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뚝뚝 떨어지는 우산을 접고 있을 때 남자 기숙사 현관에 서 있는 고죠를 보았다. 먹장구름을 뒤집어쓴 하늘에서 하염없이 비가 쏟아지는 시간을 가만히 흘려 보내고 있었다. 매년 언제라도 눅눅한 바람을 쓸어 오는 비다. 바닥을 적시고 또 적신다. 고죠의 눈에만 보이는 그림자가 거기 그 자리에 드리워 변함없이 웃고 떠드는 모양이다.

 "사토루."

 작정하고 부른 건 나였지만 뭘 그리 얼빠진 놈처럼 돌아보냐. 누구인 줄 알았냐. 비는 계속 내리는데 더 이상 뭘 어쩌겠냐. 무심코 이러고 있으니 고죠가 히물 웃었다. 성큼성큼 걸어오는 그를 보고 머리보다는 몸이 먼저 나섰다.

 "잠깐, 스즈카. 내가⋯⋯ 으음."

 고죠에게 우산을 씌워 주고 뒤늦게 아차했다. 그는 털끝 하나 젖지 않았다. 비오는 날 우산도 없이 태연하게 걸어다니는 등 본래라면 상식을 벗어나는 일들이 이곳 고전에서는 당연하게 벌어지고 있는데도. 잠시 착각했던 것이다.

 "난쟁이똥자루 주제 사회 생활 잘하네.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밖에서 확실하게 배우고 왔구나. 나한테 우산이 필요없다는 걸 알면서 짧은 다리로 열심히 달려오고. 대신 비까지 맞고 말이야. 좋았어. 차까지 따라와."

 최소한 저 때문에 비를 맞은 것에 대해서는 미안할 법도 하건만. 그럴 놈이었음 이렇게 얄밉지 않았을 거다.

 "농담 집어치워라. 나는 들어간다."

 "어어? 나 젖는데? 젖는⋯⋯ 앗 차거!"

 내가 우산을 들고 있으니 고죠의 머리가 천장에 닿는다. 꾹 잡아당기자 그가 앙탈부리며 우산을 뺏어들었다. 어차피 정문까지 동행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고 그냥 바래다주기로 했다. 나 혼자 쓸 때는 넉넉했던 공간이 꽉 찼다.

 "어렸을 때 생각나네. 너는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되게 오랜만이야. 너랑 같이 우산 쓰는 거."

 "그때나 지금이나 우산이 쓸데없이 높아서 쓰나 마나군. 그때는 왜 그랬냐. 젖지도 않으면서."

 "네가 외로워 보였으니까. 그리고 한 번도 여자애 대신 우산을 들어 본 적이 없다고 혼났거든."

 교정을 오가는 꼬맹이는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학생 수가 터무니없이 적은 학교. 오늘처럼 비가 쏟아지는 날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신경이 쓰였다. 고죠야 원래 종잡을 수 없는 놈이니 그렇다 쳐도 이런 모습은⋯⋯.

 "여기까지다."

 "바로 저기인데."

 정문 앞에 차가 서 있었다. 차창 너머 실루엣을 보고 운전석의 남자가 이지치임을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저기까지만. 응?"

 달라붙은 채로 매달리니 힘도 힘이거니와 무거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차가운 빗물에 몸서리가 쳐졌다. 오늘따라 무슨 어리광을 이리도 피워대는지. 밀어내고 때리기까지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차라리 이쪽에서 져 주는 그림이었다면 나았을까. 이래서야 정말 내가 휘둘리고 있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수고가 많다, 이지치. 흠흠."

 "아, 안녕하십니까. 스즈카 씨."

 내키지 않지만 하는 수 없이 이지치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때 뒷좌석 창문이 열리며 고죠의 손이 튀어나왔다. 갑자기 뒤편으로 끌려가 중심을 잃고 휘청이며 눈을 질끈 감았다. 뺨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이 쪽 하고 부딪혔다.

 "다녀올게."

 나는 떠나는 차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요즘에는 선생님이 제자 볼에 뽀뽀하기도 하나. 역시 이것도 위험한가. 처음에는 부정하고 싶었지만 어차피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언제나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조금씩 사제관계에 적응하고 있었다. 그리고 슬슬 회의감을 느끼던 참이다. 고죠가 뜻밖의 행동을 하면 아무리 나라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갑자기 찾아온다든지, 가벼운 접촉을 한다든지. 그렇게 닿지 않으려 노력 아닌 노력을 하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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