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구름 한 점, 바람 한 점도 없던 어느 화창한 날. 영주와 관리들이 비장한 모습으로 출새길을 떠났다.

 인원이 많으면 체계가 복잡해지기 때문에 관리들은 최소한으로 편성되었다. 그 외에 의사와 요리사, 시중꾼 등이 따라왔고, 나머지는 모두 호위부대 가족들이었다.

 이마에 두른 머리띠를 보면 알 수 있다. 성 밖에서는 언제든 예상 밖의 일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에 영주님의 안전을 책임지는 그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남자들이 일하는 동안 아녀자들은 객잔에 머물거나 주변의 경치를 구경하면서 비교적 한가로운 시간을 보낸다. 물론 안전을 위해 어느정도 제약을 두긴 하지만 각자 한두 명 씩은 호위를 꼭 데리고 다녀서 대부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나도 절대로 혼자 돌아다니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겨우 허락 받아 남편을 따라나왔다. 문 밖으로 조용히 고개를 내밀어 보면 그의 부하들이 마당을 지키고 있다. 데이다라가 개인적으로 힘을 써서 데려온 호위부대 사람들이다.

 웬만해선 사람을 믿지 않는 데이다라의 결정이니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딱히 상관이 지켜보고 있지 않음에도 흐트러짐없이 자기들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단지 그 임무가 나를 감시하는 것이다보니. 내게는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좀 애매하다.

 "저기… 저 잠깐만 나갔다 와도 돼요?"

 "아까도 제게 같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저는 안 된다고 대답했고요."

 "바로 앞에 시장이 있어서요. 금방 돌아올 건데… 그래도 안 될까요?"

 "죄송합니다만, 부대장님 지시 없이는 문을 열어드릴 수 없습니다."

 "역시… 그렇겠죠…?"

 "자꾸 나오지 마시고 들어가 계십시오."

 "알겠어요……."

 다시 방으로 돌아와 힘없이 침대에 걸터앉았다. 여기까지 와서 한다는 게 결국 또 집보기란 말인가. 날이 저물기 전에 하다못해 장이라도 보고 싶었는데.

 호위병들에게 막혀 문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실정이니 체념하는 수밖에 없다. 저 사람들도 피곤할 텐데 계속 귀찮게 하면 미안하니까. 답답해도 참고 데이다라가 돌아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려야겠다.

 똑똑똑─.

 " 님, 잠시 괜찮으십니까."

 "네, 네. 들어오세요."

 "다름 아니라, 전서구 한 마리가 날아와서 말입니다.  님 앞으로 보내진 게 아닐런지요."

 "아아, 맞아요. 그거 제 남편… 데이다라가 보낸 거예요. 감사해요."

 호위부대 사람이니 평소에는 이마에 머리띠를 하고 있겠지만 오늘은 보이지 않고, 복장도 일반인과 같은 차림새다. 저쪽에서는 휴가를 내고 따라왔을 텐데, 이거… 인센티브는 받고 일하는 건지 모르겠다.

 어디 뭐 드릴 거라도 없나. 괜스레 주변을 휘휘 둘러보고는 머쓱하게 웃으며 편지를 받았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합니다."

 "?"

 "아까 날아왔던 전서구… 평소에 부대장님께서 사용하시는 새와 묘하게 달라 보였습니다."

 내가 직접 봤다면 단번에 구별했을 텐데. 뭐, 어차피 내 앞으로 편지를 보낼 사람이라고는 한 명밖에 없으니까 의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한창 바쁠 때 무슨 일로 보냈을까. 호위부대의 최종결정권자는 대장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부대장이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직접 지휘하는 역할이라 가장 고단한 사람이다.

 그러니 펼치는 순간부터 그다지 좋은 소식은 기대하지 않았다. 영주님께서 별장에 들어가시면 데이다라도 부하들에게 일을 맡기고 돌아올 수 있었는데 무슨 일인지 오늘 방문했던 곳에 계속 머물러 계시는 모양이다.

 대신, 내가 근처까지 와 준다면 잠깐이나마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우리 남편 정말 열심히 일하는구나. 가슴이 찡하면서도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데이다라가 편지에 적힌 곳으로 나오래요. 같이 가주실 거죠?"

