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렇게 갑자기 물으면 진지하게 대답해야 할지 농담처럼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만. 음."
"너무 진지하게도 말고 너무 농담처럼도 말고 딱 중간 정도로만 대답해봐." 흐음 하고 작게 숨을 내쉬며 작업중이던 데이다라가 잠시 쉬려는 듯 손에 묻은 점토를 수건으로 닦는다. 집중하는 동안 이마에 맺힌 식은땀에 의해, 아주 약간이지만 흐트러진 금발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긴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턱 밑으로 가져가며 고민한다. "딱 한 번이라도 좋으니 너와 완전히 동등한 입장이 되어보고 싶다." "?" 의아한 표정을 짓자, 그가 손을 내리며 말을 잇는다. "나이 차이 없이, 이해 차이 없이, 같은 시선으로 보고, 생각하고, 마음 편히 웃을 수 있는 그런 시간을 원한다." 뭐랄까, 단순한 듯하면서도 굉장히 어렵구나. 오랜 작업에 고단함을 느끼지 않을까 걱정되어서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줄까 하고 꺼낸 말이었는데, (솔직히 가벼운 키스 정도를 예상했다.) 그 정도로 보기에는 꽤나 깊은 생각을 필요로 하는 대답이다. "너, 너무 진지하게는 말라고 했잖아." "그렇군. 미안하다." 딱히 진지하거나 무거운 얘기를 해도 상관없지만 평소에 내가 너무 가벼운 생각만 하고 있는 것 아닐까 하고 문득 조금 부끄러워진다. "그럼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나와 같은 나이로 변신해줘. 그리고 재밌게 놀자. 음." 같은 나이라면 19살로? 그건 곤란하다. "아, 안 돼." 데이다라의 시선을 피해 돌아선 뒤 방을 서성인다. "어째서?" 속에 있던 것을 내뱉으려다 그만두고는, 고개를 젓는다. "안 돼. 절 대 안 돼." "절대라고 말할 정도냐? 전에도 한 번 했잖아." 데이다라가 불면증으로 쓰러졌다가 깨어났던 그날을 얘기하는 것인가. 새삼스럽지만 그때 변신한 상태의 그에게 했던 일들을 생각하면 얼굴이 뜨거워진다. 내 남자의 어린 시절 모습이 너무 귀여웠던 나머지 무심코 파렴치한 일을 해버렸지. 덕분에 지금 상당히 무안해졌지만 그래도 어쩔 수가 없다. "그땐 데이다라가 변신했던 거였으니까 괜찮았지. 어린애가 더 어려진 것 뿐이잖… 헛!" 당황해서 저도 모르게 아무렇게나 말해버렸다. 내가 미쳤지. 요즘 데이다라가 나이 때문에 얼마나 예민해져 있는지 알면서. 차라리 싸늘한 반응을 보인다면 나을 텐데. 무덤덤한 성격의 데이다라가 내 말 한 마디에 상처받은 듯한 얼굴을 하니 때아닌 자책감이 밀려온다. "어, 어쨌든 내가 변하는 건 안 돼." 미안, 데이다라. 단호해질 수밖에 없는 나를 이해해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먼저 말을 꺼낸 건 너다. 그래서 얘기한 것인데 이런 반응이냐." "다른 걸 얘기해. 나한테 바라는 게 그렇게 없어?" "모처럼의 기회니까 아무렇게나 쓰고 싶지 않은 거다." 데이다라도 은근히 단호하게 팔짱을 낀다. 내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있는데 계속 가벼운 방향으로 돌리기도 뭐하고, 이제 어떡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네가 변하는 것은 어째서 안 된다는 거냐? 음?" 그냥 솔직하게 말하고 이해를 구하는 수밖에 없나. "생각을 해봐, 10대의 팽팽한 얼굴을 보다가 다시 30으로 돌아가면 내가 어떻게 보이겠어?" 데이다라가 눈을 크게 뜨며 놀라는가 하면, 말을 끝내기 무섭게 조금 큰소리로 나를 나무란다. "그것 때문이냐? 내 눈에 문제가 생길까봐?" 움찔 하며 입을 다물고는 데이다라의 눈치를 살핀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데 참는 듯 입술을 잘근거리고 있다. 