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나라는 존재에 의심이 남아 있을지언정 내 능력에 대한 의심은 무사히 걷어낼 수 있었던 모양이다.

 현재의 나는 전보다 다양한 심부름을 하고 있다. 붓을 쥐는 만큼의 힘만 있어도 할 수 있는 것들. 다시 말해 체력 대신 머리를 써야 하는 일이 많아졌다.

 예를 들어 토비라마가 공부를 할 때 갑작스런 질문에 답한다거나, 어르신께 보내는 편지의 내용을 좀 더 교양 있게 (원하는 바를)구체적으로 바꾼다거나… 등등.

 자신의 입으로 말하기 뭐하지만, 도련님은 내 일처리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한다.

 그리고 시간이 어찌나 빨리 흐르는지─.

 끔찍할 줄만 알았던 시동 생활로, 눈 깜짝할 사이 1년이 지나갔다.

 뭐… 내가 시동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누군가 지금 내게 다시 물어본다면, 아마도 나는 그때와 사뭇 다른 대답을 할 것이다.

 누구처럼 당주의 아들로 태어나지 않는 이상 결국에는 나도 누군가를 섬기게 될 운명이다. 언젠가 한 번쯤은 시동 생활을 하면서 쌓은 경험들의 도움을 받을 날이 올 것이다.

 거기에 한 가지 더, 도련님과 막연한 사이가 되어 가는 것은 그의 시동인 내게 주어진 특혜라고 볼 수 있다.

 누구에게 시집을 갈 것이냐?

 여인으로 태어난 이상 그것이 자신의 인생을 좌우지할 만큼의 중대한 문제임은 부정할 수 없다.

 정말, 나도 왜 내가 하시라마에게 더 끌리는지 이유를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어휴─.

 정략결혼이 비일비재한 사회에서 남자에게 약혼자가 있다면 이미 유부남이 되었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혼인 전 교제 정도는 허용되지만 어른들에게 그런 건 젊은날의 일탈일 뿐이고, 결코 너그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여기서 문제는, 남자 쪽은 딱히 손해볼 게 없어도 여자 쪽은 그날로 남의 남자를 건드린 천하의 몹쓸년이 된다는 것이다.

 다들 쉬쉬할 뿐 바보같이 감정에 휘둘렸다가 쪽박차는 여인네가 한두 명이 아니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분명히 해두자면, 나는 절.대. 그 중 하나가 되지 않을 거다. 딱 한 가지 예외의 경우… 우즈마키 계집애가 알아서 떨어져 나간다면 모를까.

 "형님에 대해 생각하고 있냐?"

 "(뜨끔)"

 탁자에 두루마리가 겹겹이 쌓여 있다. 토비라마의 부탁으로 필사본을 만드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손이 멈추어 있었다. 그렇다 해도 갑자기 속마음을 읽힌 것 같아서 흠칫했다.

 "뭐, 비슷한데… 어떻게 아셨어요?"

 "알아차리는 방법이 있다. 별로 어렵지 않아."

 "제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예리한 분이셨군요."

 "내 시동이 시킨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을 때는 특히 그렇지."

 생각해 보니까 최근 입술을 잘근거릴 때마다 하시라마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젠장, 나도 어쩔 수 없는 어린애인 걸까.

 분한 건 둘째치고 이런 빈틈을 간과할 수는 없다.

 어지간히 그 바보는 내버려 두지 않으면.

 머릿속을 환기시킬 겸, 민망함도 떨쳐낼 겸, 배시시 웃었다.

 가끔은 여자아이답게 행동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

 "웃고 있을 여유가 있나?"

 "아이 참, 안 그래도 마무리하려던 참이었어요. 또 그렇게 미간을 찌푸리시고… 자, 됐어요."

 "수려한 글씨체는 언제 봐도 감탄스럽군. 틀린 부분이 얼마나 되는지는 이제부터 판단해야겠지만."

 "지금까지 없었으니까 이번에도 아마 없을 거예요. 그렇잖아요, 제가 하시라마한테 무슨 애틋한 감정을 가진 것도 아닌데. 단지 토비라마 님처럼 녀석에 대한 일이라면 가볍게 넘길 수가 없어서 그래요. 뭐라 말해도 단짝이니까요. 또, 또, 그런 눈빛으로 보시고… 앞으로도 심부름은 맡겨만 주세요! 하하하!"

 하시라마를 밀어내거나 괴롭히는 건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예전처럼 심하게 굴지는 않지만 일년이란 시간은 그러한 관심 뒤에 있는 나의 속마음이 도련님께 들통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토비라마는 내가 하시라마를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만약 그가 대놓고 내게 물어본다면, 형님을 걱정하는 동생을 생각해서라도 절대로 그건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약혼자가 정해진 남자를 건드릴 만큼 좋아하지 않는 건 확실하니까.

 "아, 맞다. 저 이런 일도 할 수 있게 됐어요! 보세요!"

 바구니에 든 사과를 하나 집어 들고 낑낑거리며 반으로 갈라뜨렸다. 나보다 몸집이 작은 토비라마에게는 아직 할 수 없는 일이다. 어렸을 때는 무릇 여자아이의 성장이 남자아이보다 빠른 것이다.

 "드실래요? 헤헤."

 "또래의 누구보다 목검과 친하게 지내더니… 놀랍군."

 우리 도련님은 언제쯤 내 키를 넘으실까 생각하며 가끔은 이렇게 희희덕거리기도 하지만, 작년과 변화가 전혀 없었냐면 그건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빈틈 없는 사람이 되었다.

 잘생기고, 똑똑하고, 자기 관리 철저하고…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장래에는 티끌 하나 없는 그의 순백색 머리카락처럼 완벽한, 그리고 조금~ 깐깐한~~~ 남자가 될 거라 생각한다.

 "아아-."

 "(한숨)"

 아삭아삭─.

 "토비라마 님, 아삭거리면서 드실 때 되게 귀여운 거 알아요?"

 "그러는 너는 내가 너의 즐거움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가끔 억지로 먹는다는 사실을 아냐?"

 귀여운 얼굴로 따끔하게 일침을 가하는 도련님의 매력은 한 번 빠지면 헤어날 수가 없다.

 나의 즐거움까지 생각해 주고 계신 줄은 몰랐는데. 감동이다.

 솔직하게 기뻐한 보람이 있었구나. 후후후.


<제작> Copyright ⓒ 공갈이 All Rights Reserved.
<소스> Copyright ⓒ 카라하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