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에게는 여러 명의 자제가 있는데 그 중 막내 딸이 올해로 다섯 번째 생일을 맞았다. 영주는 매일 정사로 바쁜 와중에도 남다른 자식사랑을 보여주는 아버지로서 예전부터 영지 안팎으로 유명했다.

 금지옥엽의 탄생일인 만큼 전례에 없는 커다란 생일잔치가 열렸다. 거의 한 달 전부터 연회를 준비하느라 모두 분주했고 데이다라 역시 호위에 만전을 기하느라 집에 들어오지 못할 만큼 바빴다. 오늘이 지나면 다시 여유로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두 사람이 성에 살기 시작한 이래 연회가 열린 것은 처음이다. 어느 때보다 많은 인파가 모였고 사람들 앞에서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아직까지는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미 어느정도는 분위기 파악이 되었다. 아녀자들은 영주일가에 인사를 올린 뒤 별도로 준비된 작은 연회장으로 물러나서 비교적 자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터벅터벅─.

 웬만하면 마시지 않으려 했건만. 분위기에 휩쓸려 잔뜩 마셔버렸다. 무슨 생각으로 권하는 술을 다 받았는지, 취기에 달아오른 두 뺨이 좀처럼 식을 줄 모른다.

 아직 연회가 한창이라 등불이 켜진 밤의 정원에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니 시원한 밤공기와 향기로운 꽃내음이 가슴 속으로 들어와 조금은 상쾌해지는 기분이 든다.

 조용히 앉아 있다가 나올 생각이었는데. 나는 이제 막 영지에서의 생활을 시작한 신참이면서 뜻밖에 주목을 받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아니라 내 남편이. 영주의 강력한 의사로 성에 불려온 것부터 단숨에 부대장이라는 자리에 앉게 된 것까지, 무엇보다 소문이 무성한 그의 과거 행적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로부터 자연스레 이목을 끌게 된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남편의 인기가 지금보다 더 많아지면 어쩌나 하고 실없는 고민을 하면서 근처의 화단 앞에 웅크려 앉았다. 처음 보는 신기한 꽃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특별한 향은 없지만 이색적인 외형이 다른 어떤 꽃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그거, 만지면 안 됩니다."

 무언가에 홀린 듯 손을 뻗었다. 그리고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멈추었다. 성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전통옷을 걸친 남자가 여남은 거리에 서 있었다. 건장한 체격의 그는 얼굴이 조금 험악하지만 몸의 균형에 무게가 실려 있어 무인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사람을 매료시킬 만한 아름다움은 으레 독을 품고 있기 마련이지요. 만지기만 해도 살갗이 부어오를 겁니다."

 "아,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저는 흙의 나라 국경을 지키는 자로서 평소에는 영지 외곽에서 군사정비를 맡고 있습니다. 성에 들어온 것은 오랜만인데, 이런 분위기에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군요. 저와 같은 무인에게 정치니 행정이니… 그런 골치아픈 얘기들은 너무 어렵습니다. 그저 아무도 없는 초원에서 말을 타고 달리는 것이 제일이죠."

 "영지 외곽의 초원이라면 저도 이야기를 들었어요. 경치가 굉장히 아름다워서 마치 무릉도원에 있는 듯하다고요."

 "가끔 그렇게 말하며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국경에 살다보면 늘 치안을 걱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곳이야 일년 내내 정예병들로부터 철통 같은 보호를 받으니 평화가 끊이질 않겠지만, 그렇지 못한 곳에서는 저 같은 미천한 무인이라도 나서서 사람들을 지켜야 하지요."

 남자는 술병을 쥐고 근처의 바위에 걸터앉았다. 성에 살고 있어도 아무런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 외침이 있을지 모르는 국경의 사람들에게는 한가로운 이야기로 들릴 것이다. 평화에 안주해서 아름다운 경치밖에 떠올릴 수 없었던 자신이 조금 부끄러웠다.

 "…남편께서는 이곳의 환경에 잘 적응하셨는지 모르겠군요. 뭐, 어려서부터 워낙 뛰어나셨던 분이니 저 같은 놈이 얘기해 봤자라고 생각은 합니다만."

 "제 남편을 아시나요?"

 "저는 원래 바위마을의 닌자였습니다. 한때 그와 같이 아카데미에서 수학을 했었지요."

