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토비가 의식을 잃은 데이다라를 업고서 돌아왔다. 갑작스런 일이라 그것만으로도 놀라기는 했지만 처음에는 데이다라가 잠든 건 줄 알고 그저 희한한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기 때문이다.

 데이다라가 누워 있는 방 앞에서 토비와 함께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노라면 머지않아 문이 열리며 안에서 한 남자가 걸어나온다. 지난 날 내 목숨을 두 번이나 살려주었던 의료 닌자로, 내가 언제나 감사하고 의지하는 사람이다.

 내가 긴장해서 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사이 토비가 먼저 남자에게 데이다라의 상태에 대해 묻는다. 그러자 남자가 작게 한숨을 내쉬는 듯하더니 이내 입가에 미소를 띠며 대답한다.

 "데이다라 씨는 오랜 불면증과 과로로 인해 쓰러진 겁니다. 지금 약을 먹은 뒤 자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아-. 긴장이 풀리며 벽에 기대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러나 웃음은 나오지 않는다. 불면증은 사소리 오빠와 다닐 때부터 원래 가지고 있던 것이지만 과로라니.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 그를 이따금씩 원망했던 자신에 대해 자괴감이 밀려온다.

 "그럼 딱히 병에 걸린 것은 아닌 거지요~? 다행이다~."

 "뭐… 병이라면 병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남자의 말에 다시금 얼굴이 경직되어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본다. 그의 표정으로 보아 심각한 것은 아닌 듯하지만 그래도 불안하다.

 "아까 데이다라 씨와 잠깐 얘기를 나눴습니다만, 그가 걸린 병은 흔히들 말하는 '상사병'이라는 것입니다."

 "……."

 토비가 뒷덜미를 긁적이며 나를 슬쩍 돌아본다. 그도 나처럼 당혹스러운 것이겠지. 애인이 바로 여기 있는데 대체 누구 때문에 앓는단 말인가. 굳이 짚어보자면 짐작가는 부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더 충격이랄까, 뭐라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아, 저기… 상사병이란 것이 꼭 이성에 대한 고민으로 생기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리움의 대상이라면 누구든지 원인이 될 수 있어요."

 잠시 모로 향했던 시선을 남자에게로 되돌리자 그가 말을 잇는다.

 "예를 들어 최근 형제가 죽었다면 그럴 수 있지요. 그로 인해 그보다 훨씬 전에 돌아가신 부모에 대한 그리움이 갑자기 커진다거나 할 수도 있구요."

 최근 형제가 죽었다면…? 적어도 내가 아는 한 데이다라에게 친형제는 없다.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으로 정해져 있다. 그가 형제처럼 여겼을 만한 존재도, 얼마 전 그의 곁을 떠난 사람도, 사소리 오빠 뿐이다. 거기에 가족에 대한 그리움까지 더해질 수 있다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프다.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저로서는 여유잡아 일주일 정도 임무를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지만, 데이다라 씨의 성격상 그럴 리가 없지요. 적어도 3일… 아니, 단 하루만이라도 푹 쉬게 해주십시오. 그것만으로도 한결 나아질 겁니다.”

 (…)

 아침이 밝자 마자 아무렇지 않게 다시 떠나려고 하는 데이다라를 겨우 붙잡아놓긴 했는데, 주방에서 미음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내내 불안불안하다. 오늘 하루는 아지트에서 푹 쉬기로 나와 약속했지만 토비 혼자 보내놓고 그도 마음이 편할 리 없을 테니까.

 토비에게는 본의 아니게 미안한 일을 해버렸다. 단순한 정보 수집이라 해도 이런 곳에 몸을 담고 있는 이상 언제 어디서 적이 나타날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토비를 믿는다고 자신을 타이르며 데이다라의 몸을 돌보는 것을 택했다. 오늘 저녁 토비가 돌아오면 그 또한 살뜰하게 챙겨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똑똑똑-.

