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다라와 토비가 아지트로 돌아왔다. 그러나 마중을 나가지도, 청소를 하지도, 요리를 하지도 못했다. 어제 텃밭에서 조금 무리를 했더니 아침부터 온몸이 아파서 일어날 수가 없다. 나이는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새삼 자신이 원망스럽다. 왜 하필이면 이런 날 몸살에 걸린담.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오랜만에 남편의 얼굴을 보니 너무 좋다. 나와 눈이 마주친 데이다라가 부드럽게 웃으며 이마 위의 수건을 갈아 준다. 그러고 보니 열도 있었던가.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일어나고 싶다. 데이다라에게 부비부비하고 싶다. 갑자기 아이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분명히 열이 있는 것이다. 머리가 멍하고 몸이 말을 듣질 않는다. 이대로 계속 침대에만 누워 있어야 한다니 서럽기까지 하다.

 "약을 먹으려면 뭐라도 먹어야지. 내가 만들어 오겠다. 음."

 남편, 가지 마. 힝.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속으로 외치는 수밖에 없다. 못 본 사이 더 길어진 금발의 머리카락. 데이다라가 돌아서는 순간 아름답게 휘날린다. 붙잡을 수 없는 한 줄기 빛처럼 나의 손끝을 안타깝게 스친다.

 더는 보이지 않게 되자 의욕을 상실함과 동시에 눈이 스르르 감긴다. 그나마 차가운 수건이 위로가 된다. 아직 상쾌한 바람의 냄새가 조금 남아 있는 것 같다.

 (…)

 데이다라 : ( 나를 위해 텃밭을 가꾸다 몸살에 걸리다니… 가슴이 미어지는군… 허나 이것은 그녀에게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일 절호의 찬스이기도 하다… 그래… 잘만 하면… 이번 기회에 믿음직한 남편으로 거듭날 수 있어…)

 (오늘 나의 임무는 ' 먹을 죽 만들기'다… 그런데 뭐부터 시작하면 되는 거지…? 내가 마지막으로 요리를 했던 게… 바위마을에서 혼자 생활했을 때였으니까…;; 벌써 9년 전의 일이구만…;;;)

 (아니, 이럴 때일수록 정신 똑바로 차려야 돼…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진행되질 않는다고… 일단 움직이는 거야… 한손에 냄비를 들고… 다른 손에 주걱을… 으음… 뭐가 주걱이지…;; 다 비슷하게 생겼는데…;;;)

 뒤적뒤적─. 뒤적뒤적─.

 토비 : 선배~. 약 사 왔어요~. 거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

 데이다라 : 의 죽을 만드는 것으로 정해져 있잖아. 방해되지 않도록 거기 적당히 앉아 있어라.

 토비 : 그럼 일단 쌀을 불려야죠~. 뒤집개는 왜 들고 계세요~?

 데이다라 : 주걱이 아니라 뒤집개였구나… 음…;;

 토비 : 뭐어 용도에 따라 스패츌라라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그런 건 몰라도 괜찮아요~. 죽은 제가 만들 테니까 선배야말로 앉아서 좀 쉬세요~. 이번 임무에서 무리하신데다 부상도 입으셨잖아요~.

 데이다라 : 부상에 대한 것은 에게 말하지 않았으니 너도 입다물고 있어라. 아파서 누워 있는 와중에 괜한 걱정을 시키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내가 스패…는 잘 모르지만, 너에게 도움을 받을 정도는 아냐. 신경 꺼라.

 토비 : 맡겨 주세요~. 저는 어렸을 때 부모님이 안 계셔서 할머니 밑에서 자랐거든요~. 할머니께서 편찮으실 때마다 제가 직접 미음을 만들어 드렸어요~.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죽만큼은 잘 끓여요~.

 데이다라 : …….

 ( 얼른 기운을 차릴 수 있게 물러나 있는 편이 좋을까… 그렇다 해도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철부지 어린애가 되고 싶지는 않아… 아플 때야말로 가까운 사람을 의지하게 되잖아… 이건 남편으로서 내 의무이기도 해… 절대 토비에게 밀릴 수 없어…)

 토비 : 냉장고에 뭐가 있으려나~. 와아~. 역시 살림을 잘하고 있네요~. 필요한 것만 적당량 채워 놓는 이 노련함~. 게다가 전부 신선해요~. 몸살에 걸린 걸 보니 요즘 기력이 많이 쇠해진 것 같은데~. 이참에 건강에 좋은 재료를 여러 가지 사용해 볼까요~.

 데이다라 : 토비, 여러 번 말하지 않겠다. 이건 어디까지나 의 남편으로서 내게 주어진 임무다. 너의 도움은 필요없어.
 ​
 토비 : 그치만 선배는 뒤집개랑 주걱도 구별 못하잖아요~.