 "그야 물론입니다. 하지만 정말 부대장님께서 보내신 게 맞습니까?"

 "예전부터 편지를 자주 써서 딱 보면 알아요. 그이의 필체와 똑같은걸요."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저희가 뒤따를 테니 가시지요."

 (…)

 ─────────.
 ───────.

 " 님, 뒤로 물러나십시오."

 "왜, 왜 그래요? 두 사람 다…"

 "이 자식들, 웬 놈들이냐!"

 갈대가 파도처럼 물결치는 들판을 상쾌하게 거닐고 있다가 갑자기 나를 따라오던 두 사람이 칼을 뽑아 들며 경계태세를 갖추어서 당황했다.

 갈대 속으로 빠르게 다가오는 저건 설마… 복병인가. 내가 놀라서 소리를 지르는 것보다도 먼저 눈부신 섬광과 함께 빨간 피가 솟구쳤다. 검은 복면을 쓴 남자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뒤로 고꾸라졌다. 혼자 왔다면 나는 이미 끝났을 것이다.

 한 사람은 바위마을 닌자 출신. 다른 한 사람은 일대의 명문으로 알려진 무사 집안 사람. 그들은 당황하는 기색 없이 달려드는 적을 쓰러뜨렸다. 수적으로 상당히 열세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단지 허리까지 자란 갈대밭 속에서 다가오는 적을 미리 알아차리고 나를 보호해야 한다는 너무나도 열악한 상황에 언제까지 버틸 수는 없었다.

 " 님!"

 "윽!"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뒤에서 덮쳐오는 적의 허리춤에서 재빠르게 수리검을 탈취했다. 허벅지와 어깨를 차례로 찔러서 무력화시킨 다음 발을 걸어 넘어뜨렸다. 나도 명색이 닌자인데 당하고 있을 쏘냐.

 그럴 수는 없… 젠장, 이런 상황과 마주하는 것도, 수리검을 손에 쥐는 것도, 예전 같았음 대수롭지 않았을 텐데. 그런 일들은 어느덧 '오래 전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방심해서 흉부에 타격을 입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의식이 흔들리며 머리가 멍해졌다. 아무리 뭐래도 내가 이 정도로 약하지는 않은데.

 젠장, 젠장. 어떻게든 해야 하는데. 데이다라… 나 어쩌면 좋지. 여기까지 와서 겨우 이런 놈들에게 당할 수는 없어. 당신 곁으로 가야─.

 (…)

 부하1 : 부대장님.

 데이다라 : 음?

 부하1 : 전서구가 날아왔습니다. 편지를 묶는 데 사용한 끈이 우리 부대의 것이기에 가져왔습니다.

 데이다라 : 아마도 내가 데려온 녀석들일 거다.

 데이다라 : (갑자기 웬 편지를… 내 지시 없이는 숙소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말라 했는데…….)

 데이다라 : (한 시간 전에… 약속 장소로…? 뭔 소리야, 난 그런 편지 보낸 적 없어…! 제길…!)

 데이다라 : (다행히… 여기서 멀지 않군…….)

 부하1 : 부대장님, 어디로 가십니까? 제가 따르겠습니다.

 데이다라 : 따라올 거 없어. 그리고 개인적인 일이니까 대장에게 보고하지 마라.

 부하1 : 개인적인 일이라 하시면 어떤… 아시다시피 지금 부대를 이탈하는 건…

 데이다라 : 규칙을 어기는 일이지. 혹시라도 사단이 나면 잘 부탁한다.

 부하1 : 부탁한다니요, 잠시만요, 부대장님! 이리 가시면 저희는 어떡합니까!

 데이다라 : (규칙은 얼어죽을…)

 데이다라 : (그냥 죄다 뒈져 버리라 그래.)

 데이다라 : 개자식 같으니.

 데이다라 : 이딴 건 필요없어.

 휙─.

 부하2 : 야, 너 무얼 넋 놓고 있는 거야? 손에 든 건 뭐고?

 부하1 : 어… 이거… 부대장님 머리띠인데… 방금 아내 분께 편지를 받으시고는 벗어던지고 가셨어…….

 부하2 : 으악, 거짓말이지! 환장하겠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 거야! 이럴 때까지 애처가가 되는 건 좀 아니잖아요오오옷!!!

