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기분 좋게 식사한 것이 언제였더라. 요즘들어 나는 좀처럼 먹을 수가 없다. 단순히 입맛이 없다든지 그런 문제가 아니다. 배는 고픈데 무언가 먹으려고 하면 속에서 역한 기운이 올라온다.

 이제는 주방에 있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서 음식을 만들 때마다 곤혹을 치룬다. 틀림없이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이니 병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 전에 먼저 확인해 두고 싶은 것이 있었다.

 "……."

 나는 어떤 변화라도 받아들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겸허한 마음으로 결과를 확인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동봉되어 있던 설명서의 그림과도 비교해 보았다.

 소파에 앉아 조용히 자신의 배를 쓰다듬는다. 이것이 바로 내게 생긴 변화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 평범한 부부들에게 그렇듯이 두 사람에게도 하늘이 축복을 내려준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걸까.

 데이다라는 아이를 원치 않았다. 나 또한 우리에게는 없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결과가 잘못 나온 건지도 모르니 내일 병원에 가서 제대로 검사를 받아볼 생각이다.

 데이다라도 며칠 뒤에 돌아온다고 했으니까─.

 "다녀왔습니다아~."

 안 돼, 아직 아무것도 얘기할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입을 다물고 있을 자신도 없다.

 어떡하지. 어떡해야 하지. 속으로 중얼거리는 사이 토비가 내게 다가왔다.

 "~. 이게 뭐게~."

 "?"

 "너 좋아하는 거 사 왔어~."

 "……."

 토비는 이번 임무에서 데이다라와 떨어져 움직이게 되었고, 다시 합류하기 전 아지트에서 잠시 쉬었다 갈 예정이라고 했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좋을지 갈피를 잡지 못한 나는 데이다라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불안을 느꼈다.

 " 왜 그래~. 입맛 없…"

 "웁… 우웁… 우우웁……."

 토비가 사 온 것은 내가 평소에 즐겨먹던 과자였다. 그런데도 여지없이 구역질이 나왔다. 지금까지 전혀 다른 쪽에 문제가 있다고 믿었던 나였기에 데이다라는 하물며 토비에게도 숨겨 왔지만, 만약 임신이 맞다면 숨긴다고 될 문제가 아니었다.

 "이상하네~. 가 왜 구역질을 할까~."

 솔직히 말해야 하나. 아니, 일단 숨기자. 검사를 받기 전까지는 아무 일도 없는 척하자.

 나는 속으로 갈등했다. 그러다 문득 토비의 동글동글한 눈매를 보고 귀여워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래, 다른 사람도 아니고 토비 너에게는 숨기지 말아야지.

 테스트기는 양성으로 나왔지만 그 결과를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솔직히 모르겠다고 대답한 뒤 토비의 손을 잡고 기도했다. 약간 과장을 더해 다음 날 병원에서 검사 결과를 기다릴 때까지 놓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알게 되었다. 내 안에는─.

 (…)

 데이다라 : 음…?

 토비 : 어이쿠~. 들켜 버렸네요~.

 데이다라 : 너, 이 자식… 바른대로 말해. 방금 전 뒤에서 발소리를 죽이고 다가온 이유가 뭐냐?

 토비 : 깜짝 놀래켜 주려고 그랬지요~. 왜요~? 흠칫 하셨어요~? 제가 갑자기 뒤통수 때리기라도 할까 봐요~? 저 그렇게 비겁하지 않아요~. 죽일 거였음 정면에서 목을 졸랐을 거예요~. 하하핫~.

 데이다라 : 네놈의 백치 같은 모습이 가면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건 알고 있었어. 가끔은 역겹다는 생각이 들더군. 차라리 가면을 벗고 똑바로 마주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

 토비 : 가면인 걸 눈치챘다 해도 선배는 저를 몰라요~. 역겹다든지, 함부로 말하지 말아 주세요~.

 데이다라 : 지금 뒤통수 때릴 게 아니라면 5보 떨어져라. 평소처럼 가까이 왔다간 죽여 버릴 테니까.

 토비 : 에이~. 우리 아직 파트너잖아요~.

 데이다라 : 역겨우니까 적당히 하라고!

 토비 : …알았어요~. 그럼 이쯤에서 그만두죠~. 뜬금없이 들리겠지만 선배~. 만약 아기가 생기면 어떡하실 거예요~?

 데이다라 : 그건 당연히… 지워야겠지…….

