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이 오지 않는다. 데이다라가 돌아올 타이밍에 맞춰 영화를 준비했는데 어떤 내용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딱히 이상한 영화 같지는 않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으니 이참에 확인해 둘까. 스윽─. "음… 어디 가…?" 최대한 조심했는데도 깨워 버리고 말았다. 데이다라는 쪽잠을 자는 평소의 습관 때문에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에 상당히 민감하다. "거실에서 TV 좀 보고 올게. 신경 쓰지 말고 푹 자." 하늘색 눈동자에 졸음이 가득한 걸 보니 더 미안해서 이불을 꼭 덮어 주고 나왔다.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앞부분을 10분 정도 재생해 보았다. "……."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다르다. 둘이 있을 때 좋은 분위기를 만들 생각이었는데 이래서는 안 된다. 잠이나 자야겠다고 생각하며 리모콘을 집어 들었다. 그러자 어느새부터인가 내 뒤에 서 있던 데이다라가 말했다. "어어, 끄지 마. 나 보고 있어." "데, 데이다라…?" "당신이 옆에 없으니까 잠이 안 와. 같이 TV나 볼까 하고 나왔어. 때맞춰 온 것 같네. 음." 그가 능청스레 한 쪽 팔을 두르며 기대어 왔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내 앞으로 흘러내렸다. "나한테 얘기하지. 혼자 보는 게 더 재밌어?" "이, 이, 이건… 토비가 부탁한 거야! 나는 몰라!" 민망해하며 둘러대는 찰나, 근처에 놓아 두었던 케이스가 데이다라의 눈에 띄었다. "토비가 '운명의 속삭임'을? 딱 봐도 당신이 제목에 속아서 잘못 골라 온 거구만." "……." "달달한 로맨스를 기대했는데 야한 장면만 나오니 실망한 거지?" "(끄덕)" "그런 영화라고 해서 전부 삼류인 건 아니야. 에로티시즘에 충실한 좋은 작품들도 많다고." 소파에 앉은 데이다라가 자신의 어깨를 탁탁 두드렸다. 어쩌다 보니 둘이서 영화를 본다는 목적을 이루게 됐다. 하지만 나는 안절부절하며 열심히 그의 시야를 차단했다. "뭐야, 가리지 마. 나도 볼 거란 말야. 음." 소리라도 듣지 못하게 하려고 귀를 막아 버렸더니 그런 손을 잡아 내리고는 놔 주지 않았다. 나보다 어릴지언정 진작부터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던 어린 남편에게 이길 수가 없었다. 얌전히 포기하니 다시 편하게 기댈 수 있도록 안아 주었다. "이제 막 성에 눈을 뜬 여자가 보기에는 확실히 자극적인 영화인걸. 하지만 일단…" "엉덩이다…(중얼)" "음? 그, 그렇네… 하지만 일단 야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나서 보면…" "남자 배우 엉덩이를 그냥 보여주는구나… 우와……." "잠ㄲ, 엉덩이 보지 말고 내용에 집중하라니까. 그런 시각으로만 영화를 바라보는 게 문제라고." "있잖아, 데이다라… 사랑하지 않는 상대와 잠자리를 갖는 건 인간이라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봐… 딱히 화류가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심지어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해도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고… 어쩌면 세상에 정말 순수한 사랑은 없을지도 몰라……." "왜 하필이면 그런 쪽으로 깨달음을…;; 남편으로서는 별로 칭찬하고 싶지 않은데…;;; 차라리 그림을 볼 때처럼 아무 생각도 하지 마. 감각적으로 느껴 보는 거야. 그렇게만 해도 인상에 남는 게 분명히 있을 테니까. 음." "감각적으로… 알았어……." 나는 데이다라의 말을 상기하며 영화에 집중했다. 잠시 후 남자 배우의 탄탄한 엉덩이가 또 다시 등장했다. 그 부분에서는 데이다라가 으흠 하며 은근슬쩍 내 눈을 가리려 했지만 결국에는 다 봤다. 마지막으로 엔딩 크레딧이 흐르자 진지하게 영화를 감상한 그가 팔짱을 낀 채 말했다. "나쁘지 않은 영화군. 단지 미스 캐스팅이랄까, 남자 주인공이 컨셉에 맞게 좀 더 비참한 모습이었다면 좋았을 거야. 쓸데없이 늠름한 배우를 쓰니 몰입력이 떨어지잖아." "나는 마음에 들던데… 남자 배우……." "어느 부분이? 엉덩이가?" "잘 모르겠어… 감각적으로 느낀 거라……." "우리 여보는 엉뚱한 감각을 쓴 거 같은데?" "아무튼 잠 못 드는 밤이야… 이참에 나도 심야영화에 입문해 볼…" "네, 거기까지-." 말하기 무섭게 손에서 리모콘이 사라지고 번쩍 안아올려졌다. TV를 픽 꺼 버려서 아쉬울 틈도 없었다. 데이다라가 서둘러 방향을 돌렸다. "이, 이건 에로티시즘… 예술…" "그래도 당신은 보지 마." "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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