 데이다라의 방 앞에 이르러 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니 침대 위에 곤히 잠들어 있는 그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보통 때 같으면 문이 열리는 순간 눈을 떴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걸 보면 정말 과로가 심하긴 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따 다시 오는 편이 좋으려나. 조용한 방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잠시 망설이다 미음이 담긴 쟁반을 작업대 위에 내려두고 서랍을 열어 사진을 꺼낸다. 결국 오빠의 모습은 사진에 담지 못했지만 그래도 부모님과 친구들의 사진이 남아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임무를 수행하고 있을 때 데이다라는 어떤 모습일까. 잠시 적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본다. 데이다라와 사소리 오빠는 좋은 콤비이지만 기본적으로 전투 방식이나 그것에 임하는 자세는 정반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범하게 생각해보면 순간의 미를 추구하는 데이다라 쪽이 전투를 훨씬 빨리 끝낼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언제나 사소리 오빠 쪽이 빠르다.

 오빠는 말하자면 그 자체가 병기 같은 존재로 조용히 나타나서 묵묵이 적을 처리한 다음 다시 조용히 떠나는 타입이고, 데이다라는 적을 도발해서 유인한 뒤 매복 등으로 쓰러뜨리는 전술을 주로 사용한다. 그래서 일부러 평소의 그답지 않은 차가운 표정을 만들거나, 적의 입장에서 잔인하고 포악하게 느껴질만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들의 눈에 데이다라는 악당 그 이상 그 이하로도 보이지 않겠지. 그 속에 그들과 같은 상처가 있고, 같은 아픔을 느낄 거라는 생각 같은 건 절대 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연기에 능숙하고, 마음만 먹으면 그와 가장 가까운 존재인 나도 얼마든지 속일 수 있다. 나 역시 그가 쓰러지기 전까지는 그의 괴로움이 이 정도일 줄 몰랐으니까.

 데이다라의 곁으로 걸어가서 의자를 끌어다 앉으니 드르륵 하는 소리에 잠이 깬 듯 데이다라가 몸을 뒤척인다. 그 틈에 두 손을 모아 인을 맺고 변신을 한다. 나와 눈이 마주친 데이다라가 놀라는 듯하더니 이내 피식 하는 소리와 함께 쓴웃음을 짓는다.

 “오랜만이야, 나리. 음.”

 “일어났냐, 꼬맹이.”

 “그러니까 이제 꼬맹이는 그만두라니까.”

 “몸집만 커진다고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어른 대접이 받고 싶으면 괜한 걱정을 시키지 마라. 다 죽어가는 꼬락서니 하고는, 언제까지 나를 병자 돌보기나 하면서 기다리게 할 셈이냐. 얼른 기운 차려서 일어나라고.”

 “ㅍ핫… 아하하하하핫…!”

 조금 전까지 정말 다 죽어가는 듯한 모습이었는데, 갑자기 폭소를 터뜨리며 배를 잡고 웃더니 어느덧 그의 얼굴에 생기가 돈다. 웃음이 만병 통치약이라더니 그 말이 정말 맞긴 한가보다.

 “그렇게 웃겨?”

 “미, 미안… 흐흐흣…….”

 그가 여전히 웃음기 어린 얼굴로 눈물을 닦는다. 나도 딱히 자신의 변신술에 대해 자랑스레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크게 웃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사소리 오빠로 변신하는 것 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었기에 은근히 자존심에 상처가 된다.

 “그야 어색한 부분이 있긴 하겠지… 오빠의 낮은 목소리를 완벽하게 따라하는 건 무리고…….”

 “아니, 목소리도 목소리지만… 흣ㅎ…(웃음 꾹) 사람은 상대방이 누군지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지 않냐… 네가 알고 있는 모습이 나리의 전부는 아니라고… 나리는 절대 내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아… 그렇게 상냥한 오빠 같은… 와하하하하핫…!”

