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띠동갑을 면한 연하 애인을 두고서 불만을 토로한다면 그것은 양심이 없어도 너무 없는 거겠지. 전적으로 동감한다.

 데이다라가 자신에게 과분한 상대라고 생각하는 것은 물론, 이따금씩 그가 왜 나 같은 여자와 같이 있는 것인지 스스로도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가끔은, 특히 이럴 때는 정말, '나쁜 남자'라는 표현을 쓰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그러니까 말하지 않았냐. 오늘은 피곤해서 그럴 생각이 없다고."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 양말을 벗으며 무심한 목소리로 내게 말한 뒤 데이다라는 지금 몸이 나른한 듯 자신의 한쪽 어깨를 주무르고 있다. 내쪽으로는 시선도 주지 않는다.

 남자가 싫다는데 계속 하자고 매달리는 게 여자로서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일인지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 머리로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을 뿐이다.

 "데이다라… 부탁이야……."

 거의 울 듯한 목소리로 그에게 애원을 해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외면 뿐. 이거야 원, 떠날 때 마다 약속을 받아놓든가 해야지 이대로는 억울해서라도 그냥 못 넘어간다.

 외로움을 견디며 홀로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괴로운데,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몸이 달아오르게 해놓고는 제대로 끝을 보게 해주지도 않고 그대로 쌩- 하고 떠나 버린 것이 바로 지난 날 이 남자가 내게 저지른 만행이다.

 도대체 뭘 위해서? 내가 한눈 팔까봐 불안하기라도 한 것일까? 그래서 온종일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만 원하도록 그런 식으로 천천히 나를 길들이려는 것일까? 아니, 이해가 되질 않는다.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다고 해도 나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아지트 안에서 보낸다. 의심을 해도 내가 하지, 데이다라는 그럴 성격도 아니거니와 불안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하나. 그냥 재밌는 거다. 이런 내 모습을 지켜보면서 즐기고 있는 거다. 생각해보면 사귀기 전부터 그랬다. 내 남자에게 사디스트적 기질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이 자식… 이따 두고 보자… 전혀 다른 의미의 뜨거운 밤을 보내게 해주겠어… 하지만 그 전까지는… 분해도 어쩔 수가 없다… 그가 원하는 모습을, 그가 만족할 때까지 보여주지 않으면…….

 "내가 계속 너만 기다리고 있었다는 거 알잖아… 나… 이제 슬슬… 너에게 안기지 않으면… 죽어 버릴 거야……."

 아아, 내 입으로 말하고도 손발이 오그라든다. AV의 한 장면도 아니고 대체 이게 뭐람. 자존심은 둘째치고 부끄럽다. 그런데 남자들이란 정말, 조금 전의 대사가 적중이었는지 나를 돌아보는 그의 눈동자에도 욕망이 비치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지… 조금 어울려주도록 할까… 음……."

 자기도 하고 싶으면서! 육성으로 외치고 싶지만 꾹 눌러참고 시트 위에 몸을 눕힌다. 이윽고 불쾌해진 그곳으로 그의 손가락이 들어온다. 냠냠이는 쓰지 않는 건가. 이건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니다.

 "짓궂은 장난은 이제 그만하고… 제대로 하자… 부탁이니까……."

 "불만이라면 그만두겠다. 그래도 괜찮겠냐? 음?"

 계속 이런 식이면 점점 더 괴로워질 뿐인데, 그래도 그만두는 것은 싫다. 내 몸도 그것을 아는 듯이 데이다라에게 계속 해달라며 조르고 있다. 아까부터 두근두근 하고 심장과는 다른 박동이 느껴진다. 이제 정말 한계다.

 "데이다라……."

 그래, 이미 망가질대로 망가진 자존심 여기서 더는 물러날 곳도 없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연상의 여자로서 확실하게 어울려주지. 아니, 오늘은 전력으로 주도권을 잡는다! 너의 입에서 달달한 목소리가 나오게 만들어 줄 테다!

 "음…?"

 부들부들 떨리는 두 손을 밑으로 내려, 내 안을 멋대로 희롱하고 있는 그의 손을 꼬옥 붙잡는다. 그리고 딱히 연기는 아니지만 눈물이 어른거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그에게 속삭인다.

 "해줄 때까지… 안 놔줄 거야… 이대로 계속 나랑 있어도… 괜찮은 거야…?"

 "……."

 끽 하면 코피라도 쏟을 듯이 그가 움찔 하고 작게 경련을 일으키며 나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눈에서 아주 레이저 나오겠다.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냥 덮쳐. 덮치라고 좀. 이제 더는 오그라드는 대사가 안 떠오른단 말야.

 "아…  네가… 그렇게까지 원한다면… 음……."

 저도 모르게 손을 뺨으로 가져가며 그렇게 말하고는 천천히, 그러나 어쩐지 다급한 느낌으로 그가 내 위에 올라탄다. 얼굴이 빨개진 것은 물론이요, 어느덧 그도 숨이 약간 거칠어져 있다. 아까는 진심으로 얄미웠는데 이런 모습은 또 귀엽다.

