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
"호오, 당신 꽤 보는 눈이 있잖아." 레몬색의 옅은 금발과 비취색 눈동자. 바람의 나라 사람 특유의 호리병 같은 몸매에 하얀 피부. 자신의 어깨까지 오는 커다란 부채 위에 손을 얹고 서 있는 여자아이의 모습은 그야말로 미인이다. 아직 어린데도 이미 아가씨다운 면모를 모두 갖추고 있어 완성되어 있는 느낌이랄까. 말투가 조금 남자 같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매력적이다. "자, 가아라. 너도 한 마디 해줘." 테마리 씨가 시원스런 미소를 지으며 옆에서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서 있는 가아라에게 눈치를 준다. 예의상 내게도 무언가 칭찬 한 마디를 해주라는 것이다. 본인이 말해도 되지만 그녀보다는 남자인 가아라에게 듣는 편이 내 입장으로서는 기쁘다. 같은 여자로서 테마리 씨는 그러한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다. "…확실히 말끔한 얼굴이긴 하다만, 딱히 미인이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지 않나." -라고, 예상치 못한 가아라 녀석의 츳코미가 들어온다. 내가 아니라 테마리 씨를 보고 하는 말이다. 너무 돌직구라서 눈치가 없다기보다는 눈치를 안 본다는 느낌. 그런 성격이라는 것은 무뚝뚝한 표정만 봐도 안다. "음, 바람의 나라와 불의 나라는 미의 기준이 조금 다른가보네. 그 만큼 바람의 나라에 미인이 많다는 거겠지. 내 눈에는 TV에 나오는 배우처럼 예뻐 보여. 테마리 씨가 우리 나라에 시집온다면 누구든 대환영일 거야." "나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테마리. 오면서 점찍어둔 남자라도 있나? 말해두지만 우치하 사스켄지 우치와 사스켄지 하는 놈은 안 된다. 내가 죽일 거니까 말야." "아니, 아니, 우리 마을 아이를 멋대로 죽이지 말아주세요. 사스케는 나뭇잎 마을 안에서도 손꼽히는 앨리트로 귀중한 인재라구요. 게다가 마지막 남은 검은 마약, 우리의 얼굴이니까요, 동맹국으로서 좀 봐주세요, 네? 바람의 나라에서 오신 왕자님." "나는?" "불의 나라라면 괜찮지. 멀지 않으면서도 이국적이니까 재밌을 것 같아. 모래 바람에 피부가 상할 걱정 안 해도 되고. 생각해두겠어." 중간 중간 끼어들기에 실패한 칸쿠로 씨의 목소리가 묻히고, 잠시 가아라와 테마리 씨 둘만의 대화가 이어진다. 듣자하니 가아라도 누나가 외국에 시집가는 것에는 반대하지 않고, 자신이 외국의 아내를 맞는 것에도 크게 거부감은 없는 모양이다. "이봐, 나는 어떻게 생각해?" "칸쿠로 씨 말인가요?" "당신 언제나 가아라 가아라 하고 가아라에 대해서만 시끄럽고, 나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잖아. 나도 바람의 나라에서 온 것은 마찬가지인데 이유가 뭐야? 나를 보고 뭔가 느낀 바는 없어?" "으음, 칸쿠로 씨에게라면 물어보고 싶은 게 하나 있긴 해요. 머리 위에 튀어나온 그거 말인데요, 혹시 고양이 귀인가요?" "하?" 풉, 웃음 소리가 가아라와 테마리 씨 쪽에서 들려온다. 두 사람은 시선을 모로 향한 채 아무 말 없이 능청을 떨고 있다. 역시, 그렇게 생각한 사람이 나 뿐일리 없다. 칸쿠로 씨의 머리에 난… 아니, 머리에 쓰고 있는 모자의 뾰족한 두 개는 딱 봐도 짐승의 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굳이 짚어서 말하자면 고양이의 그것과 가장 흡사하다. 