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수집을 위해 조금 멀리 나갔다가 늦은 밤이 되어서야 돌아왔는데, 아까부터 등 뒤에서부터 묘한 기운이 느껴진다.

 아카츠키의 아지트는 기본적으로 전부 결계가 쳐져 있고, 이곳은 지난 번 침임자 사건 이후로 결계가 더욱 강화 되었다.

 그래서 일단 아지트 안으로 들어오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어째서인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피곤해서 예민해져 있는 걸까. 속으로 생각하며 애써 불안함을 떨쳐내려 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보이는 것은 캄캄한 어둠 뿐.

 적의 시야로부터 숨어 있을 때와 같이 심장이 위험을 감지한 듯 빠르게 고동을 더해간다. 숨을 쉬기가 힘들고, 손끝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한다.

 "……."

 걸음을 멈춘 뒤, 무거운 정적 속에서 마른 침을 꿀꺽 삼킨다. 역시 침입자인가. 이럴 줄 알았으면 수리검 하나라도 가지고 나가는 건데, 지금 내 수중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때는 천만다행으로 히단이 나타나서 도와주었지만, 이 수상한 기운 외에 다른 인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오늘은 정말 나 혼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문득 등 뒤로부터 느껴지는 살기에 홱 하니 몸의 방향을 돌린다. 아무도 없다. 조심스레 뒷걸음질을 치는데, 누군가의 가슴팍이 등에 닿아온다.

 스윽-. 소리없이 시작되는 날카로운 위협. 깨닫고보면 어느새 칼날이 내 목을 겨누고 있다.

 "할 테냐, 죽을 테냐. 선택해라."

 낮은 남자의 목소리. 그 위압적인 몸집 만큼이나 두렵다.

 "제… 제가… 뭘 하면 되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고 있는 내게 남자가 바짝 밀착해온다. 어깨 위로 그의 차가운 숨결이 떨어진다.

 "그런 것은 정해져 있지 않나. 나는 지금 지쳐 있다. 너의 몸으로 어떻게든 이 고단함이 사라지게 해라."

 남자가 내 외투를 살며시 내리고 드러난 어깨에 입을 맞춘다. 쪽 소리에 소름이 쫙 끼치며 저도 모르게 경련을 일으키니 날이 선 수리검이 살갗을 파고들어 피 한 방울이 천천히 목을 타고 흘러내린다. 그리고 마침내, 단순한 위협이 아닌 죽음에 대한 실질적인 두려움이 나를 엄습해온다.

 "저… 저…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서… 아무하고나 이런… 것은… 할 수 없……."

 "누가 그런 것을 물어봤나? 네 마음 속에 누가 있든 아무래도 상관없어. 내가 흥미 있는 것은 너의… '여자의 몸' 뿐이다."

 땅을 기는 듯한 낮은 목소리가 묘한 힘을 가지고 있어 나의 정신을 휘어잡는다. 이윽고 그의 손이 옷 안으로 들어와 허리를 타고 올라오는 순간,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덥석, 자신의 목에 겨누어진 칼날을, 정확하게는 그 칼을 쥐고 있는 남자의 손을 꽉 붙잡음과 동시에 안쪽으로 홱 잡아당겨 자살을 시도했지만 그가 알아차리는 것이 너무 빨랐다. 가슴을 끌어안은 팔이 너무 강해서 꼼짝도 할 수가 없다.

 "그렇게 간단히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윽……."

 "자신을 포기하기 전에 적어도 한 번 쯤은 내게서 빈틈을 찾아보는 것이 어때?"

 "죽는 편이 훨씬 빠르니까요… 더는 잠시도 당신에게 만져지고 싶지 않아……."

 이렇게 된 이상 혀라도 깨물어야겠다 싶은 순간, 남자의 손가락이 입안을 비집고 들어와 그것을 막는다.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걸까. 아니, 그것이 마지막이자 유일한 수단이었으니 알아차리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지? 여자로서의 정절이 목숨보다 중요한가?"

 "읍… 음… 음음…….(도리도리)"

 "아니면 뭐냐? 설마하니 애인을 위해서인가?"

 "……."

 내 침묵을 대답으로 받아들인 남자가 피식 웃음을 내뱉는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 웃음 소리가 나를 비웃는다기보다, 깊은 수심이 느껴지는 탄식에 가깝게 들려온다.