 "바로 시작해도 되겠지…? 음…?"

 "응… 그치만 서두르지… 아아아아…!"

 내가 채 말을 끝내기도 전, 정말 '갑자기' 라는 느낌으로 그가 내 안을 비집고 들어온다. 아무리 준비가 필요없다지만 이건 아니다. 이런 적은 처음이라 몸도 마음도 깜짝 놀랐다. 그리고 믿을 수 없지만 절정이 왔다. 아픔과 쾌감이 동시에 밀려와 목소리를 미처 억누르지 못했다. 자신이 느끼는 감각을 소리를 통해 있는 그대로 내뱉으며 그의 옷을 꽉 붙잡는다. 파르르 떨리는 손. 아무래도 오늘도 주도권을 잡기는 그른 것 같다. 그보다 아픈 것이 기분 좋다니, 여태껏 상상 조차 하지 못했던 자신의 마조히스트적 기질에 충격과 공포를 느낀다.

 "설마… 방금 그것으로…? 음…?"

 그의 말에 다시 한 번 확실하게 상황이 파악되고 수치심과 자괴감이 마구마구 솟아오른다. 팔로 얼굴을 가리며 어떻게든 숨기려고 애써보지만 소용이 없다.

 "데이다라… 미안……."

 "아니, 내 잘못이다. 신경쓰지 마라. 음."

 그가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을 치우게 한 뒤 내게 다가와 목에 입을 맞춘다. 문득 따뜻한 손이 뺨을 감싸오는가 하면 쓰담쓰담 나를 어루만진다. 부드러운 그의 키스도, 괜찮다고 말하는 듯한 그의 손길도 평소보다 상냥하게 느껴진다.

 "잠깐 쉬었다 할까? 음?"

 도리도리 고개를 젓고는 두 팔로 그의 목을 끌어안는다. 그러자 귓가에서 피식 하는 웃음 소리가 들려온다.

 "실은 나도 기다릴 여유 같은 건 없다. 미안한데, 내 서클렛 좀 벗겨줄래?"

 "응……."

 언제나 '~해라' 등의 명령조로 말하는 그가 이따금씩 이렇듯 다정한 말투를 사용할 때면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달달함으로 젖어든다. 알고 하는 건지 무의식인 건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기쁘면서도 분하다. 이래서 내 애인은 나쁜 남자일 수밖에 없는 거다.

 "고마워."

 서클렛을 벗긴 뒤 손에서 놓기도 전에 그가 움직이기 시작해서 저도 모르게 그것을 꽉 움켜쥐었다. 금발의 머리카락에서 나는 향기는 가벼우면서도 부드럽고 달달한 느낌인데, 그에 비해 아랫쪽의 감각은 날카롭고 또 거칠게 내 이성을 흔들어댄다. 조금 전에 절정을 느꼈던 터라 몸이 더할나위 없이 예민해져 있고, 그저 살이 스치는 것만으로도 피부를 타고 야릇한 기운이 올라온다. 울먹임과 동시에 애원하는 목소리를 참을 수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하… 하아……."

 그의 뜨거운 숨결이 점점 나를 집어삼키는 듯한 기분이 든다.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두려워서 고개를 모로 돌린 채 힘겹게 눈을 뜬다. 여전히 손에 꼭 쥐고 있는 그의 서클렛이 시야에 들어온다. 바위 마을을 상징하는 마크에 또렷한 금이 그어져 있다. 단지 그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지금 데이다라에게 안기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이것은 세상에 단 하나 뿐인 그의 물건이니까.

 "하아… 하아……."

 아까보다 움직임이 거칠어지며 불쾌한 소리가 들려온다. 허리를 붙잡은 두 손에 힘이 들어가는가 하면 어딜 보냐는 듯 그가 고개를 까딱이더니 서클렛을 쥐고 있던 내 손을 잡아 깍지를 낀다. 그와 동시에 입술이 겹쳐지고, 혀가 얽혀지고, 뜨거운 숨결이 뒤섞인다.

 "음… 음음…!"

 관계 중의 키스는 거친 움직임과 날카로운 감각에 어울리지 않는 상냥하고도 부드러운 애정표현으로, 그러면서도 자신이 어느 때보다 더 사랑받고 있다는 달콤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몸 뿐만이 아니라 마음도 제대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으음…! 으으음…!"

 키스를 계속하는 상태에서 쿵쿵 울려대는 쾌감이 일순간 나를 휘어잡는 듯하더니, 또 한 번 절정이 찾아온다. 아까는 갑자기 아픔과 함께 확 들이닥치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이번에는 그보다 천천히, 하지만 더욱 강하게 나의 이성을 지배해온다.

 몸이 견디지 못하고 저항을 시작하자 데이다라에게서도 비로소 작은 신음이 들려온다. 낮은 숨소리와 섞여 귓가에 스며드는,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중저음의 목소리. 아직 끝이 아니건만, 이성과 육체가 동시에 완전히 무너져 내릴 것만 같다.

 "오늘은 평소보다 빠르다는 느낌이군… 음…?"

 "미안… 미안해……."

