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누구 딸내미인데."

나루호도의 책상 위에 놓여있는 미누키의 사진들(여러사진들이 작게 오려져 하나의 액자 안에 끼워져있다.)을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외모면 외모, 성격이면 성격... 그녀는 거의 모든 면에서 또래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두드러진다. 뿐만 아니라 본인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총명함과 어른스러운 매력까지 가지고 있다. ------같은 반 아이들을 전두지휘할 것 같은 이미지랄까, 또래 남자아이들의 입장으로 보면 '좋아하긴 하지만 쉽사리 고백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이다. 어린시절 반에서 투명인간이나 다름없었던 나와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 아니, 정반대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나도 어렸을 때 지금의 미누키처럼 모든 일에 좀 더 적극적인 자세로 임할 걸 그랬어."

"그러면 좀 더 나은 삶을 살게 되었을지도 모르니까?"

"응... 그도그럴것이 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너무 좁아. 뭐든 자신의 영역 안에서만 생각하고, 무리인 것 같다 싶으면 시작도 하지 않잖아... 겁쟁이처럼."

소파에 등을 기댄 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본다. 새피아색 기억을 더듬어보면 매순간 수동적으로 행동하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작은 박스 안에서 누군가 꺼내주기를 기다리며 가만히 움츠리고 있는 장난감이나 다름없다. 자신의 의지보다는 흘러가는 상황에 따라 행동하는 습관 때문에 언제까지고 이러한 공허함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홀로 사념에 잠겨있노라면, 문득 맞은편으로부터 피식- 하고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힘없이 고개를 들어올려보니, 나루호도가 쓴웃음을 띈 채 가만히 나를 응시하고 있다.

"왜 웃어?"

"그냥, 넌 아직도 소녀구나, 싶어서."

"소녀라니... 내가?"

"응. 그도그럴것이 무언가를 후회하고, 고민한다는 건... 아직 그것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잖아? 넌 네 자신이 '무리인 것 같다 싶으면 시작도 하지않는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 반대인 거야. 넌 진작부터 변화하기 시작했고, 지금도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어. 다만 그 속도가 너무 느려서 스스로 깨닫지 못할 뿐이지."

"........."

어째서일까, 자신의 생각을 완전히 부정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루호도의 말에 쉽게 납득이 간다. 만약 다른사람이 같은 말을 했다면, 아마 나는 고개를 살며시 저었을 것이다. ------'후회하고 고민한다는 것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 어쩌면 그 말을 꺼낸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나루호도이기에 더욱 진실하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나도 미누키처럼 능동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물론, 네가 계속 그러길 바란다면."



이름:나루호도 류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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