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무얼 멋대로 보고 있는 거냐? 음?"

 "미안… 난 그냥……."

 잠시 빌리고 싶은 물건이 있어 데이다라의 방으로 왔는데 그가 방에 없었다.

 언제나 그의 작업대 서랍 안에 들어 있던 물건이었으니, 금방 가지고 나오면 괜찮겠지 싶었다.

 그렇다고 해도 서랍 안의 낡은 사진을 멋대로 본 것에 대해서는 데이다라가 내게 화를 낼만도 하다. 그가 무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아도 나로서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지금 내가 들고 있는 이 사진, 어린시절의 데이다라가 같은 바위 마을의 친구들로 보이는 두 명의 아이와 함께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다.

 내가 사진을 줄 수 없느냐고 물었을 때, 한 장도 남김없이 전부 불태웠다고 했던 것은 거짓말이었다.

 여기 이렇게 귀여운 모습이 담겨 있지 않은가.

 "필요한 물건이 있어서 서랍을 열었다가 이 사진이 눈에 띄었어… 데이다라의 어린시절 모습은 엄청 오랜만에 보는 거니까 반가워서 나도 모르게……."

 "됐다."

 무심한 목소리. 아무래도 좋다는 듯 그가 코트를 벗어놓고 침대에 걸터앉는다. 오늘 임무가 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는데, 꽤나 고된 일이었는지 피곤해보인다.

 아니, 얘기를 듣지 못하는 것은 이제 새삼스런 일이다. 애당초 데이다라에게 아지트를 나설 때 마다 내게 어디에 가는지 뭘 하는지 일일이 말할 필요는 없다.

 "저기, 데이다라. 여기 있는 두 사람은 누구야?"

 "여자 쪽이 쿠로츠치, 남자 쪽이 아카츠치. 그리고 뒤에 코딱지만하게 보이는 게 가리."

 …뒤에 한 명 더 있었어?

 자세히 보니 정말 코딱지만하게 보인다. 원체 작은데다 제츠처럼 비쭉비쭉 선 녹색 계열의 머리카락이 마치 보호색처럼 주변의 나무에 묻혀서 전혀 깨닫지 못했다. (…)

 "전부 데이다라의 친구들이야? 여자 아이는 좀 더 어려보이는데."

 "아아, 동생 같은 녀석이었다."

 지난 번에 얘기했던 그 여자 아이인가.

 이럴 때는 여자의 감이랄까, 그런 것이 조금 원망스럽다.

 "데이다라, 이 여자애 좋아했지?"

 "하?"

 "넌 분명히 오른손잡이인데… 봐, 왼쪽 부분에 유독 지문이 많이 남아 있어. 오른쪽 끝에 서 있는 이 여자애를 주로 봤다는 거지."

 "탐정이냐, 너는. 음."

 딱히 부정하지 않는 것은 역시 그렇다는 거겠지. 누구에게나 과거는 있다. 단지 나처럼 기억을 잃은 사람에게만 해당되지 않는 것이다.

 "보고 싶어?"

 "……."

 대답이 없는 데이다라. 그저 두 발을 마저 침대 위에 올리고는 내게 등을 보이고 눕는다.

 "데이다라가 원한다면 이 아이의 모습으로 변해줄게."

 "무슨 소릴 하는 거냐?"

 "목소리도 아직 기억하고 있다면 바꿀 수 있어. 그리고 성격이나 말투를 가르쳐주면…"

 "네가 왜 그런 일을 하는데? 음?"

 "왜냐니, 그야……."

 그러고보니 그렇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생각보다도 마음으로, 거의 무의식 중에 내뱉은 말이라 나도 잘 모르겠다.

 "……."

 사진 속 여자 아이의 모습을 다시 보니, 아직 어린시절의 모습이지만 미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도 분명 나 같은 것보다 예쁘고 강하겠지.

 추억은 멀어질 수록 아름다워진다. 지금 내 눈에도 이렇게 사랑스러운데, 데이라다라의 기억 속에서는 얼마나 눈부시게 빛나고 있을까.

 "이 애의 모습이라면… 좋아해줄지도 모르니까……."

 스스로도 바보 같다고 생각하고 있다. 바보 같을 뿐만 아니라 이기적이다.

 자신이 사랑받고 싶다는 이유로 이런 말을 꺼내고 있으니, 어떻게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데이다라의 추억이 더럽혀질지도 모르는데.

 "어디 해봐라."

 "에…?"

