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떠난 이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그리움에는 이제 그런대로 익숙해졌고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런데 내겐 한 가지 고민이 있다. 별다른 것은 아니고 그냥 나의 어린 애인이 조금 걱정된다.

 요즘 데이다라는 임무가 끝나면 유독 안색이 어둡고, 눈 밑의 다크서클이 더 심해져서 돌아온다. 토비 말로는 밥을 먹을 때나 잠을 잘 때, 그밖의 모든 경우에도 홀로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는 일이 많다고 한다. 마치 사춘기의 아이처럼.

 한때 내게 상처를 주기도 했던 질풍노도의 시기는 진작에 끝났다. 그래도 열아홉의 나이면 앞으로의 자기 인생에 대해 여러 가지로 고민할 시기다. 이럴 때는 인생 선배로서 확실하게 도움이 되고 싶지만, 나도 지긋하게 갇혀 지내온 인생이기에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고, 막상 데이다라의 옆에 앉으면 입을 열기가 망설여진다.

 이런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나는 지금 몸을 숨긴 채 문 틈으로 데이다라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다. 치카치카. 치카치카. 데이다라가 세면대 앞에 서서 쩝쩝이의 이빨을 닦는다. 얼마 전 왼팔에 부상을 입는 바람에 깁스를 한 상태라, 칫솔을 움직일 때 마다 아픈 듯 움찔하며 신음한다.

 쩝쩝이의 양치를 마쳤고, 이제는 냠냠이 차례다. 그런데 문득 데이다라에게서 힘겨운 한숨소리가 들려오더니 그가 어깨너머로 내게 넌지시 말한다.

 "왜 숨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들어와라."

 언제부터 내가 여기 있단 걸 알고 있었던 거지. 당황해서 무심코 도망치려다 '' 하고 부르는 소리에 멈칫했다. 데이다라가 성큼성큼 욕실에서 걸어나와 문을 확 열어재낀다. 깜짝 놀라 간이 쪼그라들었다. 왠지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다. 혹시 화났나. 얼음처럼 굳어서 두 눈만 깜빡거리고 있는데 문득 데이다라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러더니 은근히 애교 섞인 말투로─.

 "나 냠냠이 양치하는 거 도와줘야지. 그냥 가면 섭하다고. 음."

 예전에는 내가 뭐라 부르건 그냥 '왼손', '오른손'이라고 했었는데, 요즘에는 데이다라도 자신의 양손에 묘한 애착이 생겼는지 '냠냠이', '쩝쩝이'라고 귀여운 애칭으로 부른다. 가끔 나 때문에 질투를 하기도 해서 좀 더 정확하게는 애증이라고 해야 맞겠다.

 "그렇지 참."

 데이다라는 다른 멤버들에 비해 그닥 부상이 잦은 편은 아니지만 양손이 닌자도구이기 때문에 유독 양팔에 부상을 입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마다 내가 냠냠쩝쩝의 양치를 도왔고, 부상으로 임무를 쉬게 된 요 며칠 간에도 내가 직접 칫솔을 쥐고서 냠냠이의 이빨을 닦아 주었다. 보통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손바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새삼스럽지만 경이로운 광경이다.

 "자, 냠냠이 이리 오세요."

 매일 점토를 씹어대는 냠냠쩝쩝의 양치는 생각보다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원래부터 이렇진 않았는데 요즘에는 나와 키스하거나 여러 가지 다른 용도로 (…) 사용하기도 하기 때문에 전보다 더 위생관리에 신경을 쓰게 되었다. 바닥에 마주앉아 데이다라의 손을 살며시 붙잡고 양치를 시작한다.

 치카치카. 치카치카. 양치할 때 냠냠이는 굉장히 기분이 좋아 보인다. 실제로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마치 사람이 쾌감을 느낄 때처럼 입을 '헤-' 벌리고 있다. 모처럼 나로부터 섬세한 케어를 받는 데이다라 본인도 편안하고 즐거워 보인다.