 토비 : 왜요~? 제가 좋은 삼촌이 되어줄 수 있는데요~.

 데이다라 : 내게는 한 사람만 있으면 된다.

 토비 : 의외네요~. 선배라면 그녀를 데리고 멀리 도망칠 줄 알았거든요~.

 데이다라 : 그럴 리가 없잖아. 아카츠키를 배신하는 순간 나는 다른 멤버들의 타깃이 된다고.

 토비 : 누가 들으면 진심으로 말하는 줄 알겠어요~. 나는 이대로도 행복하다~. 나는 아이 따위 원치 않는다~. 나는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데이다라 : …….

 토비 : 아무래도 제가 사람을 잘못 본 것 같죠~? 어차피 쓰다 버릴 도구니까 능력만 출중하면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에는 이렇게 골치 아픈 상황에 놓였네요~.

 데이다라 : 너… 정체가 뭐야…?

 토비 : 들으면 놀라실걸요~. 어쩌면 제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하실지도 몰라요~.

 데이다라 : 웃기지 마… 내가 왜 너 같은 놈에게…….

 토비 : 해야 될 텐데~? 안 그럼 를 잃을지도 몰라요~.

 데이다라 : 믿을 수 없군… 우치하 나부랭이라는 건 알았지만… 설마… 네가…….

 토비 : 잡담은 여기까지~. 이제 슬슬 전부 털어놓으실까요~?

 덥석─.

 데이다라 : 커헉…!

 토비 : 너의… 리더에게 말이다.

 (…)

 토비가 떠난 뒤 나는 다시 홀로 남겨졌다. 유난히 고요한 오늘은 소파에 앉아 멍하니 사념에 잠겼다. 집안일을 할 때도 이렇게 넋을 놓고 있다가 여러 번 일을 냈다. 그릇을 깨뜨리고, 물통을 엎지르고… 베테랑 살림꾼으로서 평소에는 좀처럼 하지 않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들이었다.

 깨진 그릇을 치우다가 파편에 찔려 손가락을 다쳤는데 어느덧 밴드가 붉게 물들었다. 착잡한 마음에 테이블 위의 병과 유리잔을 집어 목을 축였다. 독한 술이기 때문인지 오히려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

 어쩌면 나는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 완벽하게 설계된 인간인지도 모른다. 정보수집꾼이 되어 타깃에 접근하고, 심지어 자기 스스로에게도 완벽하게 연기를 하지 않았던가.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 실은 알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배가 너무 아파 일어나 보니 시트에 붉은 핏자국이 보였다. 나의 잠옷 안에서 나온 것이었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날 보았던 것은 내 머릿속에서 멋대로 합리화되어 버렸다. 별 것 아니야. 아무 일도 없었어.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충격이 있을 때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방어본능이었다.

 그날 이후로도 나의 몸상태는 이전과 다름없었다. 반나절이 넘도록 잠만 자고 구역질을 했다. 그래야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처음부터 나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고, 나는 잘못한 게 없다고, 그렇게 계속 믿고 있으면, 어쩌면, 신께서 다시 돌려주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돌려받지 못했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진실을 외면하려 했던 비겁한 선택에 대한 자괴감, 그리고 허망함뿐이다. 신께서는 오히려 내가 괘씸해서 벌을 주고 계신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잠시나마 두려움을 잊어 보려 술을 마신다.

 아아, 내가 어리석은 선택을 하기 전부터─.

 이미 내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

 토비 : 내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게 될 거라고 말했던 건 나지만 그렇다 해도 지나치게 얌전하구나.

 데이다라 : …….

 토비 : 반송장이 될 때까지 저항 한 번 하지 않는다… 내게 마음껏 분풀이하라는 거냐? 이만하면 됐으니 그냥 가르쳐 주마. 너 말이다, 머잖아 아비가 될 수도 있었다.

 데이다라 : 뭐…?

 토비 : 는 언젠가 너에게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동안 어리석은 짓을 반복했다. 그러다 유산까지 하고 만 거다. 뭐라 말해도 너를 믿지 못했던 거지.

 데이다라 : 아… 아냐… 우리는 서로를 믿어… 그리고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너 같은 것보다 먼저 알아차렸을 거야… 왜 몰랐겠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토비 : 사실을 말하자면 나도 유산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한데 너는 그렇게 되어 가는 와중에도 모르더군. 머릿속으로 오로지 배신할 꿍꿍이를 하느라 말야.

