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얼마 만이었는지 모르겠다. 요즘 데이다라는 임무가 끝나고 종종 나를 위해 무언가 사들고 들어오는데 엊저녁 그가 내 앞으로 내민 것은 놀랍게도 '고기'였다.

 파트너인 토비를 제외하고는 아마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다. 나와 마찬가지로 다른 멤버들은 데이다라의 입으로 고기가 들어가는 장면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놀라웠던 만큼, '평소와 같은 식사'라는 것은 쉽지 않았다. 오랫동안 고기를 멀리했던 데이다라는 그것의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 여지없이 안색이 나빠졌다. 처음에는 꿋꿋이 먹었지만 결국에는 입을 틀어막고서 주방을 뛰쳐나가야 했다.

 어째서 갑자기 무리를 했을까. 누구에게나 싫어하는 음식이 있겠지만 데이다라가 고기를 먹지 못하는 것은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과거의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건지도, 어쩌면 그의 마음도 단지 나와 같은 것을 먹고 싶었을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데이다라는 평소에 식사를 자주 거르는데 오늘도 아침을 먹지 않았다. 겉보기에는 아무렇지 않은 듯했지만 혹시라도 탈이 나지는 않았을지 걱정된다.

 터벅터벅─.

 따뜻한 수프를 가지고 복도를 지나던 중 토비와 마주쳤다. 마침 잘 됐다고 생각했다. 나와 있을 때 데이다라는 언제나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으니까, 임무를 수행하고 있을 때 어떻게 지내는지 파트너인 토비에게 물어 보는 거다.

 일단 토비의 말에 따르면 데이다라는 내가 걱정했던 것에 비해 잘 지내고 있었다. 가장 걱정이었던 불면증이 많이 나아져서 요즘에는 밤마다 잘 자고 식사도 거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한 가지 신경 쓰이는 점이 있다. 데이다라가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격하게 공감한다든지, 자신의 체형에 대해 고민한다든지, 갑자기 깔끔한 것에 집착하고, 때로는 적에게 불필요한 동정심을 느낀다고 한다.

 그건 그렇다 치고, 토비를 곤란하게 만든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파트너인 자신을 향한 '의심'이었다. 언제나와 같이 농담을 던졌을 뿐인데 새삼스레 예민하게 반응하더니, 멋대로 해석하고, 분노하고, 그야말로 질투의 화신이 되었단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요즘에는 토비도 꽤나 고단한 것 같다. 그렇잖아도 응석부리길 좋아하는 녀석이 오늘따라 더 아이처럼 엉겨 붙는다.

 "~, 놀자~."

 "안 돼."

 응석이 통하질 않자 으으응 하고 아양을 떤다. 아무리 친구라지만 버젓이 임자가 있는 여자를 습관처럼 끌어안으면 어쩌자는 건지.

 "알았으니까 쉬고 있어. 데이다라한테 다녀올게."

 지쳐 있다면 따뜻한 수프가 그런대로 도움이 될 것이다. 혹시 토비에게도 필요할까 싶어서 넉넉하게 만들었다. 근데 이 녀석은 고마운 줄도 모르고 능글능글 계속 장난을 친다.

 "방에서 기다리라구~? 도 참~, 뭐라 말해도 적극적이라니까~. 기쁘지만 아직 이른 시간이잖아~. 밖에 나가서 놀고 싶어~."

 이봐, 내 남편이 바로 저 방에 있거든. 지금 하고 있는 얘기 다 들릴지도 모르거든. 빠직 하려는 찰나 토비가 나의 뺨을 감싼다. 커다란 손의 압박에 무심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아이처럼 행동하면서도 그림자 속의 검은 눈동자는 항상 나를 내려다본다.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자기보다 작은, 약한, 안타까운 것을 바라보는 눈빛이다.

 "밖에 나가서 뭘 할 셈이냐."

 갑자기 들려오는 음성에 흠칫 놀랐다. 토비의 덩치에 가려져 보이지 않지만 데이다라의 목소리다.

 "고기 먹을 거예요~. 보시다시피 가 많이 야위었잖아요~. 선배는 안 되니까 제가 대신 가려구요~."

 아냐, 우리 그런 약속한 적 없어. 당황해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어버버 하는 사이 의도치 않은 침묵이 흐르고 데이다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그런데도 토비 이 녀석은 일부러 도발하듯이 말하는 것도 모자라 내게 부비적거리고 있다.

 "늦지 않도록 해라."

 "헤~?"

 "식사가 끝나면 곧장 돌아오란 말이다."

 "데, 데이다라… 난 별로…"

 먹지 않아도 되는데. 말을 잇기 전 데이다라가 내게로 걸어온다. 거친 손길로 토비의 얼굴을 밀어내고는 발버둥치는 그를 무시한 채, 놀랍게도 평소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인다.