 부하1 : (데이다라 흉내)이딴 건 필요없어. 크으-. 매번 느끼는 건데 말이야. 우리 입장에서는 골치아프고 눈꼴시렵기도 하지만 솔직히 좀 멋있어… 우리 부대장님…….

 부하2 : 얘는 또 뭐래?!!! 대장께서 아시면 큰일이니까 뭐라고 둘러대야 할지나 궁리해 이 멍청아!!! 아오!!!!!!

 (…)

 "아아아앗!!!"

 "무슨 일입니까!!!"

 "펜던트가… 내 펜던트가 없어요! 아까 떨어뜨렸나봐요! 아아… 어쩜 좋아. 데이다라가 선물해 준 건데."

 "펜던ㅌ… 하아… 놀랐잖습니까. 상황이 상황인 만큼 별 것 아닌 일로 갑자기 비명 지르지 말아 주십시오."

 나한테는 별 거 아닌 게 아니거든요. 힝… 그야, 평범한 장신구 하나 잃어버린 거라면 가볍게 넘길 수 있겠지. 정체 모를 나쁜 놈들에 의해 갇혀 버린 상황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데이다라에게 선물 받은 점토새는 그런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의 물건이다. 그리고 웬만하면 피하고 싶은 일이지만 여차할 때는 폭발시켜서 위기를 극복할 수도 있다.

 가령, 저 문에 던져서 문고리를 부순다면 탈출이 가능하다. 거기에 데이다라에게 우리의 위치를 알리는 건 덤이다. 기폭점토가 하나만 있었어도 어렵지 않은 일이건만.

 "저기… 뭐라고 불러야 할지… 호위병 1씨랑… 호위병 2씨…?"

 "소우타입니다. 호위병 1씨라니요."

 "다이키라고 합니다. 급하다고 아무렇게나 번호를 붙이지 말아 주십시오."

 "미, 미안해요… 근데 이러는 이유가 있어요. 펜던트로 저 문을 열 수 있거든요. 떨어뜨리지만 않았어도."

 두 사람의 표정이 내 말을 듣고 묘하게 변했다. 잠시 침묵이 맴돌고. 바위마을이 고향이자 한때 닌자이기도 했던 소우타 씨가 옷에 감추어져 있던 끈을 잡아 꺼냈다.

 "말씀하시는 펜던트가 혹시 이런 것입니까?"

 거리가 있어서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보았다. 사람의 한쪽 팔과 새의 한쪽 날개를 동시에 하늘로 뻗고 있는 모형이었다.

 "저것이라면 저도 가지고 있습니다."

 다이키 씨가 가진 것도 같은 모형이고 방향만 반대로 되어 있었다.

 "두 사람이 어떻게 그걸…"

 "데이다라 님께 받았지요.  님의 호위를 부탁하시면서 하나씩 주셨습니다."

 "말씀드리자면 부끄럽습니다만, 부대 안에서 저희를 가장 신뢰하신다고… 으흠, 아무튼 그 증표입니다.  님께 보여드리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만 잊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데이다라를 이방인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호위부대 안에서도 없지 않았다.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두 사람에게서는 그런 것과 상관 없이 자신의 상관을 진심으로 따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애당초 데이다라가 신뢰하는 사람들이라면 거기서 얘기는 끝난 셈이다. 멤버들에게도 하지 않던 선물은 예상 밖이었지만… 데이다라도 현재의 생활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나름대로 애쓰고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자신이 곁에 있어줄 수 없을 때 내 안전을 믿고 맡길 수 있는 동료가 필요했겠지. 지금은 애틋함을 느끼고 있을 때가 아닌데. 남편의 헌신을 느낄 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소우타 씨, 다이키 씨. 그거 어떻게 폭발시키는지 모르죠?"

 "폭발이라니… 설마, 그냥 점토가 아니었습니까? 데이다라 님!!! 어째서 저에게 이런 위험한 물건을!!!"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님, 어떻게 하면 폭발시킬 수 있습니까? 불을 붙이면 됩니까?"

 "평범한 폭발물과 달라요. 내가 할 수 있으니까 이리 던져 봐요."

