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을 지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직 무리하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집안일이란 좀처럼 쉴 수 없는 것이다. 평소보다 꼼꼼하게 구석구석 아지트를 청소했더니 온몸이 뻐근하다. 나이를 생각해서 이제부터는 조금 쉬엄쉬엄 하는 편이 좋겠지. 그래도 데이다라와 토비가 휴식을 취할 때만큼은 내조자로서 최대한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다.

 잠시만 쉬었다 일어나자. TV 앞에 앉아서 무료하게 채널을 돌리고 있노라면 문득 치이이익- 하는 소리가 잠든 의식을 깨운다. 저도 모르게 두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시선 고정. 평소에 음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은 잘 보지 않는데, 핑크빛 고기가 불판 위에서 먹음직스럽게 익어가는 광경으로부터 눈을 뗄 수가 없다.

 꿀꺽, 군침을 삼킨다. 무언가 내 안에서 꿈틀거리며 감춰져 있던 욕망을 자극한다. 그동안 필사적으로 외면하려 했지만 욕망이란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채식주의자인 애인을 위해 참아야 한다는 이성적인 자아가 존재하는가 하면, 어린 시절 고기를 사랑했던 애육인으로서의 원초아가 존재한다. 이런 상황을 정신분석론에 빗대는 것이 내가 생각해도 웃기지만 어쨌든 이것은 내면의 갈등이다.

 안 돼, 데이다라 몰래 먹는다든지 그런 비겁한 생각은 하면 안 돼. 이럴 때는, 에잇, 나와라 도덕적 자아 수퍼-이고-!!! …라는 것은 어느 몽매한 영혼의 헛소리일 뿐입니다. 죄송합니다, F 아저씨. 고기에 대한 제 안의 심오한 갈등을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어요. 흑흑.

 "……."

 헛, 누구지. 인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다. 착각이었나. 긁적긁적. 흐트러진 자세를 고쳐 잡고서 더는 갈등되지 않도록 채널 버튼을 꾸욱 누른다. 그러나 이 암담한 기분을 어찌 하면 좋을까. 최근에는 단백질 섭취를 위해 닭가슴살 샐러드 정도는 먹고 있지만, 아니,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먹고 싶다. 닭튀김이라든지, 닭튀김이라든지, 닭튀김 같은.

 누가 보면 내가 엄청나게 희생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것은 나의 고집일 뿐이다. 데이다라는 처음부터 고기든 뭐든 마음대로 먹으라고 했다. 그가 임무를 나가 있는 동안 조금 먹는다고 크게 문제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막상 고기를 입에 넣으려고 하면 망설이게 된다. 마중을 나갔을 때, 달려가 안겼을 때, 혹시라도 나한테서 냄새가 나면 어쩌나. 보통 사람들에겐 맛있는 냄새일지 몰라도 내 남자에겐 지독한 냄새다. 언제나 사랑만 받고픈 여자로서는 당연히 싫지 않겠는가.

 채식주의자와 사랑에 빠진 시점에서 고기는 내 삶에서 없어져야 할 음식으로 결정되었다. 어쩌면 나중에 데이다라의 식성이 바뀔지도 모르지만(희망사항) 지금은 아니다. 결국에는 어느 한쪽이 맞춰줄 수밖에 없는 문제다. 냄새만으로도 인상을 찡그리는 남편에게 차마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나마 내 쪽이 참을 만하니까, 괴롭지만, 앞으로도 계속 참기로 마음먹었다.

 안녕 닭튀김─. 네가 많이 그리울 거야──.

 (…)

 토비 : 여기 어때요~? 피로가 싹 풀리는 것 같지 않아요~?

 데이다라 : …….

 토비 : 온천 딸린 여관이 조금 비싸긴 하지만 가끔은 괜찮잖아요~. 제 말대로 하길 잘 했죠~? 그쵸~?

 데이다라 : …….

 토비 : 어라~. 그새 더 야위셨네요~.

 데이다라 : …크윽, 시끄러워! 내가 말라서 보태 준 것 있냐!

 토비 : 그냥 걱정돼서 하는 말인데 왜 화를 내고 그러세요~?

 데이다라 : 쓸데없이 좋은 몸을 가져서는, 어떻게 하면 병량환만 먹고 이렇게 될 수 있는 거야! 음!

 토비 : 무슨 일 있었어요~?

 데이다라 : …….

 토비 : 잘 모르겠지만 선배도 앞으로는 골고루 먹도록 해 봐요~. 아직 젊으니까 조금만 노력해도 근육이 붙을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내일 점심은~.

 데이다라 : …고기.

 토비 : 헤~?

 데이다라 : 다른 건 필요 없어. 무조건 고기를 먹는다.

 토비 : 저야 기쁘지만~. 괜찮겠어요~?

 데이다라 : 내가 결정한 것이다. 당연하지.

 (…)

 치이이익─.

 토비 : 와아~. 맛있겠다~.

 데이다라 : …….

 (나도 어렸을 때는 아무렇지 않게 먹었어.)

 (몸은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터.)

 (단지… 떠올리지 않으면 돼…….)