 "해보라고, 변신술. 자신있으니 그런 말을 꺼낸 것 아니냐? 음?"

 "……."

 진심인 걸까. 뭐가 어쨌든 자신의 입으로 말했으니 일단 해보는 수밖에 없다. 그림자 분신술 같이 까다로운 술법이라면 조금 어렵겠지만 단순한 변신술 정도는 아무리 약한 나라도 능숙하게 해낼 수 있다.

 사진 속 여자아이의 모습을 한 번 더 자세히 보고는 두 손을 모아 인을 맺는다. 모습을 바꾸고, 데이다라가 하라는대로 목소리도 바꾼다. 그야말로 다른 사람. 적잖이 비참한 기분이 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아무런 느낌이 없다. 그새 마음이 무뎌진 것일까.

 “이리 와.”

 조심스레 데이다라에게 다가간다. 이윽고 그가 내 팔을 잡아당겨 침대 위에 눕힌다. 방의 조명은 어둡고, 등에 닿은 시트는 차갑다. 너무나도 익숙한 풍경일진대 새삼 낯설게 느껴진다. 지금 내 위에 올라타서 나를 내려다 보고 있는 데이다라도 그렇다. 첫사랑의 모습이라고 해도 안쪽이 나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데, 그것으로 괜찮은 걸까.

 데이다라가 내 다리를 휘어잡고 거기에 입을 맞춘다. 쪽- 하는 소리와 함께 찌릿 하고 날카로운 감각이 올라온다. 처음에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이런 것을 ‘기분 좋다’라고 하는구나.

 “뭐야.”

 데이다라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는데, 어째서인지 대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단지 그에게 몸을 맡기고 있을 뿐이다.

 “울지 마, 기분 잡치잖아. 음.”

 내가 지금 울고 있는 건가. 그러고보니 아까부터 시야가 흐릿하다. 그런데 눈물이 뜨겁지 않고 차갑다. 그래서 자신이 울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뭐… 그렇게 울고 있으니 생각나는군. 쿠로츠치 녀석도 너처럼 껏하면 울었는데, 내가 마을을 떠날 때의 우는 얼굴은 평소와 조금 달랐거든. 지금 너 처럼, 이렇게 닿아 있는데도 이미 헤어진 듯한, 끝도 없이 멀어지는 듯한,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될 거라는 걸 아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어.”

 데이다라의 손이 뺨을 감싸온다. 그리고 눈물을 닦아준다. 그러나 결코 상냥한 손길이 아니다.

 “언젠가 다시 만나자고… 그렇게 말하려고 했는데 말이야, 그 얼굴을 보니 할 수가 없더라고. 나를 붙잡으려고 했던 쪽은 그쪽인데, 어째서 그렇게 되었을까? 음?”

 그가 상체를 숙여 내게 다가온다. 금발의 머리카락이 시트 위로 떨어지고, 그의 숨결이 어깨 위에 닿는다.

 “지금도 마찬가지야. 난 딱히 널 떠날 생각이 없는데, 왜 자꾸 니가 먼저 멀어지는 것 같냐? 음?”

 데이다라의 목소리가 이전과 조금 달라졌다. 그런데 감각이 무뎌진 탓인지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다.

 “아직도 나를 그렇게 모르겠냐…….”

 혹시 괴로워하고 있는 걸까. 그가 뜸을 들이는 동안, 잠깐의 침묵이 신경쓰인다.

 “나와 가족 이상의 관계가 되고 싶어? 좋아. 몸 뿐이라도 상관없다면 그렇게 하지. 나도 딱히 나쁠 것은 없으니까 말이야. 어때? 잘 생각해보라고. 음.”

 “…….”

 조금은 알 것 같았는데, 그의 말에 가슴이 쿡 하고 찔려 아픔이 밀려온다. 그리고 다시 무감각해진다.

 “그 바보 같은 얼굴, 어떻게 좀 해라. 도무지 안을 맛이 안 나니까. 음.”

 그가 자신의 코트를 들고서 방을 나간다. 쾅 하고 문이 닫힘과 동시에 짙은 정적이 찾아온다.

 어째서 이렇게 되었을까. 처음부터 좋아한다는 말 같은 건 하지 않는 편이 좋았던 걸까.

 원하면 원할 수록 멀어질 뿐이라면 차라리 예전이 나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멀어진다고 해도 이젠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제작> Copyright ⓒ 공갈이 All Rights Reserved.
<소스> Copyright ⓒ 카라하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