 "나도 점토를 구하러 가야 해서 저녁까지 아지트를 비우게 될 거다. 모처럼 외출하게 되었으니 좋아하는 거 많이 먹고… 재밌게 놀다 와라. 음."

 지금 상황에 이런 미소는 반대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 그래야 자연스럽겠지. 하지만 어째서인지 비꼬는 듯한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잘 됐다는 듯 너무나도 태연한 반응이다.

 (…)

 다시 돌아가는 편이 좋겠지. 아지트를 나오면서 수십 번도 더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이 들 때마다 데이다라의 미소가 떠올라서 머리가 멍해졌다. 질투의 화신은커녕 아무래도 좋다는 반응이 아니었던가. 괜한 트러블이 일어나는 것보다는 낫지만 가슴 한편이 허전하다.

 '모처럼 외출하게 되었으니…' 그렇게 말해도 마음 편히 다녀올 수 있을 리가 없다. 기껏 유명한 가게를 찾아가서는 결국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어쨌든 토비에게는 고마움을 느낀다. 언제나와 같은 밝은 분위기 덕분에 조금은 기분전환을 할 수 있었다. 문득 욕심이 나서 어딘가 놀러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데이다라가 일찍 돌아오라고 했으니 여기서는 남편의 말을 듣는 편이 좋을 것이다. 애당초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여유롭게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한다.

 이런 마음을 데이다라가 좀 더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가끔 데이트를 하니까 예전보다는 훨씬 발전한 셈이지만, 그래도 산책이라든지, 가벼운 대화라든지,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은 여전히 부족하게 느껴진다.

 아직 이른 저녁이다. 데이다라는 느지막이 돌아올 것이다. 자신의 방 침대에 엎어져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노라면 똑똑똑- 토비가 노크를 하고 들어온다. 마침 뭔가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세심하게도 차를 내어와서 여유로운 티타임을 갖게 되었다.

 "오늘은 정말 고마웠어."

 "뭘~. 세컨드로서 당연한 거지~."

 푸훗-. 웃음이 터져나와 손을 입가로 가져간다.

 "데이다라도 참… 왜 그런 농담을 한담."

 "단순한 농담은 아닌 것 같은데~."

 머리 위로 물음표를 그리자, 토비가 내게 무언가 말하려다 그만두고는 찻잔을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한 번 확인해 볼까~?"

  왠지 의미심장한 말투다. 어느덧 내게 다가온 그가 침대에 오를 듯 말 듯 애매하게 걸터앉고서 나를 지그시 바라본다. 그러고는 작정한 것처럼 씨익 웃더니 갑자기 커다란 손으로 나를 번쩍 들어올린다. 시야가 빙글 돈다.

 나는 지금 토비의 단단한 몸에 올라 타 있다. 어째서 이런 이상야릇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거지. 내려가려는 찰나, 문이 쾅! 열리며 귀에 익은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현장불습이다! 음!"

 엄청난 기세로 문을 열어 제쳤으나 데이다라의 얼굴에서 결연함과 그 밖의 모든 감정이 사라진다. 아무런 감정도 비치지 않고 다만 눈시울이 붉어진다.

 시간이 멈춘 듯 정적이 흐르고, 딱딱하게 굳어버린 데이다라가 미세한 경련을 일으킨다. 스르르 눈꺼풀이 닫힘과 동시에 바닥으로 털썩 쓰러진다.

 (…)

 "너 때문이야."

 날카롭게 쏘아붙이면서도 나의 목소리는 가녀리게 떨린다. 의료닌자가 어서 도착해야 할 텐데. 나로서는 의식을 잃은 데이다라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 기껏해야 차가운 수건으로 얼굴을 차갑게 식혀 주는 것뿐이다.

 "대체 왜 그런 장난을 친 거야?"

 금발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치운 뒤 안색을 살핀다. 여전히 죽은 사람처럼 창백하다. 가슴이 아프다. 바짝 마른 입술에 입을 맞추고, 안타깝게 쓰다듬는다.

 "아무래도 내가 선배를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었나 봐~. 겨우 그 정도 일로 졸도해 버리다니~."

 째릿- 매서운 눈빛으로 토비를 노려본다. 능청스레 겁먹은 척하며 어깨를 움츠리더니 은근슬쩍 다가와 침대에 걸터앉는다. 얄미워서 때려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돌이켜 생각하니 민망해서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 와중에도 부끄럽나 보구나~?"