 데이다라 : …….

 토비 : 고단했겠지… 내 눈치 보랴, 츠치카게 눈치 보랴… 너를 받아들이기로 약속한 영주도 아직은 속을 알 수 없으니… 그렇지 않나…?

 데이다라 : 거기까지 알고 있다면… 좋아… 전부 털어놓지… 나는 를 데리고 흙의 나라로 갈 계획이었다… 사스케를 치러 가는 날… 녀석의 힘을 빌려 너를 따돌리고…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깊은 곳으로 들어가 숨을 생각이었어…!

 토비 : 당돌하구나. 나를 배신하는 게 당연히 이루어져야 하는 숭고한 계획인 것처럼. 그렇다면 여기서 너를 살려 주는 게 옳은 일일까. 어디 네가 말해 봐라.

 데이다라 : 보다시피 난 전혀 불쌍하게 생겨먹지 않았고… 감정호소 같은 거 할 줄 몰라… 어떡하면 를 데리고 떠날 수 있는지 네가 원하는 조건을 말해… 다른 얘기를 꺼내봤자 시간낭비일 뿐이야…….

 토비 : 미안하다만 나는 너희를 보내 주지 않을 거다. 그렇다고 억지로 떼어 놓지도 않을 거야. 무의미한 꿈은 버리고 지금까지 그랬듯 내 도구가 되어라. 의 곁에 있는 것으로 만족해.

 데이다라 : …….

 토비 : 놀랍게도… 너의 눈동자에 절망이 비치는 것은 처음 보는군… 그리도 간절하더냐.

 데이다라 : 아니… 이제 됐어… 어떡해야… 한 번이라도… 와 만날 수 있는지… 그걸 말해…….

 토비 : 역시 선배는 이해가 빠르시구만. 계획대로 우리는 사스케에게 간다. 너를 이용해 녀석의 전력을 확인할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지.

 데이다라 : 알았어… 알았으니까… 한테 가게 해줘… 지금 그녀에게는 내가 필요하다고…….

 토비 : …….

 (애초에 너는 내가 잃어버린 것을 가로챘다. 나의 것을 가지고 나로부터 지키려 하는 모습이 참으로 가소롭구나.)

 (과거의 내게도 그녀와 같은 존재가 있었더라면… 덧없는 희망이라도 품을 수 있었더라면…….)

 (그랬다면 나도 한 번쯤은… 그림자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쳤을 텐데… 지금의 너처럼…….)

 데이다라 : 윽…!

 토비 : 선배~. 제가 부축해드릴게요~.

 데이다라 : …….

 토비 : 적에게 당해서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으니까~. 일단 임무를 중단하고 아지트로 돌아가야죠~?

 데이다라 : 그래… 얼른 가자…….

 (…)

 『당신에게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말이 있어.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상처를 입혔든지, 앞으로 어떤 불행을 가져다 주든지,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진심이라는 걸 잊지 말아줘. 언젠가 나를 원망하고 싶어지거나 욕하고 싶어지면, 마지막에 한 번만이라도 기억해 줬으면 해.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나란 인간에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언제나 풍전등화 같고, 그렇기 때문이야말로 매순간 마지막처럼 간절히 원했다고 말야.

 꽤 오랫동안 고민했지만 첫머리에는 당신이 편지를 다 읽고 나서도 잊지 말아줬으면 하는 말을 적는 수밖에 없었어. 그리고 이제부터는 그냥 잊어버려도 되는데. . . . 사실 나는 입으로만 잘난 듯이 떠들어댈 뿐 당신이라는 여자에 대해서 잘 몰라. 내 아내가 좋아하는 계절, 노래, 음식…. 정말 아무것도 적을 수가 없네. 그래서 정말 미안해. 말보다는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려 했어. 왜냐면 당신이 웃을 때는 나도 항상 거기 함께 있고 싶었거든. 지금 가장 후회되는 게 있다면 당신의 아픔이 어떤 기억으로부터 비롯된 건지 몰랐던 것과 그렇기 때문에 단 한 번도 당신을 제대로 위로해 주지 못했던 거야.

 어린 시절부터 절대 행복해질 수 없는 운명이었던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해줘서 고마워. 또 한 번의 기회를 줘서. 당신이 없었다면 나에겐 이미 모든 게 다 지옥 같았을 거야. 과거에도 마찬가지였고, 더는 이 세상의 무엇도 사랑할 수 없을 줄 알았어. 그러다 당신과 이어지고 나서 비로소 느끼기 시작한 거야. 죽기 싫다고, 무섭다고.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나는 적이 기다리는 곳으로 가야 해. 혹시라도 내가 늦으면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도록 해. 그리고 꿈에서 만나자.