 "아… 아아……."

 드문드문 들려오는 구수한 감탄사에 속으로 쿡쿡 웃음을 참는다. 마치 아저씨가 노천탕에 들어가며 내는 소리 같다. 오늘은 정말 기분 좋은가 보구나. 아지트로 돌아오기 전에 토비에게도 한 번 케어를 받았는데 그때는 아프기만 하고 전혀 시원하지 않아서 불만이 많았던 모양이다. 양치는 역시 에게 맡겨야 한다며 투덜거렸다나 뭐라나.

 "지금쯤이면 상당히 예민해져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 보다 괜찮아 보이네."

 "예민…? 내가 말이냐…?"

 기분 좋은 듯 몽롱한 표정. 슬슬 노곤함이 밀려오는가 보다. 그가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나를 바라본다.

 "아지트에서 이렇게 느긋하게 쉬는 건 오랜만이잖아."

 "그러고 보니 오늘로 3일째인가…? 토비 녀석이 휴일은 너무 순식간에 지나간다고 투덜거리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정말 그렇군. 음."

 내가 데이다라를 걱정하는 진짜 이유가 실은 여기에 있다. 과거의 데이다라는 부상을 입으면 그것이 다 낫기도 전에 '이 정도면 싸울 수 있다'라며 떠나기 일쑤였는데 현재의 그는 무슨 이유에선지 매우 여유롭다. 아지트로 돌아온 첫날에는 그토록 힘들어 보였는데 지금은 그야말로 혈기왕성한 10대처럼 활짝 폈다. 굳이 말하자면 너무 멀쩡해서 이상하다.

 "괜찮은 거야? 데이다라 넌 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초조해진다면서."

 "그래, 지금도 초조하다. 하지만 그때와는 느낌이 달라.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서 아쉬운 기분이 든다."

 "내가 생각해 봤는데, 그건 데이다라의 몸이 보내는 신호 같은 게 아닐까? 그동안 너무 열심히 일해서… 충분히 쉬어야 한다고 하는……."

 "음……."

 치카치카. 치카치카. 탁탁. 칫솔을 씻어 내려 놓고 냠냠이에게 컵의 물을 조금 머금게 한다. 입으로 물결무늬를 그리며 와글와글 하는 것이 귀엽다. 물을 뱉어낸 뒤 수건으로 깨끗하게 닦으면 끝. 냠냠이의 이빨에서 반짝반짝 빛이 난다.

 "오늘 밤엔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푹 자자."

 "그, 그 말은… 하지 않는다는 거냐? 음?"

 양치도구를 정리하고 일어나려는데 데이다라가 어쩐지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아무리 뭐래도 하던 건 마저 해야지."

 어제 혼자 만족하고 잠들어 버린 것에 대해서는 나도 미안하다고 생각하지만… 데이다라의 부상도 신경쓰이고 모처럼 아지트에서 쉬게 되었으니 지금은 요양에만 집중하도록 하고 싶다. 첫날부터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그런 일을… 애인으로서는 솔직히 씁쓸하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무서운 얼굴 보다는 웃는 얼굴로 단호함을 내비치자 데이다라가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어뜨린다. 그런데.

 이번에야말로 일어나려는 찰나 손목을 덥석 붙잡히고, 그대로 잡아당겨져 입술을 빼앗긴다. 애인에게 빼앗겼다는 표현은 맞지 않지만 한 마디 말도 없이 갑자기 키스당해서 일순간 그런 기분이 들었다.

 "뭐, 뭐하는… 읍…!"

 쪽 하고 입술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시 얽혀오며 그와 동시에 바닥으로 털썩 쓰러진다. 그 와중에 머리를 부딪히지 않도록 내 뒤통수를 손으로 감싸주었다. 뭐지 이 제멋대로인 짓궂음과 상냥함은. 이제는 아예 나를 제 품에 딱 가두어 버린다. 도망칠 수 없도록.

