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꽃」 번외편입니다.
 소설의 내용을 몰라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큰 무리는 없습니다.
 데이다라와 주인공이 그냥 하고 있을 뿐(?)의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일반 워드 보다 수위가 좀 셉니다.(이때다 하고 아주 그냥…)
 수위에 약하신 분들께는 열람을 비추합니다. by. 공갈이


  평화로운 바위마을.

  거실의 커다란 창문 앞에서 마을 중앙의 커다란 광장을 바라본다.

  창문을 살짝 열어 두면, 이따금씩 바깥으로부터 사람들의 이야기와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남달리 걱정이 많은 남편 때문에 하루아침에 백수가 되어 버린 내 신세가 슬프긴 해도,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며 이렇게 여유로운 한때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머리카락이 젖어 있으니 이대로 계속 서 있으면 감기에 걸리겠지.

  데이다라가 방에 있기에 망정이지 이런 내 모습을 본다면 한바탕 난리가 날 것이다.

  이제 병은 다 나았다고 말해도 계속 병원에 보내고, 이것저것 먹이고, 마을의 일만으로도 충분히 바쁠 텐데 내가 돌아온 이후 우리의 츠치카게 님께서는 팔불출의 끝판왕을 몸소 보여주고 계신다.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용히 창문을 닫고 목에 두르고 있던 수건으로 머리카락의 물기를 닦았다. 아직 잠들기엔 이른 시간이니까, 뭔가 따뜻하게 마실 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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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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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방으로 향하려는 순간, 밤의 고요함에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간드러진 음색이 나의 귀를 간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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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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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지어 애교도 섞여서. 원래 중저음인 것에 어느덧 중후함까지 더해진 목소리로 나를 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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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리-. 빨리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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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츠치카게 님. 아침에 일어나면 언제나 옆에 없기에 마을을 위해 정말 열심히 일하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여유가 생기자 기다렸다는 듯 부리나케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셨다.

  저녁 식사 때도 먹는 둥 마는 둥 내 얼굴만 빤히 쳐다 보더니, 이젠 베개를 방방 두드리며 빨리 오라고 아우성이다.

  집으로 돌아오면 맘껏 응석 부리고 싶기도 하겠지. 나도 웬만하면 데이다라와 계속 붙어 있고 싶다.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츠치카게로서의 체면이란 것도 있질 않은가. 밖에 있을 때의 엄숙한 분위기와는 위화감이 너무 커서 뭐라 말이 안 나온다.

  지금 데이다라에겐 뭐라고 말해도 소용없겠지. 어렸을 때부터 오빠를 닮아 무뚝뚝한 아이였던 데이다라가 언제부터인가 아무렇지 않게 애기짓을 하는 어른으로 변했다.

  2년 전만 해도 전혀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그만큼 떨어져 있는 시간 동안 외로웠던 걸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서 전부 받아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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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아래에 있는 녀석 벌써 굉장한 상태가 되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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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상태인지 안 봐도 알 것 같다. 충분히 예상이 가니까. 츠치카게 님, 이제 보니 당신은 지난 2년 동안 저만 기다렸던 게 아니라 좀 더 여러 가지로 기다리고 계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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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만 더 기다려."

  그렇다 해도 아직 아무 것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어째서지. 속으로 생각하니 방에서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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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이, 너도 들었겠지. 여보가 조금만 기다리라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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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있는 녀석과 대화하지 마세요…. -라고 츠치카게 님께 차마 딴지를 걸지는 못하겠고.

  나는 애써 표정관리를 하며 조용히 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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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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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샤워를 마쳤던 데이다라는 이미 가운을 벗어던진 채 맨몸이 되어 있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후다닥 일어나 침대에 내 자리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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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이니까 난 데이다라와 좀 더 차분하게 얘기가 하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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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대 위로 올라가 앉으며 넌지시 말하자, 데이다라는 기쁜 듯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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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얘기? 나도 여보랑 얘기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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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지만 종일 업무에 시달리며 얻은 피곤함이 완전히 가려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데이다라의 웃음이 안타깝게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귀여워 보이기 시작했다.