 그렇다는 건 데이다라의 또래라는 얘기인데. 묘한 아재 감성이 느껴진달까, 점잖은 말투 때문에 처음에는 나와 비슷하거나 조금 어린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아카데미를 졸업해 정식으로 닌자가 되었지만 얼마 전 닌자세계에 회의감을 느껴 마을을 떠났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들을─ 지난 날을 회상하며─ 그는 허심탄회하게 이어나갔다.

 "정말이요?"

 "그렇다니까요. 저는 매년 수석을 놓쳐 2등 취급을 받아야 했습니다. 바로 당신의 남편 때문에요. 게다가 상대는 츠치카게 님의 제자가 되어서 사실상 후임자로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부모님께서 제게 건 기대가 크셨는데… 실망을 안겨 드렸지요. 지금 생각하면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그때는 어찌나 분하던지… 하하하, 제가 너무 말이 많았군요."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굉장히 즐거웠어요. 저는 남편의 유년기에 대해 잘 모르거든요. 과거에 대해 별로 이야기하지 않아서…"

 그러니까 얘기해 주셔서 감사해요. -라고 말하려는 찰나, 내가 잘못 본 건지도 모르지만, 남자가 냉소를 지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에게 자신의 과오를 이야기하고 싶은 남자가 어딨겠습니까."

 "……."

 "알고도 같이 사는 거라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만.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술이나 한 잔 나누지요."

 "아니요, 저는…"

 "뭣하면 이야기를 들려준 것에 대한 답례로 성의를 보인다 생각하십시오."

 "네……."

 술이라면 이미 질릴 정도로 마셔서 냄새만 맡아도 눈썹이 찌푸려졌지만. 하는 수 없이 잔을 받아들고 입안에 털어넣었다. 과연, 아녀자들이 가볍게 즐기는 술과 무인이 선택한 술은 달랐다. 식도부터 목구멍까지 순식간에 불길이 번져 나갔다. 괴로웠지만 겉으로 티가 나면 실례일 것 같아 입을 가렸다.

 "마을을 떠나오셔서 가족이 그립지는 않으세요? 가끔은 찾아가서… 케헥!"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갔을 겁니다. 그리워할 가족이 아직 남아 있다면요."

 "무슨 말씀이신지… 케헥, 케헥!"

 "가족 말입니다. 지금은 아무도 없습니다. 불과 반년 전만 해도 S급 수배자의 명단에 올라 있었던… 당신의 남편에 의해 전부 죽었거든요. 그랬던 그가 어느 날 손을 깨끗이 씻고 홀연히 나타났습니다. 자신이 그토록 혐오했던 권력… 영주님의 최측근이 되어서.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 아닙니까? 원래라면 사형 판결을 받아도 모자랄 범죄자가 하루아침에 일반인과 같은 신분이 되다니요! 닌자마을의 통수권자인 츠치카게마저 영주의 명령 하나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굴복해버리는 모습을… 도저히 지켜볼 수 없었습니다……."

 나는 남자의 마지막 말에서 그의 뼈저린 고통을 느꼈다. 독주를 마시는 것보다 뜨겁게 타오르는 분노, 권력을 향한 원망, 슬픈 체념까지… 남자에게 받은 술이, 참을 수 없는 통증이, 내 가슴속에서 부단히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 아픈데, 당신은 어떻냐고.

 "저는…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날의 일……."

 독주가 내 몸을 가차없이 찢어발기며 비릿한 선혈과 함께 목구멍으로 솟구쳐 나왔다. 숨을 쉬지 못하고 괴로움에 몸부림치다 쓰러졌다. 달빛이 남자의 얼굴을 흐릿하게 비추었다. 그는 쓰러진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 모습으로 말했다.

 "그도 마찬가지일지 궁금하군요."

 (…)

 영주 : 다들 이리 모여서 축하해 주니 이보다 기쁜 일은 있을 수 없소. 유약한 나를 그대들이 지지해준 덕분에 이 땅은 이전과 같이 평화롭고, 어리숙한 나의 치세도 빠르게 안정되어 가고 있소. 오늘 이 자리는 비단 내 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오. 나라를 위해 뼈와 살을 아낌없이 내어주고 있는 그대들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한 자리이기도 하니, 오늘 하루는 부디 모든 근심을 내려놓고 이와 같은 평화를 마음 편히 누리길 바라오. 자, 모두 잔을 들게나!

 북적북적─.

