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호도가 피아노 앞으로 다가가 커버를 열고, 의자에 앉은 후 건반 위에 다소곳이 두 손을 올려놓는다. 그가 연주를 시작하자, 맑고 청아한 음색의 피아노곡이 보르하치의 홀 전체에 감미롭게 울려퍼진다. ------뭐야, 칠 줄 모른다더니. 확실히 전문피아니스트라고 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은 아니지만, 피아노의 '피'자도 모르는 나 같은 일반인들에게는 충분히 귀가 만족스러운 멜로디이다.

"아, 이 부분 코드가 뭐였더라... C플랫이었나......"

가만히 앉아 나루호도의 연주를 감상하던 중, 갑자기 그의 연주가 멈춘다. 지그시 감고 있던 두 눈을 떠 보니,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홀로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

"아니, 악보 없이 치려니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말이야. 그냥 자작곡으로 연주해도 될까?"

"와, 작곡도 하는 거야?"

"뭐... 제대로 된 작곡가가 만든 곡 보다는 지루하겠지만."

"듣고싶어, 듣고싶어!"

"네, 네-."

나루호도가 흐트러진 모자를 고쳐쓴 뒤 다시금 연주를 시작한다.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밝고 경쾌한, 그러면서도 따뜻함이 느껴지는 멜로디가 멋드러진 그랜드피아노에서 흘러나온다. 왠지 모르게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어린 미누키의 모습이 떠오르는 곡이다.

"어땠어?"

어느새 찾아온 고요함 속에서 여운에 잠겨있노라면, 나루호도가 나의 테이블로 다가와 손에 들고 있던 포도쥬스를 한 모금 마시며 조금 전의 연주에 대해서 묻는다.

"굉장히 좋았어, 너 그냥 피아니스트 해도 되겠다."

"모순 된 말이긴 하지만 피아노 치는 거 별로 안 좋아해. 보르하치에서도 일 때문에 친 적은 한 번도 없고, 가끔 미누키가 놀러올 때만 치는 정도야. 내가 피아노 쳐주는 걸 좋아하거든. 방금 전에 연주한 곡도 예전에 미누키의 앞에서 연주했던 것이고."

"저, 정말?(설마하니 나의 감이 맞았을 줄이야...)"

"그러고보니 누군가의 부탁으로 피아노를 친 건 미누키 외 네가 처음이네."

"설마......"

만약 그렇다면 평소 연습을 전혀 안 한다는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의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건 선천적으로 음악에 소질이 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정말이야, 아까도 말했다시피 나 피아노 치는 거 별로 안 좋아하거든."

"어째서?"

"내가 연주하고, 누군가 그것을 듣는다고 생각했을 때... 몇몇 사람의 경우 기분이 좋지만 대개 그 반대라서 말이야, 하하."

누군가 자신의 연주를 듣는 것이 싫다는 건가...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이라면 보통 들려주고 싶어하는 것이 정상인데. ------나루호도의 표정을 보니, 다행히 지금은 기분이 좋아 보인다.



이름:나루호도 류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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