 듣고보니 그렇네… 나는 내 기억속에 남아 있는 오빠만 생각하고 있었을 뿐, 오빠가 데이다라에게 취할만한 태도 같은 것은 완전히 간과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오빠는 데이다라에게 형보다도 무서운 아버지 같을 때가 더 많았는데, 갑자기 상냥한 오빠가 되어 말을 걸어오면 데이다라로서는 폭소를 터뜨릴만도 하다.

 “…….”

 본의 아니게 개그를 해버려서 부끄럽지만 뭐가 어쨌든 데이다라가 기운을 차린 것 같아 안심이다.

 “어제부터 하루종일 굶어서 갑자기 음식을 집어넣으면 위에 무리가 갈 거야. 일단 미음부터 먹자.”

 쟁반 위의 작은 그릇에 담긴 미음을 살짝 떠서 바람을 후 후 불어 식힌 뒤 데이다라의 앞으로 내민다. 또 다시 웃음으로 일그러지는 얼굴. 아, 그러고보니 아직 변신을 풀지 않았지. 오빠의 모습인 채로는 먹다가 뿜을지도 모르니 일단 여기서는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퐁- 연기가 피어올랐다 사라지고, 나를 바라보는 데이다라의 얼굴에 웃음 대신 놀라움이 비친다. 사실 썩 내키지는 않지만 데이다라에게 힘이 되어주는 것이라면 지금의 나로서는 그게 무엇이든 감내할 수 있다.

 “자, 얼른 아- 해. 데이다라 오빠.”

 어린아이의 모습으로는 팔을 최대한 쭉 뻗어야지만 데이다라에게 수저가 닿는다. 그런 내가 안쓰러워보였는지 잠시 머뭇거리던 데이다라가 눈앞의 것을 받아먹는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사소리 오빠 때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어쩌면 지금 그에게 과거의 영상과 현재가 겹쳐져 보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옛 추억을 떠올리면 저절로 쓸쓸한 표정을 짓게 되는 것이 사람이니까.

 “, 변신은 이제 됐으니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라.”

 “괜찮아, 오늘은 데이다라가 원하는 어떤 모습으로라도 변해줄게. 아카파치 씨는 어때?”

 “푸핫, 너랑 토비는 정말 이름을 못 외우는구나. 아카파치는 또 누구야? 아카츠치라고, 음.”

 솔직히 말하자면 쿠로츠치 씨의 경우 그 이름을 입에 담는 것이 조금 불편하게 느껴져서 일부러 심술을 부린 것이었지만 조금 전의 아카파치 씨는 리얼이었다. (…) 이래서는 자신의 어벙함을 차마 부정할 수가 없다.

 “크흠! 역시 아카츠치 씨보다는 쿠로츠치 씨 쪽이 좋겠지. 하지만 어린아이 모습으로는 불편하니까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해서…”

 퐁-. 쿠로츠치 씨가 어떻게 성장했을지 그 모습을 상상하며 어른이 된 그녀로 변신한다. 복장은 적당히 바위 마을 닌자의 외소매옷으로 정했다. 막상 변하고 보니 그야말로 딱 데이다라의 이상형이다. 문득 씁쓸함이 밀려와 아랫입술을 깨물고는 데이다라에게 다시 수저를 내민다. 그러나 받아먹지 않고 그저 나를 바라볼 뿐이다.

 내가 원해서 하고 있는 일이니 딱히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데, 데이다라가 고개를 슬쩍 모로 돌린다. 아무리 내가 속이 좁기로서니 사람이 아플 때 질투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질투가 나도 그가 싫어할까봐 필사적으로 참아왔다. 그런데 그에게는 빤히 보이는 걸까. 왠지 내가 조금 바보같이 느껴진다.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라.”

 하지만 데이다라 너에게는 아직 그리운 사람들이 많잖아. 문득 생각하노라면 데이다라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지난 날 그가 내게 했던, ‘나만으로는 부족하잖아’라는 그 말. 그게 얼마나 쓸쓸한 기분인지 이제 알 것 같다.

