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도 없는 소릴. 외국에서 온 닌자가 한 명이라도 더 떨어져야 네 제자들에게 좋은 것 아닌가?"

 "그야 그렇지만, 가아라는 이제 나한테 있어서 그냥 외국인이 아닌걸. 서로 알고 지낸 시간이 짧더라도 난 너를 내 제자들과 같은 정도로 소중한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어."

 "친구… 그런 것을 언제 멋대로 정한 거냐."

 "처음부터? 실은 나 너의 붉은 머리카락을 보고 첫눈에 반했거든. 단순한 로망이 아니라 정말 이상형이 되어 버렸어. 네 고향인 모래 마을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이전보다 더 강해졌고."

 "……."

 "있잖아, 내가 거기 놀러가면 그땐 네가 먼저 말 걸어줄래? 나 닌자이지만 솔직히 조금 길치거든. 사막 한 가운데서 헤매다 죽지 않도록 네가 안내 좀 해줘. 같이 좋은 곳에 가서 지금처럼 또 이야기하자."

 "정말로 너는 늘 바보같은 소리만 해대는군… 모래 마을에서 너를 상대하고 있을 여유 따윈 없다. 너와 어울리는 건 여기, 이런 곳에서, 평화라는 것에 의지해 쉬고 있을 때 뿐이야…"

 가아라의 말에 잠시 입을 다물고 조용히 불어오는 바람을 맞는다. 가아라가 온 바람의 나라는 아직도 전쟁의 위험에 시달리고 있고, 그것을 차치하더라도 국토의 대부분이 험준한 환경으로 이루어져 있어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아무런 걱정 없이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런 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가아라가, 나를 보고 평화에 찌든 태평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나도 어렸을 때 전쟁의 시기를 겪었고, 평화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나름대로의 일가견을 가지고 있다. 지난 번 가아라에게 큰소리를 칠 때도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내 오만이었는지도 모른다.

 평화에 의지해 쉬고 있을 때. 그런 표현은 결코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니다. 나처럼 평화가 당연한 것처럼 되어 있는, 일상이 되어 있는 사람은 그런 것보다 자신의 바로 눈앞에 있는 가치를 쫓는다. 예를 들자면 권력이라든가, 돈이라든가, 애정 같은.

 하지만 가아라는 나와 다르다. 테마리씨, 칸쿠로씨도 그렇다. 그들에게 평화라는 것은 끝없이 갈구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 그리고 그들은 알고 있다. 전란의 시대에 진정한 평화라는 것은 다른 누군가를 상처입혀서 빼앗아야지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있잖아, 가아라."

 "뭐냐."

 "우리 정말로 친하게 지내자. 싸움 따위 하지 말고 말이야."

 "태평한 소리 집어치워. 너희들과 우리는 욕망의 정도가 다르다. 절실함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얼마나 큰 것인지 알고 있나? 나로인해 누군가 상처입게 될 때 그것에 대한 죄책감이나 두려움 마저 감수할 수 있는 것이 절실함이다. 난 원래부터 다른 녀석들 따윈 아무래도 좋았다만, 바람의 나라에 사는 인간들이 전부 나 같은 건 아니야.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가 그런 황량한 곳에서도 조금은 편하게 살길 바란다고. 설령 비겁한 짓을 해야 한다고 해도 말야."

 "물론 그것이 지금 당장 만족스러운 평화는 아닐지도 몰라. 그렇기 때문이야말로 '같이' 힘내야 하는 거야.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서로 한 데 어울려 살아가면, 적어도 모두가 정체되는 일 없이 앞만 바라보며 나아갈 수 있어. 안 그래?"

 "그야말로 부처의 말씀이로군. 이래서 너와 나는 친구 따위가 될 수 없는 거다."

 "엣?"

 "친구라는 것은 서로 '대등'해야만 하는 것 아닌가? 불의 나라에 비해 바람의 나라는 지금 국력이 상당히 쇠해 있어. 옛날의 영광을 점점 잃어가고 있지. 친구니 뭐니 하는 소릴 꺼내기 전에, 일단 그것을 되찾는 것부터가 먼저다."

 "으으, 깐깐하네 정말. 동맹국이 되면서 서로 손 잡고 쎄쎄쎄까지 다 해놓고 뭐야, 그 차가운 태도는. 너무 츤츤대는 거 아냐?"

 "시끄러워. 너희는 이따금씩 너무 부담스럽게 들이대는 경향이 있다."

 "불의 나라니까 뜨거운 건 당연하잖아."

 "……."

 "어쨌든 가아라가 아니라고 해도 난 이미 널 친구로 정했어. 이번 시험 잘 볼 수 있도록 응원할게. 물론 우리 애들한테 미안하니까 마음속으로만."

 "이제 아무래도 좋아. 멋대로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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