  침대 머리에 등을 기댄 채 데이다라는 같은 방향으로 앉아 있는 나를 감싸안았다. 그의 따뜻한 체온이 뒤에서 느껴졌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묘한 감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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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기…. 닿고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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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쓰지 마라. 오랜만이라서 들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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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아래 녀석에게 인격을 부여하지 마세요…! 들떠 있는 건 당신이잖아요…! 츠치카게 님…! 정말 한 번쯤은 딴지를 걸고 싶었지만 자기 남편에게 그렇게 외치는 내 모습도 적잖이 보기 우스울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그리고 나도, 데이다라가 두 팔로 안아주는 순간 다른 것은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마음이 편안해졌다. 봄날의 따스함이 저녁까지 계속되어 마을 전체의 공기를 온화하게 만들고, 데이다라는 내게 기대어 나른하게 한숨을 내뱉었다.

  "다시는 당신을 이렇게 안을 수 없는 걸까 생각했어. 다른 녀석에게 안겨 있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기라도 하면…. 으으으…!"

  그때의 불미스런 생각이 다시 떠오른 것인지, 문득 데이다라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아, 아파…. 난 한 번도 그런 마음 품은 적 없어. 설령 우리가 다시 만나지 못했다고 해도 다른 남자와 이렇게 하지는 않았을 거야."

  "정말…? 줄곧 나만 생각하고 있었어…? 다른 놈과 썸 타지 않은 거야…? 회계를 맡은 녀석이 너를 아주 잘 따르는 것 같던데…."

  신지구의 회계 팀에는 여러 명이 소속되어 있다. 모두 좋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중에서 유독 나를 잘 따르는 사람이라고 하면 딱 한 명이 떠오른다.

  "이름이 뭐였지…. 츠나요시…?"

  "전혀 비슷하지도 않아요. 츠나요시가 대체 어디서 나온 거예요? 직접 임명했으면서 그새 잊어버렸어요? 부하들의 이름 정도는 확실하게 외워두세요."

  데이다라가 성인이 된 이후 나는 그에게 잔소리할 때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늘 존댓말을 사용했다. 지금은 데이다라도 나이가 들었고 직위도 있으니 예전보다 더 존중해야 할 필요가 있겠지. 그러나 데이다라는 오히려 아이처럼 입술을 비죽 내밀며 투덜거렸다. 그렇게 많은 사람의 이름을 일일이 외우는 건 무리라고, 소심하게 변명하면서 딱히 알고 싶지도 않다는 표정이었다.

  "츠치미예요, 츠치미. 유능한 인재니까 언제까지고 외지에만 두지 말고 좀 더 많은 기회를 주세요."

  "어어, 이것봐라. 지금 인사청탁하는 거야? 점점 더 수상해지는구만. 솔직하게 말해. 둘이 무슨 관계야?"

  얼음보다 차가운 중저음의 목소리에 누군가는 등골에 오한이 서렸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의 팔에 힘이 들어가서 약간 움찔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나는 알 수 있다. 내가 농담삼아 '실은 연하인 츠치미와 썸을 타며 즐겼다'고 말하면 데이다라는 촉촉해진 눈으로 울먹이며 나를 쳐다봤을 것이다. 나를 반려자로 정한 이후 내 앞에서 만큼은 솔직하게 눈물을 보였던 사람이었으니까.

  "츠치미는 토마 씨와 동갑이예요. 이제 겨우 20살이라고요. 내가 예전에 당신하고 사귀면서 얼마나 마음 고생했는지 모르죠?"

  알고 있다면 절대 그렇게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11살 차이도 버거운데 17살 차이라니. 내게 츠치미나 토마 씨는 단지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젊은 사람들일 뿐, 거기에 덧붙이자면 데이다라에게 꼭 필요한 소중한 인재들이다.

