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났을 때 맑은 하늘을 보니 마음도 깨끗해졌다. 굳이 말하자면 그게 문제였달까.

 어느 순간 '아, 오늘은 아무것도 하기 싫다'라는, 싱숭생숭한 기분이 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지 뭐. 안 그래?'

 "룰루랄라~"

 난간에 걸터앉아 물장구를 치고 있을 때, 멀리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지금 누군가와 마주치면 곤란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시간에 나는 곧 다가오는 연회를 위해 다른 아이들과 함께 춤 연습을 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춤 같은 것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겠다. 그럴 시간에 책 한 권 더 읽고 말지.

 ──────.

 아이들이 연습하는 곳으로부터, 노랫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음악에 맞춰 춤을 잘 추는 여자애들은 내가 보기에도 예뻤다. 부러운 마음도 없잖아 있었다.

 귀찮아서 설렁설렁 따라했더니 움직임이 갈대처럼 뻣뻣하다고 어찌나 면박을 주던지…….

 그러니까 하고 싶다는 애한테 시키면 될 걸, 왜 굳이 바쁜 나를 불러내냐고요.

 연습 기간 동안 시동으로 일하지 않아도 되는 건 좋지만 토비라마를 못 본지도 한참 됐다.

 "……."

 뭐, 그렇다 해도 나 역시 연회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걸으며 생각해 봤다.

 내 관심은 오로지 이번 연회를 통해 지도자들이 한 곳에 모이게 된다는 것에 있다.

 우치하 일족도 분명히 참석할 테니… 어쩌면 영주가 화해의 다리 역할을 해 줄지도 모른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후에는 어쩌면, 작은 희망일지언정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시끌시끌. 웅성웅성.

 이번에는 영주의 아들들도 참석한다는 얘기가 있다. 그래선지 어떤 아이들은 벌써부터 동화 속 왕자님과 만날 생각에 들떠 있다.

 그야 평민들에게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분들이지만, 듣자하니 키도 작고 못생겼다던데. 사실일까?

 아니, 아무래도 좋다. 영주 아들내미가 어찌 생겼던 내 알 바 아니지.

 그 동안 전쟁이 길어지면서 일족 안의 분위기도 상당히 가라앉아 있었다.

 연회 준비로 모두가 바쁜 지금, 죽었던 활력이 되살아난 것은 좋은 현상이다… 어쨌든…….

 아아─!

 이번에도 아무 진척 없이 얘기만 하다가 쫑내 버리면, 나는 정말, 영주든 그 아들내미든 얼굴에 다과를 확 던져 버릴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랬다간 목이 날아갈 수도 있으니 당연히 상상에 그치겠지만!!!

 그만큼 지난 연회에서는 실망이 컸다. 전쟁이라는 게 그리 쉽게 해결 될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터벅터벅─.

 소란스러움을 피해 버려진 누각으로 왔다.

 옛날에는 이 자리에 연못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낙엽만 휘날리고 있을 뿐이다. 그리 되다 보니 자연스레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다.

 으스스한 게 귀신이 나올 것 같긴 해도 조용해서 나쁘지 않다. 기둥에 기대어 앉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으음……."

 가느다란 음악 소리, 서늘한 바람, 평화로운 새의 지저귐─ .

 이런, 하마터면 잠들 뻔했다.

 비몽사몽한 채 부비적거리며 생각해 보니 방금 누군가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그리고 토비라마와 눈이 마주쳤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그가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방금 전 어떤 아이에게 네가 이쪽으로 갔다는 얘기를 듣고 왔다."

 "그러셨군요."

 "싫다고 학을 뗐으니 지금쯤 재미없다고 툴툴거리고 있진 않을지 궁금해서 가 봤다만."

 "……."

 "내 예상을 넘어, 너는 어디에도 없더구나."

 나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머쓱하게 웃었다.

 "헤헤헤… 한 번만 못 본 척 해 주세요… 아시다시피 저한테는 그런 옷… 그런 춤… 진짜 안 어울린단 말이에요… (중얼)내가 왜 춤을 춰야 돼… 그런 건 보는 거나 좋지…"

 "연회에는 영주님뿐만 아니라 다른 일족들도 참석한다. 다시 말해 이건 단숨한 춤이 아니라 우리 일족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과 같다는 얘기다. 허면 '겉보기'에도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 너처럼 억지로 하게 된 녀석들도 있을 테니 거기에 대해서는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러니까 내가 하려는 말은… 이게 다 네가 예뻐서 그런 거다 이 말이다. 흠. 이러면 기분이 좀 나아질까?"

 "전혀요. 남자들은 여자가 예쁘다는 말만 들으면 좋아라 하는 줄 알죠? 네, 그런 사람들도 있어요. 하지만 전 그렇게 머리가 텅 비지 않았거든요. 얼굴이 어떻다는 이유로 귀찮은 일을 겪어야 한다면, 차라리 못생긴 얼굴로 다시 태어났으면 좋겠어요. 연회고 뭐고 저는 조용히 책이나 읽고 싶다구요, 남자들처럼!"

