쏴아아아아-.

 제츠 : (흑)어쨌든 지금까지의 정황은 이렇다. 일단 너는 그렇게 알고 여기서 대기하고 있어라. 지금 카쿠즈와 히단이 이쪽으로 오고 있으니, 도착하면 그 양팔에 대한 처치를 해줄 거다.

 데이다라 : 잠깐, 제츠.

 제츠 : ?

 데이다라 : 귀찮게 해서 미안하다만, 나 대신 글을 좀 적어줄 수 있겠냐, 음?

 제츠 : (백)글이라니, 무슨?

 데이다라 : 에게 보낼 편지. 그 동안 경황이 없어서 아무런 소식도 전하지 못했는데, 그러다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 버렸어. 지금쯤 상당히 걱정하고 있을 거다. 일단 우리 둘 다… 무사하다고 전해두지 않으면…….

 제츠 : (흑)녀석은 사소리가 죽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내가 가르쳐줬거든.

 데이다라 : 뭐? 어, 어째서 말해 버린 거냐!

 제츠 : (백)그치만 끈질기게 물어보는걸. (흑)말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적 없잖아?

 데이다라 : 너… 너, 이 새끼!

 제츠 : (흑)어차피 곧 알게 될 것을 덮어두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데이다라 : 아무도 없는 아지트에 혼자 남아서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할 것 같냐! 허튼 짓이라도 하려고 하면 어쩔 거야!

 제츠 : (흑)그건 내 알 바 아니지.

 데이다라 : 이런…! 윽… 으윽… 아아아…!

 제츠 : (흑)쯧쯧, 너무 나대지 마라. 겨우 지혈을 해놓았는데 다시 피가 터져나오면 토비가 밤새 네 옆에 붙어서 애쓴 의미가 없지 않냐.

 데이다라 : 하아… 하아… 하아…….

 제츠 : (흑)그래도 에게 데이다라 네가 어찌 되었는지는 아직 모른다고 해두었다. 허면 적어도 너의 생사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살아 있지 않겠나. 크큭.

 데이다라 : 윽…….

 제츠 : (백)더는 볼일 없지? (흑)그럼 나는 간다.

 스스스-…

 데이다라 : 하아… 하아…….(부들부들)

 드르륵-.

 토비 : 선배~ 수건 적셔왔… 우와앗~! 서, 선배~? 지금 어딜 가시려는 거예요~?;; 필요한 게 있으시면 저한테 얘길 하세요~…!;;;

 데이다라 : 아지트로 돌아가야 해… 지금 당장…….

 토비 : 지, 지금 당장이요~?;; 무리예요~!;;;

 데이다라 : 내가 간다면 가는 거야! 신입 주제에 토달지 마! 긴 말 하고 있을 시간 없다고! 가… 녀석이… 윽…!!!

 토비 : 그치만 여기서 가까운 거리도 아니고, 그런 몸으로 갈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선배~…;;

 데이다라 : 됐어…! 나 혼자라도 갈 테니 저리 꺼져…!

 토비 : 안 돼요, 안 돼요~…;;; 진정해요 선배~…;; 아까 제츠 씨의 말대로  씨는 선배의 생사를 아직 모르니까 뭐가 어찌 됐든 그때까지는 괜찮을 거예요~…!

 데이다라 : 꺼지라고 했을 텐데…! 놔…!

 토비 : 제 말을 들어주세요, 선배~…!  씨에게 간다고 해도 그런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때야말로 쇼크로 죽어 버릴지도 모른다고요~! 그러니까 일단, 일단은요, 카쿠즈 씨가 오셔서 다시 팔을 붙여주실 때까지만 참고 기다리자구요~…;; 부탁이예요, 선배~…;;;

 데이다라 : 아아아아…! 죽여주겠어…! 제츠 자식, 죽여 주겠… 윽…! 하아… 하아… …….

 토비 : 선배도 참… 으아아아, 선배~…! 또 열이 올랐잖아요~…! 제발 좀 얌전히 누워 계세요오옷~…!!!

 (…)

 사소리 오빠와 데이다라가 아지트를 떠나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비로소 인주력 사냥이 시작되어 이번 임무가 전보다 훨씬 위험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전서구를 보내도 바로 답장을 하지 못할 수 있다고 떠나기 전 데이다라가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너무 늦는 것 아닌가. 가슴에 쌓인 불안이 점점 커져서 더는 가만히 앉아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임무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것을 오빠가 절대 금했지만 조용히 모래 마을로 향했다. 그리고 마을로 들어가기 전 그 근처에서 제츠를 만났다.

