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끝나지 않는 소모전이야. 상당한 인력과 주력이 필요한 불제는 우리에게 있어서도 그리 무차별적으로 벌일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거지. 하지만 나도 일단은 주술사잖아. 솔직히 기력을 쏟을 곳이 필요하긴 하더라."

 주술사들이 하는 일에는 참견하지 않는 게 좋다. 조용히 지내고 싶지만 싸우기 싫다고 응석이나 부릴 생각은 없다. 단지 이 놈 앞에서는 침착해지기 어렵다. 그도 그럴 게 천적이 눈앞에서 그저 웃고 있을 뿐. 충분히 소름끼친다.

 "방금 뒷걸음질쳤어?"

 "음⋯⋯ 그런 것 같은데."

 "의미를 모르겠어. 죽는 것도 무섭지 않다면 왜 나를 보고 뒷걸음질치는 거야."

 "내 몸이지만 가끔 뜻대로 움직이지 않더구나. 그러는 너는 왜 다가오는 거냐."

 "얘기할 때는 좀 더 가까운 편이 좋다고 생각해. 봐, 이 거리감. 어색하지 않아?"

 아니, 오히려 자연스럽다. 반대로 죽일 마음이 없다면 내게 다가올 이유가 없다. 내가 공격할지도 모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건가. 어차피 나는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으니까 그럴 담력이 있으면 좋을 대로 난리쳐 보라는 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이냐. 무덤에 쳐넣겠다고 협박하면서 억지로 끌고온 건 너잖아. 이제 와서 마음이 바뀐 거냐. 그래, 나는 죽는 것도 무섭지 않아. 죽일 거면 빨리 죽여. 기왕이면 말이야. 이렇게 천천히 목을 조여 오지 말고. 그냥.

 "스즈카, 우리 아직 싸우는 중인 거야?"

 "응? 그야 뭐⋯⋯ 그렇지. 맨날 싸우잖아."

 갈 때는 가더라도 눈 뜨고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그래도 거기서 멈춰 주었구나. 한 발짝만 더 다가왔다면 나는 너를 공격했을지도 모른다.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마지막 복수로써 온갖 추한 꼴을 너에게 내보였을 것이다.

 "있잖아, 작년에 내가 너를 찾아갔을 때. 맹세컨대 죽이겠단 결심 같은 건 한 적 없어. 하지만 나는 반쯤 미쳐 있었고 도망치는 너를 쫓아가서 끝낼 수도 있었지. 그래도 나는 안 죽였어. 못 죽였어. 네가 나한테 했던 말을 생각해 봐."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기억해. 절대 못 잊어. 하루하루 진통제로 버티면서도 꿋꿋이 웃으며 일하고 있던 너. 망가진 몸이라도 지키기 위해 도망쳤던 너. 그리고 내가 왜 죽어야 하냐, 너 같은 놈한테 죽기 싫다, 미안하다, 잘못했다, 이렇게 빌 테니까,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살려 줘. 울면서 매달렸던 너. 심지어 나한테 안겼던 너. 어떻게 잊어버리겠어."

 "⋯⋯."

 "그러고서는 다음날⋯⋯ 네가 그런 짓까지 한 이유는 결국 하나였어. 나한테 죽느니 스스로 끝내려 했던 거야. 그래서 붙잡혔을 때 이를 악 물고 빌었던 거지. 계획은 그럴싸했어. 나는 상상도 못했거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면. 나도 싸우기 싫단 거야. 지금처럼 장난치는 건 아무래도 좋지만 너한테 상처 주기 싫어. 이건 진심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분하구나. 그때 못했던 내 마지막 복수. 지금도 늦지 않았는데. 나는 죽지도 못한 채 수백 년간 고통받았다. 여전히 고죠 성을 가진 놈들이 받들어 모시는 빌어먹을 인간 한 명 때문에. 죽어서라도 고죠 가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내게 죽어서도 네 곁을 맴도는 것만큼 끔찍한 일이 또 있겠느냐. 허면 됐다. 차라리 관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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