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풍당석 소녀의 한숨이 지나가던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여자아이가 벤치에 홀로 앉아 있는데 뒷모습이 낯설었다. 고전의 교복을 입고 있긴 하지만 가까이서 보니 모르는 얼굴이었다.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인간? 주령? 아니, 역시 주령이야. 누구의 식신입니까? 후시구로 군입니까!" "칼을 제법 다루어 본 손이로군. 굳은살이 밴 모양을 보면 알지. 나는 메구미의 식신이 아니다. 아, 아직은. 메구미 말고도 여기저기서 나를 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지만 다행히 아직 조복되지 않았어. 인간을 그릇으로 삼은 것뿐이다." 일단 앞머리. 무엇보다 먼저 그녀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것은 반듯한 일자형이 아닌 삐딱한 대각선형의 독특한 앞머리였다. 결코 흔하다 볼 수 없는 옅은 파란색 머리털보다 별것도 아닌 앞머리가 더 눈에 띌 정도면 말 다했다. "료멘스쿠나의 그릇은 남자애라 들었는데, 그럼 설마⋯⋯ 시, 실례했습니다! 갑자기, 뭐랄까, 전설 같은 것이 현실화되어서, 저는 그러니까, 교토부 2 학년인 미와 카스미라고 합니다! 우타히메 선생님께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아아, 우타히메의 제자로구나. 몰라봐서 미안하다. 교토부 녀석들은 교류회가 아니면 마주할 일이 없으니." 3 학년까지는 기억하는데 2 학년 아래로는 가물가물하다. 토도나 다른 녀석들은 잘 지내고 있으려나. 그러고 보니 곧 교류회 시즌이다.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한바탕 난리가 나겠군. 이거야 원. "생각보다 평범⋯⋯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애초에 눈에 띄는 타입도 아니고 기억에 남을 만한 인간이 아니니까요 저는!" 충분히 눈에 띈다고 생각한다. 이름을 헷갈릴 수는 있어도 생김새는 앞머리 때문에 쉽게 잊혀질 것 같지 않다. 이것도 인연이니 얘기를 좀 들어 볼까. "무슨 말 못할 고민이라도 있니, 얘야." "예?" "아까 전화기를 보면서 한숨쉬었잖아." "헉. 아아, 아, 그랬지 참. 으아아아아!" 미와의 무릎에 놓인 전화기는 화면이 켜진 상태였다. 이것도 최신 기종인가, 내 거랑 다르네 하고 흥미를 보인 것뿐인데 당황한 그녀가 몇 번인가 손에서 놓치고 나서야 화면을 껐다. 모른척해야 하나 싶었지만 이미 봐 버린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혹시 그 사진과 관련된 거냐." "아니, 이건, 그러니까, 저⋯⋯." 고죠가 바보처럼 멍때리고 있는 사진. 들끓었던 호기심이 팍 식었다. 미와의 낯빛이 심상치 않은 것이 알 것도 같았다. "마침 나도 몇 장 가지고 있다." 최신식 전화기는 흔들림 없이 아무렇게나 찍어도 선명하게 나와 신기하다. 대부분 고죠가 방심하고 있을 때 장난으로 찍은 거지만 한두 개 빼고는 나름 그럴싸했다. 액정을 밀어 넘기며 앨범에 저장되어 있는 사진들을 미와에게 하나씩 보여 줬다. 안절부절하면서도 액정 속으로 들어갈 것처럼 집중하는 녀석이 귀여워서 없던 인심까지 생겼다. "동영상도 찍었다. 볼 테냐?" "엣, 아, 예. 보고 싶습니다⋯⋯." 우리 애들에게 이걸 보여 줬을 때 모두 자지러졌지. 너무 집중한 나머지 당혹스러움도 잊은 듯 그녀가 후후후 웃었다. "고죠 씨, 이런 면도 있었군요. 귀여워요." 귀엽다는 너같은 여자애한테 쓰는 말이야. 이건 웃긴 거고. 이럴 줄 알았음 장난이라도 좀 더 찍어 둘 걸 그랬다. "사랑(恋)이로다." "네?" "고죠를 사랑하잖아." "그, 그럴 리가요! 아니에요! 좋아하는 건 맞을지도 모르지만요! 그렇다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팬으로서예요! 뭐냐, TV에 나오는 아이돌을 향한 동경심과 다를 바 없는 거니까요!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고죠 씨에게 민폐라구요!" 인간들이 하는 사랑은 그런 것 아니겠는가. 나도 가끔 헤어진 남자친구의 사진을, 그건 아니지,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고죠를 아이돌에 비유한 시점에서 얘기는 끝났다고 보지만 미와도 얼굴이 폭발하기 직전이라 그만두었다. "뭐 어때서 그래. 잘 어울리는데." "네애?!" "잘 보면, 너, 고죠의 이상형이다." "제가요?!" "귀엽고, 착하게 생겼고, 무엇보다 그 앞머리⋯⋯ 흠흠.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리긴 해야겠지만, 뭐, 그 놈도 당장은 결혼할 생각이 없어 보이고. 어느 남자가 어리고 예쁜 여자를 마다하겠냐. 기회는 아직 있어. 까짓꺼, 내 도와주마." 사실은 빈틈을 노려 데이트 신청 정도는 해 본 적 있는데. 절대로 솔직하게는 말 못한다. 데이트라 봤자 예전처럼 비트적거리다가 돌아온 것뿐이었다. 뭘 더 바랄 수 있단 말인가. 무엇이 옳냐 하면 녀석에게도 이게 좋다. 가문 대 가문으로 충분히 격식을 갖춘 여자든, 우타히메 같은 친구든, 미와처럼 귀여운 제자든, 내가 보기에는 모두 어울린다. "알겠습니다!" "오, 보기와 달리 대범한 구석이 있잖아. 고죠 사토루, 복이 터졌구만. 하하하." "제 말은, 스즈카 씨가 그를 위해 낼 수 있는 진심이 어느 정도인지 알겠습니다." "무슨 소리야. 고죠를 위해서라고 말한 적 없다. 내가 왜 그런 놈을 신경 쓰겠냐." "저는 알 것 같은데요. 방금 고죠 씨의 사진을 보면서 저와 같은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누가? 내가?" "아무 말씀 없으셨지만 얼굴에 분명히 쓰여 있었습니다. '귀여워'라고. 무의식입니까?" "⋯⋯." "어차피 제게는 부딪혀 볼 담력도 없습니다만, 저는 당신의 진심에 기대지 않겠습니다." 나는 뒷덜미를 긁적였다. "그⋯⋯ 뭐랄까. 미안하다." "무슨 말씀입니까! 이런 곳에서 마음이 통하는 분을 만나다니, 오늘은 운이 좋습니다!" 고죠의 사진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그것만으로 기뻐하는 그녀를 보고 반성했다. 여자아이의 진심 앞에 도리어 작아진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저, 사진, 공유해 주실 거죠?!" "풉, 그야 물론이지. 정말로 귀엽구나, 너." "아자아아아! 노래방 영상도 보내 주세요오." "어허, 우타히메의 사진으로 먼저 성의를 보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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