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비에 젖은 길을 걸어 왔다. 이따금씩 마음의 평화를 위해 찾는 성당이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성당의 커다란 문이 활짝 열리는 시간이었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안에서 미사가 시작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나이를 먹어서 두려움이 생긴 탓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힘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하루쯤은 다른 일을 다 제쳐두고 두 사람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고 싶었다.

 하필이면 미사가 있는 날과 데이다라의 휴일이 겹치는 바람에 가지 말라는 그를 뿌리치고 나올 때는 마음이 좋이 않았다. 그래도 미사포를 머리에 쓰고 경건한 마음으로 두 손 모아 기도한다. 부디 다음 임무에서도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게 해주세요. 제가 좋은 아내로 살아갈 수 있게 더 많은 기회를 주세요.

 얼마 전, 데이다라가 하얀색의 예쁜 레이스 천을 가지고 돌아왔다. 처음에는 손수건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성당에서 여성들이 머리카락을 가리기 위해 쓰는 미사포였다. 데이다라는 내 머리에 미사포를 씌운 뒤 역시 잘 어울린다며 흐뭇하게 웃었다. 약간 당황스러웠다. 그에게는 평범한 액세서리 정도로 보였던 걸까. 그리고 왠지 모르게 나는 이렇게 성당에 왔다.

 솔직히 자신에게 미사포나 기도 같은 것은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여태껏 종교와 관계없이 살아오지 않았던가. 불과 얼마 전까지도 예배할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속으로 어쩔 줄 몰라 했었다. 여전히 조금 어색한 기분이지만 이제 크리스틴이라는 새로운 이름도 생겼다. 경건한 마음으로─

퍼엉──!!!

  심호흡을 하다가 그대로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엄청난 위력의 폭발로 인해 커다란 문이 간단히 무너져 내리고 사람들의 비명이 울려 퍼진다.

 맙소사, 성모상 복원이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설마 하며 돌아보는 순간 검은 점토새가 연기를 헤치며 등장했다.

 어째서 검은색…이 문제가 아니라, 빠르게 날아 사람들의 머리 위로 날카로운 바람을 일으킨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악마가 또 나타났다!!!"

 "맞아, 이렇게 잘생긴 악마는 좀처럼 잊을 수 없지?"

 "도대체 뭐 때문에 또 온 거야!!!"

 "여기서 제일 예쁜 여자를 데리러 왔다."

 저기 한눈에 보이는군. 악마의 손끝이 정확히 나를 가리킴과 동시에 깨달았다. 앞으로 이 성당에는 못 오겠구나. 어쩌면 옆 마을까지 소문이 번져서 거기서도 쫓겨나겠구나.

 절망에 빠질 틈도 없이 점토새가 성당 안을 한 바퀴 빙- 돌아, 입이 벌어진 채 멍하니 넋을 놓고 있는 나를 가볍게 낚아채 다시 슈웅 날아오른다.

 "악마가 신도를 납치해 간다!!!"

 "신도가 납치되었다!!!"

 "크리스틴 자매님!!!"

 어차피 뛰어내리는 건 무리지만 데이다라가 내 허리에 팔을 감아서 꼼짝 없이 붙잡혔다. 그런데 뜨헉, 방금 전에 나만 새에 올라탄 것이 아니었다. 성당에서 열혈 형제님으로 유명하신 한 신도 분께서 어째선지 날개 한쪽에 매달려 계신다.

 "뭐야 이건?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만. 음."

 "감히 신도를 납치하다니!!! 그녀를 데려가서 어찌 할 셈이냐!!!"

 "옷을 전부 벗겨서 키스하고 덮칠 거다. 어쩔래."

"절대 용납할 수 없다!!! 크리스틴 자매님을 돌려줘!!!"

 눈물이 앞을 가린다. 아아, 형제님. 구해 주시려는 마음은 감사하지만 실은 이 남자가 제 남편이에요. 더는 민폐 끼치고 싶지 않으니 그냥 조용히 사라지게 해주세요. 흑흑. 다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쳇, 귀찮게 하는군. 그러고 보니 아까 뭔가 빼먹은 것 같은… 아아, 그렇지!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메ㄴ… 뜨허억!!! 나도 모르게!!!"