얼굴의 인상적인 그림과 상당히 대비가 되면서도 은근히 어울린달까, 계속 보다보면 귀여운 것 같기도 하다. "한 번 만져봐도 되나요?" "무, 무슨 소리를…! 이건 귀가 아니야! 뿔이라고!" "어이, 무얼 얼굴과 이름밖에 모르는 수상한 외간 남자의 신체를 만지려고 하는 거냐. 여자이고 닌자라면 좀 더 경계심을 가져라." "수상한이라니, 저기 가아라? 나 네 형이거든? 넌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을지 몰라도 일단 형제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형을 이상한 사람으로 몰고 가지 말아줄래?" "이상한 사람인지 어떤지는 모르는 일이지. 그렇지 않나?" 내쪽을 쳐다보는 테마리 씨에게 쓴웃음으로 답하고는 다시 가아라에게로 시선을 옮긴다. 칸쿠로 씨의 말대로 나는 언제나 가아라만 보고 가아라에 대해서만 얘기한다. 세 사람 중 제일 위험해보여서 신경이 쓰이는 것도 있지만, 그런 것을 떠나 과연 모래 마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미남이어서 저절로 시선이 향한다. 모래 마을 사람 특유의 붉은 머리카락이라던가, 테마리 씨보다 조금 옅은 비취색 눈동자라던가, 심지어 다클서클까지 이제는 나름 매력적으로 보인다. 언제나 꿈에서 보고 있는 같은 적발의 남자나, 하늘색 눈동자에 마찬가지로 다크서클이 있는 남자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나한테만 냉정하잖아! 남자에게 고양이 귀라니 욕하는 거야, 뭐야? 당신의 로망인 적발이 아니면 아무래도 좋다는 거냐? 이참에 묻겠는데, 당신 가아라에게 뭔가 사심이 있지? 솔직하게 말해!" "그래요. 제가 한 10년만 젊었어도 어떻게 해보는 건데 아쉽네요. 그리고 절대 방어라는 게 정확히 어떤 건지, 왜 나한테만 통하지 않는 건지도 신경쓰여요. 가아라와 같이 있다보면 알 수 있겠죠." "나뭇잎에 우치하 사스케가 있다면 우리한텐 가아라가 있어. 우리한테 있어서는 가아라가 귀중한 인재이고 마을의 얼굴이야. 그런 가아라의 절대 방어에 대한 연구에 도움이 된다면 뭐든지 하지. 우리는 시험이 끝난 뒤 곧 바람의 나라로 돌아가. 그때까지 원인을 알아내지 못하면 당신을 납치라도 해서 데려가야 할걸." 신경이 쓰인다곤 했지만 납치라니… 농담처럼 들리면서도, 바람의 나라에 그 정도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웃을 수가 없다. "이런, 겁먹었어? 딱히 당신을 어딘가에 가둬두고 생체 실험 같은 걸 하려는 건 아니야. 두 발로 직접 들어온다면 평범하게 우리 사람과 결혼해서 정착하게 해줄게. 적발의 미남이 취향이지?" 테마리 씨의 말이 더는 농담으로도 들리지가 않는다. 웃는 얼굴도 왠지 무섭고, 끽하면 야반 도주라도 해야 될 분위기다. 하지만 적발의 미남이라는 말에는 구미가 당기는구나아. "괘, 괜찮은 남자 있어요…?" "아아, 빨간 머리카락 따위 여기서는 희귀한지 몰라도, 모래 마을에 가면 널리고 널렸다구. 물론 강한 녀석도 많아. 이 녀석들처럼 모래를 쓰거나 풍둔 술법을 쓰거나. 아, 인형술사는 어떻게 생각하냐?" 인형술사? 모래 마을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들은 적이 있다. 그러고보니 꿈에 나오는 그 남자도 꼭두각시 인형 같은 걸 가지고 있었지. "인형술사라면 옛날에 치요 할멈의 손자가 대단했다고 들었다." 가아라의 이 말로 시작해, 테마리 씨와 칸쿠로 씨의 대화가 이어진다. "맞아, 지금은 탈주해서 마을에 없지만 말야." "이름이 뭐였지?" "테마리 너, 모르는 거냐! 그 녀석은 모래 마을의 전설이라고!" "그렇지만, 신경쓰는 건 너 같은 녀석들 정도겠지. 