 "거짓말이지…?"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나는 온몸이 마비된 듯 모든 감각을 잃었다. 파르르 떨리는 두 다리로 겨우 버티고 서 있을 수 있었다.

 "(백)모래 마을의 장로인 꼭두각시 조종사 치요, 나뭇잎 마을 5대 호카게의 제자이자 의료닌자인 하루노 사쿠라. 그 둘이 사소리를 쓰러뜨렸어."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고, 내 시선은 허공을 방황했다. 그러자 제츠가 언제나와 같은 표정 없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흑)나도 두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지는 믿지 않았다. 어딘가의 바보와 달리 사소리는 감정에 휘둘리는 일 없이 항상 계산이 빠른 녀석이었으니까 말야. 아무래도 이번에는 조모인 치요의 요사스런 수작에 당한 것 같다. 옛날에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보고 쓸데없는 기억이라도 떠올린 건지, 의외로 허무하게 가버렸더군."

 믿을 수가 없었다. 제츠의 말대로 치요라는 사람은 사소리 오빠의 친할머니. 한때 꼭두각시 조종술의 전설로 불리던 대단한 사람이고, 오빠에게 그것을 가르쳐준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분이 자신의 손으로 손자를 죽였다? 아무리 5대 카제카게를 위해 싸워야 하는 입장이라고 해도 그럴 수는 없다.

 게다가 나뭇잎의 닌자라니, 동맹국으로부터 지원을 보낸 것인가. 사소리 오빠라면 분명 독을 사용했을 테고, 모래 마을에는 아직 오빠의 독을 해독할만한 의료기술이 없으니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깟 의료닌자 따위에게 오빠가 당했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그 교활한 뱀 같은 카부토 조차 오빠에게는 꼼짝도 못했는데.

 "제츠… 아무리 내가 우스워보여도 그런 말은 하는 게 아니야. 장난치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줘, 사소리 오빠 지금 어딨어?"

 "(흑)모래 마을 녀석들이 다른 인형들과 함께 전부 회수해갔다. 녀석이 만든 인형 속에는 꼭두각시 조종술에 대한 최상위 기술들이 집약되어 있으니 그런 허허벌판에 그냥 내버려둘 리가 없지. 이제와서 가본다고 한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거다."

 "어디야…? 다른 말은 필요없으니까 어딘지만 말해줘……."

 "(흑)난 지금 너에게 가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거다. 카제카게의 일로 인해 지금 바람의 나라 경계 수위가 그 어느때보다 삼엄해져 있는 것을 모르는 거냐? 자칫해서 아카츠키 관계자로 의심받으면 거기서 끝이다. 아마도 붙잡혀서 고문을 당하겠지. 그런 일을 우려해서 사소리가 네게 임무지로 나오는 것을 금한 것 아니냐."

 "……."

 "(흑)당시에 사소리와 별개로 행동했던 데이다라 녀석의 생사는 아직 나도 모른다. 그러니 소식이 닿을 때까지 얌전히 아지트에서 기다ㄹ…"

 나는 제츠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모래 마을을 향해 뛰어갔다. 붙잡혀서 고문을 당하든 말든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오빠가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만 있다면. 결국 제츠로부터 정확한 위치를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허허벌판'이라는 말 덕분에 적어도 바람의 나라에 있는 드넓은 사막들을 전부 뒤질 필요는 없었다. 결국 찾아낸 싸움의 현장은 모래보다는 바위가 무성한 곳이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 제츠의 말대로 거기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구태여 말하자면 부숴진 인형 조각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지만 오빠의 흔적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나는 흙 속에 파묻혀 있는 작은 물건을 발견했다. 항상 받기만 했던 내가 오빠에게 선물한 몇 안 되는 것 중에 하나였다.

 "이게 뭐냐?"

 "내가 만든 부적. 꼭 무사히 돌아와야 돼."

 "이런 건 오로치마루에게나 줘라. 그 녀석 여자 같은 구석이 있으니 아마 좋아할 거다."

 "안 돼, 오빠를 위해 만든 거니까 오빠가 가지고 있어."

 나는 한동안 그 자리를 방황하다 아지트로 돌아왔다.

 그래, 내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야.

 오빠가 하지 말라는 일은 하지 말자.

