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랬던 때라니?"
"데이다라가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었을 때 말야. 엄청났었잖아." "……." 내 말을 듣고 무언가 부끄러운 기억이라도 떠올랐는지 그가 은근슬쩍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린다. 잘 보이지 않지만 얼굴이 조금 빨개진 것 같다. 데이다라가 얼굴을 붉힐 정도면 상당한 이불킥감이겠거니 하고 속으로 몰래 웃음을 터뜨린다. 하지만 나는 데이다라의 사춘기가 보통 아이들과 약간 달랐다고 생각한다. 어려도 제 나름대로 뚜렷한 가치관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다만 별다른 이유없이 예민해지거나 까칠하게 구는 일이 많아서 솔직히 당시에 내가 마음 고생을 좀 했다. 그때 내가 데이다라에게 주로 들었던 말들을 몇 개만 간추려보자면──. '이쪽 쳐다보지 마! 나한테 말 걸지 마!' '시끄러워! 누구한테 대고 말하는 거야!' '귀찮아! 따라오지 마! 저리 가! 꺼져!' '짜증나! 거슬려! 비켜! 폭발시킨다!' 그 밖에도 멍청한 여자라든가, 얼빵녀라든가, 기분 나쁜 아줌…(크윽)라든가 여러가지가 있지만 다시 떠올리지 않는 것이 자신의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다. 그야 어린애가 내뱉은 말이고 사춘기는 누구나 한 번씩 겪는 것이니 어른으로서는 웃어넘기는 것이 옳겠지만, 그래도 내 애인이 한때 나에게 그런말을 했다고 생각하면… 쓰읍… 씁쓸함을 차마 감출 수가 없다. 개중에는 정말 상처를 받을 정도로 심한 말도 있었다. 데이다라는 자기를 무시하면서 2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이타치를 스스럼없이 의지했던 내게 불만이 있는 모양이다. 그것은 나도 나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나이라고 해도 그는 원체 작은 아이였고, 툭하면 내게 까칠하게 굴었으니까. 애초에 그냥 건들지 않는 편이 그에게도 좋을 거라 생각했다. "할 수만 있다면 너의 기억을 지우고 싶다… 음……." "지우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해. 그때 네가 나를 끔찍이 싫어했던 것을 생각하면 현재 우리의 관계가 정말이지 감사하게 여겨진다구." "시, 싫어했던 게 아냐! 그 정도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잖냐! 음!" 그가 나를 홱 돌아보더니 낮게 소리친다. 무릎 위에 올려놓은 손을 움켜쥐는가 하면 아랫 입술을 살짝 깨물기도 한다. 부끄러운 건지, 분한 건지. 여튼 어린 시절의 그에게도 나름 복잡한 사정이 있었던 것 같다. "그때 데이다라 넌 진심이었어. 특히 나를 아줌마라고 불렀을 때." 크으윽… 괜한 소리를 했나. 내 입으로 말하고도 안면 근육이 파르르 떨린다. 데이다라와 나의 나이 차이를 생각하면 딱히 화낼만한 일도 아닌데, 애인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역시 아프다. "너, 너, 너도 가끔 나를 꼬맹이라고 불렀다! 나만 나쁜 거냐! 음!" 내가 데이다라를 꼬맹이라고 부르는 것과 데이다라가 나를 아줌마라고 부르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나는 귀엽다를 돌려서 말했던 것이고, 데이다라는 정말 그냥 나를 아줌마라고 불렀을 뿐이니까. (…) "하아─." 때아닌 한숨에 착잡한 기분을 느끼고 있노라면 문득 데이다라가 내게 가까이 다가와 나의 안색을 살핀다. 내게 이따금씩 상처를 주기도 했던 꼬맹이가 지금은 걱정스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때에 비하면 정말 많이 컸구나. 그런데 한편으로는 괴리감도 느껴진다. "데이다라는 좋겠다. 젊어서." "젊어서 좋을 게 뭐냐. 너와 나는 같은 시간에 살고 있다고. 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부러워. 다름을 느끼지 못하는 것 말야." "나이가 좀 많다고 해서 유난떨지 마! 너랑 내가 뭐 그렇게 다른데! 같은 사람이잖냐! 음!" 갑자기 화를 내듯이 소리쳐서 움찔 했다. 저는 저대로 답답한 거겠지. 나이 차이가 얼마나 나든지 간에 애인이란 것은 서로 동등한 관계다. 그러니까 다를 게 없는데, 없었으면 좋겠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속시원하게 알지도 못한 채 계속 다르다고만 하니 답답할만도 하다. 어쩌면 나 때문에 조금 속이 상했는지도 모른다. 소리 없이 한숨을 삼킨 뒤 마음을 가다듬는다. 나로서는 데이다라가 계속 모르는 채로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이제는 그냥 터놓고 얘기해야 할 것 같다. "과거의 자신을 떠올려봐." "?" "예전이나 지금이나 세상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지만, 데이다라 너도 지난 세월은 멀게 느껴지지 않아?" 서로 얼굴을 마주한 채 조심스레 말을 잇는다. "예전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은 다르지?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애틋하고 쓸쓸하게 느껴지지?" 가만히 기다리자, 잠시 머뭇거리던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게 내가 너를 보며 느끼는 기분이야." "……."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말이 없는 데이다라. 왠지 조금 충격을 받은 것 같다. 내가 꺼낸 말이 미처 생각치 못했던 것이기 때문일까. 어쩌면 마음으로는 이미 알고 있었는데, 단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그 나이 때는 그랬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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