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오후, 마음이 하도 번잡해서 산책이라도 할까 하고 밖으로 나왔다가 무심코 숲까지 들어와 버렸다. 오빠의 심부름으로 약초를 채집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깊숙이 들어왔을까.

 그러고보니 데이다라는 혼자서 조용히 생각을 하고 싶을 때나 작업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종종 이곳에 오곤 했었다. 예전에는 왜 굳이 이런 곳까지 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이라면 알 것도 같다. 나무가 햇빛을 가려 아늑해진 조명에, 주변으로부터 풀벌레 우는 소리가 정겹게 들려온다.

 나무 기둥에 기대어 앉아 있노라면 문득 떠오르는 추억 하나. 데이다라가 이곳의 아지트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절, 그와 함께 이곳에 온 적이 있었다.

 "데이다라는 왜 그렇게 열심인 거야?"

 "하?"

 "아카츠키라는 건 테러리스트 같은 거잖아. 정의가 아니야. 아무리 애를 써도 아무도 칭찬해주지 않고, 오히려 적이 늘어날 뿐이지. 굳이 그렇게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적당한 정도로 좋지 않아?"

 "나는 예술가다. 그것을 위한 장소를 찾는다면 테러리스트 집단이 아니라 지옥이라도 불사할 수 있어. 애당초 정의라는 건 힘있는 윗대가리들이 자기들의 사상만으로 멋대로 정한 것 아니냐. 내게는 내 사상이 있어. 정의 같은 상대적인 것은 아무래도 좋아. 한 번 태어난 이상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만큼 하고서 죽을 거라고. 음."

 "그치만 동료가 없다는 건 쓸쓸하잖아. 데이다라는 똑똑하니까 혼자서 뭐든 잘해내겠지만 앞으로 더 외로워질지도 모르는데 괜찮겠어?"

 "테러리스트라도 같이 살고 싶어하는 너 같은 별난 여자도 있다는 걸 알았으니 됐어. 너와 만난 나리는 확실히 운이 좋았지. 그 사람, 강하면서도 의외로 무른 구석이 있다니까. 예술가에게는 예술 하나만 있으면 되는데 말이야. 음."

 "예술가는 뭐 남자 아닌가… 남자가 여자 없이 어떻게 살아…?"

 "뭐, 시덥잖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변덕이 심하니까 언젠가 여자가 필요하게 될지도 모르지. 그땐 나리에게 널 달라고 말해볼까. 음."

 "에…?"

 "그 오니 같은 나리와 같이 살 정도라면 나라도 딱히 상관없잖아. 나는 싫은 거냐, 음?"

 "싫다든가 그런 문제가 아니라… 데이다라…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거야…? 지금 네 말… 프러포즈처럼 들린다구……."

 "그렇게 되나? 어디까지나 만약의 이야기다. 네가 싫다면 됐어. 그때 가서 다른 녀석을 찾아보지 뭐. 음."

 "지, 지금 그런 것을 생각하기는 이르지만… 나중에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내게도 한 번은 물어봐줘…….”

 “알았어. 그렇게 할게. 음.”

 당시에는 그게 진심이었다고 해도, 지금 생각보면 어린애끼리 철없이 나눈 대화였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내 머릿속에 이렇게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내 마음은 그때부터 시작된 건지도 모르겠다.

 “하아-…….”

 그래, 나는 그때부터 어리석었다. 그런 기억 따위 데이다라는 진작 잊어 버렸을 텐데, 설령 기억하고 있다고 해도 그가 말했던 한순간의 변덕에 지나지 않을 텐데. 알고 있으면서도 왜 이토록 가슴이 아려오는 걸까.

 “흑…….”

 어리지만 오빠 같았던 데이다라와 남매처럼 지내던 시절이, 이따금씩 다투면서도 그런대로 즐거웠던 그때가 차라리 좋았다. 이렇게 멀어질 바에는, 이렇게 끝날 바에는.

 “흑… 흑흑…….”

 지금 이 순간에도 데이다라는 다른 것을 보고, 다른 생각을 하고 있겠지. 나 혼자 고민하고, 슬퍼하고, 울고, 정말 바보 같다. 사랑을 하면 바보가 된다고들 하지만 이게 사랑이 맞는지 조차 잘 모르겠다.

 너는 아니라잖아. 싫다잖아. 그러니까 이제 그만해.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그렇게 말해보아도 소용이 없다. 사랑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이기적인 것인가? 사랑이라고 하면 좀 더 자신을 희생할 줄 알아야하는 것 아닌가? 나로인해 스스로는 둘째치고 상대방까지 괴로워진다면 어떻게 생각해도 그만두는 것이 좋다. 내가 가진 감정은 분명 사랑이 아니라 손에 잡히지 않아 쫓고 있는 허상일 뿐일 테니까.

 “윽… 으흑… 으으… 흐아아아-…!”

 이 눈물로 전부 쏟아 버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억지로 끄집어내려고 해도 가슴이 말을 듣지 않는다. 아무래도 이제 그 허상이 아니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것 같다.

 (…)

 데이다라 : (이런 곳에서 잠들다니… 정말 칠칠맞지 못하구만…….)

 (그때 내가 잠든 너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말해줄까…? 음…?)

 (…)

 데이다라 : 어이, 일어나. 슬슬 돌아가자.

: …….

 데이다라 : 난 나리가 아니니까 이런 곳에서 잠들어 버린 널 들쳐업고 돌아갈 수가 없어. 얼른 일어나.

: ………

 데이다라 : 혼자 작업에 너무 집중해 버렸나… 어쩔 수 없지, 마침 바람도 솔솔 불어오고 있으니 조금만 더 쉬었다 갈까. 음.

 (동료가 없는 건 쓸쓸하다고…? 그런 건 말하지 않아도 알아… 나도 아무런 미련 없이 마을을 떠나온 건 아니니까 말야… 솔직히 여자의 몸도 한 번 만져보고 싶고… 음…….)

 (누가 업어가도 모르겠네… 이래서야 덮쳐도 모르는 거 아냐…?)

 (여자의 몸… 정말 좋은 걸까…?)

 꼬집-.

 데이다라 : (전쟁통에 살인은 둘째치고 왜 여자에게 그런 짓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조금 만져보는 것은 괜찮겠지… 나도 썩 좋은 인사는 아니고… 어떤 느낌인지 궁금한걸… 음…….)

 만지작 만지작-.

 데이다라 : (부드러워… 옷 안쪽은 따뜻해서 좀 더 좋겠지… 하지만 정말 내가 이것을 필요로 하게 될까…? 아무리 뭐래도 예술보다 즐겁지는 않은데… 이 정도로 아직 속단하기는 이른가…….)

 쪽-.

 데이다라 : (입술은 역시 남자랑 별반 다를 것 없네… 시시해…….)

 (이 세상 남자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것이라면 뭔가 좀 더… 강한 것이 있어야 하잖아…? 음…?)

 (여자의 뱃속은… 뜨겁고… 왠지… 엄청 편할 것 같아… 음…….)

 (…)

 데이다라 : …….

 (나도 어리석었어.)

 (어쩌면 그때가 시작이었는지도 몰라.)

 (너한테 그 여자의 모습을 투영했던 게 이렇게 더러운 욕망으로 바뀔 줄은 몰랐는데.)

 (들어가고 싶어… 그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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