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인형과 도구가 널려 있어 언제나 창고 같았던 오빠의 방을 정리했더니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방이 넓어졌다. 역시 그냥 그대로 놔둘 걸 그랬나. 공간이 넓어진 만큼 마음의 허전함도 크게 느껴진다.

 데이다라는 자신의 방으로 오라고 했지만 그 동안 줄곧 혼자 쓰던 곳에 내가 있으면 불편함을 느낄 거라는 생각에 사양해두었다. 무엇보다 아직은 오빠와의 추억이 깃든 이 방을 떠날 자신이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 마음은 아직 오빠가 곁에 있던 그 시간에 멈춰 있다. 다만 너무나도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이 움직이지 않는 나를 계속 앞으로 끌어당기고 있을 뿐이다.

 아카츠키 안에서 인주력 사냥은 아직 계속되고 있고, 데이다라는 토비와 함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아무래도 다음 임무에서는 3미를 사냥하기로 되어 있는 것 같다.

"토비이이이이-!!!"

 "죄송해요, 죄송해요~!!!'

 대기를 찢어 버릴 듯한 데이다라의 엄청난 포효에 아지트 천장이 우르르 요동을 친다. 이어서 들려오는 토비의 다급한 목소리. 오늘은 어째 좀 조용하다 싶었다.

 "놓칠까보냐-!!!"

 "놓쳐주세요오오옷-!!!"

 "갈(喝)-!!!"

 "아아아아아악-!!!"

 우르르르르르-… 기폭점토의 폭발로 그 여파가 아까보다 더 심하게 천장을 흔들어댄다. 아무리 바위를 깎아 만들어진 곳이라지만 이러다 아지트가 통째로 무너져내리는 것 아닐지 모르겠다.

 이미 말리기에는 늦었지만 그래도 일단은 폭발음이 난 곳으로 걸음을 옮겨본다.

 "토비, 괜찮아?"

 "아구구~ 허리야아~…"

 이번에는 빠른 녀석이었구나. 도망치는 것 하나는 정말 기가 막힌 토비가 바닥에 엎어져서 손으로 허리를 짚고 있다.

 토비에게 가까이 다가가 일어나는 것을 도와준다. 그러자 울먹이는 목소리로 고마워~ 하고 말하며 그가 내 어깨에 기댄다. 가엾은 토비. 쓰담쓰담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그도 내게 가면을 부비적거린다.

 "너 이 새끼… 안 떨어지냐, 음?"

 쿵-. 데이다라의 발소리에 히익 하고 놀라며 토비가 어깨에 경련을 일으킨다. 겉보기에는 그저 선배에게 괴롭힘당하는 불쌍한 후배다.

 그러나 토비에게는 은근히 영악한 구석이 있다. 매번 데이다라를 화나게 만드는 것도 그렇고, 다른 누구도 아닌 나에게로 도망쳐 와야지만 안전해질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

 "그만 둬, 데이다라. 토비가 불쌍하잖아."

 " 너는 왜 언제나 그 녀석을 감싸주는 거냐! 음?"

 "신입이라서 그렇잖아도 외롭고 힘들 텐데 선배라는 사람이 껏하면 화내고, 폭발시키고, 조금도 어른스럽지 않잖아. 사람이 가끔 실수를 할 수도 있는 거지, 그런 거 가지고 쪼잔하게 말이야!"

 "뭣…!"

 "솔직히 말해서 데이다라 너도 처음에는 엉망이었어. 언제나 오빠의 말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행동했잖아. 그러다 오빠까지 위험해지고. 나는 뭐 화낼 줄 몰라서 가만히 있었는 줄 알아? 내가 보기에 토비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 너야말로 선배답게 조금은 쿨해지라구!"

 "……."

 어른스럽지 않잖아, 쪼잔하게 말이야, 엉망이었어, 쿨해지라구, 쿡쿡쿡쿡.

 연속으로 네 번을 찔려 할 말을 잃은 데이다라가 허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조금 심하게 말한 감도 없잖아 있지만 여기서 토비의 편을 들어줄 사람은 나 하나 뿐이기 때문에 그래도 져줄 수가 없다.

 "오늘 오후에 다시 떠나기로 되어 있으면서 다치기라도 하면 어쩔 거야? 토비, 허리 많이 아파? 파스라도 붙여줄까?"

 "으응, 괜찮아~."

 토비의 머리카락에 붙은 먼지를 털어주고,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가면의 더러워진 부분을 닦아준다. 데이다라의 말처럼 이제 정말 아카츠키에 들어왔으니까, 그들을 내조하는 사람으로서 최대한 깨끗한 모습으로 내보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 네 애인은 이쪽에 있다."

 "알고 있어. 거기 가만히 서 있지만 말고 슬슬 떠날 준비를 하도록 해. 그 정도는 알아서 할 수 있지? 잘난 선배 씨."

 "윽… 너 말이다, 토비가 들어오고나서 나를 대하는 태도가 변하지 않았냐? 음?"