 P.S. 역시 난 너의 남편이 되기엔 부족했던 것 같아.』

 …

 …

 …

 어제 비가 내려서 바깥에 널어 놓았던 빨래를 급하게 거두었다. 여전히 안개가 뿌옇게 서린 걸 보니 조만간 다시 쏟아질지도 모르겠다.

 데이다라는 임무를 끝내고 돌아와서 아지트에 3일간 머물렀다 떠났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지만 평소처럼 점토를 만지면서도 그가 웬만하면 곁에 있어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마지막 날에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와 시간을 보냈다. 창밖의 빗소리 따위는 전혀 들리지 않는 듯했다.

 그가 돌아왔을 때 전날 마셨던 술이 완전히 깨지 않은 상태였던 나는 갑자기 내린 비만큼이나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얼굴에서 괴로움을 완전히 감추는 것 또한 어려웠지만 데이다라는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나 역시 구태여 얘기하지 않았다. 토비에게 소식을 전해듣고 데이다라도 많이 괴로웠겠지. 한편으로는 그에게 미안해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잘 다녀오라는 인사도 하지 못하고 눅눅하게 젖은 숲길을 걸어 왔다. 지난번 미사 때 남편이 벌였던 충격적인 말썽에도 불구하고 신부님이나 신도들은 도리어 나를 걱정해 주었다. 아니, 남편인 것을 밝히지 않았으니 걱정하는 것이 당연한가.

 어쨌든 나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 앉아서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안녕하세요 마리아 님, 이번에도 꼭 무사히 돌아오게 해주세요. 제가 좋은 아내가 될 수 있게 좀 더─.

 어디서 불어온 바람인지 갑자기 나의 머리칼과 함께 미사포가 휘날린다. 서둘러 붙잡으려 했지만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날아가 버렸다. 미사 중에 갑자기 일어나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남편이 선물해 준 거라 행여 더러워질까 조바심이 난다.

 문득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속삭임.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성모님과 눈이 마주쳤다. 멍하니 넋을 놓은 채 바라보고 있노라면 왠지 모를 불안이 엄습해 온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등골에 식은땀이 흐르고, 앞으로 모은 두 손이 떨린다.

 그러고 보니 어째서 이번에는 내 머리맡에 편지만 남겨 두고 갔을까. 원래 내게 편지를 자주 보내는 데이다라지만 그렇다 해도 이런 적은 처음이다. 설령 내가 늦잠을 잤다 해도 뺨에 키스하며 '다녀올게' 한 마디 정도는 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겉으로 티내지 않으려 했을 뿐 평소와 분위기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 표정, 미소…. 뭐랄까, 마치, 다음은 없는 것처럼…….

 (…)

 토비 : 이렇게 흐릿한 날씨인데도 하늘을 날고 있으니 태양이 가깝게 느껴지네요~. 햇빛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서 제법 볼 만한데요~. 성당에 있는 그거 같아요~.

 데이다라 : …….

 (이제 와서 뭐야?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나는 이미 포기했거든. 처음부터 나에겐 터무니없는 소원이었어.

 지금쯤이면 도 당신에게 기도하고 있으려나. 뭘 빌지 궁금하네.

 설마하니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돌아올 수 있게 해달라는 건 아니겠지.

 아마도 그럴 거야. 그러고도 남지. 당신이 뭐라고 말 좀 해 봐.

 이번에는 정말 늦을 테니까 기다리지 말라고 해.)

 토비 : 선배, 기분은 이해하지만 너무 깊은 생각에 빠지시면 곤란해요~. 사스케 군이 바로 코앞에 있으니 이제 슬슬 가자구요~.

 데이다라 : 네놈이 내 기분을 어찌 이해할 수 있단 거냐. 하루에 몇 번이나 우치하의 낯짝을 봐야 하는 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넌 절대 모를 거다.

 (어쨌거나 제법 예술적인 풍경인걸. 한 폭의 그림 같아.

 당신이 내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할게.

 하지만 이제부터는 당신한테 기도 안 할 거야.

 어차피 거기까지 들리지도 않을 테니까.)