 뻔뻔하게 뺨을 감싸오는 커다란 곰발바닥을 뿌리친다. 좀 더 일찍 반응했어야 했는데 한 템포 늦었다. 토비에게는 꽤나 재밌는 반응이었겠지. 완전히 나를 놀리고 있다. 퉁명스런 태도가 오히려 재밌다는 듯이 피식 웃음을 터뜨린다.

 "알았어~. 착한 아이로 있을게~."

 누가 봐도 아이가 아니다. 능글맞은 아저씨 같으니. 역시 넌 좀 맞아야 해. 짝! 스매싱을 날린다. 그러나 단단한 팔뚝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음…"

 방금 전의 소리에 깬 듯 데이다라가 뒤척이며 눈을 뜬다. 붉게 충혈되어서 선명하던 하늘색도 흐릿해졌다. 조용히 나로부터 토비에게로 시선이 옮겨 간다. 순간 봐서는 안 될 것을 본 것처럼 놀라더니 벌떡 몸을 일으켜 분노어린 목소리로 외친다.

 "너!!!"

 "저요~?"

 "넌 죽었어!!!"

 "헤~?;; 자, 잠ㄲ…;;;"

 그것은 내게 있어서도 상당히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여러 가지 의미로. 무슨 말인가 하면, 바로 지금, 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데이다라가 다짜고짜 토비의 머리채를, 멱살도 아니고 머리채를 잡아끌었다. 이런 상황을 예상치 못했던 것은 토비도 마찬가지다. 평소처럼 통과시킬 생각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아아아아악~!"

"참을 만큼 참았어! 이제 이판사판이다! 어차피 너 같은 놈이랑은 말이 통하지 않아! 머리털을 죄다 뽑아서 다시는 누구도 홀리지 못하게 해주마!"

 너무 놀란 나머지 넋을 잃고 말았다. 내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 데이다라와 토비가 동시에 침대 아래로 나가떨어진다.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뒤엉켜서 그야말로 엉망진창이다.

"아아아악~! 아아아아악~! 말로 해요~! 도와줘~!"

 "니가 뭔데 를 불러! 그녀의 이름을 입에 담지 마!"


"아아아아아아악~! 싫어어엇~! ~! ~!"

 "이 자식이! 해보자는 거냐!
그래! 너 오늘 진짜 죽어봐라!"

 중저음의 목소리가 거의 묻힐 정도로 날카로운 외침에 엄청난 독기가 서려 있다. 어찌나 세게 잡아당기는 것인지 데이다라보다 유리한 신체조건을 가진 토비가 꼼짝도 하지 못하고 버둥거린다. 데이다라도 데이다라지만 이대로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데이다라! 그만둬!"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데이다라가 충격을 받은 듯 멍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내 손에 밀쳐져 토비에게서 떨어졌다. 시트 위로 쓰러지는 모습이 정말이지 버림받은 여자처럼 가련하다.

 " 봤지~? 선배가 나 죽이려고 하는 거 봤지~? 미쳤나봐 어떡해~. 흐애애앵~~~."

 정신이 하나도 없다. 뭘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일단 내게 달라붙어 훌쩍이는 토비의 머리를 살펴본다. 바닥에 흩어져 있는 검푸른색 머리털을 보고 흠칫 놀랐는데 다행히 보기 흉한 땜빵은 안 생긴 것 같다. 휴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때아닌 고초를 겪은 정수리를 쓰다듬는다.

 "너희들…"

 앗차 하고 돌아보지만 이미 늦었다. 눈물 어린 하늘색 눈동자에 절망이 비친다.

 "내 앞에서 뭐 하는 거야…? 떨어져─!!! 떨어져 당장──!!!"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 울려 퍼진다. 또 다시 스르르 눈이 감기며 옆으로 기울어지다 힘없이 풀썩 쓰러진다. 나와 토비 모두 놀라서 굳어 버리고 그대로 정적이 흐른다. 정신을 차린 뒤 달려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기절했다. 몸을 흔들어 깨워도 미동을 않는다. 단시간에 부쩍 수척해진 얼굴은 아까보다 더 창백하다.

 똑똑똑─.

"저기,  씨? 안에 계십니까?"

 의료닌자가 도착했다. 문 너머로부터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

 고질적인 영양불균형으로 약간의 문제가 있으나 건강에 큰 이상은 없다. 정말 다행이다. 그것만으로 오늘 하루 받았던 놀라움과 충격은 그냥 넘길 수 있다. 다만 마지막까지 나를 놀라게 했던 뜻밖의 사실은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데이다라 씨가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하셔서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만… 실은 얼마 전 임무 중에 내상을 입으셔서 진통제를 처방해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만… 다른 환자 분과 헷갈려서… 실수로 약을 잘못 전달한 것 같습니다. 진통제가 아니라… 그… 에스트로겐을… 대용량으로……."

