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다라의 사진이 가지고 싶다. 그런 생각을 줄곧 해왔던 나였기에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큰 맘 먹고 사진기를 하나 장만했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데이다라의 사진은 단 두장. 한 장에는 친구들이, 한 장에는 부모님의 모습이 담겨 있기 때문에 나로서는 차마 욕심낼 수가 없다.

 지금으로서 그의 사진을 얻을 방법은 새로이 찍는 것 뿐인데, 아무리 내가 부탁을 한다고 해도 데이다라가 순순이 응해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몰래 찍는 수밖에 없다.

 아지트 안에 있을 때, 가령 자고 있을 때라든지 좀 더 쉬운 방법이 있긴 하지만 그보다는 바깥에 있을 때의 사진이 가지고 싶어서 처음부터 조금 대담한 행동을 하게 되었다.

 오늘 아침 임무를 떠난 데이다라를 몰래 따라와, 그가 혼자 있을 때를 노리기로 했다. 오늘은 하늘이 내 편인가, 마침 토비가 주변을 둘러보러가서 딱 좋은 찬스가 왔다.

 스스슥-.

 최대한 인기척을 죽이고 몰래 수풀 사이로 숨어 데이다라에게 접근, 들키지 않도록 적정 거리를 유지하며 카메라 렌즈를 조절한다. 렌즈 속에 비친 데이다라의 모습을 잠시 감상하고 있자니 역시 내 남자라는 감탄사가 나올 것 같다.

 자아-… 이제 슬슬 퍼스트 샷을 찍어볼까나. 속으로 중얼거리며 버튼을 누르려는 찰나, 무언가 내 몸을 강하게 조이며 압박해오는 것이 느껴진다. 하얀 지네. 데이다라의 것이다.

 언제부터 눈치채고 있던 거지. 도망치고 싶지만 꼼짝도 할 수가 없다. 그가 내쪽으로 천천히 걸어온다. 그래도 바로 폭발시키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다. 하마터면 골로 갈 뻔했으니.

 "누구냐? 음?"

 적에게 향하는 데이다라의 목소리, 그야말로 차갑게 얼어붙은 한겨울의 서릿발 같다. 나는 줄곧 그가 무뚝뚝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동안 내게 향했던 목소리가 얼마나 상냥하고 따뜻한 것이었는가 하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도망칠 수 없다면 자복하는 수밖에. 그런데 데이다라 이 자식, 누구냐고 물었으면 대답할 여지는 남겨줘야 할 것 아니야. 지네가 너무 강하게 조여와서 말은 커녕 숨 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다.

 "컥… 커헉…!"

 쿵-. 머리맡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질끈 감고 있던 눈을 떠보니 데이다라의 발이 바로 눈앞에 있다. 아무래도 내가 엎드려 있어서 나란 것을 눈치채지 못했던 모양이다. 몸의 방향을 트는 순간 시야에 들어온 그의 얼굴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어두운 그림자 속의 하늘색 눈동가 살기를 띠고 있는 것을 보는 순간, 잠깐이지만 그가 내 애인이라는 것을 잊고 정말 죽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

 "커헉…! 커헉… 커헉…!"

 나라는 것을 깨달은 데이다라가 놀란 표정을 지음과 동시 지네의 포박으로부터 벗어난다. 짓눌렸던 가슴으로 숨이 비집고 들어와 이제야 조금 살 것 같다. 데이다라와 적으로 만나지 않은 것이 새삼 다행으로 여겨진다.

 "대체 누가 이렇게 기척을 허술하게 숨기는지 죽이기 전에 얼굴이나 한 번 볼까 했더니만, 큰일 날 뻔했군. 여기서 뭐하는 거냐, 음?"

 "하아… 하아… 하아……."

 잠깐 숨 좀 고르자. 그렇게 생각하는 나를 데이다라가 붙잡아 일으켜세운다. 휘청 하고 다시 쓰러질 뻔했다가 그의 품에 안기니 왠지 그리운 기분이 들어서 사진이고 뭐고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아아, 하마터면 죽을 뻔했지만 조금 전의 데이다라도 굉장히 카리스마 있어서 멋있었다.//// 그의 허리를 감싸안으며 가슴에 얼굴을 부비적거리니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려온다.

 "뭐하자는 거냐? 왜 따라나왔어, 응?"

 "사진 찍으려고……."

 목에 걸고 있는 사진기를 보여주고는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그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내게 손을 뻗는다. 쓰담쓰담, 상냥한 손길에 마음이 녹아내린다. 어쩌면 혼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화나지는 않은 것 같다.

 "사진 말고 무언가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해봐라."

 그의 말에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내가 원하는 건 데이다라의 사진 뿐이야."

 "그건 곤란하다고 말했잖냐. 뭐든 좋으니 다른 것을…"

 "많이는 바라지 않아. 딱 한 장이면 돼."

 내가 조르고 있는 모양새가 되니, 슬슬 데이다라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어진다.