  "난 데이다라가 아니면 안 돼. 과거에도 현재에도 마찬가지야."

 잔소리를 한 뒤에는 아내로서 남편의 마음에 위로가 되는 말 또한 잊지 않는다.

  "나와 같구나."

  이윽고 데이다라의 숨결이 귀에 떨어지며 낮은 목소리가 달콤한 속삭임으로 다가왔다.

  "나도 네가 아니면 안 된다."

  쪽-. 귓가에 떨어지는 예리한 감각이 일순간 야릇한 긴장감을 느끼게 했다.

 ​ "데이다라도 나만 생각했어…? 쿠로츠치 씨라든지, 다른 생각은 전혀 하지 않은 거야…?"

  나의 물음은 스스로의 자존심을 아프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내뱉어 버렸다.

  거기에 대한 데이다라의 대답은 전보다 더 싸늘하게 들려왔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혹시 그런 의심을 하면서 지난 2년 동안 날 멀리 했던 거냐. 도리어 내게 묻는 듯한 차가운 분위기에 나의 마음은 불안과 안도를 동시에 느꼈다. 다행히 데이다라가 머잖아 다시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내게 속삭였다.

  "그 바보들에 대한 것은 이제 됐으니까…."

  쪽 쪽 연달아 입을 맞추는가 하면.

  "두 사람의 일에 집중하자……."

  후우-.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으며 그가 내 귀를 애무했다.

  얘기하면서 가슴 만지지 마세요…. 속으로 중얼거리면서도, 나는 오랜만에 함께 잠자리에 드는 남편의 냄새, 목소리, 그리고 야릇한 손길에 별 수 없이 몸이 달아올랐다.

  "당신 병은 정말 다 나은 거지? 해도 괜찮아?"

  "너무 거칠게 하지만 않으면…. 괜찮아요……."

  "이래저래 골치 아프군."

  "미안해요……."

  뭐가 미안해. 화 내고 있는 게 아니야. 그가 내게 속삭이고는 또 한 번 쪽-. 귀에 입을 맞추었다. 어떻게 계속 키스하며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걸까. 심지어 그는 내게 이런 것도 물었다.

  "혼자 지내는 동안 스스로 해결하기도 했었어?"

  "해, 했을 리가 없잖아!"

  나는 얼굴을 울긋불긋 물들이며 저도 모르게 다시 반말을 내뱉었다.

  "거짓말 하면 아픈 짓 당한다. 이게 2년만에 하는 건 아니지?"

  "……."

  "당신 상처입히기 싫어서 그래. 겨우 내 품에 돌아왔으니까 조심히 다루고 싶어."

  "그렇게 나를 잘 알고 있다면 애써 묻지 마……."

  나는 수치심에 물든 목소리로 대답한 뒤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러자 뜻밖에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데이다라가 내게 말했다.

  "그냥 떠본 거였는데."

  얄궂은 그의 한 마디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나는 속으로 경악했지만 남편의 앞에서 뭐 어떠나 싶기도 하고 달리 피할 방법도 없었기에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시, 시도는 해봤지만 잘 안 됐어…."

  "한 번도?"

  "응. 데이다라와 할 때의 그런 느낌이 전혀 없어서…."

  "나이 서른줄에 혼자서 해결도 안 된다니, 귀여운 아줌마."

  우이쒸, 발끈해서 한 대 때려줄까 했지만 뒤돌아 눈이 마주치는 순간 얼굴이 또 화끈거려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얌전히 몸을 정면으로 되돌렸다.

  "이제 편하게 있어. 당신 남편이 여기 있잖아."

  장난쳐서 미안. 그렇게 나를 달래듯이 그의 애무가 조금 전보다 더 상냥하게 느껴졌다.

  "데이다라…. 뭔가 아저씨 같아……."

  "아저씨 맞아. 그러니까 아줌마랑 하지."