 (…)

 데이다라 : (이것만은 분명히 해두고 싶은데.

 나도 딱히 우치하를 이기지 못해 안달난 건 아니거든.

 오히려 우치하라면 이제 지긋지긋해서 몸서리가 쳐질 정도야.

 솔직히 이타치는 천재라고 인정하지만 뭐냐 이 꼬맹이는.

 주인의 힘이라니, 어디서 그런 날강도 짓을 배웠어? 음?

 애초에 혈통 빼면 시체인 주제… 하여간 마음에 안 들어.)

 사스케 : 이타치는 어디 있는 거냐…!

 데이다라 : (내가 너보다 4살 더 많거든. 초면부터 반말 찍찍, 누구 동생 아니랄까 봐 정말 가지가지로 열받게 하는구만.

 네 형을 왜 나한테서 찾아. 같은 멤버라 해서 모든 걸 다 공유하지는 않는다고.

 그보다 중요한 걸 잊고 있잖아. 네가 정말 없애야 하는 존재는 나도 이타치도 아니야.

 지금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을걸. 과연 얼마나 써먹을 만한 도구일까 확인하기 위해서.

 나와 이타치에게 의리 같은 건 조금도 없지만, 어쨌든, 너는 적어도 우리처럼 이용되지 마라.

 인간이길 포기하지 않은 이상 결국엔 너에게도 소중한 것이 생길 텐데, 그때 가면 너무 늦어. 도구는 주인 외에 그 누구를 위해서도 희생하면 안 되거든.)

 데이다라 : 지금부터 나는 자폭한다.

 (죽을힘을 다해 저항하면 도망칠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내 소중한 것을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아.

 까짓 거 몇 대 맞으면 되잖아. 죽으면 되잖아.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미련한 생각은 버려.)

 사스케 : 이봐!

 데이다라 : …….

 (미안하다, 토비.

 어쩌면 내가 너희를 방해한 건지도 몰라.

 설령 그럴지라도 이제는 운명이라고 믿겠어.

 별로 억울하지도 슬프지도 않은걸.

 단지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야.

 무사히 도착할 수 있게 기도나 해야지.

 안녕,  천사님.

 나를 여기 있게 했던 것처럼

 이제부터 당신 안에 있게 해주세요.

 거기서 영원히 행복하게 해주세요.

 그리고

 모든 걸 용서해 주세요.)

 …

 …

 …

 ────────.
 ─────.

 (…)

 미사가 끝난 뒤 자리에서 일어나 떨어진 미사포를 주웠다. 그나마 카펫 위로 떨어져서 다행이다. 오늘은 다시 쓸 일이 없겠지.

 소중히 접어서 품에 넣으려는데 문득 미사포 속에 머리카락 한 올이 반짝인다. 딱 봐도 데이다라의 금발이다. 언제 붙은 걸까. 쓴웃음을 지으며 꺼냈더니 바람과 함께 날아가 버렸다.

 옛날 사람들은 서로의 머리카락을 정표로 간직했다지. 아지트로 돌아가서 편지의 답장을 쓸 때 조금만 잘라서 보내달라고 해볼까.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젓는다. 그런 것보다는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 같이 식사하고, 얘기 나누고, 여유가 있으면 차도 마시고….

 평소에 데이다라는 임무에 대한 얘기를 그다지 하지 않는다. 자세히 알아봤자 걱정만 늘어날 테니 애써 묻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이라도 알아둘 걸 그랬나 보다. 미사 때 느꼈던 이유 모를 불안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아지트로 돌아온 뒤 집안일을 하고 소파에 앉았다. 편지를 읽으면 마음이 한결 차분해질 거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반대다. 얌전히 기다리겠다는 약속을 지켜야 하는데 점점 견디는 것이 괴로워진다.

 지금 당장 남편에게 달려가고 싶다. 만나서 직접 편지에 대한 대답을 돌려주고 싶다.

 "……."

 아니, 나는 지금 굉장히 위태로운 상태다. 커다란 상실감 때문에 무언가 잘못되지는 않을지 불안에 떨고 있다.

 초조해 말고 기다리자. 걱정하지 않아도 데이다라는 괜찮을 것이다. 언제까지고 곁에 있겠다 약속하지 않았는가. 더군다나 혼자가 아니다. 데이다라의 옆에는 언제나 그의 파트너가 있다.

 나는 토비와도 약속했다. 토비가 내게 말했다. 무섭지 않게 잘하겠다고. 그러니 걱정할 필요 없다. 나는 데이다라와 토비를 믿는다.