 늘 그랬듯이 얌전히 기다리고 있면 돼.

 그러면 상냥한 손길로 머리를 쓰다듬어주겠지.

 (…)

 내가 언제 쓰러진 거지. 아지트로 돌아온 이후 평소와 같이 행동했다. 청소를 하고, 세탁을 하고… 그런데 아무래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저 눈을 떠보니 침대 위에 눕혀져 있었고, 나무로 만들어진 아지트의 천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어둠이 점점 가까워지는 듯한 기분. 주변은 한없이 고요했지만 왠지 모르게 시끄러운 소움이 귀를 찔러대는 듯이 아팠다.

 깨닫고보면 팔에는 차가운 바늘이 꽂혀 있고, 내 곁에 한 남자가 있었다. 오빠와 같은 모래 마을 출신으로 아주 오래 전부터 오빠의 일을 도왔던, 부하보다는 동료 같은 사람이었다. 카부토와 더불어 아주 유능한 의료닌자이면서 오빠가 신뢰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하나. 내가 중독 되었을 때 그가 목숨을 구해준 것은, 얼마 지나지 않은 최근의 일이었다.

 "사소리 님의 일은 저 또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이런 곳에 몸을 담고 있으면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일이지요. 하지만  씨라도 다시 일어나서 기운을 차려야……."

 그는 바늘을 갈아끼우며 내게 몇 번인가 말을 건넸다. 바로 옆에 있는데도 어째서인가 잘 들려오지 않았다. 그래서 애써 대답하지 않았다. 몸을 움직일 힘도, 생각을 이어나갈 힘도 없었다. 어떤 얘기든지 간에 오빠가 돌아온 뒤에 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렀다. 어둠으로 까맣게 물든 천장이 왠지 모르게 점점 넓어지는 듯하더니 어느덧 내 시야를 가득채우고 있었다. 마치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 양. 그런데도 나는 계속 같은 자리를 헤매였다. 두 눈을 어디로 향해도 그 자리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빛 한줄기가 시야를 비집고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나는 의식을 되찾았다.

 "데이다라 씨."

 남자의 목소리, 방안으로 걸어들어오는 사람들의 발소리, 그리고 그들이 무어라 말을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다만 얘기하고 있구나라는 느낌만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 알 수 없는 말 속에서 데이다라의 이름을 들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

 ",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거냐? 음?"

 데이다라가 왔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어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쳤다. 마침내 마비되었던 몸의 감각이 돌아오면서 통증이 밀려오기 시작하고, 현실이라는 것이 내 주변을 에워쌌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로부터 벌써 수개월이 지났다는 것을. 나는 데이다라의 품에 안겨 그날 이후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어 말했다.

 "데이다라… 오빠는…?"

 "……."

 오랜 침묵 끝에, 그는 힘들게 입을 열었다.

 "나리는… 죽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멈추는 듯하더니 무언가 가슴을 세게 짓누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딱딱하게 굳어 버린 몸이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는 듯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며 잠들어 있던 감각을 차례로 깨웠다. 숨을 쉴 수가 없었고 소리 내어 아파할 수도 없었다.

 "거짓말… 거짓말이지…?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사소리 오빠 지금 어딨어…? 오빠가 있는 곳으로 갈래……."

 "……."

 팔에 꽂힌 링겔을 뽑아 버리고 침대에서 내려가려 하자, 두 발을 바닥에 채 딛기도 전에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과 함께 의식이 위태로이 흔들렸다. 그래도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애쓰니 데이다라가 내 팔을 붙잡았다.

 ", 어디에 가도 나리는 이제 없다…!"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내게 데이다라의 손을 뿌리치는 것은 무리였고, 나는 머지않아 힘이 빠져 주저앉았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오빠는 살아 있어…! 아직 돌아오지 않았을 뿐이야…! 데이다라 왜 오빠를 놔두고 혼자 돌아온 거야…? 저기 저 사람은 누구고…? 싫어… 이런 장난은 싫어… 오빠… 오빠…!"

 약해질대로 약해진 몸으로 계속 소리를 질러대니 몸이 버틸 수 있을 리 만무. 마음 같아서는 당장 그곳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지만 내게는 멀어져가는 의식을 붙잡고 있을 여력 조차 없었고, 결국에는 다시 쓰러지고 말았다.

