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찍이 아버지에게서 장기를 배운 나는 말을 떼기 전부터 장난감 대신 장기판을 가지고 놀았다. 그리고 토비라마는 (당연한 건지도 모르지만)나만큼 오래되지는 않은 것 같다.
장기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은 지 한 시간쯤 지났을까. 맞은편에서 끄응 신음하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졌다." 이렇게 쓴 패배는 처음 겪는지 어깨가 축 늘어졌다. 의기소침해진 걸 보니(놀랍게도 하시라마랑 똑같다) 나도 별로 마음이 좋지 않다. 나이로 따지면 내가 누나인데 져 주는 편이 더 보기 좋았으려나. 하지만 내가 이긴 건 온전히 경험 덕분이니 훗날 누가 더 우위에 있을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하시라마 정도는 가뿐히 이기실 거예요." 왜냐면 하시라마는 허접이니까. "내게 장기를 가르치신 스승님께서도 형님의 실력에 대해서는 별 말씀이 없으셨지… 그러나 차기 당주가 되실 형님께는 그밖에도 어려운 숙제가 많다. 가벼이 여기는 듯한 말투는 삼가하거라." 작금과 같은 전국시대에 당주의 아들끼리 후계자의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것은 비일비재한 일이다. 과거의 센쥬 일족도 타 일족과 다를 것은 없었다. 차남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인지하고 있는 것인지, 토비라마는 하시라마에 대해서라면 그냥 흘려듣는 법이 없다. 허접인 건 하시라마 본인도 인정했는데 좀 억울하다. "가서 차를 끓여 올게요. 대신 맛 없다고 불평하지 마세요." "내가 언제 불평했다고 그러냐?" 다과에 대한 책을 읽고 공부하라는 건 또 다른 불평 아닌가. 하지만 붉게 상기된 뺨을 부풀리며 투덜거리는 모습은 상상 이상으로 귀여웠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다음에 저랑 또 대국해 주세요." "걱정하지 않아도 나는 도망치지 않는다." 약속도 받아냈으니 따뜻한 차를 마시지 않으면 잠들지 못하는 도련님을 위해 슬슬 다도를 연마하러 가야겠다. 첫날 이후로는 줄곧 책에 나와 있는 대로 따라했건만 어째서 유모가 끓인 것과 맛이 다른 걸까. 다른 건 몰라도 정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그녀의 말은 납득할 수 없다. 지금은 나도 도련님을 꽤, 뭐랄까,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온종일 붙어 있다 보니 그렇게 되어 버렸다. "언제나처럼 방에서 공부하고 계시면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스승님께서 주신 기보가 있어서 다행이야…(중얼) 아, 그래. 오늘은 달콤한 것으로 부탁한다." 어려운 공부를 할 때는 정신력을 뒷받쳐 줄 달콤한 것이 필요한 법이지. 그 기분을 알기에 씩 웃으며 마루에서 내려왔다. 결과와는 상관 없이 내게 있어서도 나름 긴장감 있고 흥미진진한 대국이었다. 하나 덧붙이자면 장기말을 놓을 때마다 울리는 맑고 청아한 소리도 일품이었다. 역시 장인의 손에서 탄생한 작품은 다르구나. 이제 나도 시동 생활을 하면서 조금이나마 돈을 벌고 있으니 갖고 싶은 것 목록에 넣어 두어도 괜찮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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