 영주 : 데이다라, 자네가 온 뒤로 벌써부터 성 안이 떠들썩하더군. 자네를 곁에 두고자 했을 때 이리저리 말이 많았지만 결국 내 뜻이 옳았네. 오오노키가 진작에 인재를 알아본 것이지. 자네는 얼굴만 잘생긴 게 아니라 일처리도 확실하더군!

 데이다라 : 과찬이십니다.

 영주 : 아니, 내 찬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네! 내 딸이 말이야, 글쎄, 녀석을 처음 안아본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여인이 되려는가 보네. 다짜고짜 이 아비를 찾아와서 마음에 드는 사내가 있다 말하더니, 그대와 결혼을 하겠다며 고집을 부리는 게 아닌가! 하하하!

 데이다라 : …….

 영주 : 그리 심각한 표정 짓지 말게. 자네가 내 사위가 된다면 더할나위없겠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자네에게 만큼은 내 딸을 보내지 않을 것일세. 왜냐면 자네는 이 성에서 제일가는 애처가로 소문이 자자하질 않은가. 어느 아비가 그런 자에게 딸을 보내 마음고생을 시키겠냔 말이야. 안 그런가?

 사람들 : 하하하하하,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데이다라 : …부끄럽습니다.

 북적북적─.

 호위병 : (소곤)데이다라 님, 잠시 괜찮으시겠습니까.

 데이다라 : 무슨 일이야?

 호위병 : 그게… 아무래도, 아내 분께 변고가 생긴 듯합니다. 지금 서둘러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데이다라 : 뭐…?

 (…)

 ??? : 어딜 그리 급히 가시는지요?

 데이다라 : 아내의 몸상태가 좋지 않다고 들어서 잠시 다녀오려 합니다.

 ??? : 아직 연회가 한창인데도 말입니까? 이거 참, 놀랍군요. 영주님의 최측근이라 불리는 호위부대의 높으신 분께서 주군의 곁을 지키는 것보다 사족의 안녕을 우선시하다니. 같은 무인으로서, 신하로서… 그러한 결정에 심히 염려가 됩니다.

 데이다라 : 할 말이 더 없으시다면 가겠습니다.

 터벅터벅─.

 ??? : …걱정 마라, 죽을 정도는 아니니까.

 데이다라 : (멈칫)

 ??? : 놀라 허둥거리는 모습이 퍽이나 우습구나, 데이다라.

 데이다라 : 무슨 수작이냐.

 ??? : 인간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너에게 상기시켜 준 것뿐이다. 이제 좀 기억이 나느냐? 네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냐. 아카츠키 같은 범죄집단이야말로 너에게 딱 어울리지. 그러니… 다시 그 지옥으로 썩 꺼져. 흉악한 악마 자식아.

 데이다라 :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지 마라. 이런 식으로 나를 도발한 것… 후회하게 될 거다.

 ??? : 하늘이 나를 완전히 져버리지는 않은 모양이구나. 내 얼굴도 못 알아보기에 옛 일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사는가 했더니, 새카만 속내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어. 너 같은 놈에게 진심으로 참회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보다 불공평한 일이 또 있겠느냐.

 데이다라 : …….

 ??? : 후회-? 그래, 영주님께서 너를 신뢰하고 계시니 이번 일을 고발한다면 나를 끌어내리는 건 시간 문제겠지. 좋을대로 해라. 나는 지난 수년 간 네 놈의 행방을 쫓아다녔다. 범죄자인 네놈에게 걸맞는 처벌을 안겨 주겠다는 일념으로 말이야. 안타깝게도 너를 감옥에 쳐넣을 기회는 놓치고 말았지만, 오히려 잘 됐어. 내가 받은 고통… 너에게 그대로 되갚아 주겠다.

 데이다라 : 어리석은 놈. 가족을 잃고 절망했다 한들 온실초처럼 살아온 너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거다. 진짜 지옥이 뭔지… 네 말대로 나는 달라지지 않았어. 지옥에서는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기 때문이지. 정 복수를 해야겠다면 나를 죽여도 좋고, 팔 다리를 부러뜨려 불구로 만들어도 좋아. 하지만 내 아내… 죄없는 여자에게 똑같은 고통을 안겨주고서 너는 구원받을 수 있을 거라 믿는 거냐. 결국 너도 하늘로부터 외면받을 거다.

 ??? : 내가 그딴 일을 두려워할 것 같아?