 이거야 원, 끽하면 토비에게 딴 마음이라도 품은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올 분위기다. 확실히 그때의 나는 얌전한 숙녀로 보이고 싶어서 데이다라의 앞에서는 화를 내긴 커녕 큰 소리도 내지 않았고, 가정적인 여자라는 점을 어필하고 싶어서 그가 굳이 부탁하지 않아도 그때 그때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해놓고는 했다. 한 마디로 사랑받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도 데이다라에 대한 마음은 변함이 없다. 다만 오빠의 죽음으로 마음에 큰 구멍이 나버려서, 아직은, 지금의 나에게는 사랑을 바라거나 그것을 받아들일 여력 조차 남아 있지 않다. 그저 혼자 있는 시간에 허전함을 달래는 것만으로도 벅차고 힘들다.

 "돌아오면."

 "?"

 무릎을 펴고 일어나 토비도 일으켜세우고, 그와 함께 옷에 묻은 먼지를 탁탁 턴다. 그리고 조금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돌아오면 서운하지 않게 해줄게. 그럼 됐지?"

 자신의 입으로 말해놓고도 부끄럽다.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데이다라의 뺨도 조금 붉어진다.

 "…응."

 그렇다고 해도 말 한 마디의 힘이 정말 대단하구나. 질투든 뭐든 화나면 사람 하나 보내는 것 쯤은 일도 아닌 S 급 수배범의 남자를 이렇게 간단히 순한 양으로 만들다니.

 하지만 내 삶에는 정녕 평화란 것이 없는가보다. 그대로 조용히 넘어가면 될 것을, 거기서 다시 치고 들어와 화를 자초하는 토비다.

 "저 선배의 그런 표정은 처음 봐요~. 기분 나쁘네요~."

 "(빠직)"

 아… 피곤하다…….

퍼어엉-!

 우르르르르-…

 (…)

 "그럼 다녀오겠다."

 "아흑… 다녀오겠습니다아~……."

 아직 분이 덜 풀린 듯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는 데이다라. 도망치다 넘어졌는데 하필이면 거기에 돌부리가 있어서 울먹거리며 자체 쓰담쓰담을 하고 있는 토비. 그런 두 사람을 배웅하러 나온 나. 문득 서늘한 바람이 세 사람을 스치고 지나간다.

 앞으로 다시 시작될 날들은 이보다는 조금 더 따뜻했으면 좋겠지만, 과연 어떨까. 어쩐지 조금 쓸쓸한 기분이 든다.

 "토비, 저쪽 보고 있어라. 음."

 "네애애애~."

 이럴 때는 참으로 말 잘 듣는 후배 토비가 유유히 뒤돌아서서 딴청을 피우자, 데이다라가 내게 다가와 입을 맞춘다. 오빠와 히단 앞에서는 개의치 않고 했지만 어쩐지 토비가 보는 것은 싫은 모양이다.

 뽀뽀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잘 다녀오세요'의 의미로 하는 것치고는 너무 길다. 그리고 소리가…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조용한 곳이다보니 쪽쪽 하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온다.

 이래서야, 침대 위에서 하는 키스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일부러인가. 슬슬 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찰나 데이다라의 양손이 뺨을 감싸온다. 조금 더, 조금만 더.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숨이 모자라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린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부끄러운데, 입술이 벌어진 틈으로 뜨겁고 매끄러운 혀가 얽혀온다. 일부러다. 일부러임에 틀림없다. 이제 곧 헤어져서 다시 혼자 남게 될 것임을 아는 듯 몸이 민감하게 반응한다. 더는 소리를 신경쓸 여유도 없다.

 "선배~ 아직 멀었어요~?"

 숨이 부족해서 입을 꾹 닫아 버릴 수도 없고, 발끝에서부터 찌릿찌릿 쾌감이 올라와 신음이 새어나오려고 한다. 안 된다. 더는 못 참는다.

 "음… 음음……."

 비로소 키스가 끝나고 서로의 입술이 떨어진다. 이제야 차가운 바람에 뺨을 식힐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어째서인지 몸이 점점 더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 같다.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라. 음?"

 "(끄덕)"

 데이다라가 갓을 고쳐쓰자, 바람에 휘날리던 하얀 천가닥이 그의 어깨 위로 스르르 내려앉는다. 금발의 머리카락은 그늘에 가려져 있어도 빛나고, 나를 향한 그의 하늘색 눈동자는 내게 다음을 기약한다. 이런 식으로 나는 그에게 길들여져 있다.

 지평선을 향해 멀어져가는 두 사람의 등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들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온다.

 "선배, 의외로 독점욕이 강하시네요~."

 "사랑은 원래 독점하는 것 아니냐?"

 "음~, 생각하기 나름 아닐까요~."

 "그렇다면 강한 것으로 해두어도 좋다."

 "전 선배의 그런 부분이 무섭단 말이죠~."

 "알까보냐, 입 다물고 걷기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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