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식단. 아침은 삶은 달걀 두 개와 레몬. 점심은 고구마와 사과. 저녁은 닭가슴살 샐러드 한 접시. 필요한 재료는 모두 사 놨고, 좋아, 이제 몸무게를 한 번 재 볼까.
후우, 심호흡을 한 뒤 체중계 위에 올라선다. 다이어트를 시작한 뒤 무기력증부터 시작해 다중고를 겪었지만 결과만 좋다면 개의치 않는다. 과연 식단관리에 효과가 있었을까.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체중계의 숫자를 확인한다. 마지막으로 쟀던 것과 비교해 무려 5kg가 줄었다. 두 팔을 천장으로 쫙 뻗으며 소리 없이 만세를 한다. 그러나 솟구치는 희열을 주체할 수가 없다. 인간승리. 환호성을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간다. 목적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어디서든 가장 먼저 만나는 사람을 껴안아 주고 싶다. 마침 복도 맞은편에서 데이다라가 걸어온다.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는 금발의 머리카락이 오늘도 시선을 이끈다. 잘생긴 얼굴, 적당히 보기 좋게 마른 체형, 무엇보다 부러운 젊음… 같이 있다 보면 묘한 자괴감을 느끼곤 한다. 그래서 나도 조금이나마 달라지고 싶었다. "데이다라! 나 몸무게 줄었어!" "음…?" 어질, 데이다라에게 달려가 안기려는 순간 머리가 멍해지며 다리에 힘이 풀린다. 몸이 앞으로 기울어질 뻔했다가 서둘러 발을 디뎠다. 다이어트 초반에는 원래 이런 부작용도 있는 법이다.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수면 아래의 물장구' 같은 안쓰러운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봐봐, 조금 예뻐진 것 같아?" "으음……." 시큰둥한 반응에 뺨을 부풀린다. 속으로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하여간 남자들은 변화에 둔하다니까. 아니면 이 정도로는 부족한 걸까. 앞으로는 좀 더 여러 가지로 신경 써야 할는지도 모른다. "가만히 있지 말구, 자, 허리에 팔 한 번 둘러 봐. 엄청 얇아졌잖아." "……." 아무리 뭐래도 억지로 팔을 잡아당기는 것은 오버였나. 어떻게든 알아줬으면 했는데 계속 반응이 없으니 민망하다. 역시 부족한 거다. 나도 참, 겨우 5kg 가지고 무얼 들떠 있는 거지. "." "?" "잠깐 얘기 좀 하자." "무슨 얘기? 여기서 하면 안 되는…" "따라와라." 데이다라가 앞장서서 거실로 향한다. 약간 무뚝뚝한 느낌은 평소와 같지만 분위기가 조금 다른 것 같다. 어쨌든 얌전히 뒤따라서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그가 말 없이 TV를 켠다. 채널을 돌리다 여자 연예인들이 나오는 곳에서 멈춘다. 얘기를 한다더니, 한동안 아무런 대화도 없이 브라운관에 비친 그녀들의 모습만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 같은─. "어떠냐?" "모두 예뻐." 여자 연예인이라고 해서 모두 예쁘고 마른 것은 아니지만 지금 방영하고 있는 프로그램에는 유난히도 그런 모습이 비치고 있다. '168cm에 47kg, 그녀의 비결은?' -이런 자막을 보고 속으로 경악했다. 부럽긴 하지만, 저 여자는 키가 있는데, 말라도 너무 마른 것 아닌가. "내가 보기에도 예쁘다." 무심코 넋을 놓았다가 데이다라의 말을 듣고 움찔했다. 그동안 자신이 가지고 있던 '예쁘다'의 기준이 본연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점점 회색빛으로 물들어간다. 침묵 속에 막막한 기분이 들어서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데이다라가 TV를 끈다. 리모콘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뒤 자신의 코트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이윽고 움켜쥔 그의 손이 불쑥 내 앞으로 다가온다. "뭐야?" "이상한 게 아니니 안심해라. 닌자들의 병량환이다. 이건 정말 극한의 상황에서만 먹는 거라 나도 얼마 전에 처음 봤다만, 맛이 끔찍할 정도는 아닐 거다. 먹어라."