 "하여간 가볍게 넘기는 법이 없다니까… 알았다, 알았어.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예쁜 걸 예쁘다고 말한 게 죄라면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 너 하나 달랜다고 별 낯뜨거운 소리를 다 하게 됐군. 나를 민망하게 만들면 속이 시원하냐? 가끔은 수줍어하는 척이라도 해 봐라. 그게 뭐 어렵다고."

 "…이렇게 말하면 오만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저는 예쁘다는 칭찬보다 멋지다는 칭찬을 듣고 싶어요. 노래부르는 것보다 시를 잘 짓고 싶고, 춤추는 것보다 싸움을 잘 하고 싶어요. 왜냐면, 그게 나거든요. 이번 연회에서도 하시라마나 당신처럼 앉아서 구경이나 하고 싶단 말이에요. 제 맘 아시겠어요?"

 "모르면 바보지."

 토비라마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고 손을 뻗다가 잠시 멈추었다. 그러더니 문득 생각이 바뀌었는지, 쓰다듬기 보다는 자신과 같은 사내아이를 대하듯 머리카락을 헤집어 놓았다.

 "그래도 강해져야 하지 않겠냐."

 "네?"

 "지금보다 강해지려면, 인내해야 한다는 거다."

 "……."

 어째서 울컥하는 거지. 침묵 속에 고개를 저었다.

 그래, 어차피 도망칠 수 없다면. 까짓꺼 참고 해 보지 뭐.

 토비라마가, 부츠마 님의 아들인 그가 '미안하다'고 말하고 있으니까.

 지금은 그것으로 됐다.

 (…)

 나는 더 이상 불평하지 않기로 했다. 연회 날까지 다른 아이들처럼 부지런히 연습했다.

 그리고 당일 날, 조금 긴장했지만 다행히 실수하지 않고 무사히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

 우치하 일족과는 당연하게도 아이들 사이에 묘한 대립이 형성되었는데, 그들의 공연 또한 멋졌다는 것을 결국에는 모두 인정했다.

 나와 똑같은 푸르죽죽한 머리카락들이 바람에 휘날리는 게 장관이었다.

 그 후 센쥬의 아이들 중 누군가 내 머리카락을 보고 '다시 보니 예쁜 것 같다'고 말했을 때, 과연 놀라웠다.

 비록 이번에도 두 일족 간에 별다른 진척은 없었지만… 그래도 나름 만족스러웠다.

 하마터면 영주님 앞에서 싸움판을 벌일 뻔했던 지난번 연회보다야. 하하하.

 "토비라마 님! 저 어땠어요? 멋졌죠? 짱 멋졌죠!"

 싫다고 할 땐 언제고, 무사히 공연을 마친 것에 대해 이렇게 신이 나서는, 자랑까지 하고 있는 내가 확실히 조금 우스워 보일지도 모르겠다.

 연회 내내 무뚝뚝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토비라마의 얼굴이 나의 등장으로 온화하게, 그보다는 흐뭇하다는 느낌으로 변했다.

 "그래, 멋졌… 아휴, 아무리 뭐래도 이번에는 말해야겠다. 방금 그 공연을 보고 멋지다고 생각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 대부분 나처럼 예쁘다고 생각했을 거다. 나는 이런 일로 너를 기만하고 싶지 않아. 정직하게 말하건대 그건 '예쁜' 춤이었어. 굉장히 예뻤지. 수고했다. 이제 가만히 앉아서 구경하든, 책을 읽든, 마음대로 하거라."

 "아싸! 근데 저 배고파 죽겠어요. 긴장했더니… 일단 여기 있는 음식들 하나씩 다 먹어 볼래요. 저 토비라마 님 옆에 앉아도 돼요? 어차피 영주님이나 부츠마 님께서는 지금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셨잖아요. 뭣하면 시동으로 데리고 계셔도 돼요. 제가 아- 하고 먹여드릴까요?"

 "여섯 살짜리가 혼자서 밥도 못 먹는다고 날 망신 줄 셈이냐? 됐거든. 형님도 계시니 마침 잘 됐다. 가서 좀 만류해 봐라. 내가 다 부끄러울 정도로 신이 나셨어. 하나가 끝날 때마다 박수를 치시는데, 심지어 우치하의 공연 때도 그러시지 뭐냐. 차기 당주가 말이야. 사람들이 어찌 생각할지…"

 과연. 무사의 자제들 중 유일하게 하시라마만 '적' 우치하를 앞에 둔 상황에서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뭐가 그리 좋은지, 하여간.

 답답해서 속이 타지만, 결국에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바보는 바보로 있는 게 제일 보기 좋다. 그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야, 하시라마!"

 "!"

 큰소리로 이름을 부르고, 심지어 하시라마는 번쩍 일어나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토비라마가 '너까지 그러면 어떡하냐'라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는가 하면, 그에게서 실소가 터져나왔다.

 "널 형님에게서 뺏어 온 게 아주 의미가 없지는 않았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둘이 매일 붙어다녔다간 너까지 형님을 닮아 버려서 지금처럼 똑같이 행동했을 거야."

 "그리고 토비라마 님은 두 배로 피곤해졌겠죠. 아셨으면 당신을 택한 저한테 감사한 줄 아세요."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난리났군. 춤에는 흥미 없지 않았냐?"

 "맞아요, 전 변덕쟁이에요. 그러니까 얼른 가자구요."

 다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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