 잠시나마 행복한 미래를 상상하면 미소가 지어진다. 설사 이대로 영영 아이를 갖지 못한다 해도 세 사람만은 변함없이 가족처럼 지낼 수 있길…. 그럴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

 토비 : …….

 (함께 있고 싶다거나, 웃는 얼굴이 보고 싶다거나, 하나같이 부질없는 생각이지만 그런 이유로 무심코 거짓말을 하게 될 때가 있지.

 약속 같은 것은 함부로 할 게 못 된다. 때로는 커다란 대가를 치르기도 하고, 나처럼 과거의 약속을 어긴 탓에 현재의 약속에 더 얽매이게 되기도 하거든.

 어떤 것은 한 번 망가지면 꿈과 현실을 바꾸지 않는 이상 절대로 고칠 수 없어. 그렇기 때문에 약속이든 무엇이든 부수기보단 지키기가 훨씬 힘든 것이다.)

 데이다라 : 으… 음…….

 (끔찍한 기분이군… 마치 악몽 속에 있다 나온 것 같아… 자신이 죽는 모습을 이토록 선명하게 보다니…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전부 꿈이었나… 그리고 이것이 현실인가… 모르겠어… 저기 보이는 뒷모습은 누구지… 사람이 쓰러져 있는데 무얼 태연하게 앉아 있는 거야…….)

 토비 : 정신이 들었나 보군. 그럼 일어나라.

 데이다라 : …….

 토비 : 지금부터는 너 혼자다. 아지트로 돌아가서 에게 토비가 죽었다고 전해라. 이제 누구도 기다릴 필요 없다고 말야.

 (…)

 데이다라가 무사히 돌아왔다. 하지만 그는 혼자였다. 언제나 함께였던 토비가 없었다. 떠들썩한 분위기와 웃음 소리도 없었다. 세상은 어지럽고 오직 그의 자리만이 텅 비어 있는 것 같았다.

 토비의 사망소식을 전해 들은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졌다. 데이다라가 그런 나를 위로했지만 연이은 상실에 대한 절망감을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여기 있어야 할 이유는 없어. 데이다라가 말했지만 넋이 나간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충격을 받은 몸과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 버려 대답은커녕 입을 열지도 못했다.

 그러나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데이다라는 서둘러 떠날 준비를 했다. 마지막으로 한 일은 손가락에 깊은 자욱이 생기도록 오랫동안 착용했던 '靑'의 반지를 빼 놓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봄으로써 나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

 하얀 점토새를 타고 얼마나 날았을까. 가까스로 이성을 되찾았을 때는 이미 어둠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달빛 아래 드넓은 흙의 나라 영지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야속하리 만큼 아름다운 야경이었다.

 그곳은 젊은 영주가 다스리고 있는 평화로운 땅이었다. 서서히 전쟁의 바람이 불고 있다지만 나에겐 아무런 체감이 없었다. 성 안에 거처를 두고 좀처럼 밖으로 나가지 않는데다 하수인들의 시중을 받으며 지내니 그저 매일이 단조롭게 느껴질 뿐이었다.

 어느덧 성내의 생활에도 익숙해졌지만 솔직히 내 마음은 여전히 정든 아지트에 머물러 있다. 그곳에서 익숙하게 집안일을 하고, 멤버들을 기다린다. 오늘도 하릴없이 뒤뜰의 전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문득 바람을 타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

 거의 같은 순간 데이다라의 부름에 뒤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전통 복식이 낯설게 느껴지는 나와 달리 흙의 나라 출신답게 조금도 어색함이 없다. 정작 본인은 귀족나부랭이 같다며 싫어하지만 이제 앞으로는 옷가지 하나라도 아무렇게나 걸쳐선 안 된다. 성에서는 지켜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조례에 참석하는 일도 그 중에 하나다. 흙의 나라 영토가 원체 넓은데다 영주의 권력이 상상을 초월하다보니 한마디로 말해 국정과 다를 바 없다. 그런 영주의 신뢰를 받고 있기 때문에 바위마을에서도 잠자코 수배령을 거둘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영주의 신뢰는 데이다라를 지키는 방패가 되지만 주변의 질투를 유발해서 적을 만들기도 한다. 조례가 끝난 뒤 지친 얼굴이 되어 돌아올 때마다 오늘은 또 얼마나 시달렸을까─ 마음이 아프고, 가엾게 바라보지 않을 수가 없다.