 "방금 전에 '오늘 밤엔'이라고 했잖아. 지금은 낮이니까 해도 상관없지."

 상관 없을 리가. 교묘한 말장난에 씩 올라가는 입꼬리를 보며 어안이 벙벙해져 있으니 그만 포기하라는 듯이 다시 쪽, 또 한 번 쪽, 애정표현을 하듯이 내게 입을 맞춘다. 이런 모습에는 내가 괜한 걱정을 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모르겠다.

 "나도 생각해봤다만, 이건 갑작스런 변덕이 아냐. 내 몸이 보내는 이상한 신호 같은 것도 아냐. 단지 뒤늦게 깨달았을 뿐이다.  네가 있으면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 없다는. 이틀이고 3일이고 마음 놓고 푹 쉬어도 된다는 걸 말이다."

 데이다라의 말을 듣고 잠시 멍해져 있었다. 내게 기대어 응석을 부리는 것처럼 그가 자신의 뺨을 부비적거린다. 그의 손은 내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는다.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닿아 있는 감각이 뚜렷하면서도 몽롱한 기분이 든다.

 "앞으로는 좀 더… 내 옆에 있어줄 거야…?"

 조심스레 손을 올려 데이다라의 등을 감싸안는다. 대답은 귓가에서 중저음의 목소리로 나지막이 돌아온다.

 "네가 원하는 건 뭐든지 들어줄 테니 내 옆에 있어라."

 꿈이 아니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데이다라를 두 팔로 꼭 끌어안았다. 꿈에서밖에 보지 못했던 달콤한 현실을 좀 더 분명하게 느끼고 싶어서. 평소와는 사뭇 다른 감각이 데이다라에게도 같은 기분을 느끼게 했는지, 그가 내 어깨에 기대어 나를 다정하게 어루만진다. 깁스한 팔이 행여 불편할까 걱정되지만 조금만 더 이대로 있고 싶다.

 "마침내 빛이 있는 곳에 손이 닿은 것 같았는데… 사람의 마음이란 게 정말이지 간사하고… 욕심이란 건 끝이 없어서… 이제는 또 다른 빛이 저 멀리서 나를 기다리고 있어. 가까이 가서 좀 더 자세히 엿보고 싶고… 닿고 싶고… 저 너머에는 또 뭐가 있을까 궁금하기도 해. 얼마나 더 즐겁게 웃을 수 있을까……."

 무언가 머릿속에 신비로운 광경을 그리고 있는 걸까. 나로서는 잘 알 수 없지만 왠지 모르게 행복한 상상일 것 같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데이다라에게서 피식 웃음 소리가 들려오는가 하면, 그가 몸을 살짝 일으켜 내게 다시 한 번 가볍게 입을 맞춘다. 쪽 하는 소리가 어느 때 보다 더 사랑스럽다.

 "원래 이런 곳에 있으면 상상 조차 할 수 없는 일인데, 나는 그래도 행운이지 않았나 싶다. 너를 만나 꿈이라도 꿀 수 있어서. 그리고 어쩌면 그게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어리석지만 굉장한 상상을 할 수 있어서."

 예전부터 데이다라를 떠올릴 때면 하얀 새를 타고 멀리 날아가는 그의 뒷모습이 그려졌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르다. 나도, 어쩌면 데이다라의 옆에서 같이 날고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어리석지만 굉장한 상상을 하고 있다.

 "나 말이다, 사랑이 뭔지, 어떻게 사랑하면 좋을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진짜 어른에 가까워진 기분이야. 너는 웃을지도 모르지만, 정말 오랫동안 그림자속에서 살았으니 알 수 있어. 조금씩 모든 게 변해가고 있다는 걸. 과거에 자신이 하지 못했던 일은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도 되겠지. 요즘에는 온통 그 생각뿐이야. 집으로 돌아가면 너와 무슨 일을 할까… 우리가 아직 뭘 못했지… 어떻게 해야 하지… 너무 보고 싶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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