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따금씩 내가 잠에서 깨어날 때 데이다라는 이미 코트를 걸치고 있다. 그만큼 나보다 먼저 일어나는 것이 보통이라는 뜻이다.
원래 아침에는 게으른 편이었지만 요즘따라 부쩍 잠이 늘었다. 자도 자도 졸린 상태가 계속되어서 슬슬 병원에 가 봐야 하는 것 아닐까 고민이 될 정도다. 오늘은 눈을 뜨는 순간 데이다라가 곁에 있었고, 그랬기에 자연스레 '너무 일찍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다시 잠들었다가 하마터면 남편 아침도 못 먹여 보낼 뻔했다. 다행히 내 남편은 채식주의자다. 조리가 거의 필요 없어서 짧은 시간에도 식사를 준비할 수 있다. 커다란 보울에 손질한 야채만 담아 줘도 ‘잘 먹겠습니다’ 하고 군소리 없이 먹는다. 데이다라에게는 평범한 일이라는 걸 알지만 어쩐지 조금 미안하고, 고맙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번 임무에서는 토비가 도중에 빠지고 이타치와 합류하게 된다는 거지?" "아아, 일이 조금 복잡하게 꼬였다. 귀찮지만 리더의 지시니까 어쩔 수 없지. 음." 무덤덤하게 말하면서도 지난번의 일로 불쾌함이 남은 듯한 얼굴이다. 부지런한 데이다라에게도 가끔은 싫은 임무가 있겠지. 오늘 늦게 일어난 것도 어쩌면 그런 이유에서 갑자기 게으름이 피우고 싶어졌던 건지도 모른다. 누나의 마음으로는 가엾기도 하지만 어쩐지 웃음이 나온다. 이제 19살인데 조금 게으른 게 오히려 건강한 것 아니겠는가. "기왕 게으름 피우는 것 좀 더 응석 부렸다면 좋았을 텐데." "음?" "그냥 보내기 아쉬우니까 머리에 쓰담쓰담이라도 해줄게." "으음-." "힘내라, 우리 귀여운 남ㅍ…" -은 개뿔. 쿵─. 거친 움직임에 선반의 물건들이 덩달아 흔들리며 바닥으로 떨어진다. 갑자기 팔을 붙잡혀 세탁실로 끌려 왔고, 당황할 틈도 없이 벽으로 밀쳐졌다.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 지금은 아침인데, 식사 중이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아…!" 좁은 공간에서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일을 당하고 있다. 나른해진 몸에 어젯밤의 감각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건만, 여전히 민감한 그곳을 가차없이 들쑤신다. 자괴감에 몸부림치면서도 쾌감을 떨쳐낼 수가 없다. "데이다라…!" 좀 더 응석부렸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했던 것은 나다. 그러나 여기까지 각오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냥 쓰담쓰담 정도, 아쉬움을 뒤로한 채 헤어져서, 언제나와 같이 그가 돌아오는 것을 기다릴 셈이었다. 쓸쓸하지만 그리움이라는 여백을 남겨두는 것도 좋지 않은가. 이렇게 하지 않아도 애정은 충분히 전해진다. 꼭 이렇게 하지 않아도─. "아… 아앗…!" 하다못해 ㅋ… '그거'라도 해줘. 어쩌려는 거야. 뻔뻔하게 입을 꾹 닫고 대답도 하지 않더니 절정 후에도 부족한 듯 가슴을 만진다. 귀여운 남편이 아니라 변태다. 변태 남편. 육성으로 말하고 싶지만, 그래도 남편이니까, 어쩔 수 없으니까, 단지 울먹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망할 19살… 그만해……." "으음… 이만하면 충분히 응석부린 것 같다……." 휴우, 노곤노곤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빠져나간다. 그러더니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상황을 태연하게 수습하기 시작한다. 먼저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 정리하고, 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나지 못하는 나를 가뿐히 안아 올린다. 힘이 아주 넘치는구나. 너는 좋겠다 젊어서. 남편의 품에 아이처럼 안겨 행복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아무리 뭐래도 이건 아닌 것 같다. 정말 아침부터 무슨 꼴이람. 아지트 안에 두 사람 외엔 아무도 없는데도 낯이 뜨거워서 얼굴을 들지 못하겠다. (…) 토비 : 전 선배가 세상에서 제일 부러워요~. 데이다라 : 갑자기 무슨 말이냐. 토비 : 갑자기가 아니구요~, 전부터 생각했어요~. 나중에, 언젠가는, 저도 선배처럼 착한 애인이 가지고 싶어요~. 데이다라 : 하, 여자라곤 유녀밖에 모르고 사는 주제, 보는 눈은 있는 녀석이구나. 열받지만 부러워하는 것 정도는 봐주마. 토비 : 역시 니까 받아주는 거겠죠~? 아무리 애인이라도 아침부터 징그럽게 달라붙으면~. 데이다라 : 뭐, 징그럽… 흠흠! 