아마 어리다고 해서 누구나 철없이 예쁜 것만 쫓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거겠지. " 네가 남자라도 사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다. 이제 와서 그런 것을 신경쓸 것 같으냐?" 그의 말이 맞다. 데이다라는 어떤 말도 가볍게 내뱉는 녀석이 아니니 그때도 분명 진심이었을 텐데, 고작 이 정도 일로 심경에 변화가 생길 리 없다. 내 남자라면 믿을 수 있다. 그러나 불안을 지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꼭 같은 나이가 되어야 해? 차라리 그때처럼 꼬맹이 모습으로 변하면 안 될까?" "음?" 데이다라와 같은 나이인 19살이라면 미성년자라고 해도 이미 육체적으로 충분히 성숙한 시기니까 지금과 비교가 될지도 모르지만, 아주 어린 시절의 모습이라면 괜찮다. 차라리 그렇게 하는 게 덜 위화감이 들 것이다. "그것도 보고싶긴 하군. 너의 어린 시절은 사진 한 장 남아 있지 않으니." 데이다라가 시선을 모로 돌리며 중얼거리듯 말한다. 그러나 그의 고민은 길지 않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아까 말했다시피…" "오빠라고 불러줄게." 말꼬리를 자르며 끼어들자 그가 멈칫하더니, 조금 놀란 듯한 얼굴이 되어 나를 바라본다. "사소리 오빠한테 했던 것처럼 애교도 부릴게." 애인으로서 그 정도는 별 것 아닐지도 모르지만 내게 있어서 애교란 것은 상당히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것을 아는 데이다라도 이전의 놀란 얼굴에 눈이 더 커졌다. 그대로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그가 능청스레 고개를 모로 돌리며 읏흠 하고 헛기침을 한다. "지금은 소원을 얘기하고 있는 거니까……." "난 긴 포니테일이었지만 데이다라가 원한다면 취향대로 짧은 모양을 해줄게." "아, 아무것도 바꿀 필요 없다! 내가 흥미 있는 건 있는 그대로의 네 모습이라고! 음!" 하지만 넌 짧은 모양을 좋아잖아. 그렇게 말하려다 구시렁거리는 소리로 들릴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그리고 뜸을 들이면 대화가 원점으로 돌아갈지도 모르니, 조금 치사하지만, 그가 머뭇거리는 틈에 인을 맺어 꼬맹이의 모습으로 변했다. "데이다라가 원하는 것은 다음에 생각해볼 테니까 이번에는 이걸로 봐줘." "아아… 그래……." 역시 만족스럽지 못한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시선을 피하고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뒷편에 놓여 있던 의자에 앉은 그가 조금 멍한 표정이 되어 나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다. "어렸을 때는… 이런 느낌이었구나……." 자신에게는 별 것 아니지만 데이다라에게는 처음 보는 내 꼬맹이 모습이 신기한 걸까. "몇 살 때냐? 음?" 어느덧 제법 흥미가 생긴 듯한 목소리로 그가 내게 묻는다. "12살 때의 모습이야. 내가 마을을 떠났을 때." "정말 꼬맹이로군, 하하하." 그리고 이제는 즐거운 듯이 웃고 있다. 보아하니 계속 이대로 있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래봤자 데이다라 너랑 7살 차이밖에 안 나는걸." "어이, 오빠라고 부르기로 한 것은 어찌 된 거냐? 버릇없는 꼬맹이잖아. 음." 그렇지, 참. 급한대로 내뱉었던 말이라 잠시 잊고 있었다. 그런데 데이다라 너도 그 긴 세월 동안 한 번도 나를 누나라고 불렀던 적 없었잖아. 한 번쯤은 따져 묻고도 싶었지만 이제와서 그런 얘기를 꺼내기도 뭣하다. 애인이 된 시점부터 누나니 동생이니 하는 것은 되돌릴 수 없는 과거가 되어버렸으니까. "미안, 데이다라 오빠." "풉─." 방금 명백하게 나를 놀리는 듯한 웃음소리를 들었다. 