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혼자라서 더 힘들었지? 얼른 안으로 들어가자."

 "술, 이제 마시지 말라고 했잖냐. 음."

 "조금밖에 안 마셨어. 봐, 취하지 않았잖아? 데이다라가 방으로 옮겨줄 필요 없고, 나로부터 떨어지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돼."

 "취한 놈치고 자기가 취했다고 말하는 녀석은 없다. 정신이 온전치 않으니 당연한 거겠지. 괜히 험한 꼴 보지 말고 너도 곧장 방으로 돌아가 자라."

 "험한 꼴이라니, 무슨?"

 나를 지나쳐가려던 데이다라가 멈추어 선다.

 "지금까지 네가 취해서 내뱉었던 말들이 전혀 기억에 없는 거냐? 가관이로군. 음."

 "히단이랑 마셨을 때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데이다라에게 했던 말은 전부 기억 나. 그렇게 싫었어?"

 "그럼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냐? 음?"

 "……."

 터벅터벅-. 아지트로 발걸음을 옮기는 데이다라를 쫓아가, 그의 팔을 붙잡는다.

 "뭐냐?"

 "그렇게 차가운 표정으로… 그렇게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지 마……."

 그가 나를 바라본다. 두 눈에 눈물이 어른거리는 나를. 내가 이렇게, 자존심을 버릴 수 있을 정도로 이 남자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오빠가 알면 뭐라고 할까. 시덥잖다는 듯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볼까, 아니면 안타까운 표정을 지을까.

 "데이다라… 손이 차가워……."

 그의 손을 입김으로 녹인다. 아직 차갑다. 이번에는 조심스레 움직여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간다. 여기라면 좀 더 따뜻하고 편안하겠지. 부드러운 감촉에 반응하듯 그의 손끝이 움찔 하고 떨린다.

 "만지고 싶어…?"

 "아, 아니야."

 내 손을 뿌리치려는 그를 꼭 붙잡고 천천히 옷속으로 옮긴다. 그곳은 따뜻함을 넘어 뜨겁다. 술기운 탓도 있지만 그에게 닿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렇게나 달아올랐다.

 "지난번에 여기 만졌었잖아…? 숨기지 않아도 돼… 나… 데이다라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게… 몸 뿐이라도 괜찮아……."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데이다라에게 살며시 기대고 보다 짙은 체온을 전한다. 그의 허리를 감싸안은 채 그를 올려다 보며, 사랑에 완전히 굴복해 버린, 쓰디쓴 미소를 짓는다. 이윽고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그건, 듣지 못한 것으로 해달라고 말했잖냐…! 음…!"

 그가 나를 떼어놓은 뒤 내게서 성큼성큼 멀어져간다. 홀로 남은 나는 슬픔이 북받쳐오르는 것을 느끼며 결국 주저앉는다. 이번이 마지막이었는데.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내 걸었는데.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그를 내게서 더 멀어지게 만들었을 뿐이다. 쏟아져 나오는 눈물에 괴로움이 목끝까지 차오른다. 그리고 머지않아 나를 어린아이처럼 소리내어 울게 만든다.

 "으흑… 으… 흑흑… 으흑흑……."

 이렇게 아플 것이라면 차라리 죽어 버리는 편이 낫다.

 돌아가고 싶지 않아. 보고 싶지 않아.

 싫어. 싫어. 싫어.

 모든 것을 닫아 버렸다. 생각, 감정, 그 밖의 감각들을.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을 것 같다. 바람이 불어오고 있는데, 짙은 정적이 맴돈다. 자신의 숨소리 조차 들려오지 않는다.

 "일어나."

 "……."

 "일어나라고!"

 무언가 강한 힘이 나를 붙잡아 일으켜세운다. 이제 아픔도 잘 모르겠다. 단지 데이다라가 무서운 얼굴을 하고 나를 내려다 보고 있다는 감각만이 있을 뿐이다.

 왜 돌아온 거지. 미안해서? 걱정되어서? 이유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 지금은 그저 나를 아프게하는 이 남자로부터 떨어지고 싶다.