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데이다라에게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이번에는 선뜻 따를 수가 없다. 대부분의 병량환이 고열량이라는 것은 닌자라면 누구라도 알고 있다. 하물며 극한의 상황에서 먹는 것은 어떨까. 어떤 것은 하나에 1000kcal가 넘는다고 들었다. 생존을 위한 음식일 뿐이니 병량환 자체를 꺼려야 할 이유는 없지만 지금 자신의 상황으로는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안 먹으면 안 돼…?" "먹지 않으면 나는 오늘부로 너와 헤어진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농담이겠지. 아무리 법적으로 이어진 관계가 아니라지만 어쩜 헤어진다는 말을 그리도 쉽게─. 아니, 아니다. 뭔가 이유가, 지금 데이다라가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눈물을 머금고 하나를 삼키자 주머니에서 또 하나가 나온다. 그렇게 두 개, 세 개까지 먹었다. 내가 방금 무슨 짓을 한 거지. 한 번에 3000kcal를 섭취한 건가. 말도 안 돼. 완전 괴물 같아. "윽… 흑흑……." 나도 모르겠다. 그냥 눈물이 쏟아져 내린다. 그동안 고생했던 게 전부 물거품으로 돌아간 것 같아 서럽기도 하고, 왜 나를 이렇게 괴롭히나,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그런 생각에 데이다라가 원망스럽기도 하다. "울지 마라. 오히려 안심해야 한다. 내가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너는 분명 머지않아 병에 걸려 쓰러졌을 거야. 얼마 전에 너의 수첩을 봤는데 불과 몇 달 만에 체중변화가 말도 아니더구나. 누가 보면 암환자인 줄 알겠더라. 무신경한 내 잘못도 있지만… 얼마나 놀랐는지 아냐." "하지만… 데이다라도… 그 연예인이 예쁘다고 했잖아……." "대부분이 마른 몸을 유지하기 위해 뒤에서 갖은 고생을 할 거다. 그러니까 '연예인'인 거지. 실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으면서, 대체 왜 그러는 거냐. 내가 언제 네 외모에 대해서 이랬음 좋겠다 저랬음 좋겠다 말한 적 있었냐." "방금 예쁘다고 했잖아…!" "너는 아니라고 한 적 없다! 네 멋대로 생각하고 판단하지 마! 나에겐 나의 기준이 있다! 네 외모가 어떻든 그 기준에만 맞으면 되는 거야! 아무리 남들이 제멋대로 우상을 만들어 내도 나하고는 아무 상관 없다는 거다!" "……." 더는 못 참겠다. 아까부터 속에서 울렁거리며 다시 올라오려고 한다.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간다. 전부 게워낸 뒤 거울을 보니 이게 누구지 싶다. 분명한 사실은 예전의 내가 생각했던, 지금의 내가 생각하고 있는, 환상 속의 '미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데이다라와 사귀기 전에는 자신의 외모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누가 봐도 평범한 느낌이라서 만족스럽지도, 불만족스럽지도 않았다. 문득 과거에 자신이 좋아했던 여자 연예인의 가장 빛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녀도 다른 여자 연예인들에 비하면 평범한 외형이었지만, 나는 그녀의 지성, 감수성, 왠지 모르게 끌리는 매력을 좋아했다. 그런데 어느새부터인가 '미인'을 판단하는 나의 기준은 바뀌어 있었다. 더 예쁘게, 더 가느다랗게, 더, 더─. (…) 큰소리를 내는 게 아니었는데. 뒤늦게 밀려오는 부끄러움을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저녁이 되어서야 용기가 생겨서 쟁반 위에 다과를 들고 데이다라의 방으로 왔다. 노크를 하고 들어가자 언제나와 같이 작업대 앞에 앉아 점토를 만지고 있는 그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조용히 쟁반을 내려놓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우와…" 아름다운 여성의 스태츄다. 유니카미스티카 이후로 사람을 만든 것은 처음 본다. 진짜 사람처럼 생동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데이다라의 표정이 딱딱하게 경직되어 있어서 이번 작업은 그다지 즐거워 보이지 않는다. "어렸을 때, 내가 이런 것을 만들면, 사람들은 가까이 다가와서 신기한 듯이 쳐다보고, 칭찬하고, 나의 예술감각이나 손재주를 인정해 줬다. 