 "다 틀렸어."

 "?"

 스윽, 남자의 손이 멀어지고 나를 속박하고 있던 힘도 사라진다.

 "다 틀렸다고, 너. 음."

 너무나도 익숙한 말투, 넋을 놓은 채 멍하니 서 있노라면 이윽고 퐁- 하고 연기가 피었다 사라지며 그 말투 만큼이나 익숙한 남자가 눈 앞에 나타난다.

 "도대체가 너란 녀석은, 그런 상황에 무얼 바보 같은 생각을…! 음…!"

 정말 데이다라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다른 무엇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그의 품에 뛰어든다. 행여 놓칠세라 두 팔로 꼭 끌어안으니 그의 손이 머리를 감싸온다. 쓰담쓰담. 그 손길에 안심이 되어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 조차 없다. 다만 그가 여기 있다는 것을 계속 확인하고 싶다. 그래야만 다시 제대로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다.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요즘 껏하면 아지트 밖으로 나가서 혼자 돌아다니는 게 좀 불안해야 말이지, 음."

 "……."

 "실제로 위험이 닥쳤을 때 네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시험해볼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참으로 가관이더군. 너, 내가 어디서부터 따라왔다고 생각하냐? 알아차리는 게 늦어도 너무 늦잖아. 음."

 "……."

 "널 덮치려드는 치한에게 무얼 정중하게 양해를 구하고 있는 거야? 애인의 얘기를 하면 오히려 더 흥분하게 되어 있잖아 그런 변태는! 게다가 저항도 안 해! 적어도 벗어날 궁리는 해봐야 될 것 아니냐! 뭘 해보기도 전에 죽을 생각부터 하다니… 죽을 생각을……."

 "……."

 "잘 들어, 너에게는 0점도 아깝다! 닌자라고 불릴 자격이 없어! 스타트 라인부터 다시 시작해라! 으음!"

 "흑……."

 어깨를 들썩이며 울음을 터뜨리고는 나도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두 손으로 데이다라의 뺨을 감싸며 그에게 입을 맞춘다. 갑작스런 내 행동에 놀란 그가 주춤 하는 듯하더니 이내 나를 상냥하게 안아준다. 차갑게 식은 내 팔을 어루만지는 그의 손길로부터 여러가지 감정이 전해져온다. 조금 전의 분노, 그보다 전의 걱정, 그리고 가장 먼저 있었던, 나에 대한 사랑. 그것이 다른 무엇보다 강하다.

 "나 앞으로 노력할 테니까, 두 번 다시 이런 일은 하지 마… 너무 무섭잖아… 정말 어떻게 되어 버리는 줄 알았다구……."

 울먹이는 목소리로 원망하듯 말하며 넓은 가슴에 뺨을 부비적거린다. 그러자 작은 한숨 소리와 함께 데이다라가 나를 안아 올린다. 아까 나를 위협했던 그 남자와 정말 동일 인물이 맞는지 믿기지가 않는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다치게 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는데… 목의 상처, 치료해야지. 음."

 방의 문이 열리고, 데이다라가 침대 앞으로 걸어가 나를 조심스레 내려놓는다. 아직 내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하지만 내 상처를 치료하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는 것이 먼저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다.

 "데이다라, 솔직하게 말해봐. 아까 조금 즐겼지?"

 "처음에는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만, 네가 취한 행동이 너무 뜻밖이라 나도 너 만큼이나 놀랐다. 연기하는 내내 조마조마해서 미치는 줄 알았다고. 음."

 "그치만 겁먹은 내 모습 보고 조금은 파렴치한 생각이 들었지?"

 "……."

 약상자를 가지러 갔던 데이다라가 내게 등을 보인 채 잠시 천장을 바라보는가 싶더니, 왠지 모르게 혼자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연 웃는 얼굴이 되어 내게 돌아온다. 아무래도 내가 괜한 말을 꺼낸 것 같다.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던 것을.

 "너의 '선택'에는 분노했지만 너의 '말'에는 솔직히 기뻤다. 그래서 일순간 욕정한 것도 사실이다. 이제 됐냐, 음?"

 "아까 뒤에 닿았……."

 "알고 있으니까, 입 다물고 있어라.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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