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잔디밭에서 도시락, 좋네."
"여어." "왜 혼자 먹어. 애들은. 너 늙다리라고 소외당하는 거 아냐? 풉." 고죠가 옆으로 다가와 풀썩 앉았다. 잠깐 쉬려는 참이었나 보다. "혼내 줄까?" "너나 잘해, 인마." 나는 담담하게 하늘로 시선을 되돌렸다. 조금 전까지 분명 무언가 생각중이었는데, 어째서인지 잊어버렸다. "말하는 거 뭐든지 사 줄게." "됐어. 교복 갈아입기 귀찮고." 나라고 해서 인간의 감정을 전혀 모르는 것도 아니고 허전함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다. 꼬맹이들에게 둘러싸이는 게 피곤하다는 이유로 스스로 피한 주제 누굴 탓하랴. 단지 고죠 놈 때문에 반대로 더 우울해지는 것 같았다. "너도 아직이냐. 마침 하나 더 있다. 먹든지." "사연 있는 도시락은 주지 마. 절대 안 먹어." " 만들었다. 미처 전하지 못한 거다." "누군데?" "누구겠냐. 듣자하니 네 지시로 임무를 나간 것 같더군." "그렇구나. 내가 나쁜 짓을 해 버렸네. 미안해서 어쩌지." "녀석이라면 식은 밥도 개의치않을 거란 생각은 든다만." "하지만 유감이네요. 오늘은 고죠 쌤이 먹어 버릴 거예요." 넙죽 받는다. 예상했기에 웃음이 터졌다. 애초에 그것을 노렸던 나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냥 재밌어서다. " 솜씨가 좋구나. 일부러 숨어서 먹을 만해." "네놈에게 들켜서 하는 수 없이 준 거다. 감사해라." "평범한 달걀말이인데 뭐랄까, 왠지 모르게 기분 좋아. 힘이 나는 것 같아." "내조의 힘이란 거겠지. 부러우면 꾸물대지 말고 장가들어. 연애라도 하든지." 고죠는 먹을 때조차 안대를 벗지 않는다. 어떻게 보이는 건지 아무도 모른다. 새삼스럽지만 멀뚱히 쳐다봤다. "너는 그동안 요리 실력 좀 늘었어?" "아무것도 안 하는 너보다야 낫겠지." "오, 자신 있나 보네. 나랑 승부할래?" "네 도전은 언제든 받아줄 용의가 있다." 같은 날 밤. 가 도와주고 싶다며 레시피를 몇 개 적어 주었다. 그리고 다음날은 아침 일찍 일어나 팔을 걷어붙였다. 처음에는 귀찮았지만 하다보니 생각보다 재밌었다. 창작의욕이 솟구쳐 레시피를 보지 않고 마음대로 만들었다. 어느덧 시간이 되어, 어제와 같은 장소로 나왔다. 다른 아이들은 보이지 않고 고죠가 잔디밭에 앉아 있었다. "자, 내 꺼 가져가고 네 도시락 줘." "성급한 녀석이구만. 여기 받아라." "기대해도 돼?" "어디에서도 이런 것을 먹어 보지 못했을 거다." 고죠의 무릎에 놓여 있던 도시락이 겉으로 보기에도 제법 그럴싸했기 때문에, 살짝 긴장하며 서로의 찬합을 교환했다. "잘 먹을게." 어렸을 때부터 집안일은커녕 제 손으로 하는 일이 그다지 많지 않은 놈이었으니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맛있었다. 후두둑 떨어지거나 질척한 밥이 아닌 고슬고슬하게 잘 지은 밥이었다. 반찬도 생각보다 달지 않았다. 나는 고죠의 눈치를 살폈다.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주관이 확실한 얼굴. 녀석에게 악의는 없다. 선천적으로 가식에 서툴 뿐. 입안에 든 음식 탓에 곧바로 육두문자가 튀어나오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 정도는 말 안 해도 안다. "응. 분명 어디서도 먹어 본 적 없어." "너무 맛있어서 일부러 그러는 거지?" "먹어 봐. 아." "뭐 하는 짓이냐. 내 손으로⋯⋯." "그냥 먹어. 뭐 어때. 얼른. 아아." 모처럼 내가 창의력을 발휘해 만든 도시락이다. 손대기도 아까워 간을 제대로 보지 않았던 것이 실수였을까. 쉽게 패배를 인정할 마음은 없었으나 얼떨결에 받아먹고는 등골이 싸해졌다. 간신히 씹고 삼키자 식은땀이 날 지경이었다. "미안해, 안 미안해." "어째서 내가 사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냐. 됐어. 네 도시락 다시 돌려줄게. 버릴 바에는 그냥 내가 먹겠다." 불평이 쏟아지기 전 서둘러 빼앗을 셈이었는데 예상과 달리 고죠는 식사를 재개했다. 결코 맛있다는 표정은 아니었지만 망설임은 보이지 않았다. 우습게도 정말 기대라도 하고 있었는지 그가 밥을 먹다 말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진짜 맛없다." "그래, 미안해." |
<제작> Copyright ⓒ 공갈이 All Rights Reserved. <소스> Copyright ⓒ 카라하 All Rights Reserv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