 “데이다라 씨,  씨는 지금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 데이다라 씨의 양팔도 카쿠즈 씨가 처치를 해주셨다고는 하나 아직 안심할 수 없으니 안정을 취해주세요. 이런 말씀 드리기 뭐합니다만 지금 두 분께서는 떨어져 계시는 편이 좋습니다.”

 “…알겠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벗어나려고 애썼는데. 결국 내 앞에 놓인 것은 지난 수 개월 동안 내가 갇혀 있었던 어두컴컴한 천장이었다. 의식은 멀어져가고, 어둠이 다시금이 내게 가까워졌다. 그곳에 숨어 있는 악몽까지도.

 사소리 오빠, 지금 어딨어?

 정말 이 세상의 어디에도 없는 거야?

 그럼 내게도 여기 있을 이유는 없어.

 이제 아무것도 필요 없어.

 이대로 오빠가 있는 곳으로 갈래.

 거기서 다음에야말로 제대로 말할 거야.

 ‘오빠, 어서 와’ 라고.

 (…)

 토비 : 선배~, 식사하세요~.

 데이다라 : 생각없다.

 토비 : 후배의 사랑이 듬뿍 담겨 있어요~. 필요없습니까~.

 데이다라 : 나는 아직 너를 완전히 신용하지 않는다. 신용 없는 녀석의 손으로 만든 것을 입에 넣을까보냐.

 토비 : 너, 너무해~…;;

 스스스-.

 제츠 : (백)토비.

 토비 : 아, 제츠 씨.

 제츠 : (흑)새로운 임무에 대해 전하러 왔다. 데이다라는?

 토비 : 그게…….

 제츠 : (흑)아직도 저 상태인가. 적당히 달래서 일어나게 하라고 했잖아.

 토비 : 저, 저로서는 무리예요~…;;

 제츠 : (흑)쳇, 귀찮게 하는군. 어이, 꼬맹이. 언제까지 그럴 요량이냐? 거기 죽치고 앉아 있으면 뭐가 해결 돼? 그만 하면 많이 봐줬다. 슬슬 다시 임무로 복귀해라.

 데이다라 : 그래 맞아… 이대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토비 : 선배…….

 데이다라 : 토비, 지금  상태가 어때?

 토비 : 열도 내렸고 이제 괜찮아요~. 다만 그 이후로도 계속 아무것도 먹지 않고 천장만 바라보고 있어서… 언제까지 주사로만 버틸 수 있을지…….

 데이다라 : (일어나는)

 토비 : 선배…? 어디 가시는 거예요? 의사가 씨와는 당분간 떨어져 있으라고… 자, 잠깐만요…! 같이 가요~!

 (…)

 아무것도 필요없었다. 아니, 좀 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살고 싶지 않았다. 어둠으로 물든 천장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그 속을 끝없이 헤매이면서,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오빠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어렸을 적부터 줄곧 오빠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내게, 오빠가 없는 세상이란 것은 하늘이 없는 것과 같았고, 태양이 없는 것과 같았다. 더 이상 앞이 보이지 않았고, 몸은 차갑게 식었다. 두 눈을 뜨고 있지만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데이다라 씨.”

 “잠깐 얘기 좀 해도 괜찮겠나, 음?”

 “예, 그러시죠.”

 터벅터벅-. 누군가 멀어져가고, 누군가 가까워져왔다. 그게 누구이든지 간에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 너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

 “…….”

 “나리가 너에게 남긴 물건이다.”

 나는 데이다라의 그 말을 듣고 무의식적으로 옆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데이다라가 손에 쥐고 있던 종이 뭉치를 내 앞으로 내밀었다. 무언가 빼곡히 글씨가 적혀 있었지만 시야가 흐릿해서 알아볼 수가 없었다.

 혹시 지난 날 술을 마시면서 오빠가 데이다라에게 맡겼던 그것인가. ‘만일의 경우’라는 말의 의미를 그제서야 깨달은 나는 속으로 실소를 내뱉었다. 오빠에게 언제라도 날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또 다른 충격으로 다가왔지만 더는 아파할 힘도 없었다.

 오빠가 남긴 물건이라고 하니 한 번쯤은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곧 다시 만나게 될 테니 그때 물어보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던 그때, 데이다라에게서 나온 뜻밖의 말이 내 의식을 두드렸다.

 “우치하 오비토는 살아 있다.”