 "같은 말 반복하게 하지 마라."

 "……."

 데이다라에게서 떨어져, 그대로 잠시 침묵이 맴돈다.

 "S 급 수배범이니까 사진 같은 것은 찍지 않아, 정말 그 뿐이야?"

 "음?"

 "다른 이유가 있는 것 아니야? 그거지?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사진 같은 걸 가지고 있어봤자 미련만 남을 테니까. 차라리 일찍 잊어 버리는 편이 좋으니까. 그래서 한 장도 남기지 않으려는 거지?"

 어느덧 내 목소리에 집착이 묻어나오는 것을 스스로도 느낀다. 오빠의 죽음 이후, 평소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줄곧 그런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다.

 "날 우습게 보지 마! 내가 어떤 마음으로 너와 사귀고 있는지… 난 말이야…! 데이다라 네가 죽으면… 나도…!"

 말을 끝내기 전, 데이다라와 입술이 겹쳐진다. 그에게 두 팔을 붙잡혀 저항하지 못하고 그저 눈을 감는다.

 그 놈의 사랑이 뭔지, 일순간 마음에 돋아났던 날카로운 가시가 제 모습을 감춘다. 그리고 다시 동그랗게, 부드럽게 변한다.

 쪽-. 입술이 떨어질 때 그 찰나의 소리가 가진 힘은 정말 엄청나다. 이것으로 몇 번째 나를 굴복시키는 건지 모르겠다.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는데 지키지 않았으니, 다음에는 봐주지 않을 거다. 음."

 "……."

 말 없이 울상을 짓고 있는 내가 조금은 불쌍해보였는지, 그래서 위로라도 하려는 건지, 문득 데이다라가 내 하반신을 감싸안아 번쩍 들어올린다. 깜짝 놀라 그의 목을 끌어안고, 마치 어린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얼굴을 붉힌다.

 "나를 봐라. 사진 같은 것 말고, 언제나 네 곁에 있는 나를 봐. 지금 너의 감정은 이 순간이 아니면 두 번 다시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사진 한 장에 그것을 어떻게 다 담을 수 있겠냐. 음?"

 "그치만……."

 "난 네가 어설프게 찍힌 사진속의 내가 아닌 지금의 나, 네 눈앞에서 생생하게 살아움직이는 나를 기억했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자."

 그가 살며시 내 손을 붙잡고 자신의 뺨으로 가져간다. 그의 체온이 느껴진다. 쓴웃음을 짓고 있는 그의 얼굴을 온전히 나의 두 눈에 담고 머리에 새긴다. 아아, 데이다라가 말하는 '순간의 미'라는 것, 이제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기억은 머지않아 흐릿해진다. 그리고 언젠가 손을 뻗어도 잡히지 않는 것이 된다. 아무리 애써도 떠올릴 수가 없을 때 추억은 더 아련하게 느껴지고, 그리움이 쌓이면 쌓일 수록 점점 아름답게 변해간다.

 자신에게 있어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을 부순다. 지금의 내 입장으로는 사진과 같은… 데이다라가 '여기 있었다'는 흔적을 없애는 것과 같다. 그리고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을 때, 나 또한 심장에 오는 허무함과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겠지.

 "데이다라."

 "음?"

 "토비 말이야… 언제 돌아와…?"

 "글쎄다, 슬슬…"

 데이다라가 말을 끝내기 전에 그의 뺨을 두 손으로 감싸고, 그에게 입을 맞춘다. 이번에는 나로부터, 갑작스런 키스에 잠시 놀라는 듯하던 그가 부드럽게 나를 받아들이고 조심스레 앞으로 걸어간다. 이윽고 등 뒤로 나무기둥이 닿아온다.

 두 팔로 데이다라의 목을 끌어안고, 다리로는 그의 허리를 감싼다. 조금 전보다 깊숙이 그가 내게 혀를 얽혀온다. 뜨겁다. 머리가 몽롱해진다.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짜릿한 감각이 올라와 전신으로 퍼져나간다.

 "음… 음음……."

 조용한 숲에서 목소리를 억누르려고 하다보니 작은 숨소리와도 같은 신음이 입술 사이로 새어나간다. 어쩌면 토비가 주변에 있을지도 모르고, 내 목소리가 그에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멈출 수가 없다. 데이다라가 나를 불안하게 만드니까, 견딜 수 없게 만드니까. 점점 욕망에 기대어 불안을 지우려고 하는 자신에게 스스로도 짙은 회의감을 느낀다.

 "음음… 으으음……."

 정신없이 끌려가다보니 숨이 부족해지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입술이 떨어지는 순간 다시 한 번 숨이 가슴을 비집고 들어온다.

 얼굴이 뜨겁고 머리는 멍해져서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다. 전신으로부터 힘이 빠져나가 그의 옷깃을 붙잡고 있는 손이 파르르 떨린다.

 "선배~ 다녀왔습니~… 어라라~…?;;"

 결국 돌아온 것인가. 그렇잖아도 함께 생활하다보면 본의 아니게 보기 흉한 모습을 보이게 되기 마련인데, 하필이면 이런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게 되다니.