난 학교에서 한 번 들었던 게 전부니까 이름 따윈 진작 잊어 버렸어." "붉은 모래 사소리다! 하여간 여자들이란! 언제나 쓸데없는 것들에만 신경쓰고 책 읽는 데 시간을 투자하지 않으니까 그 모양인 거잖아!" "여자인 건 관계 없잖냐, 어이!" "시끄러워." 왠지 모르게 다투기 시작하는 두 사람을, 가아라의 묵직한 저음의 목소리가 멈추게 한다. 평소에도 자주 있는 일인지 딱히 신경쓰지 않는 듯하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서 좋을 것은 없을 것이다. "어쨌든 그런 얘기니까. 당신은… 응?" "……." "어이, 당신 무얼 멍하니 있는 거야?" "아, 미안해요. 지금 진지하게 이민을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럴 리가. 정말 미치도록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는 이상, 이곳에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모두 버려두고 타국으로 떠날 생각은 없다. 다만 붉은 모래 사소리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꿈속에서 들었던 여러 명의 목소리가 떠오르면서 잠시 그것에 대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꿈에서 흐릿하게 본 모습으로는 서클렛을 착용하고 있지 않아서 몰랐는데… 원래는 모래 마을의 사람이었던 건가. "칸쿠로 씨는 그 사소리란 분에 대해서 잘 아시나요?" "잘 아는 정도가 아니야. 현재 남아 있는 정보에 한해서는 모든 것을 알고 있어. 마을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찢어죽여도 시원찮을 원수일지 몰라도 나에겐 뭐냐… 말하자면 아이돌 같은 존재니까 말야." "조금만 더 자세히 말해주세요." "뭐야, 너도 관심 있는 거냐? 녀석에 대한 건 대부분 기밀 사항이라 그렇게 자세히는 알려줄 수 없어. 하지만 호기심이 생기게 한 건 우리 쪽이니 이 정도는 말해주지. 붉은 모래 사소리는 20년 전에 모래 마을을 벗어난 탈주닌자로, 원래는 최강의 인형술사로 인정받던 녀석이었어. 우리 마을 장로 중 하나인 치요 할망… 치요라는 분의 손자라서 사진으로 봤는데, 네 로망인 빨간 머리카락에 미남이었어." "미남이라고 하면 얼마나 잘생긴 거죠?(진지)" "사진만 보면 여자라고 해도 믿을걸. 가아라는 우리 마을에서도 흔치않은 아주 진한 적발이고, 녀석은 조금 옅은 빨간색이야. 얼굴도 곱상한데 색깔까지 핫핑크? 같아서 남자로서는 조금 그렇지만, 예쁘거나 귀여운 걸 좋아하는 여자들한테는 잘 먹힐만한…" "즉, 여자 쪽에서 오히려 덮치고 싶은 미소년이라는 거네요." "그래, 딱 그거야." "어이, 노처녀. 침이나 닦고 말하시지." "뭐가 어째?!" "잠깐, 가아라. 그렇게 말할 건 없잖아." 테마리 씨의 말에 고개를 모로 돌려 버리는 가아라. 오늘은 꺼지라고도 안 하고 나름 친절하게 대해준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그 말투가 어디 가지는 않는다. "봐라, 사소리다." 휭-. 가아라가 무언가 작은 물체를 던져, 그것이 내 팔에 달라붙는다. 움직이는 한쌍의 집게발, 기다란 꼬리 끝에 날카로운 침이 보인다. "꺄아아아아아아! 징그러어어어어어! 싫어싫어싫어! 떼줘! 떼줘!" "가아라, 왜 그런 장난을…" "누가 보면 질투라도 하는 줄 알겠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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