 "나… 네가 미워……."

 "겨우 그 정도냐? 난 널 죽이고 싶다."

 "그럼 죽이든가… 내 몸도… 마음도… 삶을 전부 다… 네가 원하는 만큼 상처입히고… 짓밟고… 결국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죽여줘……."

 "……."

 그가 나를 외면한다. 다만 그도 나 만큼 괴로워보인다. 나와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감각이 점점 돌아오면서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그에게 붙잡힌 팔에서 아픔이 느껴진다. 이렇게나 강하게 붙잡고 있었다니. 심지어 그의 손도 조금 떨리고 있다.

 문득 다른 쪽 팔 마저 데이다라에게 붙잡힌다. 거친 손길에 저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다 깨닫고 보니 바닥에 쓰러져 있다.

 내 위에 올라 탄 데이다라가 내게 입을 맞춘다. 단지 그 뿐인데도 무섭다. 좋아하는 사람과 닿아 있을 때와 같이 설레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적에게 범해지는 기분이다.

 "음… 음음……."

 데이다라에게 몸을 맡긴채 정신 없이 끌려다니다보니 점점 숨이 거칠어진다. 그의 손이 옷을 비집고 들어와 내 가슴을 만지고 있다. 내가 아파하던 말던 강하게 움켜쥐고 제멋대로 움직인다.

 그가 내 셔츠를 올려 드러난 맨살에 입을 맞추면 쪽쪽 작은 소리가 너무나도 선명하게 들려서 일일이 나를 자극해온다.

 몽롱한 기분을 느끼면서도, 그가 하의를 벗기려는 순간 정신을 차리고 그의 손을 저지한다.

 "왜, 막상 하려니 무서우냐? 음?"

 "……."

 "아니면 상냥하게 해달라는 거냐? 정말 제멋대로군."

 그가 거친 숨결을 삼키며 씨익 웃고는 내 목에 키스를 한다. 그의 손은 내 옷을 채 벗기기도 전에 다리 사이로 침범해 들어온다. 야릇한 손길에, 찌릿 하고 올라오는 감각에, 정신이 아찔하다.

 "아…!"

 지금껏 단 한 번도 타인의 손이 닿았던 적이 없는 곳에 미끈한 혀가 스치는 순간 그 어느 때보다 달뜬 목소리를 내뱉으며 데이다라의 옷을 꽉 움켜쥔다. 그의 손가락이 안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온다. 아직 좁고, 낯선 감각에 몸이 저항한다.

 "힘 빼라, 이 정도는 아프지 않잖아?"

 내가 엄살을 부리고 있는 것인가. 아니, 정말 아프다. 아파서 눈물이 난다. 몸의 아픔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몸도 마음도 엉망진창으로 망가져 버릴 것 같다.

 아픔을 참아내며 두 눈을 질끈 감고 있었는데, 예상 외로 저항이 빠르게 사라져간다. 경직되어 있던 몸이 부드러워지고, 둔감했던 곳이 반대로 예민해지기 시작한다.

 "아아…!"

 꽈아아악-. 절정이 온다. 데이다라의 옷을 움켜쥔 채 신음을 토해내는 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며 비로소 무거운 욕망으로부터 해방된다. 아아, 기분 좋다는 감각.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

 더러워진 자신의 손을 말 없이 내려다 보는 데이다라. 어째서일까.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던 공허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도, 이제는 나보다도 그가 훨씬 괴로워보인다.

 "죽이지 않는 거야…?"

 아직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묻는다.

 "초조해 마라. 보채지 않아도…"

 한동안 뜸을 들이다, 그가 지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지금부터 천천히 죽여줄 테니까. 음."

 조용히 코트를 벗어 내게 덮어주고, 그 위에 살며시 몸을 눕히며 그가 내게 기대어온다. 내 몸은 아직도 이렇게 뜨거운데, 그의 몸은 차갑다.

 "데이다라라면 한순간에 펑 하고 죽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작게 중얼거리니, 그가 너털웃음을 짓는다.