 “이럴 때는 그냥 응석부려도 돼. 데이다라에게 나는 그저 집안일만 잘하면 그만인 존재인 거야?”

 “그런 뜻이 아니라, 아지트에 돌아온 뒤 내리 잠만 자서 네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으니까…….”

 “나도 닌자이고 가끔은 집안일 외에도 데이다라를 위해 뭔가 하고 싶어.”

 “…….”

 하지만 쿠로츠치 씨의 모습으로는 데이다라도 마음이 불편한 것 같다. 아까 선반 위에 올려두었던 두 장의 사진 중 하나를 옆으로 슬쩍 옮기고서 다른 사진에 담긴 사람의 얼굴을 눈에 담는다. 그리고 다시 인을 맺는다. 퐁-. 연기가 피었다가 사라지고 이번에는 또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변한다.

 나를 바라보는 데이다라의 얼굴이 일순간 딱딱하게 경직된다. 무언가 잘못된 것인지 마치 못 볼 것을 본 사람처럼 놀라서 넋을 놓고는 그대로 아무 말이 없다. 아까처럼 미음을 먹이려다 묘한 분위기를 느끼고는 멈추어 있으니, 이윽고 정신을 차린 듯 데이다라가 내게서 시선을 거둔다.

 “데이다라, 왜 그래?”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어째서? 보고 싶지 않아? 엄마의 얼ㄱ…”

 “돌아오라고, 지금 당장!”

 데이다라가 갑자기 버럭 화를 내서 나도 깜짝 놀랐다. 그가 가슴을 꽉 움켜쥐더니 갑자기 숨을 가쁘게 몰아쉰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엄마라서 싫은 것일까. 아니, 데이다라는 분명 그녀가 자신에게 소중한 존재라고 말했다. 그래서 아직 사진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반가움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리움 정도는 느끼는 것이 정상인데, 지금 데이다라는 상당히 불안해보인다.

 이런 모습을 언젠가 다른 사람에게서 본 적이 있다. 사소리 오빠를 따라나갔다가 적과 마주쳤던 날, 그 적은 오빠가 만든 약에 중독 되어 쓰러졌다. 그런데 그 모습이 조금 묘했달까, 보통 사람이 독에 당했을 때 보이는 반응과는 달랐다. 고통을 호소한다기보다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것은 독이 아니라 환각제였다.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보게하는 것으로, 사람의 내면을 파고든다는 점에서 일반 환술보다도 독보다도 더 무서운 약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

 어째서 지금 데이다라가 그때 그 자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걸까. 시트를 꽉 움켜쥔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그의 시선이 계속 허공을 방황한다. 마치 이 상황을 피하지 못해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퐁-. 변신술이 풀리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데이다라의 등에 살며시 손을 얹는다. 그러자 비로소 그가 나를 돌아본다. 여전히 숨이 가쁘지만 이제 괜찮은지 경직되었던 얼굴이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미안, 데이다라의 말대로 이제 변신술은 그만둘게.”

 분명 무언가 그럴만한 사정이 있겠지만 데이다라에게는 안정이 필요하다. 그에게 물어보더라도 나중에 얘기를 꺼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다른 누구보다도 그에게 위로가 되어주어야 한다. 데이다라가 도망쳐오듯 내 품에 안기는 순간 그러한 마음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괜찮아, 괜찮아…….”

 데이다라가 완전히 진정될 때까지 그의 등을 토닥여주고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준다. 겨우 숨이 가라앉은 그가 내게서 멀어져 손을 이마 위로 가져간다. 내가 대체 그에게 무슨 짓을 한 건지 당황스럽다. 그래도 데이다라의 안색이 점점 나아지고 있으니 일단 안심해도 될 것 같다.

 “.”

 “응?”

 “갑자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언제나 고맙다. 음.”