 지금 당장이라도 데이다라와 떨어지지 않으면 안 되겠지. 알고 있는데도 내 몸은 마음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 떨어지기는 커녕 데이다라를 더욱 꼭 끌어안는다.

 아이처럼, 사랑에 완전히 져버린 여자처럼, 데이다라의 어깨에 뜨거운 뺨을 부비적거리며 그 모습을 맞은편에 서 있는 토비에게 그대로 내보인다.

 "토비."

 "네애~…?"

 "잠깐 시간이 필요하다. 기다려줄 수 있겠지? 음?"

 "아, 네, 물론이예요~. 선배, 힘내세요옷~. 파이팅~."

 두 손을 움켜쥐며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유유히 숲속으로 사라지는 토비. 정말 바보인 건지 아니면 이런 상황과 맞딱들이고도 능청을 떨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로운 건지 모르겠다.

 토비의 기척이 사라지자 데이다라가 내 어깨에 얼굴을 묻는 듯하더니 귓가로 살며시 고개를 돌린다. 내 뺨과 같이 뜨거운 그의 숨결이 떨어지며 찌릿 하고 강하게 퍼져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그것만으로도 몸의 마디 마디가 삐끗거리기 시작하는데, 문득 뜨거운 혀가 귀 언저리를 핥는다. 그리고 살짝 깨무는 순간, 저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으며 그의 옷깃을 꽉 움켜쥔다.

 "그러고보니 지난 번에 토비의 얼굴이 보고 싶다고 하지 않았었냐? 음?"

 "응……."

 "다음에 아지트로 돌아가면 기회를 봐서 몰래 찍어보는 게 어때?"

 나를 바닥에 내려주는가 싶더니만, 몸의 중심을 찾을 틈도 없이 그의 팔이 내 다리 한 쪽을 휘어잡고, 반대쪽의 손이 스커트 안으로 들어온다. 그 상태로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어나가는 데이다라에게 저항 같은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

 손바닥에서 나온 혀가 다리 안쪽의 가녀린 피부를 핥는 순간 날카로운 신음이 터져나온다. 서둘러 두 손으로 입을 막아보지만 부끄러움을 모르는 소리가 손가락 틈으로 계속 새어나간다. 그리고 몸을 추스를 새도 없이 그의 손이 가장 깊은 곳에 닿는다.

 "그럴 여유가 있다면… 이지만, 음."

 귓가에 뜨거운 숨결이 떨어지고, 바로 그곳에서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점점 안쪽으로 들어오는 손가락에 얇은 속옷 같은 건 방해가 되지 않는다. 어느덧 불쾌함으로 가득해진 곳에 그것이 스칠 때 마다 의식이 위태로이 흔들리고 무너져 내린다.

 이제 정말 별 수 없다. 절정을 원하는 몸이 스스로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데이다라를 붙잡고 그에게 매달린다. 마침내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그의 옷깃을 꽉 움켜쥔다. 그런데 문득 나를 자극하던 손길이 사라진다.

 "데이다라… 나… 아직……."

 수치심을 무릅쓰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지금 내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굳이 보지 않아도 알 것 같다. 흐트러질대로 흐트러진 나를 바라보는 데이다라의 눈빛이, 이미 부끄러움으로 가득한 내 마음을 더욱 엉망으로 만든다.

 "알고 있다. 이대로 아지트로 돌아가서 내가 오는 것을 기다려라. 이번에야말로 얌전히 말이야. 음."

 그가 내 안으로 들어왔던 손가락을 슬쩍 핥고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띤다. 그리고 내게 다가와 뺨에 입을 맞춘다. 쪽, 짧은 소리와 함께 멀어져간다. 오직 뜨거운 열기만이 남아 계속 그를 원하고 있을 뿐이다.

 "무… 무리야……."

 "아까 말했잖냐, 다음에는 봐주지 않을 거라고."

 "……."

 "그저 기분 좋기만 하면 벌이 안 되지. 괴로움을 느껴라."

 그가 흘러내린 내 머리카락으로 부드럽게 쓸어넘긴다.

 "지금부터다. 음."

 스르륵-. 그의 손이 내 뺨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린다. 분명 의도적인 것이다. 그저 닿는 것만으로도 부들부들 떨리는 내 몸을 놀리고 있다.

 아무리 내가 먼저 시작한 것이라지만 지금 이 순간 데이다라가 너무 얄미워보인다. 나쁜 자식, 마음 같아서는 한 대 때려주고 싶다.

 이런 상태로 어떻게 돌아가라는 건지, 언제쯤이면 가라앉을지. 설령 가라앉는다고 해도 욕구는 사라지는 것이 아닌 쌓이는 것이다.

 아마도 나는 계속 생각하겠지. 그리고 계속 원하겠지. 이 얄미운 애인이 돌아오는 것을, 그의 품에 안기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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