능청스레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지만 표정으로 다 드러난다. 크윽. 그렇잖아도 지금 상황이 어찌 보면 약간 굴욕적인데, 문득 쿠로츠치 씨의 말투가 떠올라서 괜히 더 열받는다. 그래도 데이다라가 나름 재밌다고 느끼는 것 같아 다행이다. "이리 와라, ." 그의 부름에 가까이 다가가자,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나를 번쩍 들어 올린다. 12살 때면 내 인생 전부를 통틀어서 가장 말랐을 때니 조금도 무리일 것이 없다. 어쩌면 지금 내 모습이 마른 것을 좋아하는 데이다라의 취향에 더 걸맞을지도 모른다. "내려줘." 버둥버둥 허공에 물장구를 친다. "나와 같은 미성년자구나. 음." 문득 데이다라에게로 시선을 되돌리면, 그가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다. 왠지 모르게 따뜻하면서도 씁쓸함이 느껴지는 웃음이다. 이를 테면 내가 평소에 데이다라를 바라보면서 이따금씩 갖게 되는 감정이랄까. 비록 그가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입장이 같은 게 아니라 반대가 되어버린 것도 그런대로 괜찮은 경험인 것 같다. "저기, 이런 모습을 하고 있어도 안쪽은 엄연히 성인이거든? 너랑은 다르다구." 예민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지만 괜스레 한 번 꼬집어본다. 그리고 방금 살짝 후회했다. 데이다라의 웃는 얼굴은 조금도 변함이 없는데, 아무 말 없이 그저 웃고만 있으니 묘하게 소름 돋는다. ", 지금은 '너'가 아니잖냐." "미안, 습관적으로 튀어나왔어." 그가 나를 조심스레 무릎에 앉힌다. 자신과 마주보게 한 채. 잠깐 소름이 돋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대로 돌아왔다. 내 모습이 이렇기 때문일까, 왠지 모르게 따뜻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다. "손 줘봐라. 음." 데이다라의 말에 따르니, 그와 내 손 크기가 거의 두 배 가까이 차이난다. 내 본래 모습이라면 남녀의 손이라는 것만 구분지을 수 있을 뿐 거의 비슷한데, 지금은 토비의 곰발바닥과 비교했을 때보다 위화감이 더 크다. "정말 작군." 그가 만지작거리던 손을 내려놓는가 하면 이번엔 내 얼굴에 흥미를 갖는다. "코랑 입술도 작아."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지만 그 동안 데이다라가 이렇게까지 내게 시각적으로 집중을 했던 적은 없었다. 그냥 보는 게 아니라, 무언가 새로운 타겟을 쫓는 듯한 눈으로 나를 탐구하고 있다. 이따금씩 찾아오는 침묵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귀여운데. 음." 그의 손이 뺨과 귀를 살살 어루만진다. 기분이 좋아서 점점 몽롱해진다. 얌전히 그의 손길을 받아들이고 있는데, 어째선지 멈추어서 움직이지 않는다. 깨닫고 보면 어느덧 그의 시선이 내 쇄골 아래 쪽으로 집중되어 있다. "이때부터 이미 멈춘 거였나……." 주어가 빠졌지만 분명하게 알 것 같은 그의 혼잣말에 빠직 하고 일순간 혈압이 치솟는다. 하지만 제대로된 데이트도 못하는 처지에 모처럼 달달한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다. 자신의 몸을 두 팔로 감싸안으며 그의 시선을 살며시 차단한다. "." 행여 부러질까 데이다라가 가지처럼 얇은 내 팔을 조심스레 붙잡는다.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문득 뜨거운 것이 올라와서 홱 하니 그의 손을 뿌리친다. 그러나 별로 개의치않고 계속 나를 야릇하게 쓰다듬는다. "하자." 마찬가지로 주어가 빠졌지만 나는 그의 말을 곧바로 이해했다. "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그러니까, 하자고." 무언가 은밀하게 다가오는가 싶더니 그가 갑자기 내 양팔을 꽉 붙잡는다. 