  아니 이 남자가 정말! 이번에야말로 발끈해서 외치려고 했는데 낼름 하고 뜨겁고 미끄러운 것이 내 귓등을 핥고 지나갔다. 그런 다음에는 살짝 깨물어서 더 큰 자극을 남겼다.

  "농담이고, 더 귀여워졌어 당신. 음."

  "앗, 음이라고 했다."

  츠치카게 취임 후 연설 때문에 버릇을 완전히 고친 데이다라가 이따금씩 예전처럼 '음'이라고 할 때면 생각보다 더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7년 전 19세 시절의 어린 애인이 그립기도 해서 나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본인도 무심코 내뱉었던 것이었는데 데이다라는 그런 내 미소가 반가운 듯했다.

  "으음, 그리웠지?"

  그윽한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들려주고는 입을 맞추고, 이번에는 그의 손이 내 뺨을 감싸왔다. 데이다라가 내게 얼굴을 들게 한 뒤 키스를 해 왔다. 입술이 포개지는 순간 따뜻함과 부드러움이 더할나위 없이 민감하게 다가왔다. 그러면서 진짜 성적 긴장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음…. 음음……."

  키스만으로 신음이 새어나가 부끄러워 하는 나를 데이다라는 자연스레 리드해 주었다. 정면으로 향해 있던 내 다리를 조심스레 옮겨 측면을 향하게 했다. 측면이라기 보다는 자신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어라, 사람은 귀여운데 속옷은 무지 야하네."

  "내, 내가 산 거 아니야…. 실은 쿠로츠치 씨가 외국에 출장을 가셨다가 돌아오면서 선물로 주셨어…. 오늘 힘내라고……."

  엄지를 척 치켜세우면서 뭐랄까, '데이다라 오빠한테 지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계속 리드되고 있으니 선물해준 그녀에게 문득 미안해졌다. 그때 데이다라가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그럼 너도 느꼈겠지. 그 기지배가 얼마나 주도면밀한지. 누가 영감탱이의 손녀 아니랄까 봐, 말 안 해도 알아서 아첨하는 거 봐라."

  "아첨이라니…. 나한테 무슨 힘이 있다고…?"

  내가 아는 쿠로츠치 씨는 털털하고 솔직담백한 여성이었다. 그럴 사람도 아니거니와, 굳이 아첨을 한다면 츠치카게인 데이다라에게 해야 옳을 것이었다. 하지만 데이다라는 한때 자신의 소꿉친구이자 첫사랑이었던 그녀에게 의외로 가차가 없었다.

  "너는 천사가 아니냐. 인망도 하나의 권력인 만큼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너에게는 더욱 강한 힘이 있어. 너의 베갯머리 송사면 나는 못할 짓이 없다. 아내를 너무 사랑해서 못난 리더거든. 영주들이 너를 또 괴롭히면 언제든 말해라. 쿠데타를 일으키든 뭘 하든 싹 치워줄게. 노인네들 협박해서 계엄령만 받아내면 녀석들 허락 없이도 병력을 움직일 수 있어. 이참에 아예 흙의 나라 전체를 하나로 합쳐 버리지 뭐."

  아무리 전임 츠치카게들과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고 해도 사고방식의 차이부터 스케일이 엄청나다. 설마하니 진심일 리 없겠지만 데이다라의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나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문득 머릿속에 무서운 생각 하나가 스치고 지나갔다. 지난 2년간, 혹시, 영주들의 병력을 빼앗기 위해서 일부러 국경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을까. 신지구 건설도 단단히 결합되어 있는 영주들을 분열시키려고 했던 게 아닐까. 속으로 고개를 세차게 저으면서도 소름이 끼쳤다.

  "다, 당신을 못난 리더로 만드는 일을 내가 할 리 없잖아요…. 난 앞으로도 마을 상층부의 일에 전혀 간섭하지 않을 거예요…. 당신이라면 언제나 현명한 선택을 해줄 거라고 믿어요….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건 당신이니까…."