 데이다라는 가장 위에 있던 종이를 뒤로 넘겨 그 속에 끼워져 있던 사진을 내게 보여주었다. 남자 아이 두 명과 여자 아이 한 명이 그 속에 나란히 서서 나를 향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윽고 내 머릿속에 세 사람의 이름이 빠르게 스치고 지났다.

 우치하 오비토.

 노하라 린.

 하타케 카카시.

 분명 이 아이들의 이름이다. 그 순간 나는 왠지 모르게 확신했다. 그리고 무언가 내 안에서 점점 커져가는 것을 느꼈다. 가슴에 젖어드는 슬픔. 지난 수 개월 간 멈춰 있는 듯했던 심장이 갑자기 마구 뛰어댔다. 마지막까지 내가 눈을 떼지 못한 남자 아이는 희망의 푸른색을 연상시키는 오비토라는 이름의 남자 아이. 심장의 고동과 함께 잊고 있던 기억들이 하나 둘 씩 되살아났다.

 '다친 거야?'

 '괜찮아, 나도 나뭇잎의 주민이라고.'

 '자, 나한테 업혀. 같이 마을로 돌아가자.'

 그게 언제였더라. 잘 기억나지 않지만 순진했던 만큼 무서울 것이 없던 시절, 혼자 마을 밖으로 나갔다가 부상을 입은 적이 있었다. 딱히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한 것도 아니었고, 단지 수련을 하다가 발을 잘못 디뎌서 인대가 다친 것이었다.

 처음에는 아픔을 견뎌가며 어떻게든 돌아가려 했지만 고단함에 비해 마을은 여전히 아득했다. 결국 나는 도중에 주저앉아 버렸고, 어느덧 해가 기울어 숲의 나무와 풀들이 노을빛으로 물들었다.

 '내 이름? 우치하 오비토! 언젠가 호카게가 될 몸이니까 잘 기억해 둬.'

 '하아… 하아… 뭐, 너를 두고 가라고? 여기까지 와서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야 어른들을 불러오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밤이라고? 밤의 숲이 얼마나 위험한지 몰라서 그래? 걷지도 못하는 널 혼자 내버려두고 갈 수는 없어.'

 '왜냐니, 나뭇잎의 주민이라면 당연히 지켜야지. 그리고 너도 닌자를 목표로 하고 있다면서? 언젠가는 내 동료가 될 거야. 부상당한 동료를 모른 척할 수는 없어.'

 나이는 같지만 나보다 키가 조금 작았던 남자 아이. 그런 아이가 나를 마을까지 업고 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가 내게 건네는 말 하나하나가 내게 두려움과 불안함을 잊게 해주어서, 안심시켜주어서, 기대어 있던 그의 등이 어른의 그것 만큼이나 넓게 느껴졌다.

 아침이 되어서야 마을에 도착해서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은 나는 같은 방의 비어 있는 침대에 누워서 잠든 오비토의 얼굴을 줄곧 바라보았다. 나를 업고 그 먼 거리를 걸어왔으니 아무리 바보 체력을 가진 그라도 지쳐 쓰러지는 것이 당연했다.

 그래도 기분 좋은 듯이 자는 그를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 아이라면, 동료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 오비토라면 분명 그의 꿈대로 호카게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설령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그는 내 마음 속에 평생 동안 누구보다 강하고 멋진 닌자로 남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런 남자에게 여자로서 연심을 품게 되는 것은 시간의 문제였다.

 '내일부터 닌자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고! 너도 그렇지? 나는 호카게를 목표로, 너는 훌륭한 의료닌자를 목표로 같이 힘내자!'

 꿈을 향한 첫발을 딛게 된 것도 물론 기뻤지만, 그 순간 무엇보다도 가슴이 설레였던 이유는 조금이나마 그를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과 어쩌면 그와 같은 반이 되어서 줄곧 함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었다.

 그러나 희망은 사람의 마음에 그리 오래 머무는 것이 아니다. 나는 언제나 오비토의 웃는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을 뿐 그의 내면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오비토는 내가 생각했던 것 만큼 강하기만 한 아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안쪽을 들여다보면 상처투성이로, 그는 하루하루를 필사적으로 견뎌냈다. 그리고 그런 오비토의 앞에는, 그의 마음이 향한 곳에는, 늘 한 여자아이가 그를 향해 상냥하게 웃고 있었다.

 '아, 린! 난 이만 가볼게! 다음에 보자!'

