. 오늘 재수가 왜 이래. 아니꼬운 표정이나 보여 줄 심산으로 인사하며 지나가려 했다. 그러나 의미심장하게 웃는 꼴이 나를 굳이 멈춰 세웠다.

 "하하하.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야."

 "뭐?"

 "멀리서 오느라 힘들었지. 고생 많았어."

 "이 놈이 갑자기 왜 이래. 뭐 잘못 먹었냐."

 "내 말 좀 들어 봐. 내가 데리러 가고 싶었는데⋯⋯ 뭐, 이지치가 운전은 나보다 낫지. 그렇게 숨어 다니지 마. 너무 부끄러워할 거 없어. 애들을 위해서였다지만 모처럼 고전에 왔으니까. 여러 가지 것들에 흥미를 가져 줘도 괜찮아."

 "그게 무슨 소리야. 여러 가지 것들이 뭔데."

 "옛부터 전해지는 네 은밀한 취미 생활 있잖아. 노래도 있을걸. 스즈카 고젠은 인간 남자랑 얼레리꼴레리래."

 당연하게도 나는 그런 노래를 어디에서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설화라면 모를까. 애초에 내가 마왕의 딸이라느니 허접한 이야기나 지어내는 인간들의 말 따위에 관심 없다. 내면 깊숙이 뿌리내린 혐오는 인상이 찌푸려질 만큼 쓰다. 지독한 쓴맛이 떨쳐내려 하면 할수록 더욱 짙어지고 속이 메스꺼워질 때까지 내 기분을 불쾌하게 만든다.

 "윽⋯⋯."

 천년의 앙숙.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저주가 약해져도 용서할 수 없다. 특히 인간 남자는 절대로. 그야 다테에보시라는 이름을 버린 뒤부터 나는 주술사들을 적대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스쿠나 같은 폭군들에 비하면. 마찬가지의 이유로 살아남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계속, 계속, 인내하는 것뿐이었다. 그냥 죽어라 버틴 것이다.

 "한때는 그런 장난을 치기도 했지. 천년이나 살다 보면 좀이 쑤시거든. 지금은 그다지 흥미가 없군. 시답잖은 장난이나 치기에는 너무 늙었어. 잠시나마 그런 생각을 잊게 해 줄 사내가 아직도 있다면, 뭐, 심심풀이 정도는 될지도."

 "그 천년 사이 몇 백 년은 봉인되어 있었잖아. 도쿄는 아침에 말 먹이 주고 저녁에 온천에 들어가던 후쿠오카랑은 다를 거야. 힘들다는 거 알아. 기왕이면 즐기자라는 마인드로 재밌게 놀다 가라고. 필요하면 나도 어울려 줄게."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다. 그게 지금 내게 큰 약점이다. 제 딴에는 정말 호의를 베푸는 거라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억지로 끌려와 제 하수인 노릇이나 하는 나를 놀리고 싶은 것뿐일 테니 가볍게 콧방귀를 날려 주었다.

 "내 너의 속을 알 도리가 없다만은. 네 말이라면 벌벌 떨 줄 아느냐. 내가 못 할 줄 알고. 말하지 않아도 부를 거다. 필요하면 말이지. 오늘은 그만 됐다. 충분하니 가 보거라. 어쨌든 너와 나는 오늘만 볼 것도 아니지 않으냐."

 "⋯⋯."

 "왜?"

 "나, 내일 저녁에 돌아올 예정인데. 기다려 줄래."

 "기다려? 내가? 너를? 농담하지 마라. 썩 꺼져."

 "그냥 생각해 봐. 바빠서 먼저 갈게. 전화해도 돼."

 전화해서 무슨 소리를 듣게 하려고. 상대가 고죠인 만큼 벌써부터 치욕스럽다. 참고 버티면서 사는 것은 늘 똑같건만. 새삼 낯뜨거운 기분이 들었다. 마주치면 인사를 나누거나, 대화를 하거나. 왠지 모를 미묘한 분위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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