  "그렇다 해도 당신은 이제 조금 우쭐해져도 돼. 가슴 펴고 지금부터 당신이 하고 싶었던 일 다 해. 난 오로지 당신에게 그런 자유를 주고 싶었어."

  "자유는 내가 원할 때마다 외출할 수 있는 것이죠…. 집밖으로도 잘 안 내보내주면서……."

  "나로부터 멋대로 떨어지는 건 당연히 안 되지. 그것에 대해서는 앞으로 좀 더 타협할 필요가 있을 거야."

  인간에게 외출은 당연한 건데 어째서 타협이 필요한 거냐고요. 내가 무슨 소유물이라도 되는 줄 아나. 서운하고 또 서러워서 이참에 엉엉 울며 떼 써볼까 생각도 했다. 그러나 내 허리를 감싸안은 데이다라의 팔에 힘이 들어가 있고, 그 힘은 실체보다 더 강하게 나를 옥죄었다. 허벅지를 타고 올라오는 손길도 은근히 고집스럽게 느껴졌다.

  "모처럼 입은 거니까 일단 벗기지 말고 놔둘까."

  "에……."

  그 순간 데이다라의 말을 '끝까지 하지는 않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인 나는 어쩌면 정말 순진한 여자일지도 모른다. 그의 손가락이 속옷을 비집고 들어올 때 당황해서 아무 저항도 못했고, 머잖아 시작된 짓궂은 행위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아…. 하아…."

  손가락만으로 격한 쾌감을 느끼며 사정해버린 나는 반쯤 넋이 나간 채 숨을 골랐다. 도저히 내가 먼저 뭘 어찌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때 다만 그리운 기분이 들면서 무언가 나의 손을 자연스레 데이다라의 손바닥 쪽으로 이끌었다.

  "냠냠이는 안 써…?"

  "오늘은 나한테만 집중해 줬으면 좋겠는데."

  "무슨 소리야…. 냠냠이는 데이다라의 손이잖아…."

  "그렇지만 왠지 녀석들에게 너의 관심을 뺏기는 것 같아."

  "정말 어떤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어…. 이럴 땐 아직 어린애 같아…."

  어린애 맞아. 데이다라는 이번에도 순순히 인정하고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그의 짓궂음에 괜히 오기가 생겨서 나 답지 않은 일을 하고 말았다. 다름아닌 떼를 쓰는 것이었다.

  "냠냠이 보여줘…."

  "싫어."

  "여보야…."

  "싫다고."

  울상이 된 나는 데이다라가 키스를 하려는 순간 고개를 홱 돌렸다. 그리고 짧은 순간이었지만 보게 되었다. 데이다라의 표정이 일순간 싸늘하게 식는 것을. 단지 내가 피한 것만으로 무언가 속에서 치직 하고 스파크를 일으킨 것 같았다. 하지만 곧 온화하게 돌아오며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보고 싶어?"

  "아니……."

  대답할 때 내 목소리는 약간 떨리고 있었다.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자신의 남편이 왠지 모르게 낯설고 두렵게 느껴졌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제 웬만하면 그의 뜻을 거스르는 일은 하면 안 된다고. 솔직히 몇 번쯤은 말 없이 외출해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당분간은 얌전히 있는 편이 자신에게도 좋을 것 같았다.

  "키스하자."

  "응……."

  서로의 입술이 포개지기 전의 달달한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어디까지나 겁에 질린 내가 그의 말에 무조건적으로 따랐을 뿐이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데이다라가 내게 키스하며 나의 뺨을 감싸는 순간 무언가 짜릿한 것이 발끝에서부터 확 올라왔다는 것이다. 설마하니 이게 속박인가. 그렇다면 나는 속박되어도 좋을 만큼, 아니 오히려 흥분감을 느낄 만큼 간절하게 데이다라를 원하고 있는 건가. 미묘한 기분이었지만 분명한 것은 그런 느낌이 싫지만은 않다는 것이었다.