일부러 붙잡은 건지 무의식적으로 붙잡은 건지 모르겠다. 하여간 피할 수가 없다. "아직 이른 저녁이지만 뭐 어떠냐. 음." "이른 것은 시간만이 아니잖아! 아무리 안쪽이 어른이라고 해도 이런 모습으로 하는 것은 이상해! 위험하다고!" 말 그대로 위험을 감지한 내 몸이 생각보다 먼저 발버둥을 쳐보지만 그에게 붙잡힌 상태로는 이렇다 할 저항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원래 위험한 관계였다. 뭘 새삼스레." 뜨끔─. 너무 익숙해져서 또 다시 잊을 뻔했다. 데이다라가 아직 미성년자이고, 자신이 그런 그와 여러가지 일을 했다는 것을. 그리고 여지없이 나의 양심은 고통받는다. 이제 더는 내게 거부할 명분이 없다. "하지만 아까는 그냥 놀자고 했잖아!" 에이, 마지막 발악이다. "그래, 일단 내 몸에 생긴 문제부터 해결하고. 음." 아니 대체 언제부터. 두려운 만큼 당황해서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고 어버버거리는 사이, 그의 손이 얇은 옷 안으로 무리없이 침범해 들어온다. 허리를 타고 스윽 올라오는데 여러가지 의미로 소름이 확 돋았다. "지금이라면 딱히 침대로 가지 않아도 되겠군." "에?" 싫은 것을 표현할 틈도 없이 분위기에 휩싸여 그대로 끌려간다.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깨닫고보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시점에 이르러 있다. "걱정마라, 그런대로 기분 좋을 거다." 나를 반대 방향으로 돌아 앉힌 뒤 벌어진 앞섬 사이로 손을 넣어 가슴을 만지고, 뒤에서는 귀 언저리를 핥는다. 갑작스런 상황에도 빠르게 적응하는 몸은 나의 애인에게 완전히 익숙해져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상냥한 나의 애인에게. 그러니까 이런 상황은 옳지 않다. 그의 손가락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끼는 순간 아픔에 몸을 움츠린다. 짜릿한 만큼 두렵다. 아직은 견딜만 하지만 이 다음으로는? 그다지 생각하고 싶지 않다. "괜찮아, 금방 익숙해질 거야." 평소보다 다정한 목소리에도 점점 더 움츠러들게 된다. 바짝 긴장한 채 감각을 닫고 있다가 마음의 준비도 없이 절정이 와버려서 도리어 더 민감하게 반응해버렸다. 힘이 빠지며 앞으로 기울어지면 나를 끌어안은 데이다라도 따라온다. 조금도 쉴 틈을 주지 않을 생각인 건지, 나의 민감한 곳에 끈질기게 키스하며 계속 자극한다. 파르르 떨리는 몸에 아무리 애정공세를 해도 긴장이 풀리지 않자, 애써 조급함을 감추며 그가 내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인다. ", 우리 이거 끝내고나면 밖으로 나갈까? 음?" 두려움에 불안함을 충분히 느끼면서도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든다. "정말?" 그러기 무섭게, 갑자기 가장 깊숙한 곳까지 들어온다. 이렇게 작은 내가 불쌍하지도 않은지, 다리를 바짝 들게 하고는 움직일 수 없도록 꽉 붙잡는다. 그런 다음에는 아픔을 호소할 틈도 없이 거친 움직임이 반복된다. 안쪽에서부터 뭐라 형용할 수가 없는 아픔이 척추를 타고 올라온다. 처음부터 생각했던 것이지만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행위다. 자신의 애인에게 당한 일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겠다. 눈물이 시야를 가리고, 입안으로 들어오고, 그의 무릎도 상당히 적셨다. 그런 와중에도 끝까지 실낱같은 이성을 붙잡고 있었지만 더 이상은─. "너무 심했나. 잠깐 쉬었다 하는 편이 좋겠군. 음." 내 울음소리를 방금 처음 들은 것은 아닐 테고, 이제 와서 새삼 안쓰럽다는 듯이 그가 내 몸을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그의 손이 스치는 순간 옷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게 뭐냐?" 