 겉으로 보기에는 휙 하고 펑 터지는 것처럼 간단해 보이지만 그렇게 아무나 터뜨릴 수 있는 거였다면 무기로 쓰지 못했을 것이다. 섣불리 꺼냈다가 자기가 당할지도 모르는데 애초에 말이 안 된다.

 폭둔 소유자가 아닌 이상 기폭점토를 사용하려면 화둔과 토둔을 적절히 써야 하는데 보통 중급 정도의 실력을 가진 사람이 한 개의 성질을 습득하는 것으로 그친다는 걸 생각하면 알 수 있다.

 챠크라 운용에도 폭둔 고유의 흐름을 교묘하게 베껴야 하기 때문에 나처럼 오랫동안 꾸준히 연습하지 않는 이상 어림도 없는 일이다.

 " 님… 괜찮을까요? 저희 쪽에 좀 가까운 것 같은데요."

 "나를 믿어요. 괜찮을 테니까."

 아마도요. -라는 마지막 한 마디는 애써 삼켰다. 문고리에 펜던트를 걸어 끈으로 단단히 고정시킨 다음 두 사람과 최대한 뒤로 물러났다. 장소가 워낙 좁은 터라 절대로 휘말리지 않을 거라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일단 빠져나가고 봐야 한다.

 두 손을 모아 챠크라를 집중했다. 이래서 평소에 자신이 닌자라는 사실을 숨길 필요가 있는 거다. 적들도 내가 챠크라를 쓸 줄 안다는 걸 몰랐겠지.

 무기는 죄다 뺏어 갔으면서 펜던트는 놔둔 것부터가 폭발할 거라는 생각을 아무도 못했다는 얘기다. 내 남편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언제나 함께란 말씀.

"자, 자, 잠깐만요!!!  님!!!"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악!!!!!!"

 (…)

 ??? : 영주가 갑자기 계획을 바꾸어 떠나지 않고 있어. 필경 나를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노인 : 염려 마십시오 원수님! 제가! 어떻게든 이 한 몸 희생해서! 지금 우리를 들쑤시고 다니는 괘씸한 놈들을! 막아보겠습니…

 데이다라 : 이런, 여기 어르신께서 비리를 덮느라 한창 바쁘신 줄 몰랐네. 눈치없이 찾아와서 미안하게 됐어. 음.

 노인 : 다, 당신은 누굽니까! 누구길래 함부로 들어와서 대화를 엿듣… 흠흠! 비리라니! 어디서 그런 근거 없는 막말을 하는 거요!

 데이다라 : 나, 반년 전까지 바위마을 수배자 명단 맨 위에 이름이 적혀 있던 놈이야. 암거래, 폭력, 살인, 테러… 뭐 그런 죄목으로. 대충 알아들었으면 영감은 꺼져.

 노인 : 죄, 죄송합니다…;;;(후다닥)

 ??? : …….

 데이다라 : 자신 깨나 있는 것처럼 말하더니. 이제 보니 발등에 불이 떨어지셨구만.

 ??? : 역시 네놈이 입김을 불어넣었구나.

 데이다라 : 옛정을 생각해서 최소한 젠틀하게 보내주려고 했지. 이제 생각이 바뀌었어.

 스르릉─.

 ??? : 너에게는 나를 죽일 명분이 없다. 내가 독을 먹였단 증거도, 자객을 보냈단 증거도 없지 않으냐.

 터벅터벅─.

 소우타 : 증거는 없지만 증인이라면 있습니다.

 다이키 : 원수님께서 저희를 너무 만만하게 보셨군요.

 데이다라 : 어차피 그동안 모은 재산은 다 털릴 예정이고. 내 마누라 약값이랑 네 목숨만 받아 가마.

 ??? : 이건 불공평해. 네놈에 비하면 내 잘못은 아주 작은 것이야!

 데이다라 : 그러니까 어설프게 악당 흉내를 내지 말았어야지. 그동안 내게 묻고 싶었을 거다. 네 가족은 내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았는데 왜 죽어야만 했는지. 당연히 이유 따윈 없어. 그냥 네가 하려던 것처럼 내 복수에 이용해먹은 것뿐이야.

 푸슈우우욱─.