 “고맙기는… 마음만 앞섰지 제대로 하는 게 별로 없는걸…….”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이 말하며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자 데이다라가 피식 웃으며 내게 손을 뻗는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게 한 뒤 입을 맞춘다. 아직 조금 괴로워보이는데, 놀란 나를 안심시켜주려는 것 같다.

 “나도 너에게 뭔가 해주고 싶은데…….”

 “난 딱히… 데이다라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니까…….”

 “그렇게 말하면 내가 민망해지잖냐… 뭐라도 좋으니 말해봐라… 음…?”

 “으음… 그럼…….”

 조금 전에 한 말은 물론 진심이고, 데이다라에게는 좀 더 자주 함께 있고 싶다는 것 외에는 특별히 부탁하고 싶은 것이 없다. 구태여 고민해보자면 나 하나만을 위한 것보다는 나와 데이다라 둘 다가 즐거워질 수 있는 일이 좋을 것 같다. 한 가지 생각나는 것이 있긴 하지만 괜찮을지 모르겠다.

 “데이다라가 말야, 어린 시절 모습으로 변해줄 수 있어?”

 “어린 시절…?”

 나야 건강 그 자체이니 데이다라가 원한다면 온종일 변신 상태로 있으라고 해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지만, 과로로 쓰러져 조금 전까지 누워 있던 그에게 이런 부탁을 하자니 나야말로 민망해진다. 다만 그의 예전 모습을 보고싶다는 것은 갑자기 떠오른 것이 아니라, 전부터 생각했던 것이다.

 “꼬맹이로 변해서 뭘 하면 되는 거냐…? 음…?”

 “아, 아니야, 역시 됐어. 그냥 못들은 것으로 해줘.”

 손을 홱홱 저으며 황급히 시선을 모로 돌린다. 그런 나를 얄쌍한 눈으로 지그시 바라보는 데이다라. 이윽고 그가 두 손을 모아 인을 맺는다. 한순간 속으로 자책을 하고 있었으나, 퐁- 하는 소리에 이어 연기가 사라진 뒤에는 도저히 그에게 시선을 되돌리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그리운 어린 시절 데이다라의 모습.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쁜데, 그 와중에 한편으로는 욕심이 생긴다.

 “바위 마을에 있던 시절로 변해줄 수 있어?”

 “이것보다 더 어렸을 때 말이냐…? 네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퐁-. 조금 전보다 몸집이 작아진 데이다라가 시야에 들어온다. 분명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의 모습이다. 아기처럼 앳된 얼굴을 보니 정말 나와 이런저런 일을 한 그 남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귀엽고 사랑스럽다.

 참지 못하고 뺨을 살짝 꼬집으니 그가 얼굴을 찡그리며 나를 바라본다. 아아,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했던가. 지금 눈앞에 있는 그에게 하고 싶은 일들이 마구마구 생겨난다.

 “무릎에 앉혀놓고 끌어안고 싶어…….”

 “아아… 그 정도 쯤은…….”

 조금 부끄러운 듯 고개를 모로 돌리며 데이다라가 내게 슬쩍 자리를 내어준다. 침대 위로 올라가 베개에 등을 기대어 앉으니, 이윽고 그가 내 무릎 위로 올라온다. 지금보다 기장이 긴 듯한 금색의 머리카락이 언제나와 같이 예쁘고, 청녹색의 외투가 조금 헐렁한 느낌으로 흘러내릴 듯이 어깨에 걸쳐 있다.

 옷 안쪽의 쇄골을 무심코 뚫어져라 쳐다보다 그가 뒤돌아보는 순간 움찔 하고는 서둘러 시선을 피한다. 하마터면 쇼타콤으로 오해를 받을 뻔했는데 다행히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나, 나도 쿠로이치 씨로 변할까? 그럼 그림이 딱 나오려나?”

 “내가 너를 위해 하고 있는 거잖냐. 너는 그냥 편하게 있어라. 음.”