  나는 조금 머뭇거리다 남편의 단단해진 그곳에 손을 뻗었다. 두 사람 모두 순진무구했던 그 시절과는 다르기에, 일단 시작하면 내 마음도 더 이상 망설임 따위를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내 손으로 쾌감을 주고 머잖아 절정까지 이끌어 가고 싶은 욕구가 자신을 움직이게 했다.

  데이다라도 거진 2년 만에 누군가의 앞에서 치부를 드러내는 것일 텐데, 그는 처음에 내가 그랬던 것과 달리 딱히 부끄러워 하지도, 머뭇거리지도 않았다. 혀를 내밀어 핥을 때 낮은 숨소리를 토해나다가, 더 크게 자극할 때 작은 신음을 흘렸다. 그러는 동안 입을 굳게 다문 손은 내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어 주었다.

  "알지…? 난 당신 없이 살 수 없다는 거…. 이제 더는 내 가슴에 상처 주지 마…. 당신의 눈빛, 당신의 말, 당신이 써서 보낸 편지 하나까지도…. 더럽게 아프니까…."

  내 대답은 별 수 없이 웅얼거리는 것으로 들렸다. 그래서 더 만족스러웠는지 데이다라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리고 분위기가 점점 묘하게 바뀌는 듯하더니 그가 내 머리를 자신에게 바짝 끌어당겼다. 일순간 입안이 뜨거운 것으로 가득해졌다.

  "케헥…! 케헥케헥…!"

  "뱉지 마. 삼켜."

  딱딱한 명령조의 말투는 예전부터 변함이 없는데, 나는 눈물이 그렁거리는 얼굴로 숨을 고를 새도 없이 좀처럼 넘어가지 않는 그것을 억지로 삼켰다. 하나도 남지 않은 것을 확인한 데이다라가 기쁜 듯이 웃으며 나를 안아주었다.

  나는 넋이 빠진 채 허공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의 행동이 마치 지금까지 모두 내 순종의 정도를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내게 말하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것으로 어떻게 사람의 깊숙한 속내를 다 알 수 있겠냐만은, 데이다라는 일단 만족한 듯 보였다.

  "날 사랑한다고 10번만 말해줄래?"

  "……."

  10번'만'인가…. 입안이 불쾌해서 그런 상태로는 그다지 길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싫다고 말할 수도 없는 상황이기에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나는 무릎을 꿇은 자세로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같은 말을 10번 반복했다. 이윽고 데이다라가 나를 일으켜 앉히더니 말릴 틈도 없이 내게 입을 맞췄다. 방금 전에 그런 일을 했는데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머잖아 혀가 얽혀지고 뜨거운 숨이 오갔다. 한때 내 말이라면 뭐든지 들어 주었던 상냥한 남편. 데이다라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스스로 느끼는 바가 없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한 번 비뚤어진 마음을 되돌리는 것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내 고향(땅)…."

  "내 하늘…."

  두 사람은 2년 전까지 그랬듯이 익숙하게 각자의 말을 내뱉었다. 나는 데이다라의 땅. 데이다라는 나의 하늘.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를 다시 한 번 분명히 일깨웠다. 비록 하나로 합쳐질 수는 없지만 어느 한 쪽이 약해지거나 사라져 버리면 두 사람의 세상은 멸망한다. 솔직히 말하면 2년 동안 거의 잊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데이다라는 줄곧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뿐만 아니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속으로 되뇌었을 것이다. 네가 떠나면, 나는 죽는다고.

  "자꾸 심술부려서 미안해."

  "괜찮아요……."

  다시 한 번 입술을 포개고 키스를 계속하며 데이다라가 내 몸을 침대 가운데로 눕혔다. 푹신한 베개에 머리를 기대자 몸도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다.

  "여보야…. 가슴으로 해주면 안 될까……."

  "……."