주머니 안에 들어 있는 사진을 꺼내는 데이다라. 그것을 확인함과 동시에 그의 한쪽 팔이 허리를 감싸온다. 그리고 은근히 힘이 들어간다. "이걸 요즘도 몸에 지니고 다녀?"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고 싶지만 그럴만한 분위기가 아니다. 하는 수 없이 눈물 섞인 목소리로 대답한다. "혼자 있을 때… 외롭고… 무서우니까……." 데이다라의 사진도 그의 서랍장 안에 들어 있긴 하지만 예전부터 그의 방에는 함부로 들어가지 못했고, 개인적인 물건에 손을 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가뜩이나 한 장밖에 남지 않은 소중한 물건인데, 아무리 애인이라고 해도 멋대로 꺼내보는 것은 좋지 않다. 때문에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친구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이 자식한테 외로워 무서워라고 기도라도 한다는 거냐?" 사진을 볼 때 오비토에게 주로 시선이 향하는 것은 맞지만 딱히 그 하나만을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바로 해명하고 싶은데 몸 전체가 파르르 떨려서 입이 쉽게 떨어지질 않는다. "그런 거냐?" 그가 내게 다시 묻는다. "그래?" 그리고 다시 한 번 묻지만, 지금 나는 거친 숨소리밖에 돌려줄 수가 없다. "네가 원하는대로 해." 그가 내 손에 사진을 쥐어준다. 생각보다 상냥한 손길에 안심했지만 곧바로 이상한 분위기를 느꼈다. 어째서 원래 있던 자리에 두지 않고 이런 식으로 돌려주는 거지. 속으로 생각하며 직접 주머니에 넣으려는 찰나─. "떨어지지 않게 꼭 붙잡아라." 그의 낮은 목소리, 그가 나를 끌어안는다. 그가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정면의 테이블에 그대로 나를 밀쳐넣는다. 몸이 뒤틀리는 듯한 고통이 느껴지는데 두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아 아픔을 호소할 힘 조차 낼 수가 없다. "그만둬…! 내려줘…! 내려줘…!" "아픈 거 안다. 조금만 참아." 갈라지는 목소리로 애원해봐도 소용이 없다. 허리를 붙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며 계속 버티라고 할 뿐, 나를 조금도 놓아줄 생각이 없는 듯하다. "너의 소중한 사진이 구겨지고 있다만, 괜찮은 거냐?" "아… 오비토……." 저도 모르게 움켜쥐고 있던 손을 펴자 다행히 구겨졌던 사진이 원래대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리운 얼굴에 살짝 흠집이 생겼다. 안타까운 마음에 저도 모르게 이름을 중얼거리는 순간 행위가 잠깐 멈추는가 싶더니 다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느릿한 움직임에 아픔은 덜하지만 두 손이 허리를 강하게 압박해와서 이전과 조금 다른 느낌으로 괴롭다. 숨을 쉬는 일 조차 버겁다. "굉장하군. 방금 네가 녀석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무언가 찌릿 하고 느껴졌다. 뭐지, 질투인가? 이상하다는 건 알지만 나쁘지 않아." 그가 상체를 숙여 내게 다가오는가 하면 귓가에 대고 뜨겁게 속삭인다. "좀 더 불러봐라. 음." 울컥 하는 마음에 큰소리를 내고 싶지만 그러기엔 너무 지쳐버렸다. "변태……." 흥 하고 실소를 터뜨리는 소리, 그리고 귀엽지만 살벌한 투덜거림이 들려온다. "그래, 녀석은 너를 지켜주는 용사고 나는 변태 대마왕이다." 살짝 웃음이 나올 뻔했는데 아픔이 이를 막았다. 여전히 괴롭지만 두려움이 어느정도 가라앉고나니 이제는 오기가 생긴다. 까짓거 원한다면 불러주지. "오비토… 오비토……." 애인과의 관계 중에 다른 남자의 이름을 부르고 있으니 과연 양심이 찔린다. 