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프구나. 그래서, 밥 먹으러 가자고?"

 "뭐, 그렇지."

 "늦었어."

 무심코 당황한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딱히 짚이는 구석은 없었지만 일단 사과했다.

 "미안."

 퉁명스럽게 굴다가 입 꼬리가 능청스레 올라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더 모르겠다.

 "그러니까, 늦었다고. 바빠서 밥 먹을 시간도 없단 말이야."

 "그럼 간식은 어때. 설마하니 차 한 잔의 여유도 없는 것이냐."

 그 정도로 바쁘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면 아무리 고죠라도 조금 불쌍하다. 게다가 나는 당장 텅 비어 버린 배를 채울 수 있다면 단 것이라도 상관없었다. 이제 와 고죠를 따라가 손해볼 것도 없으므로 보고 나서 먹을지 말지 결정하면 된다.

 "단 것이 먹고 싶다."

 현재 내가 감독하는 학생은 유지뿐이다. 그밖에는 만날 필요가 없다. 다만 그 한 가지 일이라는 것이 엄청난 노동이랄까, 워낙 괴물 같은 놈이고 그런 놈을 상대하는 나 또한 언제나 녹초가 된다. 이럴 때만큼은 확실히 단 것이 도움이 된다.

 고죠 놈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는데 밥이라도 얻어먹어야지. 내가 속으로 생각하며 조금 벼르는 동안 고죠는 놀란 듯 말이 없었다. 검은색 안대 너머 나를 조심스레 살피고 있단 생각도 들었다. 그러더니 그가 나직이 웃었다.

 "너, 괜찮아?"

 "그냥 조금 피곤한 거다."

 "그야 그렇겠지. 다행이네."

 "그래, 그러고 보니. 과거에 내 미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단 걸 먹어댄 적도 있었구나. 이 놈! 선생이란 놈이 못하는 말이 없어! 쯧. 다행은 무슨. 솔직히 어디 하나 아프지 않은 데가 없다. 유지에 비하면 유타는 귀여웠지."

 고죠를 따라 이동하며 내가 어떤 곳에서 생활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돌아봤다. 성가신 점을 얘기하자면 끝도 없지만 내가 크게 피해를 입을 정도는 아니라서 누군가 이곳 결계는 내게 아무 영향이 없다 해도 할말이 없다. 그리고 나는 옛사람답게 건물이건 무엇이건 낡은 걸 좋아한다. 내가 보기에도 고전에 나쁜 구석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10 년 전에도 비어 있던 건물. 그 사이 어떤 장치를 해 놓지는 않았는지 살폈다. 그런 다음 마음 놓고 대청에 올라섰다. 뒷문은 열려 있고 울타리로 둘러싸인 후원이 보인다. 아담한 다탁 위에 낡아빠진 다도 용기가 놓여 있다.

 "오랜만에 왔는데 여긴 여전하구나. 조용한 것이."

 "애들 왔다 갔네. 이 과자 봉지 봐. 귀엽지. 하하하."

 "귀엽긴. 예서 땡땡이치고 있던 거 아니냐."

 "그럴지도 모르지. 지금 나도 마찬가지잖아."

 고죠가 사붓사붓 마루를 걸었다. 전부 낡았으니 조심할 수밖에 없다. 각 방의 문은 마찬가지로 열려 있었다. 가구라고는 덩그러니 놓인 삼층 탁자뿐인데 백 년은 족히 넘은 물건이었다. 모든 칸에 차 재료와 과자가 빼곡했다.

 "그립구먼. 새것도 좀 갖다 놓지. 허허허."

 "취향은 여전하네. 저기, 무슨 차 마실래?"

 "이런 날에는⋯⋯ 흐음. 진한 말차가 좋겠다."

 다완, 차시, 차선. 없는 게 없다. 티백 하나면 다 해결되는 요즘 시대에 좀처럼 보기 힘든 물건들. 자신도 잊고 살아 왔지만 옛 물건을 보면, 그렇다. 아무래도 그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복잡한 절차를 따라 우려낸 정성이 담긴 차 한 잔은 많은 말을 대신한다. 화날 때도 차를 기다리다 보면 마음이 풀리고 찻잔을 깨끗이 비울 때쯤 잊어버린다.

 "내가 할게. 괜찮지."

 "차로 장난치지 마라."

 "네."

 화로에 타다 만 숯이 한웅큼 들어 있었다. 성냥으로 불을 붙이고 차주전자에 물을 붓는다. 다완에 다시 끓인 물을 부어 차선으로 젓는다. 진한 말차 향이 퍼지면 예절에 따라 찻잔의 그림이 앞으로 향하도록 다완을 두 번 돌린다.

 "이것 참. 오래 살고 볼 일이군."

 "차를 내린 것뿐이야. 평범하게."

 "그래도 도련님이 직접 내려 주신 차를 감히 평범하다고는 못하지."

 "도련님이 아니라 당주님. 그래, 절대 아무한테나 해 주는 건 아냐."

 말차의 거품이 짙은 녹색을 덮었다. 한모금 마시자 머리가 맑아졌다.

 "차에는 별로 관심 없는 줄 알았다."

 "관심 없어. 다도를 제대로 배운 적도 없고. 그밖에 여러 가지로 본가에서 사용인들이 하는 걸 따라했어."

 "과연 그렇구나. 본가에 있으면 녀석들이 필요한 것을 다 가져다 바치니. 도련님은 그 정도면 기특한 거야."

 "지금부터 그 도련님 할 때마다 경고야. 기억하는지 모르겠는데, 앞으로 한 번 남았어. 딱 한 번으로 아웃!"

 "워, 진정해. 모든 걸 가진 놈에게 가끔 심술부리고 싶어지는 거니까. 그냥 넘어가라. 그 만한 도량도 없냐."

 "다음에 진짜 심술부리는 게 뭔지 생각나게 해 줘야겠네.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 천천히 쉬다 가. 연락할게."

 "연락? 언제?"

 "몰라. 기다려."

 "어이, 삐쳤냐."

 차 대접도 받았겠다 못내 달래 주고자 했건만. 고죠가 무시하고 일어났다. 무지막지한 덩치를 새삼 실감하며 나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지금뿐이라 생각하지만 일하러 가는 남자의 뒷모습 중에서도 최강적으로 듬직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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