 "에스트로겐…? 여성호르몬이요…?"

 "예… 한데 당최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진통제가 아니었다면 먹어도 분명히 효과가 없었을 것이고, 통증이 상당히 심하셨을 텐데, 어째서 진작 제게 얘기하지 않으신 건지… 혹시 요즘 데이다라 씨에게 크게 스트레스 받을 만한 일은 없습니까? 정신적으로 지쳐 있는 상태라면 있을 법도 한 얘기라서요."

 "……."

 의료닌자는 면목이 없다며 고개 숙여 사죄한 뒤 진통제와 안정제를 두고 떠났다. 토비도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남편의 옆을 지킬 사람은 아내뿐이다. 잠든 데이다라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넌지시 묻는다. 혹시 나 때문인 거야? 부탁이니까 아프거나 힘들 때는 솔직하게 말해줘. 너의 말대로 이제는 부부잖아. 서로 감추는 것 없이 전부 알아야 하는 거잖아.

 덩그러니 놓인 그의 손이 차갑게 식지 않도록 꼭 붙잡고 지난 시간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 본다. 고개를 숙인 채 이런 저런 일들을 반성하고 나니 데이다라가 작게 신음하며 깨어난다. 아까보다는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기에 다행이지만 어디까지나 안정제를 맞은 덕분이다. 자신의 무능함에 자책감이 더해지고 가슴이 아려온다.

 "맙소사… 내가 무슨 일을 벌인 거지…?"

 의식이 돌아옴과 동시에 모든 기억이 되살아나며 그의 두 눈이 점점 커다랗게 변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전혀 본인답지 않은 행동이었고 제 분에 못 이겨 두 번이나 졸도했다. 하필이면 여성 환자와 약이 바뀌는 바람에 호르몬 이상으로 생긴 해프닝이었지만 이유를 막론하고 민망함이 밀려오는 듯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다.

 "나는… 나는… 하아……."

 방금 전까지 결코 가벼이 여길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데이다라가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며 부끄러워하는 걸 보니 귀여워서 웃음이 나올 것 같다. 약간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지만 조심스레 들추어 본다. 세상에 유일무이한 보석, 나의 하늘,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이래서 눈치 채지 못할 수밖에 없었던 것인가. 아아, 모르겠다. 그냥 웃어 버리자.

 "여보 일어났어요?"

 "네……."

 능글맞은 표정을 짓고 있는 내게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데이다라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는다. 아직 경황이 없는 듯하다. 괜찮다는 말 대신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의 뺨을 어루만진다.

 "오늘 있었던 일은 신경 쓰지 말아요. 당신은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으니까."

 "아니요… 미안해요… 한결같은 당신을 자꾸 의심하고… 나도 이런 내가 정말 싫어요……."

 두 사람이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은 오직 필요할 때뿐이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언제나 서로 존중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제는 단순한 누나와 동생의 관계가 아니니까, 두 사람의 미래를 위해, 나이 차이와 상관없이 상대방을 진심으로 섬기려 한다. 아직 서툴지만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지금도 이렇게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고 있지 않은가.

 "당신이 했던 말을 생각해 봐요. 죽는 한이 있어도 내가 지금보다 더 사랑받아야 한다고 했잖아요. 어떻게 나만 그렇겠어요. 당신이 질투하는 건 지금보다 더 사랑받을 자격이 있기 때문에 당연한 거예요."

 사랑한다는 말 하나면 모든 것이 완벽해질 거라고 한때는 나도 순진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랑의 본질을 잊고 자꾸만 바보처럼 행동해서 이렇듯 견고해 보이는 두 사람의 신뢰관계에도 틈이 생겨나는 것이다.

 "다음에 또… 내가 현장불습이라고 외치면서 등장해도 그렇게 말할 수 있겠어요…?"

 행복한 마음을 표현하는 웃음까지 구태여 감출 필요는 없겠지. 푸훗 웃음을 터뜨리며 데이다라의 목을 끌어안는다. 데이다라도 나를 마주안는다. 듬직한 어깨와 금발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고 천천히 심호흡한다. 이렇게 남편의 존재감을 느끼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안해진다.

 "오늘 진짜 귀여웠어요."

 "난… 부끄러워서 죽을 것 같아요……."

 쪽, 쪽쪽, 이마와 코 그리고 입술에 입을 맞추고서 뭔가 부족하다 싶어 머리카락을 제치고 가려져 있던 곳에도 쪽, 쪽쪽, 차례로 키스했다. 계속 하다 보면 데이다라도 더는 부끄럽지 않겠지. 이참에 남편한테 제대로 응석이나 부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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