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넓은 땅을 내려다보는 영주의 집은 오랜 시간에 걸쳐 영지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유서 깊은 성이다. 그곳에 영주 일가와 인척이 살고 있다. 그밖에는 휘하의 사람들 중 가장 최측근에 속하는 이들만이 거주를 허락받는다.
데이다라는 얼마 전까지 바위마을로부터 수배령이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영주가 그를 보호하기 위해 특별히 배려해 주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두 사람은 전에 없던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터벅터벅─. 날이 저물면 모든 곳의 통행이 금지되지만 정원을 거니는 것 정도는 문제 삼지 않기 때문에 이따금씩 산책을 나오곤 한다. "춥지 않아?" "응, 괜찮아." 하늘을 거울처럼 비추는 연못 위로 반짝이는 별들이 물결을 따라 흔들린다. 다른 사람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천천히 걸어가는 두 사람의 발 밑으로 등불이 은은하게 비춘다. 고요하고도 안락한 분위기에 무엇이든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있잖아… 남편…" "듣고 있어." 머뭇거리는 내게 괜찮다고 말하듯 데이다라가 손을 잡았다. 나오기 전부터 내 마음을 읽었던 걸까. 언제나의 일이라지만 쑥스러웠다. 어제도, 오늘 아침에도, 몸살이 나을 때까지 그는 이렇게 따뜻한 체온으로 나를 보살펴 주었다. 몸이 약해져 있는 동안 남편만을 바라보고 의지했기에 병석에서 일어난 이후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전에도 말했었지? 어렸을 때부터 나한테는 오빠와 데이다라가 전부였다고. 오빠가 떠난 뒤에는 오직 너뿐이었으니까… 데이다라를 믿는 것과는 별개로 가슴이 늘 불안했어. 네 마음이 식어 버리지 않을까, 너마저 나를 떠나지 않을까… 그래서 조금은 도망치고 싶었던 건지도… 의지할 수 있는 또 다른 존재를 찾았던 건지도 몰라… 바보처럼 굴어서 미안해……." "가족과 친구를 잃었으니 마음에 병이 생길 만도 해. 나는 동료를 잃는 것에 익숙해져서 당신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어. 아니,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그래서 당신이 다른 곳을 볼 때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할 때마다 아프고 괴로웠어. 내가 내린 결정이 정말 당신을 위한 게 맞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어서… 나야말로 바보처럼 굴었어. 미안해, 여보." "나, 데이다라와 결혼해서 진심으로 행복해. 성에서의 생활도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지금은 굉장히 편하게 느껴져. 매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좋고, 정원을 가꾸는 것도 좋고, 장터에 나가는 것도 좋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고, 다 좋아. 무엇보다 내 남편이 항상 곁에 있으니까. 같이 잠들고, 일어나고, 외투를 받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 그야말로 내가 꿈꾸었던 삶이야. 행복하다는 말이 아니면 표현할 수 없어." "그랬구나… 당신이 행복해서 다행이다… 음……." 데이다라의 대답을 듣고 깨달았다. 진심을 전하는 데 있어 때로는 긴 말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말주변이 없는 탓에 자신의 마음을 필사적으로 토해내야 했지만 '다행이다'라는 그의 한 마디와 안도의 한숨이 내게 같은 마음을 느끼게 했다. 다리 건너편의 정원은 등불이 아닌 달빛을 받아 푸른색으로 물들었다. 서로의 손을 어루만지며 다리 끝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연못으로 둘러쌓인 팔각정에 앉았다. 물이 맑고 투명해서 마치 밤하늘에 떠 있는 듯했다. 비단잉어가 구름 위로 튀어오르는 진풍경을 보니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모임에서 듣자니 연회가 있을 때 여기서 불꽃놀이를 한다던데." "영주님께 말씀드려 볼까? '제가 실력발휘 좀 해보겠습니다'라고." 지난 밸런타인 때는 정말 굉장했다. 호위부대인 데이다라가 연회까지 관장하게 되는 일은 아마도 없겠지만 내 남편의 예술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다는 상상만으로 두근거렸다. 어느새 농담까지 주고받는 여유를 즐기며 여전히 얼굴에는 웃음기가 어려 있었다. "찬바람을 오래 쐬면 안 돼. 들어가자, 여보." "잠깐… 데이다라……." 일어나려고 하는 그를 살며시 붙잡았다. 하얀 달빛에 수면이 반짝거리며 연못을 담고 있는 눈동자도 밤하늘처럼 빛났다. 넋을 놓고 바라볼 정도로 예뻤다. 나는 데이다라의 뺨을 다정하게 어루만졌다. 기분 좋은 듯 눈꺼풀이 닫히고 입술이 포개어졌다. "음… 음……." 기분이 몽롱해서 가만히 몸을 맡겼다. 그러다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데이다라가 부끄러워하는 나를 달래듯 내 어깨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뺨에, 목에, 가볍게 입을 맞춘 다음에는 애틋한 숨결이 귓가에 맴돌았다. "아……." 데이다라는 조금 이른 느낌으로 내게서 멀어졌다. 묵묵히 심지를 꺼뜨리며 멀어지는 그에게 한 번 더 아쉬움의 키스를 했다. 두번째 입맞춤으로 원하는 것을 얻은 듯 데이다라의 입꼬리가 의미심장하게 올라갔다. 가슴은 벌써 알아차리고 두근댔지만 입을 꾹 닫고 얌전히 일어났다. 지금 묻지 않아도 집으로 돌아가면 알게 되겠지. 이제는 애타는 기분마저 행복감으로 다가온다. "몸살이 빨리 나아서 다행이네. 음." "그러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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