내게 부르라고 시킬 땐 언제고, 이 변태는 삐치기라도 한 건지 갑자기 조용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침묵이 지나간 뒤, 그가 조금 울 것 같은 목소리로 투덜거린다. "정말 녀석을 좋아하는 거냐?" 괜스레 짓궂은 마음에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내 머리에 자신의 이마를 콕 찧는다. 정확히는 그가 이마에 두르고 있는 서클렛이다. 그대로 살며시 짓누르는데 은근히 압박감이 크다. "녀석과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할 거냐? 일단 애인이 있다는 것부터 밝혀라. 음.╬"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이자, 내게 머리를 기댄 채 그가 뜨거운 숨결을 내뱉는다. 그리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과묵해져서는 오로지 쾌감만을 쫓는다. "하아… 하아……." 여전히 괴롭지만 어느정도 긴장이 풀리니 아픈 만큼 내게도 쾌감이 찾아온다. 입술 사이로 새어나가는 소리를 애써 참지 않고 흘려보낸다. 그러자 거친 숨소리에 뒤섞여 그의 낮은 목소리도 들려온다. "하아… 하아… 하……." 아무런 보호도 없이 그냥 시작한데다 자기 멋대로 해대서 솔직히 처음에는 끝난 뒤에 뺨이라도 때려주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그래도 조금은 미안했는지 전부 안에 내어버리는 만행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겨우 그 정도로 깨끗이 용서해버리는 자신이 스스로도 바보처럼 느껴지지만 아무리 얄미워도 내 남자인데 무엇을 어찌 하리. 그나마 질투하는 게 귀여웠으니 봐주기로 했다. ", 이제 밖으로 나갈까? 음?"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데, 저는 편하게 침대에 걸터앉아 장난꾸러기처럼 웃고 있다. 누가 보더라도 지금 이 상태로는 나갈 수가 없기 때문에 능청을 떨면서 나를 놀리는 것이다. "읏챠." 적당히 숨을 고른 그가 내게 다가오더니 나를 안아올린다. 침대에 눕혀 소매로 땀을 닦아주는 동안 가려져 있던 시야가 다시 트이자 여전히 웃음기 어린 그의 얼굴이 보인다. 그의 부드러운 머리카락도 땀에 젖어서 아까보다 좀 더 흐트러져 있다. 살며시 손을 뻗어 쓸어넘겨주니 내 손길이 기분 좋았는지 다정한 키스로 답한다. 입술이 떨어진 뒤, 여전히 조금 거친 숨결이 느껴진다.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데이다라. 오늘은 줄곧 나를 뒤에서 안고 있었기 때문에 별로 마주보지 못했는데 마치 그 허전함을 채우려는 것 같다. "언제나 이런 식이라서 미안하다." "무얼 새삼스레 사과하는 거야." 좀 더 아이 같은 모습이 보고 싶어. 그러니까 쓴웃음 같은 거 짓지 마. 속으로 중얼거리며 데이다라의 뺨을 어루만진다. 테러리스트의 신분으로 자유롭게 나다닐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처음부터 알고 좋아했다. 그리고 내가 먼저 이 관계를 시작했다. 이제 와서 원망 같은 것은─. "나는 너의 소원을 이뤄줄 수가 없다. 그러니 사과라도 해야지 어쩌겠냐." "……." 솔직히 원망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해야겠지. 일단 나는 그렇게 생각하려고 한다. 그래야 이 남자도 그나마 나를 보며 웃을 수 있을 테니까. (…) 토비 : 선배~. 새삼스런 부탁이라는 건 알지만 밤에는 조용히 해주세요~. 데이다라 : 정말 새삼스럽군. 갑자기 왜 그러냐? 토비 : 그냥 제 정신건강에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아서요~. 데이다라 : 으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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