 나는 오비토를 볼 때 마다 그가 항상 온 마음을 다 해 웃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만큼 그의 얼굴에서는 빛이 났고, 내 눈에는 무엇보다 아름다워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나를 향한 그 웃음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비토가 린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녀를 향해 웃을 때, 그의 두 눈에는 꿈과 희망이 있었다. 다시 말해 오비토가 린을 보며 느끼는 감정은, 내가 오비토를 보며 느끼는 감정과 같았다. 어쩌면 오비토의 마음은 내 마음보다 더, 훨씬 크고 깊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도저히 그에게 가까이 다가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뭇잎 마을에도 전쟁의 바람이 불어닥쳤다. 내가 의료반에 배속되어 속출하는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동안 오비토와 그의 동료들은 전선으로 뛰어들어 목숨을 걸고 싸웠다. 마을을 위해, 동료를 위해, 그리고 꿈을 위해. 내가 치료하고 있던 부상자들은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기 때문이야말로 나는 용기를 냈다. 오비토가 마을을 떠나던 날, 제발 늦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필사적으로 달렸다. 그리고 동료들과의 집합 장소로 향하는 그를 간신히 따라잡았다.

 '너… 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뛰다가 넘어졌어…? 손에서 피가 나잖아…….'

 그는 품에서 우치하 일족의 문양이 새겨진 손수건을 꺼내어 내 손을 잡고 상처 부위에 감싸주었다. 그의 손길이 상냥해서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한 편으로는 두렵기도 해서 가슴이 미친듯이 뛰어댔다. 그래도 나는 오비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끝내 그에게 고백했다. '그 동안 줄곧 좋아했습니다. 저와 사귀어주세요.' 라고.

 '…….'

 오비토는 놀란 듯한 표정으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그 시간이 너무나도 떨렸다. 바람에 나뭇잎이 흩날리고, 문득 머리 위로 그의 손이 올라왔다. 쓰담쓰담. 그는 평소의 밝은 태양 같은 웃음과는 사뭇 다른 차분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대답… 다음에 만나면 해도 될까?'

 '내가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줄래?'

 수락 아니면 거절 둘 중에 하나일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나는 뜻밖의 대답에 잠시 당황했다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러자 오비토의 손이 다가오더니 그가 나를 상냥하게 어루만졌다. 그리고 내 뺨에 쪽- 입을 맞추었다.

 '고마워.'

 아주 잠깐이었고, 그 정도는 친구에게라면 딱히 못할 것도 없는 행동이었다. 그런데도 왠지 모르게 그 시간이 길게 느껴지고, 두근거리는 심장의 고동과 함께 마치 꿈을 꾸는 듯한 몽롱한 기분이 들었다.

 그 입맞춤을 마지막으로 오비토는 임무를 떠났다. 하루하루 그를 기다리는 내 마음은 그에 대한 걱정과 설레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동안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 흘러갔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병동에서 의료반의 일을 돕고 있던 나는 거기서 하타케 군과 린의 모습을 보았다.

 그렇다면 분명 오비토도 저기 어딘가에 있겠지. 나는 곧장 그들에게 달려가려고 했지만 얼마 가지 못해 걸음을 멈추었다. 그들의 얼굴에 너무나도 짙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린으로부터 오비토의 사망 소식을 전해들은 나는 그 자리에 한동안 멈춰 서 있다가 조용히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평소와 같이 행동했다. 사소리 오빠의 죽음을 알았던 날과 같았다. 결과도 물론, 지금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의 엄청난 고열에 시달렸다. 캄캄한 어둠 속을 헤매이면서 내가 찾았던 것은 오직 한 사람 뿐이었다.

 오비토는 죽지 않았어. 아직 살아 있어. 살아 있어. 살아 있어. 살아 있어. 살아 있어… 살아 있어…….

 (…)

 번뜩 정신이 든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도무지 그럴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놀랐다. 그 만큼 강한 의식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나는 데이다라에게서 종이 뭉치를 받아 무릎 위에 올려두고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오비토의 사진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 그의 웃는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긴 침묵 끝에 나는 종이 뭉치를 두 팔로 꼭 감싸안았다. 그리고 비로소 입을 열었다. 데이다라로부터 오빠의 죽음을 전해들은 뒤 처음으로 꺼낸 말이었다.

 "미안, 데이다라… 걱정하게 해서 정말 미안해… 나 이제 괜찮아… 그만 털고 일어날게……."

 "……."