 "괜찮다, 굳이 말하자면 너를 이렇게 만든 건 내가 아니냐. 다만 이번에도 쉬게 해주는 건 무리다. 음."

 그 말대로 데이다라가 나를 감싸안으며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슬슬 정말 휴식을 원하는 몸이 깜짝 놀라며 움찔움찔 경련을 일으키고, 당혹스러울 정도로 빨리 찾아오는 극도의 쾌감을 느낀다. 방금 전의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이 또한 몸이 저항을 하듯이 움츠러드는 절정의 감각이다.

 "아아아……."

 아무리 오랫동안 참았다고 해도, 이런 것은 스스로도 믿기지가 않는다. 이제 내 몸이 더는 무리라고 말하듯이 남아 있던 기운 마저 전부 밖으로 내보내며 시트 위로 힘없이 떨어진다.

 "윽… 으흑… 흑흑……."

 갑자기 눈물이 터져나온다. 데이다라도 놀라고 나 스스로도 놀라서, 그대로 잠시 모든 것이 멈춘다. 시작은 그가 깨닫지 못할 정도로 작은 훌쩍임이었는데, 이젠 어린 아이의 울음 처럼 거리낌없이 마구 터져나온다.

 "흐아아아아…!"

 ", 왜 그러냐…?"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굳이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자신이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쾌감 때문에 두렵다는 점이다. 하지만 차마 너무 기분 좋아서 운다라고는 말 못하겠다.

 "더는 싫어……."

 "여기까지 와서 싫다고 하면 상당히 곤란하다만… 음……."

 문득 데이다라와 막 사귀기 시작했을 때 먼저 잠들어 버리기 일쑤였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야 말로 나 혼자 느끼고 나 혼자 만족하고…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까지도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하물며 하던 도중에 그만두게 하는 것은 욕망이란 놈의 잔인함을 아는 사람으로서 차마 할 짓이 아니다.

 답답한 듯 눈썹을 찌푸리는 데이다라. 이제 내 기분을 조금은 알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속으로 고소함을 느낄 새도 없이, '미안' 짧은 한 마디와 함께 그가 내 양쪽 팔을 붙잡고 행위를 이어나간다. 지금 내게는 더 이상 쾌감이 없고, 오로지 아픔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내가 괴로워하는 것을 신경쓸 여유가 그에게도 이젠 없는 것 같다.

 "하아… 하아……."

 꽈아아악, 손목을 조여오는 힘을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드라마나 av에서 남자가 여자의 팔을 붙잡을 때는 왠지 모르게 로맨틱하게 느껴졌는데, 상상했던 그런 것과는 다르다. 그저 내가 눈앞의 남자에게 붙잡혀 있고, 아무리 아파도 아무리 괴로워도, 여기서 도망칠 수 없다는 생각만이 들 뿐이다.

 "하… 하아… 하아……."

 다시 흘러나오는 눈물은 아까보다 뜨겁다. 아마도 쾌감이 아니라 아픔에 의한 눈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

 조금 전의 나처럼 쾌감을 감당하기 버거운 것인지 고개를 숙이고 있어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두려움이 점점 커져가는데 그가 내 이름을 부르고 내 어깨에 이마를 기댄다. 내 팔을 속박하고 있는 손도, 가슴 위로 떨어지는 뜨거운 숨결도, 무엇보다 그와의 거리가 점점 나를 구석으로 몰아넣는다. 그리고 마침내 이 행위의 끝을 낸다.

 "하아… 하아… 하아… 하……."

 손목이 욱신거리고 그 밖에도 여러가지 의미로 몸이 부서질 것 같지만 그래도 기분 좋았고, 이번에는 데이다라도 만족한 것 같아서 마음이 편안하다. 이대로 서로 겹쳐져 숨을 고르다보면 서로의 체온을 이불 삼아 스르르 잠에 빠져들 것 같다.

 "……."

 "응…?"

 "솔직히 말해서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할 때도 종종 있다만… 오늘은 정말 기분 좋았다… 고마워… 음……."

 남자들이 침대 위에서 보통 고맙다는 말을 하는가? 의외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은근히 기쁘다. 그 만큼 정신적으로 지쳐 있었고 위로가 필요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안타깝기도 하다.

 "너는 어땠어…? 기분 좋았어…? 음…?"

 여기서 또 말투가 변하는 것인가. 나쁜 남자는 타이밍도 참 기가 막히다. 바로 조금 전에 관계를 가졌는데도 다시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하고 얼굴이 뜨거워진다.

 "기분 좋은 것은 당연한 거고… 행복했어……."

 "그런 귀여운 반응… 위험하다고… 음……."

 "응?"

 뭐지, 이 오싹한 기분은… 이 느낌은…….

 "……."

 "뭐냐, 그 질색하는 표정은. 행복하다면서?"

 "행복도 지나치면 오히려 독이 된다는 거 몰라?"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는 것이다. 음."

 "그러길 바라."

 하지만 뭐, 귀여우니까 봐주기로 할까.


<제작> Copyright ⓒ 공갈이 All Rights Reserved.
<소스> Copyright ⓒ 카라하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