 꺄아아 목소리도 귀여워어어어. 육성으로 나올 뻔한 소리를 겨우 눌러참고는 그의 몸을 꼭 끌어안는다. 품안에 쏙 들어오는 정말 작은 몸집이다. 키도 키지만 원체 마른 체형이라 그야말로 미소년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네 품이 이렇게나 넓다니… 묘한 기분이군…….”

 “지금이라면 데이다라가 원하는 D컵 이상의 감촉을 느낄 수 있을지도.”

 “뭣… 너, 너 말이다… 나를 가슴밖에 모르는 변태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냐…? 음…?”

 “내가 없는 곳에서 지나가는 여자들의 가슴을 쳐다보기도 하잖아.”

 “토비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지 마라…!”

 조금 분하긴 하지만 너의 그런 부분도 귀엽다고 생각해. -라고 말해줘야 하는데, 그보다는 당황하며 얼굴을 붉히는 데이다라가 너무 귀여워서 그 모습을 좀 더 보고 싶다.

 “만지고 싶으면 만져도 돼.”

 “나… 나는… 딱히…….”

 “필요없어?”

 “…….”

 부끄러워하기는 새삼스러운 일이건만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오늘은 데이다라도 정말 기분이 묘한가보다. 귀까지 빨개져서는, 잠시 머뭇거리다 슬그머니 옆으로 돌아앉아서 내 가슴에 손을 얹는다. 이제보니 냠냠이도 그의 손 만큼 작아졌다.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터져나오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눌러참다보니 저도 모르게 그를 안은 팔에 힘이 들어간다. 아팠는지 작게 신음하는 데이다라. 아아, 더는 무리다.

 “아… 음…….”

 데이다라에게 얼굴을 들게 한 뒤 그에게 입을 맞추자, 당황한 듯이 주춤거리던 그가 머지않아 내 목에 팔을 두른다. 아니, 두 팔을 최대한으로 뻗어도 다 둘러지지 않아서 그의 손이 내 어깨에 겨우 머무르고 있다.

 해선 안 될 짓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강하게 들지만 이제와서 그런 것을 생각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이미 미성년자인 열아홉의 그에게 손을 대버렸으니까. 지금은 다만 그보다 더 어려졌을 뿐이다.

 “음… 음음…….”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데이다라가 괴로운 듯 점점 뒤로 물러난다. 입술도 혀도 작아져서 호흡을 하기가 어려운지, 나와의 키스가 꽤나 버겁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이쯤에서 조금 쉬게 해주지 않으면. 어느덧 자연스레 내쪽이 그를 리드하고 있다. 언제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데이다라인데, 모든 것이 평소와 반대로 흘러가니 묘한 쾌감이 든다.

 데이다라의 팔을 조심스레 붙잡고 그와 시트 위로 쓰러진다. 키스를 멈추지 않은 채 그의 가슴에 손을 올리고 그대로 앞섬을 벌리려 하니, 그가 놀란 듯 움찔하며 작게 신음한다. 과연 그도 거기까지는 생각치 못했는지 적잖이 당황스러운 모양이다.

 ‘내가 너를 위해 하고 있는 거잖냐.' 라고 했던 자신의 그 말이 떠오른 걸까, 그가 괴로움도 부끄러움도 무릅쓰고 두 팔을 벌려 나를 받아들인다. 아까와 달리 바짝 밀착해 있는 지금은 그의 팔로도 내 목을 끌어안을 수 있다.

 “음… 으음…!”

 이제 슬슬 한계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키스를 그만두고 데이다라와 떨어진다. 괴로운 듯한 얼굴로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그가 작은 손으로 내 소매를 꼭 붙잡는다. 표정과는 달리 내게 좀 더 해달라 조르고 있는 것 같다.

 “데이다라, 사랑해.”

 “나… 나도…….”