 데이다라는 조금 놀란 듯한 표정으로, 그리고 울 것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여기까지 온 이유… 드디어 알게 됐어… 오비토… 꼭 찾을 거야……."

 (…)

 그로부터 보름이 지났다.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혼자서 집을 보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애당초 그것은 내가 늘 해왔던 일이었으니까.

 나는 일단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해나갔다. 간단한 집안일부터 시작해 오빠의 물건을 정리하는 엄청난 일까지.

 그리고 지금은 나 혼자 쓰고 있는 방의 작업대 앞에 앉아 또 다른 일을 시작하려 하고 있다.

 오빠가 내게 남겨준 마지막 선물, 그것의 첫장을 넘기면 오비토의 사진이 보인다. 아마도 지금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겠지. 그래도 찾을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천천히 페이지를 뒤로 넘겨본다.

 「만화경 사륜안」

 「시공간 인술」

 이것은 아무래도 우치하 일족의 혈족 계승 능력인 사륜안에 대해 조사를 한 자료 같다. 역시 꼼꼼한 오빠답게 척 봐도 어려운 내용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나뭇잎 마을 구미 습격 사건」

 「가면의 남자」

 잘 모르겠지만 갑자기 수상한 남자가 등장한다. 오비토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인지는 좀 더 뒤로 가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우치하 일족 참살 사건」

 「우치하 이타치와의 관계」

 이타치라니, 그 이름을 발견하는 순간 움찔 하고 손이 멈춘다. 우치하를 멸족시킨 주범이 이타치라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일에 오비토는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 걸까.

 혹시 두 사람이 접촉한 적이 있는 것인가. 어쩌면 생각보다 빨리 오비토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타치가 아지트로 돌아오면 그때 꼭 물어보기로 하자.

 「우치하 마다라」

 「무한 츠쿠요미」

 아아, 뒤로 가면 갈 수록 자신의 무지함에 대한 자책감이 밀려온다. (…)

 오빠가 나를 위해 여기까지 애써주었는데, 어쩜 이해가 되는 내용이 하나도 없을까.

 만약 이타치로부터 별다른 얘기를 듣지 못하게 된다면, 앞으로 고생 깨나 하게 될 것 같다.

 (…)

 이렇듯 시간은 변함없이 흘러가고 있지만 모든 것이 이전과 같은 것은 아니다.

 사소리 오빠의 죽음 이후 아카츠키에는 새로운 멤버가 들어왔다.

 새로운 파트너를 얻은 데이다라도 그 사이 마음을 추스르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이번에 입단한 신입은 예술의 예 자도 모르는 모양이지만 꽤나 붙임성 있는 성격이라 적응하는 데 별다른 문제는 없었던 모양이다.

 시끌시끌-. 투닥투닥-.

 아지트의 입구에서부터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왠지 즐거운 듯하네. 그런 생각에 스프의 간을 보다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내뱉는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서는 두 사람을 맞이한다.

 "어서 와."

 "다녀왔다, 음."

 "다녀왔습니다~!"

 데이다라의 얼굴을 보는 것도 오랜만이지만 그의 옆에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이 서 있는 것에는 아직 상당한 위화감을 느낀다.

 그럴 수밖에 없다. 침대에 누워 있는 동안 토비가 몇 번인가 나를 돌봐준 적이 있지만 그를 제대로 마주하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니까.

 "에~ 그러니까~, 씨~? 지난 번에는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인사도 못했네요~. 저는 토비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말 편하게 해도 돼. 나도 그럴 테니까."

 "괜찮은 거야~? 그럼 사양 않고 그렇게 할게~. 선배의 여자친구라고 해서 성격이 비슷할 줄 알았는데 너는 상냥하구나~. 다행이다~."

 "상냥하지 않은 선배라서 미안하군. 네가 조금만 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도 내가 그렇게 화를 낼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만. 음."

 "또 예술가의 쿨함에 대해 설교하실 셈인가요~? 그만둬주세요, 선배~. 그거 너무 웃겨요~ 아하하하핫~! 아, 자, 잠깐~…! 서, 서, 선배, 지네는 싫어요~! 적어도 거미로 해주세요오오옷~!"

 "갈(喝)!"

 푸슈슈슈슉-…

 "데, 데이다라… 너무하잖아… 토비 죽은 것 아니야…?"

 "이 정도로 죽을 녀석이 아니다. 피하는 것, 도망치는 것, 그것 만큼은 아주 기가 막히니까 말야. 음."