 몸은 좀 어때. 데이다라가 습관처럼 내게 묻는다. 그렇잖아도 약해진 몸이니 찬바람을 쐬는 것은 좋지 않다고 도리어 나를 걱정하고 있음에 분명하다.

 "…아직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겠지. 낯선 곳에서 지내려니 이전의 생활이 그립기도 할 거야."

 듬직한 어깨에 머리를 기대자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내 어깨를 감싸 안은 팔에 약간의 힘이 들어가 있다.

 "하지만 . 부탁이니까, '불행하다'는 말은 아직 꺼내지 말아줘."

 불행이라는 단어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사람은 오히려 나다.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것도 사실이고 이전 생활이 그리운 것도 사실이지만 방금 전 내 모습이 데이다라에게 그런 식으로 보였던 걸까.

 뭐라 해도 내가 이만큼 잘 지내고 있는 것은 데이다라 덕분이다. 언제나 의지만 하면서 터무니없는 걱정까지 시키고 있다. 이제 시작일 뿐인데 불행하다니. 감히 그런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

 "우리 남편, 내가 얼마나 고마워하고 있는지 모르는구나. 오히려 몸 둘 바를 모르겠어. 커다란 집에- 예쁜 옷에-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빈둥거리기만 해서 민망할 정도인걸…"

 아지트에 있을 때 했던 가사일─ 청소, 빨래, 요리 등을 이곳에서는 전부 다른 사람이 대신 해준다. 청소는 워낙 비싼 물건이 많아서 자신 없지만 하다못해 빨래나 요리는 예전처럼 직접 하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리 가져갈 필요 없다고 말해도, 부탁을 해도 절대 안 된단다.

 오죽하면 남편의 속옷을 사수하기 위해 매일 숨겨 놓을 장소를 찾게 되었을까. 오늘 아침에는 뒤뜰에서 발각되어 하수인들과 뜻밖에 실랑이를 벌였다. 내 남편 팬티 내놓으라며. 결국 하나는 찢어지고 나머지는 빼앗겼다. 눈물이 찔끔 났다.

 이곳의 요리는 당연히 내가 만든 것보다 훌륭하다. 맛있게 먹는 남편을 보면 흐뭇하지만 한편으로는 서운하달까, 빈말이라도 한 번쯤은 예전에 먹던 음식이 그립다고 말해줬으면 하고 몇 번을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럼 웃는 얼굴을 보여줘. 이제 네가 내 전부인데 쓸쓸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면 불안해지잖냐. 음."

 위와 같은 몇 가지 경우만 제외하면 나는 현재의 생활에 아무런 불만이 없다. 불만을 갖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에 비해 웃음이 줄어든 것은 가슴 한구석이 뻥 뚫린 듯한 허전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데이다라야말로 다녀왔습니다의 키스하는 거 잊지 마. 피곤한 척하면서 은근히 넘어가려고 하지! 으음!"

 그의 말투를 따라하며 앙탈부리고는 스스로도 민망해서 얼굴을 붉혔다. 부끄럽지만 어쩔 수 없다. 실은 토비가 보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없으니까. 데이다라가 토비 얘기에 무서울 정도로 냉담한 반응을 보여서 이제는 안 된다는 걸 알았다.

 "능청스러워졌구나."

 예나 지금이나 데이다라는 내 속마음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 고개를 들면 무서운 눈빛을 하고 있을 것 같아서 우물쭈물하고 있으니 그런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기꺼이 키스를 해준다. 생각보다 부드러운 쾌감에 긴장이 스르르 풀려서 아이처럼 매달렸다.

 이제 나이가 서른이지만 어쨌거나 남편에게는 여전히 귀엽나 보다. 살짝궁 코웃음을 치더니 마음이 약해졌는지 '으응 그랬어' 하듯이 (…) 뺨과 귀에도 일부러 쪽 쪽 소리를 내며 애정을 보여준다. 그토록 꿈꾸었던 행복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을까. 비로소 실감이 나는 것 같다.

 "다녀왔어 여보."

 언제나 듣고 있는 말이지만 매번 달콤하게 들려온다. 아마 과거에 자신이 데이다라에게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기 때문일 것이다. 매일밤 잠드는 순간까지 그를 기다렸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듯 데이다라가 키스를 이어간다. 이마, 눈, 코, 입. 미안하다고 속삭이는 것 같아서 그나마 남아 있던 서운함도 눈녹듯 사라졌다.