 ??? : 윽… 역시… 그랬군… 아무 의미도 없었어…….

 데이다라 :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불안에 떨고 있지. 언제 또 너 같은 놈이 나타날까. 내 여자 건드릴까. 얼마나 끔찍한지 모를 거다.)

 ??? : 차라리 잘 됐어… 의미 없다는 말은… 이제… 지긋지긋해…….

 데이다라 : …….

 ??? : 먼저 간다… 악마 자식아…….

 ??? : 널 한 번이라도… 이기고 싶었는데…….

 ??? : 오오노키 님… 왜… 그리 쉽게… 놓아 주셨습니까…….

 털썩─.

 (…)

 소우타 : 아아-. 오늘도 한 건 했네. 부대장님을 따라다니면 재밌는 일이 벌어진다니까.

 다이키 : 넌 이게 재밌냐? 나는 아까부터 오한이 서려서… 어휴, 등에 식은땀이 난다.

 소우타 : 왜 그래?

 다이키 : 부대장님에 대한 소문. 너도 들었을 거 아냐? 바위마을의 지인에게 물어봤다가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듣게 됐어. 여기 원수도… 죄가 있긴 하지만 죽일 필요까지는 없었잖아. 우리를 감금한 건 그렇다 쳐도 정말 죽이려고 했었는지는 의문이야. 그런데도 부대장님께서는 일말의 주저도 없이 원수의 배에 칼을 쑤셔넣으셨어. 뭐랄까, 마치… 후환을 미리 없애려는 것처럼 행동하셨다고.

 소우타 : 내 와이프가 목숨을 위협받고 있는데. 한 번도 아니고 말야. 너 같으면 가만히 있겠냐? 원수 정도의 위치면 파직으로 끝나서 언제 복귀할지 몰라. 이번에는 감금. 협박. 다음에는 뭔데? 홧김에 정말 죽일 수도 있잖아. 이번 일을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나는 부대장님 심정을 이해해. 모처럼 펜던트도 받았으니까 어떤 명령이든 따를 거야. 아아… 폭발해 버려서 아깝다. 말씀드리면 또 만들어 주시려나?

 다이키 : 펜던트! 그게 제일 소름돋는 부분이야! 아직도 모르겠냐 아니면 모른척하는 거냐? 오늘처럼 여유가 있다면야, 점토만 폭발시켜서 끝낼 수 있겠지. 부대장님께서 우리 목에 이걸 걸어 주신 이유를 잘 생각해봐. 왜  님께 보여드리라고 하셨을까? (속닥)여차하면… 너랑 나 둘 중 하나는 그냥 폭탄 셔틀이 되는 거야. 내가 보기에 부대장님께서는 그런 생각을 하고도 남으셔.

 소우타 : 그래, 그래, 잘 들었어. 너는 이제 부대장님을 따르지 않겠다 이 말이지? 모처럼 파트너가 되어서 아쉽지만 이쯤에서 각자의 길을 가자. 이 겁쟁이 놈아!

 다이키 : 누구더러 겁쟁이래? 사람 말을 끝까지 들어! 나는 이래 봬도… 포부가 있는 남자야! 원수에게 개처럼 꼬리 흔들면서 빌어먹는 늙은이가 될 바에야 일찍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게 낫지! 여기까지 와서 숨죽이고 사는 건, 그건, 남자도 아니야! 흠흠!;;;

 소우타 : 혹시 알아, 나중에 마을로 복귀하셔서 덜컥 츠치카게가 되어 버리실지. 그때는 우리도 따라가서 대의에 합류하자고.

 다이키 : 꿈도 야무지다. 아무리 뭐래도 츠치카게까지야… 앞으로  님을 어떻게 호위하면 좋을지나 생각해. 아무 말씀도 안 하고 계신다고 우리의 실수가 부대장님 머릿속에서 지워진 건 아니니까. 다음에는 그냥 안 넘어갈지도 몰라.

 (…)

 그로부터 얼마 뒤에 영주는 관리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출새를 미루기로 결정하고 성으로 돌아왔다. 단순한 비리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자객이 등판했다는 점에서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관리들에게는 이번 일이 영주의 신변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여졌다.