처음에는 기뻤지." 설마하니 저것도… 생각하기 무섭게, 데이다라가 스태츄를 엉망진창으로 망가뜨려 근처의 쓰레기통에 버린다. 거의 완성, 아니, 이미 충분히 아름다운 형상을 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손으로 만든 것을 미련없이, 눈앞에서 치워 버렸다. 꼴도 보기 싫다는 듯이. "그런데 점점 스스로는 만족할 수 없게 됐다. 실제 모습과 똑같이 만드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 나는 기계가 아니다. 평범하게 잘 만든 것은 예술이라고 말할 수 없어. 아까도 말했듯이 내게는 나의 기준이 있다. 설령 남들이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해도, 그래서 좌절하게 된다고 해도, 끝까지 나는 그걸 '예쁘다'고 생각할 거다. 왜냐면… 예쁘잖아." '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단순해져야 해. 하나 같이 기를 쓰고 복잡하게 만들려고 한다니까. 그러다가 미련이 생겨서 쉽게 버리지 못하잖아. 나중에 필요 없게 되면 그냥 폭발시켜 버리면 돼. 까짓 거 또 만들지 뭐.' '내 생각은 뭔지 알아? 아직 손도 대지 않은 이 점토덩어리를 보고도 누군가 예술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곳이 유토피아야.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고, 언제나 눈만 뜨면 거기에 예술이 있는 거지. 그야말로 예술의 천국이잖아.' '너도 뭔가 만들고 싶다고? ─와하하하핫! 이게 뭐냐! 사소리 나리의 얼굴이… ─물론 이것도 예술이다! 점토에 점 두 개만 찍었어도, 그 밑에 U를 그려 넣었어도, 네가 사람이라면 사람인 거야. ─그 녀석이 뭐라고 놀리든 신경쓰지 마. 네 작품이잖아.' '신이 인간을 만들 때도 처음에는 분명 이랬을 거야. 누가 그걸 정상이라고 생각했겠냐. 아마 천사들한테 비웃음을 샀을걸. 근데도 이렇게 말하면서 꿋꿋이 만든 거지. 나한테는 이게… 이게 가장 아름다운…!' 기억이 흐릿해서 다 떠올릴 수가 없다. 머리가 아프다. 정말 몸무게는 문제가 아니구나. 이러다 몸이 다 축날 것 같다. 나는 이렇게 남들의 시선만 신경 쓰는 바보지만, 예술에 대해서도 솔직히 아무것도 모르지만, 지난 날의 일을 돌이켜 보며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 부탁이니까 이젠 생각을 달리 해라. 나는 지난번보다 마른 너를 볼 때보다, 요리하는 너의 뒷모습이나, 피곤해 잠든 너의 모습을 볼 때 더 애정을 느낀다. 애당초 내가 반했던 너의 모습은… 누구도 돌봐주지 않았던 나를… 진짜 동생처럼… 다정하게 대해줬던… 그런 모습이다. 알겠냐." 다행히 알 것 같다. 내가 가진 문제는 데이다라에게 사랑받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어쩌면 나는 이 사랑을 조금이나마 쉽게, 편하게, 최소한의 헌신으로 이어나가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데이다라의 이상형이 되면, 미인이 되면, 그것으로 나머지 부족한 부분을 쉽게 채울 수 있을 거라고,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 '아름다움'으로 '헌신'에 대한 욕구를 채울 수 있을까. 사랑을 할 때는 모두 중요하지만, 이 세상 무엇도 헌신을 대신할 수는 없다. "만약에… 언젠가 내가 너에게 그것 이상의 무언가를 바라게 된다면… 그래서 너무 힘들어지면… 그때는 네가 먼저 나한테 말해. '너 때문에 지긋지긋하니까 헤어지자'고.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네 멋대로 생각하고, 네 멋대로… 지치지. 마……." 내가 위태로워지면 데이다라는 불안을 느낀다. 비록 두 사람이 질긴 끝으로 이어져서 전부를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앞으로는 자신의 건강한 모습, 웃는 얼굴을, 결코 그의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할 수 있어… 좋은 남편이 될 수 있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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