  하여간, 조금만 풀어주면 이렇다니까. 나는 자신이 느꼈던 두려움을 잠시 묻어 두기로 했다. 어쨌든 데이다라는 내 남편이고 한때 내 동생이었던 남자니까. 여자로서 한없이 사랑받고 싶지만 때로는 내가 그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주고 싶었다. 그가 겉으로 요구하는 것보다 더, 훨씬 더 많이, 흘러 넘칠 정도로.

  이미 약간 단단해져 있던 남편의 그것은 부드러운 가슴으로 감싸여 욕망을 키우다가 머잖아 내 안으로 들어왔다. 이미 한 번 사정했는데도 처음인 것처럼 아프고 민감했다.

  "이대로 첫째 만들자."

  "무슨…."

  그런 민망한 소리를. 나는 말을 잇지 잇지 못한 채 날카로운 신음을 토해냈다.

  "아…!"

  "굉장해…."

  무얼 혼자 중얼거리고 있어. 아파, 아프다고, 나쁜 자식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모두 신음에 묻혔다. 첫째가 생기면 나을 때 이 인간 머리털을 죄다 뽑아 버려야지. 그렇게 나름 살벌한 복수 계획까지 세웠지만 머잖아 내 안에서도 겉잡을 수 없는 쾌감이 일어났다. 조금 전과는 정반대의 감정이 내 이성을 휘어잡았다. 내게 이렇게 짜릿한 일을 해주는 남편이 너무 좋다. 이대로 죽는다고 해도 상관없다. 사랑해. 사랑해.

  "아아…!"

  또 한 차례 절정을 느끼며 나는 두 팔과 다리로 데이다라의 몸을 꽉 조였다. 데이다라도 그것에 적잖은 쾌감을 느끼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두 번의 사정으로 내 몸은 이미 만족했다. 그런데도 중저음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나를 자극하며 계속해서 욕망을 부추겼다. 이보다 더한 쾌감이란 있을 수 없다. 분명 없을 텐데, 만족을 모르는 욕망은 생각조차 닿지 않는 그것을 향해 가고 있었다.

  "데이다라…. 여보야…. 그렇게 하면…. 나 죽어…."

  행위가 거칠어지면서 무언가 가슴을 꾹 짓누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런데 계속 몸이 흔들리는 통에 숨을 크게 들이쉴 수가 없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고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폐에도 감당할 수 없는 통증이 밀어닥쳤다. 데이다라는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도 어찌하지 못하고 '이제 낼게', '낼 테니까 참아'라고 말하며 격렬한 움직임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욕망도 절정에 이르렀다.

  "윽……."

  사정감에 몸을 움츠리며 데이다라는 내가 그랬듯이 나를 꽉 끌어안았다. 그렇잖아도 아픈데 그의 힘에 완전히 부서져 버릴 것만 같았다. 뜨거운 것을 전부 내고나서 그는 비로소 온전히 내게 기대었다.

  "하아…. 하아…."

  숨이 진정되고 통증도 어느 정도 가라앉았을 때 즈음 데이다라는 나를 안은 채 몸을 일으켜 앉았다. 힘이 다 빠진 나는 자연스레 그에게 기대어졌다. 이윽고 나지막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가슴이 벅찰 만큼 기쁘면서도 더할나위 없는 편안함을 느꼈다. 그대로 눈을 감으면 금세 잠이 들 것 같았다.

  "내가 12살 때…. 그러니까 14년 전에…. 난 당신에게 좀 더 그럴싸한 프러포즈를 해야 했어…. 그랬더라면 우리가 어긋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르잖아…. 전부 내 탓이야…. 내가 못나서 사랑하는 여자 하나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어…. 그에 비해 당신의 품은 언제나 고향의 그것보다, 어미의 그것보다 포근했지…. 당신과 함께 천국에 가지는 못해도 당신의 안에서 영원히 함께 있고 싶었어…. 고마워…. 돌아와줘서…. 나 더 이상은 욕심부리지 않을 거야…. 이제 당신과 헤어져서 지옥에 떨어져도 좋아…. 그때까지만 더 내 곁에 있어줘……."

  "악마의 마지막 소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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