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업 시간은 더럽게 길고 쉬는 시간은 짧다. 고작 몇 분. 겨우 한숨을 돌리고 눈 좀 붙일라 치면 끝나 버린다. 정신없이 뛰어다니면서 할 일 다 하는 꼬맹이들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그 잠깐 사이에 화장실을 다녀오고, 쪽잠을 자고, 웃고, 떠들고, 간식 먹고, 순식간에 해치운 뒤 언제 그랬냐는 듯 얌전히 앉아서 수업에 집중하는 것이다. 나는 따라하지도 못한다. 꼬맹이들과는 시간에 대한 감각부터가 다르달까.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메구미가 메시지를 보냈다. 수업 시작하기 전에 얼른 들어오라고. 말하지 않아도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는 중이다. 교실을 벗어나 현관 밖으로 나갔던 걸 후회한다. 가슴을 부여잡고 헉헉대며 두세 계단을 한번에 훌쩍 넘었다. 쉬지 않고 계단을 올라가면 땡 하기 전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아도 멈출 수 없었다. 나는 복도를 비추는 눈부신 빛에 이끌리듯 비틀비틀 계단을 밟았다. 누군가 내 앞에. 빛 아래 있는 것 같았다. 나랑 같은 교실로 가야 하는 담탱이. 고죠였다. 그 순간에는 자신이 정말 애라도 된 것 같았다.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고죠, 이게 얼마 만이야. 한 10 분 됐나? 근데 왜 이리 반갑냐?" "스즈카, 어딜 그렇게 돌아다녀. 미리 앉아서 준비하고 있어야지." 나는 입 꼬리를 내리면서 니에─ 대답 같지도 않은 대답을 하고는 고죠의 생긴 것만 무서운 헛매질을 피했다. 여유부리는 내가 가소로운 모양이다. 나보다 늦게 들어가면 지각이야. 그래도 좀 느긋하게 걸어 준다. 하지만 교실까지 날아가지 않는 이상 별 수 없다. 애초에 보폭이 다르므로. 두어 걸음 떨어져서 그를 뒤따랐다. 될 대로 되라다. 복도의 창문은 열려 있다. 바람이 두 사람을 차례로 스치고 지나간다. 달달한 냄새. 간질간질. 뒤에서 걷기만 해도 좋다. 그래 이건 확실히 나쁘지 않구나. 눈이 즐겁다. 갑자기 조용해서 낌새를 챘는지 고죠가 슬쩍 뒷짐을 진다. 책에 가려서 안 보인다. 그래 봤자 나를 더 자극할 뿐이거늘. 야릇한 충동에 못 이겨 기어이 그 엉덩이를 툭 때렸다. "너⋯⋯ 어딜 보고 있어." "담탱이 엉덩이. 요염하군." "이,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나도 착한 제자가 될 수 있다. 교실에 들어가면. 수업이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다른 생각 하지 않고 교과서에 집중할 거다. 그러니까 아직은 아니다. 고죠가 계단 모퉁이를 돌며 쌩 하고 도망간다. 쫓아가 멋대로 주무르면 그만이다. "자꾸 왜 그래. 혼날래." "흐음. 살이 조금 쪘구나." "뭐? 그럴 리가 없는데⋯⋯." 내가 말을 안 들어서 그런 것인지 다이어트다 뭐다 고생하고 있는데 살이 쪘다고 하니 억울해서 그런 것인지. 화도 내지 못하고 다만 목소리가 울분에 찼다. 그리고 아까보다 더 필사적으로 보지도 만지지도 못하게 단단히 지킨다.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가서 손 들고 서 있어." "내가 뭘 잘못했는데. 애들 앞에서 말해 보든지." "아유, 진짜. 막돼먹은 할망구. 나중에 울지나 마." "오냐. 누가 엉엉 울게 되나 보자. 그럼 나는 간다." 자연스럽게 주름이 생긴 고죠의 옷을 일부러 더 반듯하게 펴 주고 쏜살같이 계단을 올라왔다. 교실의 시계는 이미 땡 한 뒤였지만 내가 먼저 들어왔으니 지각은 아니었다. 당당히 내 자리로 와서 앉았다. 메구미가 소곤거리며 몇 페이지를 펴야 하는지 알려 줬다. 그럼 모든 게 완벽하다고 볼 수 있을까. 물론 한숨지을 이유가 없는 건 아니다. 어쩌다 한 번, 아주 운 좋게, 단둘이 있게 된다 한들. 그저 는실난실 유치한 장난이나 치는 게 고작이니까. 그로부터 여지없이 따분한 수업이 이어졌다. 다만 한 가지 재밌는 점이 있었다. 바로 이전 수업 때와 비교하면 고죠가 묘하게 수줍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이제 와서 애들 앞에 서기 새삼 부끄러운 것도 아닐 테고. 얌전한 게 제법 기특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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