 (떠올리지만 않으면…….)

 (…)

 ??? : 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연기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잖아!

 데이다라 : 뭔가 이상해, 방금 전의 폭발로 설치해둔 트랩의 위치가 바뀐 것 같아.

 ??? : 큰일이야,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몰라! 얼른 여기서 벗어나야 해!

 데이다라 : 움직이지 마!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

 (…)

 데이다라 : …….

 (아니… 떠올리지 않는 건 무리야…….)

 (언제나 같은 장면을 보고 있는데… 머릿속에서 지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어찌 보면 내가 스스로를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셈이니… 역시 스스로 빠져나와야 해…….)

 (가끔이라도… 가 원하는 것을… 같이 먹을 수 있게…….)

 (…)

 퍼어어엉──.

 ??? : 내가 지금 구하러 갈게!

 데이다라 : 안 돼, 가면 너까지 휘말려!

 ??? : 하지만 내 동료가 불타고 있어!

 데이다라 : 바보야, 우리는 저쪽으로 갈 수 없어! 움직이지 마!

 (…)

 토비 : 선배~. 괜찮으세요~?

 데이다라 : 웁…….

 토비 : 토할 것 같아요~? 그냥 나갈까요~?

 데이다라 : 여기까지 와서 무슨 소리야…….

 토비 : 는 그렇다 쳐도 선배까지 바보처럼 굴지 말아요~. 까짓거 먹으나 마나 뭐가 달라지겠…

 쿵─!

 토비 : 히이이익~.;;

 데이다라 : 그래, 나도 너처럼 안이한 생각만 했다. 그리고 결국 이렇게 된 거다. 나의 에게 이 정도 괴로움은 아무것도 아니야. 무슨 말인지 알겠냐.

 토비 : 서, 선배~.;;

 데이다라 : …….

 (나와 사귀기 시작한 뒤부터 그녀는 언제나 괴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어… 말재주가 없어서 별로 웃겨 주지도 못하지만… 식사 때는 특히… 웃는 얼굴 같은 건, 마지막으로 봤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아.)

 (내가 바위마을에서 첫 임무를 떠났을 때… 그 이후로 벌써 십여 년이 흘렀군… 솔직히 말할 수는 없지만… 아직도 냄새만으로 역겨운 기분이 들어…….)

 (…)

 ??? : 아아아아악─!!!

 ??? : 더는 지켜볼 수가 없어! 놔 줘!

 데이다라 : 제발 닥치고 네 입 좀 틀어막아! 연기에 질식하고 싶지 않으면! 음!

 (어차피 우리 둘의 힘만으로는 구할 수 없다고…….)

 (사방에 트랩이 널려 있어… 보이지 않아도 냄새로 알 수 있잖아…….)

 (근데 이건 또 무슨 냄새야… 설마… 저 녀석의…?)

 (…)

 데이다라 : 웁… 으우웁…!

 토비 : 선배, 제가 참견할 문제가 아니라는 건 알겠는데요~. 지금 선배의 모습… 고기를 먹느냐 마느냐 같은 단순한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그 정도가 아니라…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무진장 괴로워 보인다구요~.;; 역시 그만두는 게~…;;;

 데이다라 : 삼켰…다…….

 토비 : 네~?;;

 데이다라 : 뭐야… 생각보다 별 것 아니잖아…….

 토비 : 어떻게 봐도 별 것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얼굴인데요~.;;

 데이다라 : 그래도 뭐 어쩌겠냐… 이번에 돌아가면… 꼭… 랑 고기를 먹을 거라ㄱ… 으… 으윽…….

 (맙소사… 정말 속이 뒤집어질 것 같아…)

 (이젠 뭐랄까… 눈앞이 마구… 뒤틀려서… 뭔가…….)

 데이다라 : 으으윽…….

 토비 : 왜 그래요~?;; 뭔가 이상한 게 보여요~?;;;

 데이다라 : 이상한 거라니… 의 웃는 얼굴이 보인다.

 토비 : 머리가 이상해진 거예요~?;; 선배는 원래 좀 이상하지만, 정신차려욧~.;;;(짝짝짝)

 데이다라 : 아, 아얏… 그만둬! 그보다 토비, 이 가게가 근방에서 제일 유명한 곳이라고 했었지?

 토비 : 네애~. 아까 지나가는 누나들한테 물어 봤는데 여기로 가보라고 했어요~.

 데이다라 : 정말 나쁘지 않은걸. 이번에 아지트로 돌아갈 때는 이걸 사 가야겠어. 음.

 토비 : 과연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릴까요~? 제가 보기에 지금 선배는~. 으음~.;; 적응이 됐다기 보단 그냥 넋을 놓은 것 같아요~.;;;

 데이다라 : 오히려 반대다. 이제야 정신을 차렸어. 이렇게 간단히 해결될 문제를 그동안 나는 왜 고민하고, 왜 에게 의미 없는 고생을 시켰을까. 진작 시작했어야 했는데. 내가 먼저 변해야 했는데.

 토비 : …….

 (정말이지, 애송이 주제 쓸데없이 진지하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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