 데이다라 : 시끄럽다! 미천한 세컨드 주제 어디 감히 조강지부의 일에 끼어들어! 부정 타게 돌아다니지 말고 건넌방으로 꺼져 있어!

 토비 : …….

 (…)

 한숨 자고 나니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어느덧 이마 위의 수건이 미지근해졌지만 열은 내린 것 같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꼬르르륵. 문득 배꼽시계가 울린다. 데이다라가 뭔가 만들어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나갔던 것이 기억나는데 어찌 되어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복도에서부터 두 남자의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머지않아 방 문이 열리며 토비와 데이다라가 들어온다. 쟁반 위에 놓인 작은 그릇이 나의 시선을 이끈다. 소박하지만 먹음직스럽고 고소한 냄새가 난다.

 "거 봐요~.  벌써 일어났잖아요~."

 빈정거리는 말투에 데이다라가 미간을 좁힌다. 그런데 오늘따라 어쩐지 얌전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내게 다가와 앉는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

 "아냐, 방금 일어났어."

 쟁반을 무릎에 올려놓고 가만히 바라보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두 사람에게 감사를 표한 뒤 따뜻한 죽을 살며시 입에 넣어 본다. 맛도 생김새처럼 소박한 느낌이지만 지금으로서는 오히려 부담이 없어서 좋다.

 맛있게 먹는 내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는 데이다라. 토비도 반대편에 다소곳이 앉는다. 오랜만에 돌아와서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평 한 마디 없다.

 약간 민망해질 정도의 집요한 시선을 받으며 그릇을 비우고, 약을 입에 털어넣은 뒤 물을 마셨다. 아침부터 계속 굶었는데 이제 배가 든든하다. 서서히 기운이 돌아오는 듯하다.

 "기분이 어떠냐?"

 "덕분에 훨씬 나아졌어."

 "까짓거 그냥 사먹고 말지… 텃밭은 뭐 하러 만들었어? 그렇잖아도 힘들 텐데."

 "열매가 열리기까지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즐거워. 저번에 먹었던 토마토 있지, 내가 직접 수확한 거야. 헤헷."

 "……."

 사실 상상했던 것만큼 주렁주렁 열리지는 않았기 때문에 나는 먹지도 못했지만. 데이다라가 먹는 모습을 상상할 때나 실제로 보았을 때 뿌듯함을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데이다라가 내게 살며시 손을 뻗는다. 땀에 젖어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다. 민망함에 고개를 숙이자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뺨을 쓰다듬어 준다.

 "요리하는 거 힘들지 않았어?"

 그 정도 가지고 뭘, -데이다라가 대답하려는 찰나, 가만히 듣고 있던 토비가 끼어든다.

 "말도 마~. 주방에서 엄청난 사투를 벌였어~."

 "토비, 쓸데없는 말 하지 마라. 음."

 "선배는 없었다면 진작 굶어 죽었을 거예요~. 이번에도 제가 있어서 그나마 멀쩡한 죽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거라고요~."

 평소대로라면 화를 냈을 텐데, 탐탁치 않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데이다라는 여전히 얌전하다.

 "…그래, 고맙다."

 덤덤하게 말하더니, 쟁반을 치우기 위해 손에 든다. 다른 손으로는 수건을 집어 들어 내 이마의 식은땀을 닦는다. 사소한 몸짓 하나하나 세심하기 그지없다.

 "이제 와서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데이다라는 나이에 비해 정말 어른스러운 것 같아. 굉장히 듬직해서 자꾸 의지하고 싶어져."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거라고 생각하지만 가끔은 진심을 전하고 싶다. 이유 모를 침묵에 의아함을 느낄 때 즈음 데이다라의 얼굴이 점점 빨갛게 물들어 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고개를 똑바로 들지 못하고 시선은 모로 향하고 있다.

 "보아하니 제일 듣고 싶은 말이었던 것 같네~."

 짓궂게도 아이를 놀리는 듯한 말투다. 그러나 데이다라는 현재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다. 작게 헛기침 하며 쟁반을 가지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지난번 일정을 타이트하게 잡은 덕분에 여유가 생겼다. 이번에는 넉넉하게 3일 정도 임무를 쉴 수 있을 거다. 그러니까, 난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 너는 내가 떠나기 전까지 낫기만 해라."

 "3일 안에 나으면 뭐 해줄 건데?"

 거의 기정사실화된 일이기 때문에 여기서 무언가를 바라는 건 염치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대답을 이미 아는 것처럼 능청스레 웃으며 묻는다.

 "…뭐든지.////"

 역시나,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다. 우리 강아지. 금발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돌아서더니 도망치듯 방을 나가 버렸다. 복도로 나가는 순간 어쩔 줄 몰라하며 쪼르르 달려가는 뒷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흡… 잠깐 심쿵한 것이 아니다. 심장이 꾸우우욱 하면서 계속 아프다. 여러 가지 이유로 다시 쓰러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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