 기도를 마칠 때 언제나 듣고 있는 말이라서 거의 자동적으로 두 손을 앞으로 모으셨다. 형제님 지못미. 그래도 이 악마에게는 누군가를 해칠 생각이 없기에, 떨어지기 전 고도를 낮춰서 바닥에 안착할 수 있었다. 살짝 구르긴 하신 것 같지만 괜찮겠지.

 나로서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때로는 마을을 통째로 날려버리기도 하는 폭탄테러범이 아닌가. 모두를 충격의 도가니에 빠뜨렸으나 데이다라에게는 아이처럼 장난을 치는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정도가 지나쳤다. 이런 말썽쟁이 같으니.

"그럼 바이바이다─!"

 "크리스틴 니이임─!!! 안 돼애애애──!!!"


 (…)

 그대로 아지트까지 직행하려는 데이다라에게 내려달라 울부짖었더니 결국 내 성화에 못 이겨 비행을 멈추었다. 지평선 너머까지 펼쳐진 커다란 숲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그늘에 의지해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싶었지만 뻔뻔한 악마는 내게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모처럼의 휴일에 나 혼자 두고 나가는 건 너무하지 않냐. 내가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한 번만 이해해 달라고 했잖아… 다음부터는 혼자 두지 않을게… 미안해… 내가 잘못했으니까 이러지 마…"

 아까 했던 말은 당연히 농담이라고 생각했는데, 새에서 내리자마자 나무기둥에 밀쳐졌다. 흐트러진 미사포를 머리에 쓴 채 옷이 반쯤 벗겨진 나는 수치스러움에 눈물을 글썽였다.

 차가운 손이 옷을 헤집고 들어와 멋대로 가슴을 만진다. 손바닥의 입이 어쩐지 얌전하다 싶더니 단단한 치아로 가장 민감한 곳을 깨문다. 아픔을 호소해도 그만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검은 손톱이 살갗을 파고들어 붉은 자국을 남긴다.

 "… 아니, 이제는 크리스틴이라고 불러야 하나. 사랑해, 크리스틴."

 큭큭 웃는 중저음의 목소리가 오늘은 더할 나위 없이 원망스럽다. 뜨거운 숨결이 귓가에 떨어지며 전신의 피부가 돋는다. 그만두기는커녕 한술 더 떠서 이제는 허벅지를 더듬거린다.

 웬만해선 거부하지 않는 내가 이렇게 싫어하고 있는데도 개의치 않는다. 다음, 그 다음, 하늘 아래에서 도저히 입에 담을 수 없는 일을 계속한다.

 "당신 정말 악마 같아… 무서우니까 당분간 내 근처에 오지 마……."

 "뭐… 치사하잖아… 그래도 할 거다. 흥. 어차피 난 악마다 이거야."

 답지 않게 어린애처럼 투덜거리는 것도 잠시 언제 그랬냐는 듯 아래쪽에 몰두한다. 뜨거운 숨결, 작은 신음, 짓궂은 웃음소리까지 나의 귀를 야릇하게 간질인다.

 평소에는 오빠처럼 무덤덤하면서, 그는 이렇게 가끔씩 말썽을 일으켜 나를 당혹시킨다. 애인으로서도 아내로서도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예전에 나는 적당히 순진한 여자를 잡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어. 잡히지 않아도 딱히 상관없었고. 그런데 마침 당신이 내 덫에 걸린 거야. 한 번도 아니고 내가 덫을 놓을 때마다 계속 걸리더라. 어쩌다 천사님이 이런 곳에 떨어졌을까 생각하면서도 속으로 웃지 않을 수 없었지. 불쌍하지만 사랑에 빠져 버렸으니까 절대 안 놔줄 거야. 당신도 나를 사랑하지?"

 "……."

 "미안한데 입을 다물고 있어도 알 수 있어."

 정말 못 말리는 악ㅁ… 남편이지만, 그런데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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