 조금 갑작스러운 고백이었다. 나도 잘 모르겠지만 아마 이 또한 내 욕망의 일부일 것이다. 데이다라가 이렇게 작았던 시절에는, 당시 그의 곁에는, 내가 아닌 다른 여자가 있었다. 그 추억에 멋대로 끼어들어서 휘젓고 다니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그녀로부터 그를 빼앗고, 그들의 아름다운 기억을 망가뜨리는 것이 오히려 즐겁다. 어린애도 이런 생각은 하지 않을 텐데,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욕심쟁이에 심술쟁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 … 이제… 변신술 풀면…….”

 “안 돼, 끝까지 참아. 데이다라라면 할 수 있을 거야.”

 “끝까지라니… 그런… 무리야… 안 되는 것으로 정해져 있잖아…….”

 놀랍고 당황스러운 것은 그의 얼굴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래도 나를 밀어내지는 않는다. 그의 몸도 이 이상을 원하고 있다는 거겠지. 그렇다면 망설일 필요는 없다. 데이다라의 앞섬을 완전히 벌려 그의 가슴에 입을 맞추며 두 손으로 하의의 끈을 조심스레 푼다. 이제는 그만두는 쪽이 오히려 무리다.

 “하… 하아… 하아…….”

 붉게 달아오른 얼굴, 반짝거리는 하늘색의 눈동자, 흐트러진 금발의 머리카락. 이렇게 보고 있으니 여자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로 정말 예쁘고 귀여운 소년이다. 그 시절 누군가에게 납치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고, 지금의 나 같은 어른을 만나지 않은 것은 더 다행이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절정을 느끼는 순간까지도 변신술이 풀리지 않는다니. 기폭 점토를 만들 때 차크라 컨트롤에 얼마나 집중력이 필요한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의료인술에 버금갈 만큼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런 일이 가능한 데이다라이니 어쩌면 이대로 계속해도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데이다라는 사랑하는 것보다 사랑받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네. 앞으로는 계속 이렇게 반대로 할까?”

 “… 너어…….”

 퐁-. 변신술이 풀리며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데이다라가 내 팔을 꽉 붙잡는다. 도망 못간다는 듯이. 어쩌면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약해진 몸으로 더 이상은 무리겠지 싶었는데, 아무래도 내가 그를 얕잡아봤던 것 같다.

 “사랑하는 것도, 받는 것도… 나는 무엇 하나 포기할 수 없다고… 음…….”

 아직 미성년자라고 해도 조금 전 그 모습에 비하면 위압감이 확실히 크다. 이제부터 심하게 다뤄질 것을 생각하면 긴장이 된다. 그와 동시에 아까부터 민감해져 있던 몸이 그를 갈망한다. 솔직히 말해서 이대로 그냥 끝낸다면 나도 오늘 밤이 적잖이 괴로울 것이다.

 “하는 거야…?”

 “당연한 것 아니냐.”

 그가 나를 시트 위로 쓰러뜨림과 동시에 내 위에 올라탄다. 아까는 귀여웠는데, 이제 더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언제나 부드러운 듯하면서도 날카롭고, 상냥한 듯하면서도 거칠어지는 내 애인이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을 뿐이다.

 “데이다라… 전혀 약해지지 않았잖아…….”

 “조금 전에 잔뜩 힘을 받았으니까 말야.”

 내게 가까이 다가오는 데이다라. 키스를 하려는 줄 알았는데 문득 귓가에 뜨거운 숨결이 떨어진다.

 “이번에는 내가 너를 시시한 꿈으로부터 끄집어낼 차례다…….”

 오늘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그가 별다른 애무를 하지 않고도 무리없이 내 안으로 들어온다. 아찔한 쾌감과 함께 야릇한 감각이 발끝에서부터 찌릿찌릿 올라와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파르르 떨리는 손가락이 삐끗삐긋 작은 경련을 일으키고 두 다리는 내 의사와 상관없이 그의 허리를 감싼다. 아아, 나 역시 어느 쪽도 포기할 수가 없다. 그를 사랑하는 것도, 그에게 사랑받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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