나의 사랑에 아침 저녁은 관계 없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애인이 아니라 배우자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겠냐. 토비 : 그치만 선배, 아직 미성년자잖아요~. 데이다라 : 남자는 원래 18세가 혼인적령기다! 토비 : 전 그거 문제 있다고 봐요~. 18살이나 19살이나 애송이가 뭘 안 다고~. 에휴~. 데이다라 : (고오오오오) 토비 : 히이이이익~! 죄송해요~! 죄송해요~! 데이다라 : 네놈은 언제나 멋대로 떠들어대고서 착한 척, 순진한 척 연기를 하지… 요즘에는 네가 이타치보다 더 열받아! 토비 : 꺄아아~. 거미 징그러워~~~. 데이다라 : C1으로 끝날 거라고 생각했냐! 토비 : 잠ㄲ… 우, 우아아아아앗~~~!!! C2는 봐주세요~!!! 후배 하나 혼내 준다고 마을이 통째로 날아갈 정도의 힘을 쓰는 건 지나친 낭비 아닌가요~~~!!! 데이다라 : 도망칠 때만 재빠른 네놈에게는 이 정도 매가 딱이다!!! 토비 : 여기 숲이예요~~~!!! 나무가 전부 불타 버릴 거라고요~~~!!! 후배를 사랑합시다~~~!!! 데이다라 : 환경을 사랑합시다겠지!!! 갈(喝)!!! 토비 : 아흐으윽~.//// (…) 쏴아아아아──. 데이다라 : 젠장, 모처럼 쉬는 날을 얻어서 이번에야말로 데이트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터무니없는 임무가 떨어지는 것도 모자라 비까지 내리고 말이야. 이래서 더 나오기 싫었다고. 음. 이타치 : 그렇게 불평하지 마라. 비를 피할 수 있는 성당이 근처에 있어서 그나마 다행 아니냐. 마침 지금은 신도들도 없다. 여기 앉아서 잠시 쉬었다 가자. 데이다라 : 조용하니 더 기분 나쁘군. 이타치 : 그건 네가 무거운 죄를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지 장소의 문제가 아니다. 이참에 회개라도 해보는 게 어떠냐. 데이다라 : 농담 집어치워. 회개하면 누가 용서해 주긴 한대? 그렇게 말하는 너야말로 나랑 다를 것 없잖아. 오히려 나보다 먼저 입단했으니, 무게로 따지면 나보다 네가 훨씬 괴로워야 하는 거 아니냐. 이타치 : 예전에는 그랬다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도리어 마음이 편안하다. 처형대에 오르는 사형수처럼 덤덤한 기분이라고 하면 맞겠군. 딱히 두렵지도, 불안하지도 않다. 어서 끝나기만 바랄 뿐이야. 데이다라 : 너의 병… 정말 고칠 수 없는 거냐? 아카츠키 안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는 게 어렵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믿을 만한 의료닌자가 없는 것도 아니잖아. 이타치 : 말했다시피 장소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마을에 남아 일족을 지켰다 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을 거다. 어느 한쪽은 반드시 희생되어야 했으니까. 데이다라 : 만약 정말로 신이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다면 꽤나 섭섭하겠어. 이젠 너마저 잃게 생겼으니. 볼 것도 없이 너랑 난 갈 곳이 정해져 있는 것 같은데, 이승에서는 글렀으니 나중에 거기서 다시 한 번 붙자고. 네가 관심 없대도 할 거야. 이타치 : 질리지도 않고 예전 일을 꺼내 드는군. 그렇게 분해할 것 없다. 결국에는 네가 살아남게 될 것 아니냐. 데이다라 : 병 따위의 참견을 받아 이긴다 한들 만족할 수 있을까보냐. 정정당당하게 붙어서 이길 때까지 귀찮게 할 거니까 각오해. 이타치 : 너는 이미 나를 이겼다. 데이다라 : 하? 이타치 : 인간은 전투에서만 경쟁하는 것이 아냐. 내게 져서 아카츠키에 입단하게 된 것은 분하겠지만 나의 패배 또한 제법 쓴 것이다. 여기서 1:1로 깨끗이 끝내자. 데이다라 :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타치 : 나에게 있어서도 네가 어떤 의미에서는 라이벌이었다는 것이다. 한 번도 겉으로 드러낸 적 없었지만. 데이다라 : ……. 이타치 : ……. 데이다라 : 설마……. 이타치 : 나도 사내다. 데이다라 : 이, 이런 교활한 자식! 착한 동생의 얼굴을 하고는 속으로 흑심을 품고 있었구나! 이타치 : 너에게 듣고 싶지 않다. 내 눈에는 그녀 앞에서 착한 척, 순진한 척하는 너야말로 교활한 악마로 보인다. 데이다라 : 내가 토비 자식과 똑같단 말이냐! 이타치 : (…아니, 그래도 너는 아직 어둠으로부터 자유롭다. 빛을 필요없는 것으로 여기지 않고, 되찾으려 하고 있잖나.) 덜컥─. 웅성웅성─. 데이다라 : 쳇, 사람들이 오는군. 이타치 : 이것을 머리에 쓰고 있어라. 데이다라 : 뭐, 뭐야? 레이스 천 아니야? 이타치 : 여기서 너의 금발은 눈에 띈다. 