 그리고 해당 원수에 대해서는 '자신의 비리가 밝혀질까 두려워 협작을 벌이다 도리어 화를 당했다'고 결론이 났다. 그의 죽음에는 의문점이 있었지만 듣기로는 나를 호위했던 두 사람의 증언으로 영주도 이내 납득했다고 한다.

 과연 무릉도원 같은 경치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일까. 구경은 커녕 객잔에만 갇혀 있다 왔으니 여전히 아쉬움이 남아 있다. 하지만 이대로 끝이 아니다.

 출새 일정이 새로 잡히면 데이다라를 다시 설득해서… 아니, 그건 좀 어려우려나. 불미스런 일이 연달아 일어나며 속이 까맣게 타들어갔을 남편에게 자꾸만 근심을 떠안겨 주는 꼴이 되어 버리니 이제는 스스로도 조금 망설여진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집에만 갇혀 지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역시, 평소부터 조금은 단련을 해두는 편이 좋으려나. 지난번의 사건을 계기로 절실히 느꼈다. 앞으로 같은 일을 겪지 않으려면 적어도 나 자신을 지킬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길러야 한다고.

 뭐라 말해도 남편의 곁으로 무사히 돌아온 게 천만다행이다. 만약 그러지 못했다면…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하고 어안이 벙벙했는데 이제서야 분명하게 실감이 난다. 무사평안. 그보다 중요한 게 또 있을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목에 걸고 있는 펜던트가 손끝에 닿는다. 다행히 데이다라가 찾아 줬다. 마루에 걸터앉아서 소중히 쓰다듬고 있노라면 따뜻하고 포근한 품이 나를 감싸왔다.

 "여보야, 그거 타고 날아가려고?"

 "네."

 "잡히면 혼난다."

 "……."

 쳇-. 그야 내 애조는 소인술 전용으로 작게 만들어졌으니까. 아무리 빠르게 날아봤자 보통 크기의 점토새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일 거다.

 하지만… 가만 있자. 생각해보면 데이다라와 하늘에서 나잡아봐라 같은 건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어떨까나. 어떠긴 어때. 상상만으로 좋아 죽겠네.

 혼날 걸 각오하고 한 번 도망쳐 볼까. 한다고 해도 초원으로 나가야겠지. 후후후. ─그보다 슬슬 애교 장전하고 조르기를 시전할 타이밍이다. 누나로서는 조금 부끄럽지만 하는 수 없지.

 "다음 출새 때 나도 데려갈 거예요?"

 "당신이 이렇게 원하는데 들어 줘야지 별 수 있나. 집에 혼자 두는 건 그것대로 걱정이니까… 같이 가."

 단단히 만류할 거라는 생각에 별로 기대는 하지 않았다. 오늘은 사랑의 밥상도 없었고 그냥 어색하게 혀짧은 소리 한 번 냈을 뿐인데 어쩐 일인지 데이다라의 방어가 평소보다 한참 약하게 느껴진다. 진짜 날아갈까봐 그러나.

 당연히 농담으로 들었겠지만, 아… 어떡해. 슬쩍 뒤돌아보니 웃고는 있어도 얼굴에 고단한 기색이 역력하다.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으면. 미안한 마음에 다정하게 키스하고 뺨을 어루만졌다.

 당연한 얘기지만 내가 따라가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경치 구경 따위가 아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떨어지고 싶지 않아서다.

 "그때 나를 호위해 줬던 두 사람은 다음에도 함께하는 거지?"

 "당신이 괜찮다면 그럴 생각이야. 우리 부대에 여자대원이 없어서 참 아쉽네. 그치?"

 "응."

 아카츠키에 있을 때 정보수집꾼들이 대부분 여자였던 반면 호위부대에는 아래나 위나 남자들만 가득하다. 무인들이다보니 그냥 남자도 아니고 상남자들이다. 한마디로 나는 질투 안 해도 되니까 마음이 편하다. 이따금씩 눈호강을 하는 건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소우타 씨 꽃미남이더라… 다이키 씨는 몸이 막 이러고…"

 "우리 여보 하고 싶은 거 다 해. 멋있는 남자 구경하는 것 정도는 봐줄게. 대신 엉뚱한 생각 하면 안 된다?"

 "헤헤헤…////"

 "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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