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어이. 일어나."

 "……."

 "얼른 일어나. 네가 '너무 좋아하는♡' 데이다라가 왔다니까."

 "데이다라…?"

 거의 반사적인 반응으로 몸을 일으키려는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저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내며 이마를 짚고 있노라면, 무언가 강력한 힘이 내 팔을 홱 잡아당긴다.

 아프다. 그리고 차갑다. 무언가 뺨에 닿아오는데 그 느낌이 낯설지 않다. 바람의 냄새. 아아, 그래, 방금 데이다라가 왔다고 했지. 근데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히단."

 "아아?"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딱히 아무 일도 없었어. 그냥 녀석이 하도 죽을상을 하고 있길래 술 한잔 하자고 한 것 뿐이야."

 두 사람이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냉랭한 분위기. 또 싸우려는 건 아니겠지. 말려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왜, 술 먹었다니까 걱정 되냐? 걱정 마, 걱정 마. 술이 독은 아니잖아. 독이 있다면 그건 너야, 너.

 "네가 이러지 않아도 충분히 머리가 아프다. 내가 데리고 들어갈 테니, 너도 그만 방으로 돌아가라. 음."

 "너 대체 뭐가 문제냐?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확실하게 해야 될 거 아냐, 사내 새끼가."

 "…닥쳐."

 "아유, 답답하다, 답답해."

 쿵, 쿵, 조금 취한 듯한 히단의 발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다시 쿵, 쿵. 무언가 잊어 버린 것이라도 있는 걸까, 그가 돌아온다.

 "이 녀석, 확실히 술이 들어가니까 대담해지긴 하더라."

 "?"

 "나한테 같이 자자고 하더라구. 아하하하!"

 "……."

 "니가 얼마나 X같으면 그러겠냐. 응?"

 덥석-.

 "어이쿠!"

 "말했지, 안 그래도 머리 아프다고."

 "그러니까 머리 아플 짓을 왜 하냐고-."

 홱-.

 "꺼져, 죽여 버리기 전에."

 "죽을 수만 있다면 내가 부탁하고 싶다, X발."

 쾅-! 의자가 발에 치여 나뒹구는 소리. 히단도 참. 그렇게 화낼 것까지는 없잖아.

 거진 두 시간 가까이 내 하소연을 들었으니 무리도 아닌가.

 "하아……."

 데이다라가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나를 들어 올린다. 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있으니 어지러움이 싹 가시는 듯한데, 대신 졸음이 밀려온다. 금방이라도 잠들 것 같다.

 (…)

 데이다라 : (나리, 내게 화를 내려나.)

 (왜 너를 내 방으로 데려왔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지?)

 (솔직하게 대답할까?)

 (한순간 너무 화가 나서 이대로 확 덮쳐 버릴까 생각했다고 말야.)

 (네가 아까 히단에게 뭐라고 했는지 아냐?)

 (방금 전에 나한테 했던 말 그대로다. 음.)

 (아무리 취했기로서니 그런 말을 아무렇게나 내뱉으면 어쩌자는 거냐.)

 (남자라고 해서 여자가 다가오면 무조건 기쁜 건 아니라고, 음?)

 (너에게 상처를 주고 그걸 보면서 즐겼다는 것은 인정한다. 미안하다고 생각해.)

 (누군가 나 때문에 가슴아파하는 거, 마을을 떠나온 이후로 처음이라서.)

 (뭐라고 해야 할까, 묘하게 짜릿하더라고.)

 (근데 그 상처를 반대로 내가 받게 되면)

 (하루도 못 버티는 게 나야.)

 (다음에 또 이런 일 있으면 그땐…)

 (너 죽여 버릴지도 몰라.)

 (웃기지?)

 (그치만)

 (나…….)

 (그 만큼 사랑받고 싶어…….)

 (계속, 계속, 확인하고 싶어…….)

 데이다라 : (헛웃음)

 (X발… 이래서 나리가 나더러 불쌍한 새끼라고 했던 건가… 음…….)

 (그럴지도 몰라… 제대로 된 사랑 같은 거 받아본 적 없으니까…….)

 (너와 내가 질긴 끈으로 연결 되어 있다면… 그래서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네 안에 들어가면… 그걸 조금은 느낄 수 있으려나…?)

 (그러려나…?)

 (…)

 눈부신 빛을 손등으로 가리며 천천히 눈을 떠본다. 여긴 어디지. 익숙한 풍경. 데이다라의 방이다. 그렇다는 건…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은 데이다라의 모습이 보인다. 몸의 방향은 나를 향해 있지만 고개를 떨어뜨린 채 움직이지 않아서 얼굴을 잘 볼 수가 없다. 지금 무슨 표정을 짓고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문득 지난 날과 같이 킁 하고 울음을 참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때는 당황스러웠지만 이젠 내게도 분명하게 전해진다. 데이다라에게도 약한 부분이 있다. 그리고 그 부분은 마음으로 어루만져주지 않으면 안 된다.

 “데이다라.”

 “울지 마.”

 그가 소매로 얼굴을 닦은 뒤 비로소 고개를 든다. 정말이지, 바로 전에 울었는데도 그런 감정이 조금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어쩌면 그 동안 여러번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숨겨왔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한 번 쯤은 그의 마음을 잘못 이해하지 않았을까. 단지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고, 내 멋대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그 동안 나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

 “네가 아니라고 말한 시점에서 그만두었어야 했는데…….”

 “괜히 고집을 부려서… 미안해…….”

 “근데… 나…….”

 “정말… 나 말이야…….”

 “도무지 너에 대한 마음을 버릴 수가 없어…….”

 “지금보다 좀 더, 좀 더, 너한테 가까이 닿고 싶어…….”

 “이렇게 가까이 있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잖아…….”

 “아무것도 전해지지 않잖아…….”

 “아무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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