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늘한 기운이 맴도는 조용한 아지트에서 홀로 잠드는 것은 언제나 같은 일인데, 이따금씩 데이다라나 다른 식구들의 빈자리가 유독 크게 느껴질 때가 있다.
두꺼운 이불을 거의 머리까지 덮고 있어도 마음의 허전함 때문인지 좀처럼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점점 추워지며 몸이 바들바들 떨린다. 아까부터 정신이 흐릿하고 몸이 움직이지 않는데 내가 지금 잠들어 있는 것일까. 그렇다고 보기에는 의식이 선명하다. 문득 덜컥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터벅터벅-. 누군가 내 뒤로 다가와 침대에 걸터앉는다. 내게 손을 뻗어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쓸어넘긴다. 검은 손톱과 손바닥의 입. 데이다라다. 오늘 돌아온다는 말은 없었는데 어떻게 된 거지. 꿈을 꾸고 있는 걸까. 데이다라에 대한 나의 그리움을 생각하면 무리도 아니지만 그의 손길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아아, 꿈이 맞구나. 작업대 앞에 앉아 인형을 손보고 있는 사소리 오빠의 뒷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매일 밤 내가 바라보던 그 모습 그대로, 여전히 내 마음 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다. 지금 이곳에 있을 리 없는 데이다라에 죽은 사소리 오빠까지. 참으로 내게 편리한 꿈이 아닐 수가 없다. 이제 조금은 두 사람으로부터 떨어져야 할 텐데. 시간이 지날 수록 오히려 집착이 강해지는 것 같다. 그래도 꿈이니까, 너무 오랜만이니까, 조금만 더 그들과 함께 있고 싶다. 그런데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너무나도 소중한 것들인데, 몸은 마치 악몽처럼 가위에 눌리는 듯하다. "윽… 으… 으윽… 흑……." 일어나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소용이 없다. 이래서야 정말 좋은 꿈인지 악몽인지 모르겠다. 꿈에서만이라도 마음 놓고 함께 있을 수는 없는 건가. 이럴 거면, 더 그립게 할 뿐이라면 차라리 내 앞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뜨자 더 이상 오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막상 그가 사라지니 바로 조금 전에 자신이 생각했던 것이라고 해도 후회가 된다. 그래도 조금은 더 봐둘 걸. "윽… 으윽… 흑흑……." 오빠는 이제 여기 없다. 다시 한 번 그렇게 현실을 직시한다. 그 차가운 현실에 몸이 얼어붙는 것만 같다.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딱딱하게 굳어 있는데도 떨리고 있다. 이제 슬픔에는 익숙해졌다지만 이 추위만은 견디기 힘들다. 바들바들 떨리는 몸에 문득 따뜻한 손길이 느껴진다. 데이다라인가. 코트와 상의를 벗고 그가 이불 속으로 들어오더니 뒤에서부터 나를 끌어안는다. 따뜻하다기보다는 뜨거운 그의 체온이 얼어붙었던 몸을 녹이는 듯하다. "데…이…다라……." 너만은 계속 내 곁에 있어줘. 날 두고 가지 마. 내 곁에서 사라지지 마. 그러한 생각이 너무 간절한 나머지 꼼짝도 하지 않던 몸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힘들게, 정말 힘들게 데이다라의 손을 붙잡자 거기에 답하듯이 그가 내 어깨에 입을 맞춘다. "아……." 데이다라가 나를 정면으로 돌아눕게 하는 순간 의식이 선명해지고 그와 동시에 강한 속박으로부터 몸이 해방된다. 안타까운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데이다라. 꿈일까, 현실일까. 그가 상체를 숙여 내게 가까이 다가온다. 서로의 입술이 겹쳐진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무엇보다도 내 몸이 스스로에게 그를 갈망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낸다. 찌릿 하고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야릇한 감각에 비로소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데이다라…?" 이번에도 임무가 길어질 것 같으니 괜히 나와서 기다리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던 그가 어째서 지금 여기에 있는 건지. 의아함을 품고 있노라면 문득 지난 날 적이 그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아지트에 잠입했던 사건이 떠오른다. "데이다라… 데이다라 맞아…?" 그가 내 목에 키스하며 뜨거운 숨결을 떨어뜨린다. 그때와 달리 어깨 위로 내려앉은 금발의 머리카락은 부드럽고, 뺨에 닿은 손은 따뜻하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함을 떨쳐낼 수가 없다. "대답해…! 무서워… 시, 싫어……!" “괜찮아.” 그의 손이 상냥하게 머리를 감싸온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나다, .” 가슴으로 전해져오는 익숙한 감각으로 알 수 있다. 정말 데이다라구나. 그것을 깨닫는 순간 두 팔을 벌려 그를 끌어안는다. 내가 괜찮다는 것을 확인한 뒤 한결 조심스러워진 손길로 그가 내 옷을 벗기고 다리를 조금 벌리게 한다. 딱딱하게 경직되어 있는 몸이 저항하자 손바닥에서 혀가 나와 그 저항을 무너뜨린다. 그리고 머지않아, 내 안으로 그의 손가락이 들어온다. “아… 아아…!” 데이다라는 예정에 비해 몇 배는 더 빨리 돌아왔는데, 원래대로라면 지금쯤 그를 기다리고 있어야 할 터인데, 몸은 굉장히 오랜만에 그에게 닿았던 때와 마찬가지로 민감하다. 아니, 오히려 더 빨리 절정이 온 것 같다. 그가 손을 거두고 내 다리를 휘어잡는다. 조금은 쉬게 해주어도 좋을 텐데, 그런 것 없이 바로 나를 범해온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시작해 버릴 때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역시 괴롭다. “아직… 움직이지…….” “미안…….” 갑자기 날카로운 감각으로 몸이 충격을 받음과 동시에 심장이 크게 들썩인다. 이어지는 움직임에 점점 녹아내리고 가슴이 아우성을 친다. 남아 있는 이성으로는 기껏해야 목소리를 억누르는 정도가 고작이다. 