 "어서와요 당신."

 지금의 기분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것으로 파란만장했던 일막이 끝났다는 느낌이다. 이제부터 이막의 시작이다. 과거와는 사뭇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 갈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생겨도 마지막에는 웃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이제 다시는… 그렇게 긴 시간을 기다리게 하지 않을게… 미안해……."

 "아니야… 약속 지켜줘서 고마워……."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지난날을 되돌아본다. 처음 만났을 때 10살, 프러포즈 받았을 때 12살, 남자로 의식하기 시작했을 때 14살, 애인이 되었을 때 19살… 아아, 내 사랑은 정말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얻어낸 것을 보라. 어리지, 잘생겼지, 능력 있지… 양심적으로 만세를 외쳐야 한다. 누가 봐도 인간 승리. 연상 승리다.

 훌륭한 저택의 풍경이 문득 시야에 들어온다. 넓은 만큼 빈공간이 많다. 내 가슴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그리움에 사무치기도 하고, 데이다라에게는 미안하지만 두 사람 뿐이라는 사실을 오롯이 기쁘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내가 마지막에 꿈꾸었던 가장 이상적인 미래─ 토비도 함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솔직히 말해 토비가 죽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아카츠키를 떠난 데이다라가 너무 매정하게 느껴졌다.

 "미안… 데이다라……."

 더는 안 되겠어. 위태로이 버티고 있던 마음의 댐이 무너지며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나온다. 웃다가 울다가, 이런 내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우스워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계속 외면한다고 상처는 낫지 않는다. 이대로 병이 되지 않을까 두렵다. 더는 어찌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바보처럼 울먹이며 아픔을 호소한다.

 "토비가… 보고 싶어……."

 애원하는 것도, 투정부리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호소해 봤자 침묵밖에 돌아오지 않는다. 데이다라로서는 차라리 웃어버리고 싶을 것이다. 여기까지 와서 한단 소리가 겨우 그거냐며 따지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힘없이 기대어 오는 나를 어찌할 수 있을까. 차마 밀어내지 못하고, 다그치지도 못하고, 그저 조용히 안아준다.

 "흑… 흑흑……."

 시간이 흐르면 무뎌지겠지. 오빠가 떠났을 때도 그랬다. 지금은 죽을 것 같아도 상처가 아물면 다시 아무렇지 않게 웃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 마음은 왜 잊으려 하지 않고 자꾸만 되새기려 하는 건지 모르겠다.

 "행복하게 해줄게… ……."

 데이다라가 부드럽게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는 동료를 잃는 것에 익숙하다. 아픔을 느끼지 못하도록 훈련되어 있다. 닌자 세계에서는 그렇게 냉정한 사람을 강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기분 탓일까. 평소와 다름없이 무덤덤한 목소리가 조금 떨리는 것 같다.

 "나도… 할 수 있어……."

 (…)

 토비 : …….

 데이다라 : 어이… 우치하…….

 토비 : 아직 나와 하고 싶은 얘기가 남은 거냐. 모처럼 비가 그쳤으니 맑게 개인 하늘을 조용히 감상하고 싶다만.

 데이다라 : 방금 그건 뭐였냐… 분명히 자폭했는데, 어떻게 내가 살아있는 거야… 하늘을 감상한다니 농담 집어치워… 너의 왼쪽 눈…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잖아…….

 토비 : 일족을 몰살시키고 빼앗은 눈이지. 그런 저주받은 것을 가지고 얼마나 빛을 바랄 수 있겠나. 악몽 같은 나의 세상에는 너 말고도 골치아픈 놈들이 수두룩하다.

 데이다라 : …….

 토비 : 이 까짓 눈, 과거에 내가 잃었던 것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냐. 우물쭈물하다가 남은 하나마저 결국 빼앗겨 버렸지만… 어쨌든 그 하나라도 지켜야겠어.

 데이다라 : 너는 최악의 리더다! 그런 너의 관용 따윈 고맙지 않아! 이대로 아지트에 돌아가서 를 데리고 도망칠 거야! 나중에 딴소리 하지 마! 음!

 토비 : 시끄럽다. 썩 사라지지 못할까.

 데이다라 : 젠장… 알았다고…….

 토비 : …….

 (그래, 꼬맹아.

 난 이미 늦었으니

 너라도 행복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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