 "예전에 네가 물었지, 너와 예술 중에 뭐가 더 중요하냐고. 음?"

 약간의 긴장감이 돌아오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 그 대답을 돌려주마. 네가 예상하는대로, 분명 나는 이 세상에서 예술을 가장 좋아한다. 허나 예술을 사랑하지는 않아."

 "에…?"

 "예술이 내게 주는 쾌락, 딱 그 만큼만 좋아하고, 그 만큼만 중요해. 근데 사랑은 다르지 않냐. 음."

 "……."

 "내게 아무것도 주지 않아도, 나로부터 멀어져도, 그런데도 계속 생각해. 지금 뭐하고 있을까. 별일 없을까. 돌아가면 어떤 얼굴로 나를 반겨줄까."

 "뺨이 아니라 입술에 키스하면 화낼까. 역시 안 되겠지. 책임지지도 못할 거 섣불리 손을 댔다간 둘 다 힘들어지겠지. 지금 이대로가 차라리 낫겠지."

 "근데 왜 그런 녀석이랑 어울리는 거야. 왜 그렇게 즐거운 듯이 웃는 거야. 정말 좋아한다면 그래도 조금은 더 생각해. 더 아파하라고. 아직 잊어 버리기는 이르잖아."

 "보여줘. 느끼게 해줘. 좀 더, 좀 더, 갖고 싶어. 갖고 싶어. 갖고 싶어……."

 그가 괴로운 듯 몸을 움츠리며 내 어깨를 파고든다. 그리고 점점 무너져내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갖고 싶어… 갖고 싶어… 갖고 싶어… 갖고 싶어… 갖고 싶어… 갖고 싶어… 갖고 싶어… 갖고 싶어… 갖고 싶어… 갖고 싶어… 갖고 싶어… 갖고 싶어……."

 내 마음도 함께 무너져내리는 듯한 기분이다. 괴롭다. 데이다라의 몸을 감싸안고 금발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뺨을 부비적거린다.

 "난 언제나 데이다라의 곁에 있어. 난 이미 네 거야."

 "……."

 데이다라의 손이 내 머리를 감싸고, 그가 내 어깨에 입을 맞춘다. 그리고는 목에, 뺨에, 입술에, 그의 모든 것이 조금씩 내게 가까워지고 있다.

 아까는 그렇게나 무서웠는데, 그런 키스와는 다르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더할나위 없이 편안하면서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점점 빠져드는 기분이다.

 "나중에 나를 원망하지 마라. 음."

 입술이 떨어지고, 그의 숨결이 뺨 위로 떨어진다.

 "그보다는 둘 다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고 말하면 안 될까…?"

 그를 더욱 꼭 끌어안고, 그의 체온을 느끼며, 서로에게만 들릴 듯한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말했잖냐, 천천히 죽여준다고."

 "대신 너는 내가 죽기 전에 절대 죽지 마."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

 "?"

 "난 말이다. 줄곧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는 꿈을 꿨다. 하지만 그곳으로 이어지는 길이 전혀 보이지 않았지… 지금은 그게 보여……."

 의아함과 왠지 모를 불안감으로 입을 다물고 있노라면 문득 데이다라의 손이 내 위로 올라온다. 다리, 허리, 아니, 배를 감싼다. 그러나 그가 찾는 곳은 그보다 더 깊숙한 곳에 있는 것 같다. 자신이 태어난 곳, 그곳은-

 "이제… 들어가는 일만 남았어……."

 무언가 불안감을 제치고 올라와 내 몸을 애워싼다. 두려움인가. 등골이 오싹해지며 손끝이 떨린다. 비로소 데이다라의 마음 깊은 곳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것이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어긋난 사랑이고, 사랑이라기보다는 집착에 가깝다는 것을.

 "여긴 내 자리야… 그렇지…? 음…?"

 "으, 응… 맞아……."

 "하하하……."

 그가 어슬어슬 밑으로 내려가 내 배 위에 머리를 기댄다. 금발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쓰다듬어주자, 그 상냥함에 화답하듯이 그도 나를 어루만진다.

 "내 거야…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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