 데이다라 : 네 말대로 나는 악마니까. 적어도 내 말을 그냥 흘려들을 수는 없겠지. 잘 생각해 봐라. 복수하겠다고 길길이 날뛰는 놈들, 죽을 기세로 덤벼드는 놈들, 내 여자를 함부로 건드리고 협박하는 놈들… 너보다 더한 녀석들이 셀 수 없이 많았어. 그렇게 여기까지 온 거야. 방해가 되는 것들을 전부 개밥으로 던져 주고 나서 말이야.

 ??? : …….

 데이다라 : 뜻밖의 반응이라 얼이 빠진 모양이군. 그대로 되갚아 주겠다고 협박하면 내가 눈 하나 깜짝할 줄 알았냐? 이미 잃은 건 고사하고 아직 목숨 부지하고 있는 네 수족들이나 잘 간수해. 나는 아내를 잃고 미쳐버리면 그만이지만, 너는, 다르잖아? 안 그래?

 (…)

 처음 영지에 도착했을 때 데이다라가 말했다. 누군가와 친해져서 한가로이 차를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울 수는 있지만 마음을 열어 주어서는 안 된다고. 자기 외에 누구도 믿지 말라고.

 그랬는데 처음 보는 남자에게 받은 술이 독주였다니.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하다. 독이 퍼져 전신이 타들어가는 것처럼 아프다. 괴로워하며 눈을 떠보니 집이었다.

 누군가 정원에 혼자 쓰러져 있는 나를 집으로 데려온 모양이다. 지금쯤 연회장에 있어야 할 데이다라의 얼굴이 보인다. 머리카락이 하얗게 센 의원과 마주앉아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어떻습니까?"

 "생명에 지장이 없는 미량의 독입니다. 일부러 독을 준비할 정도면 치사량 정도는 알고 있었을 텐데, 어떤 불한당인지 몰라도 간은 크지 않나 보군요. 영주님께서 친히 연회를 베푸시는 날 이런 불미스런 일을 계획하다니, 꼭 범인을 찾아 벌해 주십시오."

 "갑작스런 연락에 급히 달려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땅히 제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허면, 저는 이만 가보지요."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공손한 태도로 의원을 집 밖까지 배웅한 뒤 돌아온 데이다라가 내게 다가와 앉는다. 어째서 자기가 잘못한 것마냥 무릎을 꿇고 앉는 것일까. 죄인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는 그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목이 메어서 하지 못했다.

 "데이다라… 이제 그만 영주님께 돌아가야지……."

 "……."

 망부석이라도 된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럼 그렇지, 애처가 부대장께서 어련하시겠어. 기쁘지만 이럴 때는 조금 답답하달까,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상심한 남편을 달래기 위해 부득불 일어나려 하니 비로소 고개를 들고 나를 부축한다. 독을 마신 건 나인데 어쩐지 나보다 더 고단한 얼굴이다.

 범인의 의도는 짐작이 가지만, 역시… 우리 남편, 가슴이 아파서 더는 지켜볼 자신이 없다. 사실대로 말하는 건 그만두자. 내가 앞으로 조심할게. 그러니까 슬퍼하지 말고, 미안해하지도 마.

 "나는… 그런… 나쁜 놈들… 하나도 안 무서워… 이대로… 앞으로도 쭉… 사랑하는 내 남편이랑… 웃으면서… 행복하게 살 거야……."

 "여보……."

 "내가… 겨우 이런… 허접한 독 따위에… 당할까 보냐… 누구 동생인데… 어림도 없지… 순진한 인간, 나를 악당에게 붙잡힌 가련한 여자 정도로 생각했나 보지…? 후후후… 내가 좋아서 곁에 있는 거야… 내… 내가… 지… 지옥의… 안주인이닷…!!!"

 씩씩하게 외치고는 곡소리를 내며 다시 쓰러졌다.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은 다 했으니 됐다. 눈시울이 붉어진 남편에게 실소를 터뜨리게 했다.

 그거면 된 거다. 테러리스트의 동생으로, 누나로, 애인으로, 친구로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몇 번이나 죽을 위기에 처했다. 나도, 이런 나라도, 그렇게 여기까지 온 거다. 이제 와서 죄책감 따위 느낄까 보냐. 까짓거 평생 안고 살아가 주지.

 누가 천사를 원한대?

 나는 악마라도 상관없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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