 "네~. 말씀대로 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스치면 아프니까 좀 봐주세요, 선배~."

 분명 지네에 묶여서 그대로 펑- 해버렸는데, 아무리 작은 폭발이었다고 해도 몸의 절반 이상이 날아갔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갑자기 식탁 밑에서 머리를 불쑥 내밀고는 아무렇지 않은 듯 멀쩡한 모습으로 다시 의자에 앉는다.

 토비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

 식사를 마친 뒤 아지트 밖으로 나왔다. 빗자루로 낙엽을 쓸고 있노라면 데이다라와 토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막 돌아왔을 뿐인데 피곤하지도 않은지, 다음 임무에 대한 작전을 짜고 있다. 사소리 오빠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지만 토비와는 아직 시간이 걸릴 것이다.

 "에에~ 저 지뢰 같은 건 무서워요~…;;"

 "무섭긴 뭐가 무서워!"

 "들고 다니다가 손이 미끄러져서 자폭할 것 같아요~. 전 선배가 아니니까 폭사하는 건 좀~.;;"

 "폭발에 익숙해져서 더는 무섭지 않을 때까지 갈궈줄까? 음?"

 "히이익~~~.;;"

 답답한 표정의 데이다라와 굽신굽신하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토비. 이제는 두 사람의 투닥거리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새로운 일상으로 자리잡게 되는 것일까.

 오빠 없는 하루하루가 지옥 같이 느껴지면서도 이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딱히 슬픔이나 쓸쓸함을 떨쳐내고 싶은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체념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내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있다.

 "그런데 말야, ~."

 "응?"

 "우치하 노비타는 왜 찾는 거야~?"

 "노비타가 아냐. 오비토다, 멍청아. 음."

 피식-,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거든."

 "헤?"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토비. 그가 데이다라와 나를 번갈아 보며 뒤통수를 긁적인다. 그야 당황스럽기도 할 것이다. 애인이 버젓이 있는데 그런 엄청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으니.

 "에에~… 그렇구나아~… 잘 모르겠지만… 뭐어… 힘내~…;;;"

 시선을 옆으로 옮겨보면 데이다라는 고개를 모로 돌린 채 다른 곳을 보고 있다. 그리고 아무런 말이 없다. 그의 마음에도 나 외에 다른 사람이 줄곧 박혀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쉽게 빼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런 나를 이해해주는 것일까.

 그럴 거라고 믿고 싶다. 기억이 떠오르는 순간 잊고 있던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나서 나 또한 당황스럽고,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속으로는 어쩔 줄 몰라하고 있으니까.

 어린 시절의 내가 사랑했던 만큼, 아팠던 만큼, 모든 기억을 잃어 버리면서도 그 이름을 가슴에 꼭 쥐고 놓지 않았던 그때의 그 간절한 만큼, 포기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이제 보니 토비는 이타치랑 머리카락의 색이 비슷하구나. 이렇게 은은한 푸른빛이 도는 흑발은 흔치 않은데."

 무심코 손을 뻗어 토비의 머리카락을 살짝 만져본다. 그 옛날 오비토의 머리카락도 딱 이런 색깔이었다.

 "이상해~?"

 "아니, 칭찬하고 있는 거야."

 "헤헷~, 선배, 보세요~. 가 제게 쓰담쓰담을 해주고 있어요~. 이제 곧 선배의 시대도 끝나겠네요~."

 "무슨 뜻이냐, 이 자식아.╬"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 오비토가 아직 살아 있다면 한 번쯤은 그와 만나지 않았을까.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지 않을까. 앞으로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오비토를 알아볼 수 있을까. 솔직히 별로 자신이 없다.

 "……."

 문득 바람이 불어와 하늘을 올려다 본다. 구름에 가려져 있던 태양이 나타나 갑자기 눈부신 빛이 떨어진다.

 사소리 오빠… 오빠한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언젠가 거기서 만나면 얘기할 테니까… 전부 들어줘…….

 오빠는 분명 귀찮다고 하겠지만 나를 두고 먼저 가 버린 벌이라고 생각해.

 그런 다음에는 내가 그리웠던 만큼 상냥하게 머리를 쓰다듬어줘.

 그때야말로 오빠로부터 절대로 떨어지지 않을 거야.

 오빠가 말하는 영원의 미가 뭔지 확실하게 보여줄 테니까, 기대해.

 거기서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지?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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