데이다라 : 하지만 이건 여자들이 쓰는 거잖아. 이타치 : 정체를 들켜서 쫓겨나는 것보다는 낫지. 목소리를 크게 내지만 않으면 아무도 네가 남자라는 걸 모를 거다. 신부 : 미사를 시작하겠습니다. 데이다라 : 너, 여기 한두 번 오는 게 아니구나. 이타치 : ……. 데이다라 : 설마하니 지금 기도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이타치 : 벌써 지루해서 못 견디겠나. 그럼 너도 나처럼… 데이다라 : 어떻게 하는지 나도 알거든. 흥. 신부 : 정결하신 동정 마리아님-. 데이다라 : ……. (당신이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 나도 좋아서 이딴 걸 머리에 쓰고 있는 게 아니니까 웃지 말라고. 음.) (…어쨌든 오랜만이야, 엄마.) (계속 잊은 채로 살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기억나 버렸어. 난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끔찍한 아들이었더라고.) (하지만 당신이 나한테 가혹했다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을 거야.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게 무엇보다 괴로웠어.) (보다시피, 그림자 밖의 세상은 행복한 인간들로 가득해. 나도 똑같은 자식인데 차별할 것 없잖아. 좋든 싫든 난 당신 아들이야. 그러니까 한 번만 이쪽으로 귀를 기울여 줘.) (있잖아, 태어나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인데. 내가 죽어서 천국에 갈 수 있게 거기 옆에 있는 수염쟁이 영감의 눈을 잠깐만 가려 주지 않을래?) (딱히 모든 걸 용서받고 싶은 게 아니야. 내가 바라는 건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함께 있는 것뿐이거든.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불구덩이로 끌고 갈 수는 없잖아.) (만약 그녀가 지옥에 간다면 아마도 악마의 손을 잡고, 악수를 하면서, 앞으로 잘 지내자고 말할 거야. 물론 농담이지만, 내 말은, 그만큼 순진한 여자라는 거지.) (생각해 보면 과거의 나는 굳이 착한 동생을 연기할 필요가 없었어. 바보 같은 짓이었지. 그녀는 처음부터 나 같은 악마라도 사랑할 수 있는 여자였는데.) 데이다라 : ……. (그나저나, 거기서도 꿈을 꾸나? 요즘 난 매일 밤 꿈에서 같은 것을 보고 있어. 평화로운 마을, 따뜻한 집, 사랑하는 사람… 모든 게 완벽해.) (집으로 돌아갈 때 나는 항상 임무로 지쳐 있어. 가장 먼저 아내의 이름을 불러. 그녀가 나와서 나를 향해 웃어 줘. 누가 뭐라 해도 세상에서 제일 예쁘지.) (난 그녀의 무릎을 베고 누워. 그대로 계속 깨지 않고 잠들고 싶어. 하지만 머지않아 싫어도 생각하게 돼. 이건 꿈일 뿐이야. 끝이 있는 행복이야말로 진짜 지옥이야.) (부질없다는 걸 알지만 욕심내지 않기엔 너무 아름다워. 내 영혼을 다 쓴다 해도 표현할 수 없어. 그냥 빌어먹게 아름답다고. 나의… 유일한 안식처…….) 데이다라 : ……. (당신이 도와주지 않겠다면… 어쩔 수 없어… 내가 당신의 천사에게 기생충처럼 달라붙어서 전부 갉아먹는 걸 지켜보라고. 어차피 난 악마니까, 그렇게라도 함께일 수만 있다면… 하하하…….) (아아, 그래, 오랫동안 그림자속에 살다보니 머리가 이상해졌어. 반짝이는 것을 찾으면 미친 듯이 갖고 싶고, 집착하게 돼.) 신부 :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데이다라 : ……. (기도가 끝나 버렸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묻고 싶은게 있는데. 이 레이스 천, 가져가도 되는 거야? 대답하지 않는 건 괜찮다는 거지? ) (처음에는 여자들이 웬 보자기를 머리에 쓰고 있나 싶었는데, 당신을 계속 보니까 은근히 예쁜 것 같아. 슬쩍해 놨다가 여보야 갖다 줘야지.) (물론 내 여자에게 이걸 씌워 놓고서 기도를 시키지는 않을 거야. 아지트로 돌아가면… 말하지 않아도 뭐 할지 알지? 하하하, 그래, 맞아. 어쩔 건데? 맘에 안 들면 내 머리 위로 벼락이라도 떨어뜨려.) 이타치 : 너도 차분하게 기도가 되는 녀석이었군. 데이다라 : 내가 기도 따위를 할 리 없잖아. 그냥 아지트를 나오기 전에 했던 일을 생각하고 있었어. 이타치 : 뭘 했는데? 데이다라 : 지금 그걸 얘기하면 곤란해져. 성당에서 여자들의 천을 쓰고 흥분하는 변태로 소문나고 싶지 않다고. 음. 이타치 : ……. 데이다라 : 하지만 정말 굉장했지-. 네가 정 듣고 싶다면 이따가 조용한 곳에서 살짝만 얘기해 줄게. 이타치 : 아니,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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