머릿속이 기분 좋다는 생각만으로 가득차서 그 마저도 붙잡고 있기 어렵다. “하… 하아…….” 그의 손이 내 허리를 붙잡아 자신에게로 바짝 끌어당기는가 하면 아픔을 채 호소하지도 못한 내게 입을 맞춰온다. 그 키스에 괴로움과 쾌감이 뒤섞인 목소리가 묻혀 버리고, 야릇한 숨소리만이 입술 사이로 새어나간다. 혀가 얽혀서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니 의식이 점점 흐릿해져가는데, 그 와중에도 전신에 울려 퍼지는 짜릿한 감각만은 선명하게 느껴진다. 아까 내가 느꼈던 쓸쓸함은 뭐였지. 어떤 괴로움도 쾌락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 내게는 데이다라와 이 감각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나는 무의식 속에서 계속 중얼거린다. 기분 좋아, 기분 좋아 하고. “하아… 하아… 하…….” 데이다라도 괴로웠던 걸까. 한 차례 열기가 가라앉은 뒤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생각한다. 내게 모든 것을 쏟아낸 그는 지금 내 가슴 위에 쓰러져서 숨을 고르고 있다. 어딜 어떻게 봐도 내 남자인데 잠시나마 적이 아닐까 하고 의심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정말 어떻게 된 일일까. “데이다라, 오늘은 어떻게 말도 없이 갑자기 돌아온 거야…? 임무는…?” “다시 나가봐야 한다… 뭐라 말하기 어렵지만 아침부터 왠지 모르게 기분이 묘해서… 와버렸어… 음…….” “묘하다니…?” “나리가 죽던 날이랑 비슷해…….” 그가 머리맡으로 올라와 나를 감싸안는다. 그날 느꼈던 기분이라면 나 또한 아직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불안함, 초조함, 그러나 아무것도 아닐 거라고 스스로 몇 번이고 되뇌었던 그 기분. 데이다라도 나와 같았던 걸까. 그렇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걱정 마 데이다라… 나… 늘 그랬듯이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게…….” “…….” 잠시 동요하는 듯하던 데이다라가 몸을 일으켜 나와 마주한다. 그리고 불안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내게 말한다. “너는 한 번 죽으려고 했잖아…! 만약 오비토란 녀석을 찾지 못하면 그땐 어떻게 되는 거냐…? 내가 뭘 할 수 있는 거지…? 나만으로는 부족하잖아… 난 안 되잖아…!”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데이다라……." 오비토가 살아 있다는 말을 듣고 정신을 차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때 오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지금까지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데이다라가 내 곁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가 없었더라면 지금 나도 여기 없었을 것이다. “너… 속으로 나를 원망하고 있지…? 그때 내가 독단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면 나리는 죽지 않았을지도 몰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래서 우치하 오비토가 필요한 거야… 녀석에게 안기고 싶은 거야…….” 그의 말에 일순간 심장이 멈추는 듯하다. 그리고 점점 정신적인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가 내게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한 편으로는 그 기분을 알 것 같아서 가슴이 저미어온다. “내가 오비토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은 그런 게 아니야." 물론 좋아하지만, 보고 싶지만, 그와 이어지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나에게는 데이다라가 있다. 이 감정은 쿠로이치 씨에 대한 그의 마음과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데이다라는 어때…? 나만으로는 부족해…? 쿠로이치 씨가 필요한 거야…? 안고 싶은 거야…?” “난…….” 오비토를 꼭 찾을 거라고 자신 있게 말은 했지만 솔직히 나도 힘들다. 데이다라를 기다리는 것, 데이다라가 다쳐서 돌아올까봐 걱정하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히 벅차다. 그간 참아왔던 것들이 조금씩 섞여 나오기 시작하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나를 바라보는 데이다라의 얼굴도 괴로워보인다. “난 그때… 망설였다…….” “?” “나리가 남겨준 자료, 그게 널 살릴 유일한 방법이란 걸 알고 있으면서도 망설였다. 실제로 살아 있을지 어떨지, 만날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는 녀석인데도.” “…….” “너와 녀석의 사이에 어떤 과거가 있었는지는 몰라. 어찌 됐든 녀석이 너를 여기까지 오게 한 거지. 그걸 너에게 넘길 때는 각오를 해두라고 나리가 말하더군. 모든 기억을 잃으면서도 네가 유일하게 기억하고 있던 이름 우치하 오비토, 녀석이 너의 전부였던 거잖아? 내 손으로 너의 그런 기억을 되살려내야 하는 거잖아? 싫었어. 전부 불태워 버리고 싶었어. 하지만 그렇게 하면…….” 조심스레 손을 뻗어 데이다라의 서클렛을 벗기고,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넘긴다. 식은땀이 맺힌 이마에 입을 맞추자 그가 자신의 얼굴로부터 괴로움을 지워내려 애쓰며 두 눈을 지그시 감는다. “윽…….” 그의 몸을 더욱 꼭 감싸안으며 부드러운 금발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그리고 다정하게 뺨을 부비적거린다. 나를 향해 뻗은 그의 손끝으로부터 희미한 떨림이 느껴진다. 어째서 이렇게도 두려워하는 걸까. 이따금씩 데이다라가 내게 하는 말이 있다. 우리가 서로 이어져 있어서 모든 것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지금 그러한 마음을 어느 때보다 더 간절하게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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